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주의와 보편적 복지, 제헌헌법에 다 나와 있었다!

[뉴라이트는 어떻게 역사를 왜곡했나]<5> 대한민국의 성립 당시 국가의 성격


-뉴라이트는 어떻게 역사를 왜곡했나

☞ <1> 우리는 왜 뉴라이트를 수구세력이라 부르는가?
☞ <2> 일제강점기 조선경제 발전론, 터무니없는 소리!
☞ <3> 항일 민족독립운동에 대한 서술
<4> 대한민국 성립에 대한 역사관

1. 사회국가(복지국가)

제헌헌법이 수용한 정치체제는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이며, 경제 질서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임은 이미 설명한 바와 같다. 제헌헌법의 지향가치를 유진오 박사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나라 헌법은 국민의 균등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야 특히 노력하였으며 그를 위하야 제종의 규정을 설치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헌법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즉 우리나라 헌법은 다른 민주국가와 같이 정치적 법률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고자 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실질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고자 한 것이다."(헌법해의, 10쪽)

이어 제헌헌법이 기초로 삼는 정치·경제 질서에 상응하는 국가의 모습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먼저 뉴라이트 교과서의 서술 내용을 살펴보자.

"건국 이후 60년간의 역사가 흐른 오늘날, 어떤 선택이 정당했는가를 판정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 60년간 세계사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존중하고, 그것을 국가 체제의 기본원리로 채택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체제가, 인간의 물질적 복지와 정신적 행복을 증진하는 올바른 방향이었음을 보여 주었다. 모두가 골고루 잘 산다는 공산주의 이상은 자유와 합리적 이기심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았다.(……) 공산주의 체제는 1980년대 이후 소련 중국과 같은 주요 공산주의 국가들이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함에 따라 해체되고 말았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공산주의체제를 고수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빈곤이 계속되고 있다."(148쪽)

교과서는 자유민주주의 및 시장경제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를 이항 대립적으로 설명하면서, 전자를 수용한 대한민국은 물질적 복지와 정신적 행복을 증진시킨 반면, 후자를 고수한 북한은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빈곤이 계속되고 있다고 서술하였다. 건국 이후 60년간의 되돌아볼 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근간이 되는 자본주의의 우월함이 확연히 드러났다는 주장이다.

▲ 1948년 유진오 작성 제헌헌법 초안. 1948년 헌법학자 고(故) 현민 유진오가 육필로 작성한 것으로 현재 고려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는 어떤 형태일까? 자유민주주의를 이념적 기반으로 하는 자유시장경제체제는 자발적 교환을 통해 경제활동을 조직한다는 '사적 자치'를 최우선의 가치로 삼기 때문에, 경제 질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할 것을 주장한다. 이를 자유경쟁체제의 굳건한 옹호자로서 '작은 정부론의 기수'라 불리는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1912- 2006)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규칙을 해석하고 적용하기 위해 관습이나 합의에만 의지할 수 없는 일이므로 심판이 필요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규칙을 수정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일, 규칙의 의미에 대해 이견이 있을 때 그 차이를 조정해주는 일, 내버려두면 정정당당하게 경기하려 하지 않는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그 규칙을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일, 이러한 일들이야말로 자유사회에서 정부가 맡은 기본적 역할이다." (심준보·변동열 옮김/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62쪽)

정부는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토론장으로서나, 정해진 규칙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심판자로서 역할을 할 뿐이며, 시장은 정치적 수단을 통해 결정해야 할 사항의 범위를 대폭 축소하고, 그럼으로써 정부가 게임에 직접 개입해야 하는 정도를 최소화한다는 입장이다.

