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은 사실에 기초하여, 아래에서는 2007년 10월 15일에서 21일까지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이하 '17대')와 직후(22일) 개최된 제17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17기 1중전)에서 발표한 중국의 새로운 최고지도부의 인사 내용, 추이 및 함의를 분석하고 있다. 중국의 지도부 인사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위해 과거 당대회와의 비교, 통계자료 분석, 그리고 일부 당·군 인사의 특징을 부각시켰으나, 제한된 지면을 고려하여 중국정치의 기본적인 사항 및 국내외의 2차 분석에 대한 평가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중국 관영매체의 공식발표를 중심으로 분석하였고, 추가로 기존의 축적자료 및 중화권의 언론보도를 일부 사용하였다. 중국정치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도자들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나 이외에도 중국체제의 제도화·다원화, 경제·사회문제의 심화, 대외정책의 '다변화', 당-군관계의 변화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특히, 16대(2002년) 이후 중국의 엘리트 정치 및 국내 정치의 변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로는 조영남, 『후진타오 시대의 중국정치』(서울: 나남출판, 2006), pp. 109-210이 있다.
당·군 지도부 개편 내용 및 성향 분석
17대에 대해 중국 내외에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이슈는 1) 후진타오(胡錦濤) 체제의 지도이념인 '과학적 발전관'(科學發展觀)과 '조화로운 사회'(和諧社會)의 당장(章程) 삽입 여부, 2) 향후 5년간(2007년~2012년) 국내외 주요 정책의 내용 및 방향, 그리고 3) 당·군 지도부 인사였으나, 상기한 이념, 정책, 그리고 인사는 모두 동전의 양면으로서 서로 맞물려 있다. 특히, 지도부의 개편은 중국의 체제안정과 직결되어 있고, 구체적으로 후진타오의 권력 공고화, 지도부의 단결, 그리고 차세대 지도자의 등장을 가름할 수 있는 사안이다.
17대 인사개편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중앙영도기구'의 규모(즉, 구성원 수)가 16대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는 9명으로 16대와 동일하고, 중앙정치국은 후보위원 없이 25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도 16대가 후보위원 1명을 포함 25명으로 구성된 것과 동일하다. 중앙서기처의 경우는 군인사 1인이 제외되어 16대 7명에서 17대 6명으로 축소되었으나, 중앙위원회는 당원 수(2007년 6월말 현재 7,336만명)의 증가로 인해 16대 중앙위원 198명, 후보위원 158명에서 각각 6명과 9명이 증가하여 17대에서는 중앙위원 204명, 후보위원 167명(총 371명)으로 구성되었다.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16대에 8명으로 구성되었으나, 2004년 9월 이후 11명으로 바뀌었고, 같은 수가 17대에 선출되었다.
각 기구의 인사내용을 분석해보면,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9명) 중 유임자는 5명(胡錦濤, 吳邦國, 溫家寶, 賈慶林, 李長春), 16대 중앙정치국 위원에서 상무위원으로 승진한 인사는 2명(賀國强, 周永康), 그리고 신임은 2명(習進平, 李克强) 뿐이다. 동 기구는 실질적으로 중국내 최고정책결정기관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국내외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가 있었으나, 특히 '계파별(派閥) 분석'과 '후진타오의 후계자'에 대한 평가는 매우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다. 상기 9인 중 적어도 5인(吳邦國, 賈慶林, 李長春, 賀國强, 周永康)은 경력 및 업종(同行)으로 미루어 볼 때, 장쩌민(江澤民)과 쩡칭훙(曾慶紅)의 후광을 입은 인사, 즉 소위 '上海幇'으로 볼 수 있으나, 그렇다고 후진타오의 지지자/측근은 중국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소위 '團派') 출신인 리커창(李克强) 뿐이라고 보는 것은 중국 최고지도부의 운용방식과 動學(dynamics)을 지나치게 단순화·획일화시키는 자의적 해석이다.
요약하면, 중국의 최고지도부는 형식상(de jure) '1인 1표'를 표방하며, 이 경우 특정 파벌의 세력이 결정을 좌우할 수 있으나 실제적(de facto)으로는 타협(compromise)에 의한 '합의 구축'(consensus building)의 원칙에 의해 운용되며, 소수의 의견은 이에 순응(conformity)한다. 즉, 과거의 투쟁적·파벌적 운용과는 달리 현재의 후혁명 지도자들은 지도부의 단결과 안정을 최우선시한다. 특정 사안에 대한 정책결정은 해당 지도자들의 전문성과 의견이 존중되나, 이견의 발생시 총괄 업무를 맡고 있는 총서기(즉, 최고지도자)의 조정 및 지도부의 단결(즉, 대외적으로 만장일치)이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또한, 차기 후계자 구도에 대한 국내외 언론의 관심으로 인해 시진핑(習進平)과 리커창에 대해 집중적인 보도 및 분석이 이루어졌다. 두 지도자가 모두 50대(각각 1953년, 1955년생)로서 최소 2개 성(省)급의 당서기 직무경력과 박사학위(법학, 경제학)를 보유하고 있고, 15대(1997년) 이후 중앙위원이나 후보위원으로서 17대에 최소 두 단계를 뛰어 넘어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향후 중국의 후계자 구도는 '2인 구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된다.
