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금융법안은 개혁이 아니라 재앙"

[분석]'볼커룰' 사실상 무력화, '월가 5대은행의 승리'

지난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월스트리트의 대마불사급 대형은행들이 시장의 실패를 부르고, 여기에 금융규제당국도 대형은행들에 휘둘려 규제에 실패하면서 빚어진 합작품이다.

그렇다면 금융위기 재발을 막는 방법은 무엇인가? 대형은행들이 지배하는 월가의 구조를 규제당국이 실제로 규제할 수 있도록 개혁하는 것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건강보험개혁이 이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또하나의 '정치적 승리'가 될 것이라는 미국의 금융규제개혁법안은 과연 이런 목표를 관철한 것일까?

현재 금융개혁법안은 지난달 25일 상하원 단일법안이 마련됐지만, 30일 하원 통과를 위해서는 공화당 의원들의 요구에 따라 190억 달러에 달하는 은행세 조항을 폐지해야 했다. 게다가 로버트 버드 민주당 상원의원의 사망까지 겹쳐 7월4일 독립기념일 이전에 상원도 통과할 것이라는 일정은 7월 중순으로 연기된 상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상하원 대표들이 20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 끝에 단일안을 도출해 내자 "내가 원하는 90% 이상이 이 법안에 담겼다"고 환영하고, 민주당은 건강개혁법안에 이은 오바마의 '두번째 승리'라고 환호했다.

특히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번 개혁법안은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조하고 납세자들의 세금으로 금융권을 구제하는 것의 종식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월가발 금융위기는 재발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 월스트리트를 겨냥한 금융개혁법안을 역설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로이터=뉴시스
사실상 금융위기 주범들이 주도한 금융개혁법안

하지만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등 신뢰할 만한 전문가들은 크리스토퍼 도드 상원 금융위원장과 바니 프랭크 하원 금융위원장이 공동 발의해 '도드-프랭크 법안'으로 불리는 이 법안의 초안이 나왔을 때부터 "금융위기 재발을 방지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또한 진보진명의 저명한 논객 로버트 라이시가 우려한대로 의회에서 완전히 통과되기 전까지 가장 중요하다는 강력한 규제 조항들은 거의 모두 삭제되거나 유명무실화되자, 일각에서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민주당이 '정치적 쇼'를 위해 포장만 그럴 듯한 법안을 서둘러 만들어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특히 경제성장에 필요한 최적의 정책 금리를 결정하는 '테일러 공식'의 창안자로 잘 알려진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번 법안은 금융위기의 진짜 문제에 접근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구제금융을 보장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테일러 교수는 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게재된 'The Dodd-Frank Financial Fiasco'라는 칼럼을 통해 "무려 2319 페이지에 달하는 도니-프랭크 금융개혁법안은 금융위기 원인에 대한 잘못된 진단에 기초하고 있다"면서 "의회가 초당적으로 구성한 금융위기위원회(FCIC)의 진단이 나오지 않았으니 놀랄 일도 아니다"고 꼬집었다.

테일러 교수에 따르면, 이번 법안에서 가장 잘못된 진단은 정부가 위기를 막기에 충분한 권한이 없었다는 판단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의 연준(Fed)이나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권한이 부족했던 것이 금융위기의 원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법안은 금융위기와 관련이 없는 영역까지 정부의 권한만 광범위하게 확대시켜 규제에 따른 비용만 증가시켰다.

또한 이번 법안은 대마불사급 대형은행들 때문에 금융위기가 초래됐다는 판단에 따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질서정연한 정리'를 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개입할 권한을 강화했다.

'대마불사급 ' 은행 그대로 두고 규제만 강화?

하지만 테일러 교수는 "FDIC는 크고 복잡한 금융기관을 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하지 않도록 다룰 능력이 없다"면서 "오히려 정부가 구제금융을 실시할 재량권을 사실상 제도적으로 강화해주었다"고 비판했다.

대마불사급 은행들을 그대로 둔 채 '질서졍연한 파산'을 유도한다는 것은 '미션임파서블'이라고 지적한 루비니 교수처럼 테일러 교수도 "대마불사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고, 대형금융기관과 정부의 유착관계도 예전처럼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테일러 교수는 "이번 법안은 이 법안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향후 금융위기를 방지하지 못한다"면서 "오히려 이번 법안은 금융위기 가능성을 높일 뿐 아니라 경제성장마저 방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바마의 금융규제개혁법안이 이처럼 초안에서 크게 후퇴한 모습으로 귀결된 배경으로 월가의 5대 대형은행의 강력한 로비가 지목된다.

<AP> 통신이 이번 법안에 대해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월가의 골드만삭스, JP모건, 모건스탠리,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등 대형은행들의 지배력만 키울 소지가 많아졌다"고 전한 것도 이때문이다.

규제 대상 90%는 제외한 파생상품 규제 조항

우선 오바마 대통령이 그렇게 역설했던 '자기자본투자(PI)'와 파생상품 투자에 대한 규제 등 이른바 '볼커룰'은 '월가 로비의 승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크게 약화됐다.

당초 '위험투자와 대형화 방지'를 목적으로한 이른바 '볼커룰'에 따르면, 자기자본으로 투자하는 행위(프롭 트레이딩)는 전면 금지된다고 했으나 헤지펀드나 사모투자펀드에 대해서는 기본자본(Tier 1)의 3%이내에서 투자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골드만삭스, JP모간 체이스, 웰스 파고 등이 이 한도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무려 7년이라는 경과시한이 주워졌다.

월가 대형은행을 사색이 되도록 떨게했던 파생상품 규제는 국제 상품투자와 CDS(신용디폴트스와프) 파생거래에만 적용되도록 대폭 축소됐다. 미국 상업은행들이 보유한 파생상품의 명목 가치는 지난 1분기중 216조5000억달러에 달하지만, 이중 92%가 이번 규제를 피한 금리 및 통화 파생상품이라는 점에서 '파생상품 규제'는 유명무실화됐다.

'볼커룰' 중 은행의 대형화를 막는다는 조항도 이미 '대마불사급'인 월가의 기존 대형은행을 겨냥한 것이라기보다는, 국제적으로 다른 은행들에게 진입장벽을 제공하는 역할로 변질됐다.

나아가 이번 법안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두 주범인 '월가의 대형은행과 규제당국의 잔치'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정작 구체적인 규제 내용은 대부분 향후 규제 당국이 신설하도록 위임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규제의 구체적 조항들에 대해 의회가 정한 것은 25%에 불과하고 나머지 75%는 각 정부 기관이 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이 신문은 "금융규제개혁안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월가의 로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꼬집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격언처럼 정말 중요한 이해관계가 달린 법안은 점점 더 일반인들은 알기 어려운 '시행령' 단계에서 정체를 드러내는 현상이 이번 법안에도 적용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공황 이후 75년만에 최대 금융개혁작업이라는 '도드-프랭크' 법안에 대해 테일러 교수가 "금융 재앙'이라고 경종을 울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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