이와는 달리 제헌헌법은 "기업의 자유를 전제로 한 통제경제(요새 말로 하면 혼합경제)" (헌법기초회고록, 20쪽), 즉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의 장점은 유지하면서 그 단점을 수정해가는 수정자본주의적 발전을 모색하였다. 제헌헌법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인 통제경제를 자본주의에 적절히 가미한 혼합경제질서를 채택한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물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제헌헌법이 선택한 '제3의 길'은 해방정국에서 중도파는 물론 자유주의자들인 보수파까지도 널리 공유하고 있었다. 헌법조문을 축조 심의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 "제6장 경제로 들어가자 몇몇 의원이 원안은 통제의 색채가 너무 강하다고 반대의견을 말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해서는 조봉암 의원과 이청천 의원이 강력하게 원문 지지의 태도로 나왔다." (헌법기초회고록, 54쪽)

㉡ "제92조 '공공필요에 의하여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또는 그 경영을 관리함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행한다'는 조문이 토의되던 때에는 이 조문대로 한다면 자유경제가 위축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자 이청천 의원이 격앙된 태도로 자리를 일어나 회의장 중앙(북편 쪽)으로 걸어 나오면서 두 번, 세 번 조문을 낭독해 가면서 '이 조문이 왜 나쁘냐. 무엇이 어째서 나쁘냐'고 열변을 토하던 광경이 지금도 나에게는 엊그제 일같이 기억된다." (헌법기초회고록, 54쪽)


헌법기초위원들은 자유시장경제는 너무나 큰 문제점을 안고 있기에 공정성 보장을 위해 국가의 개입이 필연적으로 요청된다고 본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와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이 어느 개인이 다른 개인을 강박하지 못하도록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자발적으로 맺은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고, 재산권의 의미를 규정하고, 이를 해석하여 집행하는 데에만 국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교과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질서에 상응하는 국가가 어떤 형태인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권력의 개입을 통해 경제조정이나 사회보장을 추구하는 사회국가 즉 복지국가가 아님은 분명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자유방임주의를 내세우며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할 것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큰 시장,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이다. 반면 제헌헌법은 유진오 박사의 설명처럼 '작은 시장, 큰 국가'를 지향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드러와서는 각종의 견지에 자유방임주의는 비판되기 시작하여 국가는 형식적인 국민의 자유평등의 확보와 소유권의 절대불가침의 원리로부터 일보 나아가서 실질적으로 각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확보하는데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으며 국민의 권리와 자유도 그 범위 내에서 보장되며 국가는 다만 질서유지를 위하야 필요할 때 뿐 아니라 공공의 복리나 문화를 증진시키기 위하야 필요할 때에도 국민의 권리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것이 인정되었다. 그러하므로 19세기말부터 20세기에 드러와서는 국민경제나 국민생활에 대한 국가의 기능은 전에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증대되었으며 따라서 국가의 행정기능은 그의 입법기능이나 사법기능보다 더 중요하게 되었다. 그러함으로 20세기에 드러와서는 국가는 '행정국가' '경제국가' '사회국가' '복지국가' 또는 '문화국가'가 되었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헌법해의, 29쪽)

제헌헌법이 수용하는 국가는 자본주의체제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이나 빈곤 등의 사회문제를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사회국가 즉 복지국가라는 주장이다. 사회국가(복지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그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킴으로써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면서, 그것에 대한 요구가 국민의 권리로서 인정되어 있는 국가"이다. (권영성, 139쪽). 사회국가(복지국가)는 사회모순을 방치하는 방관자가 아니라, 평등권과 사회적 기본권 실현을 위해 사회적 안전과 사회정의, 사회통합에 적합한 새로운 사회질서를 창출해야 의무가 있다고 본다. 사회국가(복지국가)는 국민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하여 필요할 때에는 국민 생활이나 국민경제에 적극 간섭한다. 헌법학계에서도 사회국가(복지국가)원리를 대한민국헌법의 기본원리로 설명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 또한 같은 입장이다.

"사회국가란 한 마디로, 사회정의의 이념을 헌법에 수용한 국가, 사회현상에 대하여 방관적인 국가가 아니라 경제·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정의로운 사회질서의 형성을 위하여 사회현상에 관여하고 간섭하고 분배하고 조정하는 국가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민 각자가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그 실질적 조건을 마련해 줄 의무가 있는 국가이다." (헌재 2002.12.18., [2002헌마52]).

사회국가(복지국가)는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근대입헌주의헌법을 기초로 하면서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는데, 바이마르헌법이 이를 최초로 명문화함으로써 사회국가(복지국가)원리를 헌법에 수용하였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와의 조화'를 기본정신으로 삼은 제헌헌법 또한 사회국가(복지국가)원리를 수용하였다. 대한민국은 출범부터 자본주의의 폐해를 막기 위해 사회국가(복지국가)를 지향한 것이다.

