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적 의식' 벗어나 스스로 '주인' 되자

[이명박시대를 맞으며]

신화적 의식
  
  머나먼 옛날, 원시인들은 자연이 두려웠다. 특히나 무서운 건 겨울이었다. 사냥감들은 어디로 갔는지 모두 자취를 감추고, 들판은 눈으로 하얗게 뒤덮여 생기를 잃어가고, 눈보라는 혹독하게 불어댔다. 컴컴한 동굴 속에서 그들은 다시는 봄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했다.
  
  결국 이들이 생각해 낸 방법은 하늘의 뜻을 대리하는 신을 통해 자연과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가장 힘세고 지혜로운 자를 뽑아 하늘의 아들인 신으로 내세워 하늘과 인간세계를 소통하게 했다. 신기하게도 신이 하늘에 기도하면 반갑게도 비가 내려줬고, 신이 기도하면 무시무시한 장마도 오지 않았다. 경탄스러운 나머지 원시인들은 신을 추앙하고 신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
  
  하지만 신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어서 차츰 차츰 가뭄이 오고, 동물들도 잡히지 않게 된다. 그러면 이들은 신에게 책임을 물어 단체로 신을 죽이고, 다시 새로운 자를 신으로 모신 후 그에게 다시 전권을 위임했다. 물론 그 신도 죽고 또 새로운 신이 추대되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차츰 신과 하늘은 별로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대신 거석 등을 통해 자연현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좀 더 합리적인 정치체계를 갖추기 시작한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신화
  
  이런 원시적인 일이 대한민국에서는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21세기에도 벌어지고 있다.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은 한국 사회의 모든 억압, 불의, 착취에 맞서 모든 것을 정의롭고 평화롭게 다스려 줄 것으로 생각되었다. 거기다 더해 2004년 총선에서 사상최초로 反-反민주 세력이라는 노대통령의 당이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장악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뭔가 신선했다. 4대 개혁입법이라며 反민주 세력의 주요 탄압도구였던 국가보안법 의 폐지, 반동적 지주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는 사학들의 개혁, 독재 정권의 마름으로 활약했던 언론사들의 개혁, 과거 독재 세력 및, 일제 부역세력들의 죄를 묻는 과거사 규명법을 밀어 붙일 때만 해도 정말 살 만한 세상이 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들을 후원해준 국민들보다는 사회의 기득권 세력들과 타협하기를 좋아했다. 과반수 의석에다 개혁법안에서 민주당 + 민노당의 협조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에서 왜 굳이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개혁의 실패는 조중동을 위시로 한 보수언론들을 위시한 기득권 세력의 탓으로 돌렸다. 기득권 세력들의 저항을 뚫고 그들을 개혁하라고 대통령을 만들어줬더니, 그 기득권 세력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럼 도대체 왜 대통령이 된 것인가?
  
  개혁의 실패와 동반하면서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 갔다. 가뜩이나 살기 어려운 국민들을 향해 대통령은 "경제지표는 단군 이래 최고인데 도대체 뭐가 힘드신 거죠?"라고 우롱하며 나섰다. 안 그래도 밉살스러운 언행에 끓어오르던 국민들의 분노는 이제 폭발했다. 이제 대통령이 직접 잘못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사사건건 대통령 탓을 하기 시작한다. 길 가다 자빠져서 코가 깨져도 노무현 탓이었고, 이천 공장에서 화재가 일어나도 노무현 탓이었다.
  
  쌓여가던 분노는 마침내 2000년대 판 '신의 살해'로 이어졌다. 1차는 2006년 지방선거 및 모든 재보궐 선거에서 대통령의 반대 당을 밀어주는 것으로 시작했고, 2차는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反대통령을 가장 열심히 주장하는 당의 후보에게 과반에 가까운 표를 몰아주는 것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목을 치는 일 만이 남았는데, 그것은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개헌선인 2/3의 의석을 몰아줌으로써 최종적으로 집행될 것이다.
  
  국민들은 옛 신의 목을 날리는 동시에 새로운 신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돈 버는 재주가 탁월하다는 그가 대통령이 되기만 한다면, 나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한국이 세계에서 최고로 부국강병한 나라가 될 것만 같다. 온갖 천기를 다스릴 수 있다는(대운하로 지구 온난화도 해결한다니, 단비 하나 못 내릴까) 새로운 대통령은 이제 모든 권한을 손에 쥐게 된다. 국민들은 새로운 대통령을 추대하는 동시에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자신들의 전권을 위임하기로 마음먹은 듯이 보인다. 그 증거로 대선 후 몇몇 여론조사에서는 이명박 후보의 가장 말 많고 탈 많은 공약이었던 대운하 공약에 대한 찬성 여론이 급증해 반대여론을 15% 가깝게 압도하는 경우도 보여진다.
  
