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테러지원국 해제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북핵문제 해결의 간고함을 인식할 수 있다. 쉽지 않고 복잡하며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인내의 과정이 바로 북핵문제 해결임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2.13 이전 핵실험과 대북 유엔제재가 맞부딪치는 강 대 강의 대결과정을 굳이 떠올릴 필요도 없이 협상을 통해 문제가 풀려나가기 시작한 이른바 2.13 합의 이후에도 북핵은 힘겨움의 연속이었다.
북미가 양자협상을 통해 비핵화 첫 단계 조치를 합의한 2.13 프로세스는 시작부터 난항을 거듭했다. 미국이 약속한 BDA 동결 자금 해제가 기술적 문제와 정치적 분위기로 인해 계속 미뤄졌고 이를 이유로 북한은 핵시설 폐쇄를 순연시켰다. 결국 3개월을 속을 끓인 끝에 BDA 동결 자금 문제가 해결되었고 급기야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스위치를 내릴 수 있었다. BDA를 넘기고 겨우 한숨을 돌렸지만 두 번째 단계인 핵신고를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은 또 힘겨루기를 거듭했다. 10.3 합의에 따라 2007년 연말까지 핵신고서 제출과 불능화를 완료하기로 했지만 북한은 플루토늄 관련 신고만을 고집했고 미국은 UEP와 시리아 핵확산 의혹을 계속 제기하면서 또 다시 6개월을 보내야 했다. 금년 들어 싱가포르 회담과 성김 과장의 방북 등으로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한 끝에 6월말 가까스로 북한은 핵신고서를 제출했고 냉각탑 폭파의 선물을 보여줬다. 그러나 신고가 끝이 아니었다. 핵신고의 상응조치로 미국이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의회에 통보했지만 심의기간이 만료된 8월 11일에 정작 미국은 테러지원국 해제를 유보하고 말았다. 신고 내용에 대한 검증방식을 둘러싸고 북미는 또 다시 갈등의 골을 넓혀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한 상응조치를 얻지 못한 북한은 곧바로 불능화 작업을 중단했고 급기야 설비 이동 등 원상복구까지 시도하면서 2.13 프로세스 자체를 무력화시키려 했고 결국 분리 검증과 합의하 미신고시설 검증으로 접점을 찾으면서 테러지원국 해제와 불능화 작업 재개가 교환되었다.
2.13 이후에도 매 고비마다 북한과 미국은 양보 없는 힘겨루기를 지속했고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한 버티기와 벼랑끝 전술을 교환하면서 기싸움으로 일관했다.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 과정도 기실 북한과 미국의 한판 대결과정이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어려움과 고비를 남겨 놓고 있다. 검증절차와 방식, 검증 주체뿐 아니라 검증 내용에 대한 일치 여부 그리고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는 UEP 의혹과 미신고시설 검증 문제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북핵 프로세스를 위협할 수 있는 태풍의 눈이다. 겨우 검증을 넘긴다 하더라도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단계의 핵폐기 과정이 또 기다리고 있다. 최종 단계인 만큼 폐기과정과 절차 등을 놓고 북한과 미국은 최후의 담판을 힘겹게 교환해야 할 것이다. 넘어야 할 산을 생각하면 정말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다.