사회국가(복지국가)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인간다운 생활권(생존권)을 비롯한 일련의 사회적 기본권이 보장되고, ㉡재산권의 사회적 기능이 강조되며, ㉢기회균등의 보장과 소득의 적정한 분배 등 경제민주화가 실현되어야 하고, ㉣사회보장제·사회복지정책이 추진되어야 하며, ㉤경제 질서에 대한 규제와 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권영성, 141쪽). 제헌헌법은 사회국가(복지국가) 원리를 실현하기 위해, 첫째, 경제 질서에 대한 규제와 조정을 위해 통제경제질서를 표방하고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수용하였으며, 둘째, 인간다운 생활권(생존권)을 비롯한 일련의 사회적 기본권 보장을 위해, 각종 수익권(受益權)에 관한 규정을 두었으며, 셋째 재산권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기 위해, 소유권의 사회적 의무와 계약의 자유 제한 등을 규정하였다.

대한민국은 뉴라이트 교과서가 말하는 것처럼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존중하고, 그것을 국가체제의 기본원리로 채택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체제가 아니라, 재산권의 사회적 의무성을 강조하고,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 입각하여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와 통제경제질서를 채택한 사회국가 즉 복지국가를 이념으로 삼고 출범하였다. 대한민국이 사회국가(복지국가)를 채택한 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인식하면서 그 폐해를 최소화하려는 데서 나온 것이었다.

▲ 지난 2008년 자유교육연합과 뉴라이트학부모연합 등 보수성향의 5개 교육·사회단체 회원들이 7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대한민국 교과서 추방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 사회적 시장경제와 통제경제질서

제헌헌법은,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입국의 이념으로 채택하였다.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라 함은 사유재산제의 보장과 자유경쟁을 기본원리로 하는 시장경제질서를 근간으로 하되, 사회복지·사회정의·경제민주화 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부분적으로 사회주의 계획경제(통제경제)를 가미한 경제 질서를 말한다 (권영성, 163쪽). 시장질서의 기본적인 수용과 국가에 부여되는 시장질서 유지기능 강조, 국가에 의한 사회정책의 지속적 추구 등의 특징을 지니는 경제 질서가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인 것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우리나라 헌법의 경제 질서를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 보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상의 경제 질서는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고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자유시장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갖가지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복지·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헌재 1989.12.22. [88헌가13])

사회국가(복지국가)는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국가 원리를 수용한다. 또한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아울러 달성하려는 것을 근본이념으로 하면서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에 상응하는 국가형태가 사회국가(복지국가)이다.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는 사회국가(복지국가)라는 국가유형에 상응하는 경제 질서인 것이다.

한편 19세기까지는 자유방임주의가 지배했기 때문에 경제문제가 헌법상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헌법에 경제조항을 처음으로 규정한 것이 바이마르헌법인데, 제헌헌법 역시 제6장에 별도로 '경제' 장을 두고, 경제 질서의 기본원칙을 천명하였다.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제84조)

대한민국에서 경제적 활동은 원칙적으로 자유이다. 그러나 경제상 자유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이라는 두 가지 원칙 하에서 인정된다는 것이다.

먼저, 사회정의의 실현과 관련하여, 헌법은 자유경쟁을 원칙으로 하지만 만일 일부 국민이 굶주리고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을 바로잡는 한도 내에서 경제상의 자유는 마땅히 제한을 받는다고 하였다. 이는 '재산이 없는 한 자유가 없다'는 정신에 의거해, 모든 개인에게 생존권을 보장하여 줌으로써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도록 하려는 데서 마련된 기본원칙이다.

다음,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헌법은 국가적 필요로 보아서 어떠한 부문의 산업을 진흥시킬 필요가 있는 경우, 국가는 이 모든 문제에 관해 조정할 의무를 진다고 하였다. 이어 국민경제가 전체적으로 균형 있는 발전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유화와 사회화를 광범위하게 규정하여 통제경제질서를 표방하였다. "광물 기타 중요한 지하자원, 수산자원 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은 국유로 한다." (제85조),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 "(제87조). "대외무역은 국가의 통제 하에 둔다." (제87조)는 내용은 국유, 국영, 공영을 규정하여 자유 시장경제를 지양하고, 균등경제를 위해 한결같이 국가의 강력한 경제개입을 명문화한 것들이었다. 게다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국방상 또는 국민생활상 긴요하고 절실한 필요에 의하여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또는 그 경영을 통제, 관리할 수도 있다." (제88조)라고 규정하기도 하였다.

