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한 북한의 수용 여부가 천안함 진실 공방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진상규명 국면을 끝내고 제재 국면으로 들어가려는 이명박 정부의 구상이 일사천리로 실행되기는 쉽지 않게 됐다.
北 "주말께 검열단 파견" vs 南 "일고의 가치도 없다"
20일 천안함 조사 발표 개시 20분 뒤 즉각 검열단 파견을 제안했던 북한의 움직임은 적극적이고 구체적이다.
북한은 <조선중앙방송>을 통한 검열단 파견 공개 제안과 별도로 남북 당국간 채널을 통해 '주말'(22일 경)에 검열단을 보내겠다는 전화통지문을 보내왔다고 장광일 국방부 정책실장이 21일 밝혔다.
이는 북한이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하는 선전용 제스처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검증을 원한다는 의사 표시라는 해석이 나온다. '무죄'를 입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효과도 있다.
북한이 이렇게 나오자 '정부 조사에 자신이 있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혹은 '받아들여서 북한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정부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하면 북한에 해명을 위한 멍석을 깔아주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여당의 기류는 부정적이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21일 "강도나 살인범이 현장을 검열하겠다는 의도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도 "우리나라를 우습게보니까 이런 안하무인의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고, 정병국 사무총장은 "일고의 고려할 가치도 없다"고 했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도 전날 브리핑에서 검열단 제안에 대해 "북한이 잃어버린 어뢰가 있는지를 조사해 보고 싶다면 좋은 방안이 될 것"이라고 일축했다.
돌파구는 정전위 공동조사…北도 마냥 거부 못 해
하지만 단순히 거부만 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남측이 검열단을 안 받으면 '조사 결과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다'는 목소리가 국·내외에서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유엔사 군사정전위를 통해 그같은 고민에 대한 돌파구를 열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유엔사 군정위는 천안함 침몰 사태 규명을 위한 '특별조사팀'(SIT)을 구성해 22일부터 북한의 정전협상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 SIT는 합조단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가며, 그 결과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으로 판단하면 북측에 '북-유엔사 군사회담'을 제의해 조사 자료를 전달하고 정전협정 위반에 대해 강력 항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단순히 자료 전달과 항의에만 그치지 않고 공동 조사까지 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군정위에서 (…) 공동 조사를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북한이 공동 조사를 정치적 선전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고 전문가들을 보내 진지하게 조사에 응한다면 공동 조사를 수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박정이 민군 합조단 공동단장은 20일 "정전 관리를 위해 유엔사 정전위원회가 구성돼 있기 때문에 북측이 어떻게 연루됐는지 정전위에서 판단하고, 이를 북측에 통보하고 조치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몇 시간 후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도 같은 말을 했다.
이렇게 볼 때 정전위를 통한 대응은 이미 준비된 카드로 보인다. 그러나 카드를 꺼내기 전에 북한이 먼저 검열단을 제안해 옴으로써 결국 그에 대한 역제의의 성격을 띠게 됐다. 정부는 21일 오후 '북한은 향후 정전위에 나와 설명을 들어라'는 내용의 전통문을 북측에 보냈다고 김태영 장관이 밝혔다.
이렇게 되면 북한도 고민이 된다. 정전위 공동 조사는 거부하고 검열단 파견만 고집하면서 조사 형식에 집착한다면 '자신이 없어서 저런다'는 시선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도 무턱대고 거부할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관건은 과연 정전위를 통해 실질적이고 공정하게 '공동으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느냐다.
▲ 이명박 대통령은 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천안함 사건은 하나의 군사적 도발행위라고 볼 수 있고, 유엔 헌장과 정전협정, 남북기본합의서에도 위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
안보리 '새 결의'에서 '규탄 결의'로 일보 후퇴 배경
그러나 어떤 형식이 됐건 북한이 참여하는 공동 조사가 이뤄진다면 진상조사 국면을 속히 매듭짓고 제재 국면으로 돌리려는 이명박 정부로서는 탐탁찮은 상황 전개가 됐다.
외교통상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를 추진하는 대신 기존의 1874호 결의의 이행을 강화하자는 '규탄 결의'를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정부가 기존의 목표에서 한 걸음 물러선 것은 중국 설득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재 국면으로의 전환이 지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도 분석된다.
정부는 또 독자적인 대북 제재를 조기 시행함으로써 '아직도 조사중'이라는 시선을 분산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을 제외한 대북 교역 및 경협사업 전면 중단 △제주해협 등 남측 해역 운항하는 북한 선박 통행 차단 △확성기·전광판을 이용한 대북 심리전 재개 등이 독자 제재 리스트에 올라 있다.
또한 미 7함대 소속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이 참가하는 한미 연합 대잠수함 훈련을 조기 실시하자고 미국에 요구함으로써 한미동맹 차원의 대응도 재촉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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