  과연 우리의 새로운 신은 가뭄(한국 경제의 침체, 아니 정확히는 서민경제의 침체라고 하자. 재벌들은 과잉투자기라는 1996년보다 더 잘살고 있다.)에 단비를 내려줄까? 국민들은 넋을 잃고 신의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다.
  
  이제는 탈신비화, 합리성의 증대를 이루어야 할 때
  
  이명박 대통령이 만약 실패한다면 이제 국민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모습으로 본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노사모가 뇌사모가 된 것처럼 우스운 존재로 전락할 것이고, 다음 번 선거(물론 물리적으로 바로 다음 선거는 아닐지도 모른다.)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할 것이다. 국민들은 다시 새로운 대통령에 열광하며 우르르 몰려들 것이고, 결과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잘 살던 사람들은 계속 잘 살 것이고, 못 사는 사람들은 이 사람에게 희망을 걸어봤다 저 사람에게 희망을 걸어봤다 하는 사이에 자신은 점점 비루한 신세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뤘다고 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주인인 적이 없었다. 5년마다 바뀌는 신을 모시는 신민(神民)이었을 뿐이다.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民主主義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의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수많은 신화를 겪었고, 그 신화들의 처참한 말로를 통해 이제 슬슬 탈신비화할 때도 되었다. 대통령 하나 잘 뽑는다고 당장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역은 성립한다.)
  
  시민들 각자는 이제 국가의 신민이 아닌 주체적인 시민으로서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의 신화에서 벗어나서, 당시 박정희의 보호무역 정책 등을 비롯한 공과 창의력 말살 등을 비롯한 과를 잘 따져봐야 한다. FTA 문제도 미국의 영토를 정벌하러 가는 광개토대왕의 신화에서 벗어나서, 정말 현대자동차가 (미국산으로 취급될) 도요타와 혼다에 비해 경쟁력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는 신화도 청계천이 정말 미래로 흐르는지 아니면 실제로는 '전기'로 흐르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태어나 현대라는 굴지의 대기업의 사장이 되어 현대를 발전시켰다는 현대신화도 잘 따져봐야 한다. 그가 현대건설 CEO로서 재산을 증식하고 있는 동안 현대건설은 부도가 났다나?
  
  모든 성공과 실패에는 영웅과, 역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원인'이 있는 것이다. 영웅을 찾아내어 찬양하고, 역적을 찾아내어 비난하는 대신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 근본적으로 성찰할 때야 말로 성공은 이어가고 실패는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합리적인 의식을 바탕으로 법과 제도는 그제서야 정상적으로 작동을 할 것이고, 재벌들과 정치인들은 더 이상 범법행위를 저지르고도 태연하게 '휠채어 드라이브'를 즐기지 못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속이면서 자기들 뱃 속만 채우는 그런 날치기 정치는 존재할 토양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그 바탕위에서 바라마지 않는 대로 경제는 안정적으로 운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행동 : 스스로 주인이 되자
  
  물론 합리적 의식을 갖추기만 한다고 당장 합리적인 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의식은 정치적인 행동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때야 비로소 합리적인 사회, 민이 주인인 사회가 올 수 있다. 당장 오늘부터 시작하자. 물론 <프레시안>의 독자분들이라면 누구나 다 대운하, 한미 FTA가 몰고 올 파국적인 효과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실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그 파국적 미래를 막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얼마나 노력했을까. 당장 매일 만나는 직장 동료, 부모님, 친척들에게 그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더 나아가 한국사회의 운동권에게 (다분히 주입된)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FTA 등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는 않았나. KTX 여승무원, 코스콤 비정규직 등 많은 분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들의 고통을 나의 교양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는가.
  
  부끄럽게도 솔직히 나는 그래왔다.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나쁜 일이고, 비겁한 짓이다. 자신이 합리적인 의식을 갖췄다고 생각한다면 오늘부터, 여기에서, 작은 일부터 시작하자. 당장 모든 농성장에 가서 같이 스크럼을 짜는 것만이 실천인 것은 아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있으면 옆 사람과 나누는 아주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거기서 더 나아가 시민단체나 독립언론을 후원할 수도 있고, 직접 시민운동을 벌일 수도 있다. 더 많이 용기를 내어 파업현장에 나가 함께 스크럼을 짜고 행진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명박 시대, 어렵다 어렵다 비관만 하지 말고, 낡디 낡은 신화적 의식에서 벗어나 우리가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사회를 지금 당장, 여기에서부터 함께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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