경제 장의 규정들은, 중소 상공업에 관해서는 자유경제를 원칙으로 하되, 대규모 기업과 독점성·공공성 있는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하는 동시에, 국방상 또는 국민생활상 긴요하고 절실한 필요가 있는 때에는 법률로써 사기업을 국영 또는 공영으로 이전시킬 수 있다는 소위 '기업사회화의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유진오 박사는 제6장의 기본정신은 "경제적 활동이 공공성을 띄우는 정도로 이를 때, 그때에는 국가권력으로써 경제문제에 간섭을 한다." (헌법기초회고록, 243쪽)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로 인해 "일견 이 경제 장을 보면 경제에 관한 국가적 통제가 원칙이 되고 자유경제는 예외가 되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수도 있지만 (헌법기초회고록, 243쪽), 이는 헌법의 기본정신인 '균등경제의 원칙'을 실현하려는 때문이었다.

이상 제헌헌법은 자본주의 시장만능주의를 지양하고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를 지향하고 있었다. 미국은 한국 제헌헌법의 경제조항들을 일종의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 헌법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제헌헌법의 경제조항들을 시장경제 지향으로 바꾸려는 미국의 집요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국유화 조항 등을 개정하고 민간기업중심 경제체제로 전환하라는 미국의 압력 때문에 대한민국이 자본주의적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처음으로 채택한 것은 1954년 제2차 헌법 개정에서였다. 이때 중요산업 국유화 조항이 삭제되었다. 이승만은 주요기간산업과 지하자원 등에 국유를 명시하는 등 국가자본주의적 요소를 상당히 갖고 있었던 제헌헌법을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맞추어 수정하고 귀속재산불하 은행민영화 등을 과감하게 시행했다. 1954년 헌법 개정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완전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였다는 점에서 한국 헌정 및 자본주의 역사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박명림, 2003).

3. 사회적 기본권

근대입헌주의헌법의 국가관이 소극국가·자유방임국가·야경국가인 반면, 현대사회국가는 사회적 모순을 방치하는 방관자가 아니라, 평등권과 사회적 기본권을 실현하기 위해 법률에 근거하여 사회적 안전·정의에 적합한 새로운 사회질서를 형성해야 할 권한과 의무가 있다. 현대사회국가는 사회공동체의 공감대를 이루는 가치인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을 헌법적 가치로 삼음으로써 사회를 통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회적 기본권이라 함은 단체주의적 사회정의의 실현을 국가목적으로 하는 사회국가(복지국가)에서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확보하기 위하여 일정한 국가적 급부와 배려를 국가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권영성, 639쪽). 사회적 기본권이 헌법에 등장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부의 편재, 빈곤의 확대와 실업자의 범람, 그로 인한 노사 간의 대립 격화 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서 제기되자, 이를 계기로 모든 사회구성원의 최저한의 인간다운 생존을 보장하고, 나아가 실질적인 평등이라는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사회적 기본권사상이 강조되게 되었다.

바이마르헌법은 사회정의와 사회적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경제생활의 질서는 모든 사람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할 목적으로서 정의의 원칙에 적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151조 2항)고 규정함으로써 사회권적 기본권을 강조하였으며, "모든 독일 국민에게는 경제적 노동에 의하여 생활 자료를 구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 적정한 근로의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자에게는 필요한 생계비를 지급한다." (제163조 2항)라 하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인정하였다. 바이마르헌법에 이르러 국가의 사회에 대한 규제가 허용되는 사회국가(복지국가) 원리가 헌법상 원리로 인정된 것이다.

