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경제, 인사, 사회, 보건, 환경 등 모든 정책 분야에서 드러난 총체적인 난맥상은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현 정부 출범 후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각인된 키워드들은, 광우병 공포와 쇠고기 수입 재개, 대운하와 환경 파괴, 5대 괴담, 물가 급등, 촛불시위, 고소영·강부자 내각, 영어 몰입 교육, 대일·대미 굴욕 외교, 재벌 규제 완화, 유류 가격의 폭등 등 온통 부정적인 단어 일색이다. 현재 전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급속도로 확산되는 촛불시위는 단순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넘어서, 이명박 정부의 정책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 전환되고 있다. 엄마 손에 이끌려 나온 어린 아이의 손에 들려진 작은 촛불은 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실망감이 얼마나 큰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간의 국정 혼란의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진단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국정 비전과 철학의 부재
무엇보다, 향후 5년간 정부를 이끌어갈 국가 비전과 철학을 발견하기 어렵다. 분명한 국정 비전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국민들의 신뢰는 고사하고, 스스로가 방향을 상실한 채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모르는 난파선이 되어가고 있다. 비전(vision)은 말 그대로 현재 상태와 비교되는 미래의 바람직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밝혀온 '유일한' 비전은 작은 정부를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장지향적인 접근을 기반으로 경제 살리기를 추진하겠다고 천명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이명박 정부가 지향하는 시장 지향적인 작은 정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이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인수위를 중심으로 정부 부처들에 대한 대대적인 통폐합을 시도하여, 경제 관련 부처들 중심의 대부처 체제로 재정비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행정안전부의 역할 강화, 거대 공룡 부처인 지식경제부와 기획재정부의 출현 등은 작은 정부와는 거리가 먼 조치들이었다. 또한 시장에 대한 간섭을 배제하겠다던 당초 공약과는 달리 노무현 정부에 비해 시장에 대한 간섭이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52개 생필품을 선정하여 물가를 관리하겠다는 발상부터가 60-70년대의 국가 주도의 경제 발전 논리를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대기업 중심의 규제 완화 역시 시장 친화적인 정책이라기보다는 재벌 친화적인 정책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서민들을 위한 복지 정책은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공무원 수의 감축 등 단순히 규모의 축소를 통해 국가 예산을 절감하겠다는 발상 또한 새마을 운동을 생각나게 할 뿐이다. 이러한 모든 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국정의 비전과 철학의 부재이다. 국정 비전과 철학의 부재는 주요 국정 과제의 선정과 추진 과정에서의 방향성 상실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과의 소통 부재
다음으로, 정책추진 과정에서의 국민과의 소통 부재가 심각하다. 노무현 정부 후반기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았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국정 과제나 정책 들을 추진함에 있어 국민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정부 역시 이러한 과거의 실패로부터 전혀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지난 100일간 정부는 독선적으로 정책들을 추진하면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데 무관심했다. 정책 과정에서 능률성과 효율성의 가치만을 최우선함으로써, 민주성, 반응성, 투명성, 책임성 등의 가치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당선자 시절 인수위 주도의 영어 몰입 교육의 일방적 추진에 대한 범국민적 비판을 시작으로, 대운하 사업의 은밀한 추진과 국민적 반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등은 정책추진 과정에서 국민과의 의사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정 단계에서의 정책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며, 따라서 항상 오류와 실패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이 지닌 인과지식의 불완전성으로 어떤 정책이 실질적으로 합리적인(substantively rational) 정책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절차적으로 합리적인(procedurally rational) 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정부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설득하고,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국민을 단순히 정책의 수혜자로만 보는 잘못된 시각을 버려야 한다.
원칙 없는 인사와 도덕성 부재
마지막으로 자기 사람 중심의 원칙 없는 인사와 도덕성의 결여가 심각하다. 국민들은 노무현 정부의 코드 인사의 폐해에 크게 실망했고, 현 정부만큼은 능력과 도덕성을 동시에 갖춘 유능한 인사들이 발탁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인사에 있어서 어떤 원칙도 찾아보기 어려웠고, 그 결과 능력과 도덕성 모두 결여된 강부자, 고소영 S라인으로 불리는 최악의 코드 인사만 이루어졌을 뿐이다. 내각이 출범도 하기 전에 장관 후보자 세 명이 줄줄이 낙마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도, 누구 하나 인사 시스템의 오작동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그저 야당과 불순세력의 발목잡기로만 치부되었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안정적인 국정 운영과 정책 추진을 위해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또한 대통령의 철학과 신념을 충실하게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을 등용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것이 도덕성과 능력이 결여된 자기 사람들만을 등용해도 된다는 것은 분명 아니다. 누구나 장관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들에게 준 것만으로 위안을 삼기에는 너무도 허탈할 뿐이다.
작지만 유능한 정부를 기대하며...
작지만 유능한 정부를 기대하며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작은 정부'의 개념을 서둘러 재정의 할 필요가 있다. 투입을 줄임으로써 작은 정부를 만들기 보다는, 산출을 증대시키는 방안들을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단순히 공무원의 수를 줄이고, 에어콘 등 전기 사용을 자제하여 예산을 절감하겠다는 구시대적 발상을 버리고, 공직사회의 문제해결 능력을 제고함으로써 유능한 정부를 만들기 위한 방안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둘째, 시장지향적 접근과 정부 역할의 축소를 이음동의어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적절히 기능하지 못하는 시장에 모든 것을 넘겨줌으로써, 공공성을 위해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필요한 규제와 역할마저도 포기하려는 그릇된 시장주의 논리를 버려야 한다. 민영화가 반드시 필요한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에 대한 보다 정밀한 진단과 분석이 선행되어야 정부 실패 보완 노력이 다시 시장 실패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
셋째, 정책의 일관성은 정책의 예측가능성을 의미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뀐다면 국민들의 정신적인 혼란과 그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인기에 편승한 즉흥적인 정책 결정을 지양하고, 정부의 운영을 시스템화하여 국민들이 예측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넷째, 대통령이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국민의 이해와 동의를 바탕으로 민주적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과정 전반에 걸쳐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가능하도록 참여 기제를 만들고, 이를 통해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추었다면 설령 정치적 신념이 다르더라도 과감하게 등용할 수 있는 포용력을 지녀야 한다.
이제 대통령 취임 100일 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아직 대통령의 임기가 4년 265일이나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잃어버린 10년'을 보상하겠다던 이 대통령이 '잃어버린 5년'의 주인공이 되지 않으려면, 서둘러 국정 운영의 큰 틀을 세우고, 이를 위한 세부 전략들을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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