'지옥'이 된 '도호쿠 파라다이스', 그곳에선…

[강진 현장 르포] 미나미산리쿠쵸, 바다는 무심히도 새파랬다

아찔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다 반짝 해가 난다 싶었더니, 갑자기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모난 녀석은 따갑고 무겁게 귓불을 스쳤다.

지난 11일 대지진을 맞은 도호쿠 지역의 고속도로와 국도는 군데군데 폐쇄되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갈라진 콘크리트를 여러 번 목격했고, '구호 차량만 통과할 수 있다'는 경찰의 안내에 여러 번 가던 길을 되돌렸다. 의존할 것은 내비게이션과 급히 복사해 온 지도였지만, 무심한 기계와 종잇장이 '지진으로 끊긴 도로'를 알고 있을 리 없었다.

일본 국토교통성에 근무하는 지인이 지난 밤 메일로 미야기현 내 운행 중단된 도로 정보를 알 수 있는 실시간 정보 사이트를 알려 주었지만 쓸모없었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접속은커녕 전화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드문 인적에 모두들 옷깃을 여미어 쥐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시간은 겨우 오후 2시경이었으나 하늘은 무겁고 어둑했다.

16일 오후 취재진은 피해가 심각하다는 미나미산리쿠쵸(南三陸町)로 가기 위해 미야기 현 북부 내륙 도로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가는 길마다 도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우회로를 택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통행금지'라고 쓰여 있지만 지키는 사람은 없는 도로에 접어들었다가, 심상치 않은 도로의 균열을 목격하고 차를 돌렸다. 목적지를 40km 남짓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미야기 현 북부에 흐르는 키타카미(北上) 강 주변을 몇 바퀴나 돌았을 무렵, 근처에 국토교통성 이이노(飯野) 출장소를 발견하고 길을 물으러 갔다. 급하게 배달된 석유 냄새에 물이 끊겨 내려가지 않은 오물 냄새가 뒤섞여 어지러운 상황을 짐작케 했다. 3층으로 올라가 공무원들을 만났다. 모두 격무로 지친 얼굴이었다. 한켠에 놓인 주먹밥과 딸기 등 비상식량엔 거의 손도 대지 않은 분위기였다.

ⓒ프레시안(최형락)
▲ 공공기관으로 쓰였을 것 같은 건물에는 일장기가 조기 형태로 걸려 있었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들은 "우리들도 어떤 길로 안전한지에 대해 말해줄 수 없다"며 미안해하면서 인근 경찰서의 위치를 일러줬다. 잠시 후 내려가는 취재진을 붙잡고 '미야기현 내 국가 관리 도로 피해상황'이라는 제목의 약도와 전지 두 장 사이즈나 되는 주변 지도를 건네줬다.

'미야기현 내 국가 관리 도로 피해상황' 자료에 따르면 15일 20시 기준으로, △미야기현 북서부 오자키(大崎) 시부터 중부 오오와(大和)쵸, 거기서 직선으로 뻗은 해안가까지의 면적 안에 들어있는 국가 관리 도로인 '산리쿠도(三陸道)'의 전선은 긴급 차량 이외 통행금지, △히가시마츠시마(東松島)시부터 아카이(赤井)에 이르는 구간 등을 포함한 국도 45호선 대부분이 '통행 불능' 상태다. 지진에 따른 붕괴, 낙석 등이 아니었다면, 태평양 쪽 해안을 감상할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였을 것이다.

다행히 경찰서에서 자세한 설명을 받았고, 굽이친 시골길을 따라갔다. 도중에 만난 한 50대 여성은 "지진 발생 다음 날 미나미산리쿠쵸에 다녀왔는데 안으로 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도로 사정이 고르지 않으니 절대 속도를 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드디어 미나미산리쿠쵸로 향하는 내륙 쪽 국도로 진입했다. 미나미산리쿠쵸까지 이어지는 20km를 달리는 동안 마주치는 차량은 열에 아홉이 자위대의 지원 차량이었다. 영업이 중단된 휴게소는 자위대원들, 구호대원들의 베이스캠프로 쓰이고 있었다. 아이들이 뛰놀았을 놀이터, 운전사들이 여독을 풀었을 흡연 장소는 모두 재난 훈련소처럼 변해버렸다. 화장실엔 오래 전에 떨어진 휴지, 물과 함께 남녀 구분도 더 이상 없었다.