제헌헌법 역시 사회국가(복지국가) 원리에 입각하여 사회적 기본권을 폭넓게 부여하였다. 그 기본취지를 유진오 박사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자유방임시대에는 모든 활동을 될 수 있는 대로 국민의 자유에 마꼈음으로 국민이 국가의 행위나 국가의 특별한 보호를 요구하는 일은 적었으며 따라서 그때에 있어서는 수익권은 겨우 재판청구권과 청원권의 두 가지가 대표적이였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전술한 바와 같이 국가의 기능이 사회적 경제적 영역에 확대되여 국가는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확보할 의무를 가지게 되었음으로 근로권, 교육을 받을 권리, 노령 폐질자 등이 보호를 받을 권리 등 새로운 일련의 수익권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헌법해의, 32쪽)

제헌헌법에 규정된 사회적 기본권은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16조), 근로권(17조), 근로자의 이익분배균점권(18조 2항), 노령, 폐질자 등이 보호받을 권리(19조), 혼인의 순결과 가족의 건강을 보호받을 권리(20조), 청원권(21조), 재판청구권(22조, 24조) 등이다. 이들 각 조항의 근본정신과 취지에 대해, 유진오 박사는 1948년 6월 23일 대한민국헌법이 국회본회의에 상정되는 자리에서 제안이유를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명하였다.

제16조는 교육에 대한 국민의 권리를 규정한 것이다. "이전에는 교육을 오로지 자유라고 해서 국가권력으로써 간섭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였읍니다마는, 우리 헌법에서는 그런 태도는 취하지 아니하고 교육에 대해서 국가가 지대한 관심을 가졌으며 교육을 받는 것이 국민의 권리임을 밝히는 동시에 특별히 초등교육은 의무적으로 해 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초등교육을 받도록 규정하고, 모든 교육기관은 국가의 감독 하에 두고 교육제도를 법률로써 정하는 이런 체제를 취해본 것이올시다." (헌법기초회고록, 237쪽)

제17조는 노동에 대한 국민의 권리를 규정한 것이다. "국민의 노동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근로조건에 관해서는 기업자와 근로자간의 자유로운 고용계약에 맡기어 버리지 아니하고 국가의 법률로써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해서 근로자를 보호하는 그런 체제를 취한 것이올시다. 제3항에 가서 '여자와 소년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한 것은 일반적으로 근로자의 보호에 힘쓸 뿐 아니라, 근로자 중에도 특별히 약한 자라고 볼 수 있는 여자와 소년에 대해서는 특별한 보호를 가하기로 한 것이올시다." (헌법기초회고록, 237쪽)

제18조 1항은 근로자의 단결,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의 자유를 보장하였다. "이에 의하면 근로자는 고용계약으로 들어갈 때에 다만 개인으로서 기업자와 계약을 할 뿐만 아니라, 단체를 만들어서 단체교섭을 할 수 있으며, 그 단체교섭으로써 근로자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게 된 것이올시다." (헌법기초회고록, 238쪽)

제19조는 노령, 질병, 기타 근로능력의 상실로 인하여 생활유지의 능력이 없는 자는 국가에서 보호한다고 하였다. "종래의 체제로 본다면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문제는 오로지 그 사람에게 맡겨 두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생활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대해서는 국가가 이것을 보호해서 생활할 수 있게 되도록 그런 체제를 취한 것이올시다." (헌법기초회고록, 238쪽)

국가는 교육을 받을 권리, 노동의 권리, 노동3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혼인 및 가족에 관한 권리, 건강권 등 사회적 기본권인 권리를 폭넓고 두텁게 보장함으로써, 노동자, 여성, 연소자, 신체장애인, 노인, 질병인 등 사회적 약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고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보호·육성할 책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능력이 제한된 계층에게 국가가 나서서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으로, 사회국가(복지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이상 제헌헌법이 규정한 사회적 기본권은 1966년에 UN이 제정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A규약)이 정하고 있는 여러 권리, 즉 노동할 권리(제6조), 공정·안전, 건강한 노동조건(제7조), 노동조합 및 전국적인 연합 또는 총연합에의 결성·가입권(제8조), 사회보험을 포함한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제9조), 자유의사에 의한 혼인, 산전(産前)·산후 휴가, 아동이나 연소자의 보호(제10조), 의식주를 포함한 생활수준의 유지, 기아로부터의 해방(제11조),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향유할 권리, 의료와 간호의 보장(제12조), 교육에 대한 권리, 초등교육 무상의무교육(제13조) 등과 비교해도 그다지 손색이 없다.