그러나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를 포함해서 지금까지의 북핵 진행이 매우 어렵고 힘겨운 과정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신뢰의 끈을 놓지 않은 성공의 과정이기도 했다. BDA로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북한은 기다렸고 미국은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풀어주려 노력했다. 신고서 내용을 놓고 팽팽히 맞섰지만 북한 신고서를 수용하되 미국의 주장을 북한이 양해한다는 절묘한 합의점으로 고비를 넘었다. 검증의 최대수준과 최소수준으로 평행선을 달렸던 북한과 미국이지만 일단 가능한 검증부터 시작해서 문제해결에 접근하자는 실용적 방식이 또 다시 접점을 찾아냈다. 결국 북핵문제는 풀기 어려운 지난한 과정이면서 동시에 북미 양자간 협상 의지와 신뢰에 바탕해 나름대로 조금씩 진전되는 성과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북핵문제는 매우 고단한 어려움의 연속이면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미국이 신뢰에 기초한 문제해결 의지를 지속하는 한 조금씩 진전되고 해결될 수 있다는 긍정의 믿음을 확인해야 한다. 한계 투성이로 잘못된 과정이 아니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진전시켜온 문제해결의 과정이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를 놓고 일각에서는 미국의 지나친 양보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지금까지의 북핵과정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연장에 불과하다. 오히려 테러지원국 해제는 2.13 프로세스에 따라 북한의 핵신고서 제출이라는 행동에 대해 미국이 상응해서 제공하기로 한 것이었다. 즉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른 상호교환 대상인 것이다. 2.13 프로세스는 철저히 북한과 미국의 상응조치의 교환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이 BDA를 해결해주고 북한은 핵시설을 폐쇄 봉인했으며 북한이 핵신고서를 제출하고 불능화를 완료하는 댓가로 미국은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른다면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는 미국의 과도한 양보나 북한의 지나친 요구가 아니라 상호 상대방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신뢰의 징표이다.
오히려 2.13 프로세스에 따른 북미간 상응조치는 북한 입장에서 보면 다소 불안한 것이기도 하다. 북한은 핵시설 폐쇄, 불능화라는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폐기과정을 밟는 반면 이에 대응하는 미국의 조치는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정치적이고 상징적 조치이기 때문이다. 스위치를 내리고 시설을 뜯어내고 해체하면서 한 단계씩 북한은 핵폐기를 위한 가시적 행동을 해야 하는 반면 미국은 막아놓은 BDA 동결자금 풀어주고 테러지원국이라는 정치적 상징을 해제해주는 것이 고작이다. 약속한 테러지원국 해제를 미국이 연기했을 때 이미 북한은 불능화 작업이 상당 수준 진행된 뒤였다. 협상 카드로선 북한이 불리한 쪽이었다. 비판론자들이 비판하듯이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가 곧바로 북한에 대한 각종 경제제재를 풀어주는 것도 아니고 당장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는 북한이 떼를 써서 미국이 서둘러 양보한 게 아니라 2.13 프로세스 과정에서 미국이 약속을 어길지도 모른다는 북한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북미간 상호 신뢰의 끈을 확인하면서 향후에도 비핵화의 동력을 지속하게 하려는 정치적 상징조치로 봐야 한다.
사실 2.13 합의는 미국 입장에서 1994년 제네바 합의보다 훨씬 진전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당시엔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단지 동결하는 것만으로 미국이 매년 50만 톤의 중유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13 합의는 북한이 동결을 넘어 불능화까지 해야 하고 그 댓가도 일회에 한해 중유 100만 톤 상당을 다른 국가와 분담해서 주면 된다. 제네바 합의에서 북한의 과거 핵활동에 대한 검증은 경수로 발전소가 거의 완공되어 핵심부품이 들어갈 때에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2.13 합의는 북한이 핵신고서를 제출한 이후 이제 본격적인 검증에 착수하도록 되어 있다. 제네바 합의는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해주는 것이 곧바로 시작되도록 했지만 2.13 합의엔 경수로 건설은 일언반구 언급도 되어 있지 않다. 2.13의 모체인 9.19 공동성명에도 경수로 제공문제는 매우 애매한 표현으로만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냉정하게 보면 2.13 프로세스는 미국에게 북한이 받는 것보다 오히려 북한이 포기해야 하는 게 더 많은 구조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번의 테러지원국 해제가 2.13 프로세스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고 보면 이는 미국에게 결코 손해가 아니다. 또한 어렵고 힘들지만 핵문제의 일보 진전을 위해 북한과 미국이 서로 신뢰에 바탕한 협상의 동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점에서도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는 비난할 게 아니라 오히려 충분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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