▲ 자위대가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미나미산리쿠쵸 피해 현장 입구에 도착하자 자위대 헌병이 다가와 차를 세웠다. 길 앞쪽에서 마을에서 바깥으로 대피하는 일반 차량과 구호 차량이 엉켜 있다며 30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주변 민가를 통해서는 줄지은 차들 너머의 상황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통제가 풀린 뒤 진입한 미나미산리쿠쵸 피해 현장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쓰나미가 그야말로 마을을 통째로 삼켰다 뱉어낸 듯한 모습이었다. 도로의 아스팔트 포장은 누군가가 거대한 손으로 잡아 뜯어 놓은 듯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다. 가드레일이 휘어져 있는 광경쯤이야 예사였다. 어디선가 휩쓸려 온 포크레인 위로 각종 가재도구와 옷, 슬레이트 등이 아무렇게나 뒤엉켜져 있었다.

뿌리 채 뽑힌 나무들이 나뒹굴었고, 건물이 있었을 자리에는 그 건물의 주재료였던 물질들이 완전히 분해되어 폭삭 주저앉아 있었다. 철골, 식재(食材), 빨래 등 삶을 이루고 있던 모든 물질들이 진흙과 함께 뒤엉켜 진흙색의 한 뭉텅이가 돼 있었다. 도로는 파손이 심한 정도를 넘어섰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만한 공간을 터놓은 것이 대견할 지경이었다.

▲ '파라다이스'라 불렸던 미나미산리쿠초ⓒ프레시안(최형락)
▲ 홍수통제시설은 쓰나미를 통제하지 못했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러나 이 마을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바다는 무심히도 새파랬다. 평온한 바다와 갈매기 소리는 진흙 냄새와 사람들의 비명이 채 씻겨 내려가지 않은 폐허의 현장과 대비됐다.

원래 이곳은 아름다운 관광지였다고 지나가는 두 노파가 설명했다. 바닷가와 다소 떨어진 지대가 높은 주택지에는 피해가 거의 없어 보였지만, 집만 무너지지 않은 것뿐이었다. 마을 대부분의 인구가 피해 집중 지역인 관광지·시내에서 상업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 중 한 명의 여성은 가족 모두를 잃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린 아이를 업은 다른 여성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고. 이들은 이름도 묻기 전에 "우리는 너무 늙었고 춥다"는 말을 남기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한적한 휴양지였던 미나미산리쿠쵸의 과거 모습을 혼자만 간직한 듯한 칸요(観洋) 호텔에서 종업원인 사이토 히로시 씨를 만났다. 호텔은 외벽도 실내 인테리어도 멀쩡했다. 다만 지진 발생 즉시 전기와 수도 등이 끊겨 현재 종업원들만 남아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고 있는 상황이다.

100여 개의 객실과 온천 시설 등을 자랑하는 이 호텔은 세워져 있는 지반이 튼튼해 큰 피해를 입진 않았다. 다만 사이토 씨는 지진 이후로 한 번도, 게센누마 시에 사는 부모님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는 무덤덤한 얼굴로 "일단 외부 출신의 종업원은 다 돌아갔고 30~40명 정도 남아 가족들의 소식과 재해 복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 칸요호텔 종업원 사이토 히로시 씨 ⓒ프레시안(최형락)

'과거의 파라다이스'를 떠나 피해 현장에서 2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나왔다. 주민들이 커다란 깡통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이들은 가족이나 살 곳을 잃고, 마을회관에서 일종의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다케야마 케이스케 씨는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집에 남아 있던 식재료를 모아 공동으로 밥을 지어 식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당 한가득 밥 냄새가 피어올랐다. 다케야마 씨는 취재진에게도 식사를 권했지만, 인터뷰는 거부했다. 외부인으로 먹고 살던 관광지였지만, 이제는 외부인의 밥숟가락도 녹음기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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