특히 제18조 2항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 근로자는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는 근로자의 이익분배균점권 조항은 타국에 유례가 없는 규정이었다. 이 때문에 축조 심의를 하는 과정에서 크게 논전이 벌어졌다. 유진오 박사는 헌법에 근로자의 이익분배균점권 조항을 두게 된 까닭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자본주의 경제는 근로자는 노임을 받고 기업가는 이윤(이익)을 받는 것을 기본구조로 삼고 있는 것인데 본 항은 근로자의 이익분배균점권을 인정하여 노동자가 기업이윤의 일부를 취득할 수 있는 것을 규정하였음으로 이 규정에 의하야 우리나라는 사회주의국가에 가까운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제2차대전 이후에 제정한 불란서신헌법이 불란서는 민주적 사회주의공화국인 것을 선명하였으며(동 헌법 제1조 참조) 또 이태리 신헌법이 이태리는 노동에 기본을 두고 수립된 민주주의공화국인 것을 선명한 것과(동 헌법 제1조 참조)함께 시대의 조류를 여실히 말하는 규정이라 할 수 있다." (헌법해의, 52-3쪽)

유진오 박사는 이익분배균점권 조항은 "경제부흥과 산업건설의 필요의 긴절함에 비추어 근로자의 근로의욕을 앙양시키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노동자를 생산의 중심에 두는 것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대한노총계열의 의원들은, 노동자의 기업 경영 참가나 이익균점의 방향으로 세계의 노동운동이 전개되고 있고, 전 세계가 사민주의를 열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민주의가 아니면 공산주의를 막지 못하기에 노동자의 이익균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노동자의 경영참여와 이익균점을 주장할 수 있었던 역사적 근거를 적산(敵産)에 두었다. 적산은 민족의 공유재산이기 때문에 노동자도 발언권과 이익을 균점할 권리가 있으며, 정부가 적산을 잘 처리하면 노자협조가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신용옥, 2009). 제헌헌법에서 마련된 이익분배균점권 조항은 5·16군사쿠데타 직후에 이루어진 제3공화국의 5차 헌법개정(1962.12.17.)에서 삭제되었다.

이상 제헌헌법의 사회적 기본권은 사회국가(복지국가)의 이념에 바탕을 두고, 국가의 적극적인 행위에 의하여 개인의 존엄과 생존을 확보하며 행복한 생활을 실현할 수 있게 하려고 마련된 것이다.

▲ 유진오 박사 ⓒ연합뉴스

4. 재산권의 사회적 의무성

사회국가(복지국가)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재산권의 사회적 유보(사회적 구속성)가 요구된다. 공공복리를 우선시 하여 재산권의 사회성·공공성을 강조하고, 의무를 수반하는 상대적 권리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라이트 교과서는 "대한민국은 국민의 재산권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시장경제체제로 출발하였다."(148쪽)라고 하여, 대한민국이 유산자의 권리를 무제한 보장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가 일제 식민지 지배의 유산을 복구, 발전시킨 것이라고 주장하는 뉴라이트 이론가 이영훈 교수에게서도 발견된다.

"1912년 조선민사령의 시행을 통해 일본의 민법이 조선에 이식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소유권 절대의 원칙'과 '계약 자유의 원칙'을 골간으로 하는 근대적인 재산제도가 유·무형의 재산권에 걸쳐 포괄적으로 성립하였습니다. 그 민법 또한 역사적 기원이 서유럽으로서 일본을 거쳐 들어온 수입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식민지시기에 설립한 근대적 재산제도를 신생 대한민국은 온전하게 계승하였습니다. 함부로 식민지적 잔재라 하지 마십시오. 그 기원이 서유럽이었던 만큼 그것은 세계인이 보편적으로 향유할 문명의 값진 유산이었습니다."(이영훈, <대한민국이야기>, 221~222쪽, 기파랑, 2007)

일제 시대에 확립된 '소유권 절대의 원칙'과 '계약자유의 원칙' 이 두 가지를 대한민국이 온전하게 계승해, 경제활동에 '이익 추구'의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대한민국이 경제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인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첫째, 근대 초기자본주의 하에서 절대적 사권(絶對的私權)으로 확립된 소유권은 이미 1919년 바이마르헌법에 이르러 의무를 수반하는 상대적 권리로 바뀌었다. 근대입헌주의헌법은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경제체제로 하며, 재산권을 국민의 중요한 기본권으로 삼았다.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은 "소유권은 불가침이고 신성한 권리이므로, 법에 의해서 공공필요를 위하여 명백히 요구되는 것이 인정되고 또 정당한 보상이 지불될 조건이 아니면 이를 박탈할 수 없다."(17조)라고 하여, 근대 소유권의 신성불가침성을 선언하였다. 그 후 미국 헌법에서 "적법 절차에 의하지 않으면 재산은 박탈되지 아니하며, 정당한 보상 없이는 사유재산은 공용을 위하여 수용당하지 아니한다."(수정 5조)라고 하여 재산권을 보장하자, 세계 각국의 모든 입헌국가에서 이를 본받아 사유재산제도 보장 규정을 두게 되었다. 그리하여 18∼19세기를 통하여 사유재산권의 신성불가침사상은 근대 입헌국가의 기본원리가 되어 왔고, 이는 근대 자본주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절대적 재산권 행사와 계약의 자유 행사의 결과, 노동자를 착취하는 근로계약을 강요하고 노동자의 생존을 침해하여, 양자의 계급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켰다.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한 사회적 모순과 여러 폐해가 발생함에 따라,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재산권의 신성불가침사상에 대한 반성과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현대 사회국가헌법의 초석이 된 바이마르헌법은 "소유권은 의무를 수반한다. 그 행사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하여야 한다."(153조)라 하여, 재산권 행사의 공공복리 적합성, 재산권의 사회적 구속성을 강조하였다.

둘째, 제헌헌법은 식민지시기에 확립된 민법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바이마르헌법의 영향을 받았다. 제헌헌법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제15조 1항)고 하면서도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해야 한다."(제15조 2항)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박사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의 급격한 대두로 말미아마 재산권절대불가침의 사상도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서는 이를 수정하지 않으면 않되게 되었으며 20세기 초두의 대표적 헌법이라 할 수 있는 독일 와이말 헌법은 제 153조에 '소유권은 헌법에 의하여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에 의하여 정한다'고 규정하고, 다시 동조 제3항에서는 '소유권은 의무를 포함한다. 소유권의 행사는 동시에 공공의 복리를 위함을 요한다'고 규정하여 소유권은 절대불가침한 것이 아니고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해지는 것이며 또 소유권을 가진 자는 공공복리를 위하야 그를 이용할 의무가 있는 것을 선명하였다. 이는 18,9세기의 소유신성불가침의 사상으로 볼 때에는 획기적 변천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 헌법의 규정은 와이말 헌법 제153조에 유사한 내용을 가진 것이라 할 것이다." (헌법해의, 46쪽)

우리 헌법상의 재산권의 보장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한 점에서, 우리 헌법도 바이마르헌법과 같이 재산권을 의무화하였다 다는 것이다.

셋째, 현행헌법은 식민지 시기 민법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사유재산의 신성불가침성을 부정하고 소유의 사회적 의무성을 강조한 제헌헌법을 계승하고 있다. 헌법은 제 23조 제1항 후단에서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라고 하고, 동조 제2항에서는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라고 하여 법치국가원리에 입각한 재산권의 사회적 유보(사회적 구속성)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의 식민지지배에서 해방되어 미군정기간을 거쳐 1948.7.12. 제헌헌법이 제정되었는바, 이 헌법 제15조에서 위와 같은 재산권 관념의 변천에 상응하여 재산권의 상대성, 재산권 행사의 공공복리 적합의무를 명시하고 있으며, 그 후 제정된 우리 민법(1958.2.22. 법률 제471호)에서도 소유권의 내용을 규정함에 있어서 '소유자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그 소유물을 사용, 수익, 처분할 권리가 있다'(민법 제211조) '토지의 소유권은 정당한 이익있는 범위 내에서 토지의 상하에 미친다'(민법 제212조)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절대 무제한으로 목적물을 이용하고 처분할 권리'라든가 '하고 싶은 대로 이용하는 권리'라는 내용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헌재 1989.12.22. [88 헌가 13])

이어 헌재는 헌법이 재산권행사의 사회적 의무성을 규정하게 된 까닭을 밝혔다.

"재산권행사의 사회적 의무성을 헌법 자체에서 명문화하고 있는 것은 사유재산제도의 보장이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생활과의 조화와 균형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보장임을 천명한 것으로서 재산권의 악용 또는 남용으로 인한 사회공동체의 균열과 파괴를 방지하고 실질적인 사회정의를 구현하겠다는 국민적 합의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법(私法)영역에서도 신의성실의 원칙이라든가 권리남용금지의 원칙, 소유권의 상린관계 등의 형태로 그 정신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헌재 1989.12.22. [88 헌가 13])

재산권행사의 공공복리 적합의무가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수단이 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5. 맺음말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박사는 "헌법의 기본정신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와의 조화를 꾀하려고 하는 데 있다"(헌법기초회고록, 236쪽)고 하였다. 제헌헌법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경제적·사회적 영역으로까지 확대하여 자유와 평등의 조화를 꾀하였다. 제헌헌법은 시민권의 내용을 자유권에서 사회권·경제권으로 확대함으로써 공화주의 이념을 심화시켰다.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 사회적 시장경제와 통제경제질서, 폭넓은 사회적 기본권 보장, 재산권의 사회적 의무성 등에 기초한 사회국가(복지국가)가 신생 대한민국의 모습인 것이다.

미군정 법률고문 퍼글러는 제헌헌법이 통과된 직후인 7월 16일 군정장관 대리에게 '한국헌법'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제헌헌법이 독일과 일본 헌법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제6장 경제는 국가사회주의로 매우 경사해 있지만, 이 단계에서 미국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결론지었다. 반면 제헌헌법 경제조항에 대한 번스의 보고는 국가사회주의적 경향보다 바이마르 헌법의 영향을 강조하는 점에서 퍼글러의 분석과 다소 차이를 보였다(신용옥, 2009). 대한민국은 사회주의체제에 대항하기 위해 자유 시장경제체제를 이식하려는 미군정의 점령정책에 맞서, 사회국가(복지국가)의 원리를 채택하였다. 사실상 북유럽 사회국가(복지국가)-사회적 시장경제 질서-사회민주주의의 모델을 제헌헌법은 이미 반세기 전부터 상세하게 천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바이마르헌법의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 그러나 제헌헌법이 바이마르헌법에 비해 국가의 역할이 훨씬 더 크고 평등주의 요소도 강하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제국주의 억압과 착취로부터 벗어나 공화주의와 균등주의를 실현하려는 민족해방운동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회적 기본권 즉 수익권(受益權) 규정을 강화한 점, 특히 제6장 경제조항에서 농민의 토지소유선언, 자원성(資源性) 기업과 공공성 기업의 국유화 선언 등은 건국강령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제헌헌법의 기초위원이던 유진오가 헌법을 기초할 때 참고한 10가지 문서 가운데 임시정부의 건국강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제18대 대통령선거의 최대 이슈는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이다. 경제민주화를 통해 자본의 민주적 통제를 이루고,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복지정책을 실시함으로써 극단화로 치닫고 있는 사회양극화문제를 치유해야 하는 절박한 현실의 반영이다. 이는 제헌헌법이 지향한 실질적 평등을 위한 경제민주주의와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려는 사회국가(복지국가)가 반세기 이상이 지난 현시점에서도 유효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라 하겠다. 제헌헌법은 우리에게 '오래된 미래'인 셈이다.

참고한 글

조동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강령」 『한국의 독립운동과 광복 50주년』 광복회, 1995.
박명림, 「한국의 초기 헌정체제와 민주주의-'혼합정부'와 '사회적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한국정치학회보 37집 1호, 2003.
심준보·변동열 옮김/밀턴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청어람미디어, 2007.
권영성, 『개정판 헌법학원론』, 법문사, 2008.
신용옥, 「제헌헌법의 사회, 경제 질서 구성 이념」, 한국사연구 144, 2009.
오동석, 「사회민주주의와 대한민국헌법」, 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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