이는 중국의 엘리트 정치, 특히 최고지도자의 선출 관련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는데, 첫째 과거 마오쩌둥(毛澤東)의 사례(예, 劉少奇, 林彪, 華國鋒) 혹은 덩샤오핑의 경우(胡耀邦, 趙紫陽, 江澤民, 胡錦濤)와 같은 최고지도자의 '1인 낙점'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이와 같은 새로운 현상을 정치권력의 제도화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으나, 엄밀히 말하면 이는 최고지도자의 위상과 영향력이 약화된 결과이다. 셋째, '2인 구도'가 '1인 낙점'에 비해 더욱 안정적이고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모든 정치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경우, 역사적으로 그리고 중국정치 체제의 속성상 최고권력의 형성과정에는 수많은 요인의 결합과 재결합이 따르기 때문이다.
상무위원 9명을 제외한 17기 중앙정치국 위원은 총 16명으로서, 16기 중앙정치국 후보위원 왕강(王剛)이 승진하였고, 7명(王岐山, 劉延東, 李源潮, 汪洋, 張高麗, 徐才厚, 薄熙來)이 새로 중앙정치국에 진입하였다. 17기 중앙정치국 위원 25명(상무위원 9명 포함)의 기본적인 배경은 아래 〈표 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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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치국도 상무위원회와 마찬가지로 소폭의 개편을 보이고 있는데, 소위 '5세대'(50년대 출생자로서 현재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의 전면적인 등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당·정·군의 국가지도자급(당 총서기, 국가주석, 국무원 총리,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외, 주요 성·區(자치구)·시(직할시)의 당서기(북경시[당서기와 시장], 천진시, 상해시, 중경시, 강소성, 광동성, 호북성, 요녕성, 신강자치구), 당/국무원 주요 기관(중앙조직부, 중앙선전부, 중앙통전부, 상무부, 공안부)의 장(長), 그리고 군대표(2명), 국무원 부총리,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등이 선출되었다.
중앙정치국의 다른 주요 특징으로는 1) '기술관료'가 대다수인 16기에 비해 17기 중앙정치국은 인문·사회과학 전공자가 크게 증가하였고, 최초로 4명의 박사학위 소지자(習進平, 劉延東, 李克强, 李源潮)가 진입한 점, 2) 소위 '太子黨'(예, 習進平, 兪正聲, 王岐山, 薄熙來)과 '공청단'(李克强, 李源潮, 劉延東, 汪洋)의 대표 주자가 선출된 점, 3) 상당한 지방행정 경력자의 충원이 이루어졌으나, 이로 인해 외교 및 군사업무 경험이 일천한 점, 그리고 4) 중앙-지방, 직능 및 '계파' 간 안배가 이루어진 점을 들 수 있다. 일부 의외의 인사(예, 賈慶林)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집단지도체제 유지, '당-국가'(party-state)의 집정능력 강화, 다양한 경제·사회적 요구 관리에 초점을 맞춘 안정적인 '실무형 인사안배'라고 평가된다.
중앙서기처는 중앙정치국(상무위원회 포함)의 업무기구(辦事機構)로서, 당 최고지도부와 당·정·군 주요 조직간의 일상업무를 조율하는 매우 중요한 조직이다. 동 조직은 15대와 16대 각 7명에서 17대 6명으로 축소되었는데, 시진핑은 서기처 총괄업무(黨務 포함), 류윈산(劉雲山)은 선전, 리위안차오는 조직, 허융(何勇)은 중앙기율검사 및 감찰(紀檢), 링지화(令計劃)는 중앙판공청 업무, 왕후닝(王滬寧)은 정책연구 업무를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군인사가 중앙서기처에서 배제됨으로서, 군 지도부와 당 지도부 간의 연결고리는 당분간 중앙정치국(상무위원회)이 될 전망이다.
중앙위원회는 중앙위원 204명, 후보위원 167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중앙위원 중 유임자는 99명(48.5%), 신임 및 승진자는 105명(51.5%)이고, 후보위원 중 신임자는 124명(74.3%)으로 잠정 집계되었다. 17기 중앙위원회도 입후보자가 의석 수보다 많은 일종의 경쟁(差額)선거 방식에 의해 구성되었는데, 당 기관지인 『人民日報』의 발표(10월 22일)에 의하면, 중앙위원은 221명의 후보 중 204명(8.3%), 후보위원은 183명의 후보 중 167명(9.6%)이 선출되어 16기의 5.1%, 5.7%에 비해 경쟁 비율이 상향 조정되었다. 이 중 共靑團 출신은 약 40명으로 추정되며, 여성은 중앙위원에 13명, 후보위원에 24명(총 37명, 10%)이 선출되었는데, 16기에 비해 각각 8명, 2명이 증가한 수치이다. 또한, 총 371명 중 소수민족은 40명(10.8%)이고, 중앙위원과 후보위원 중 대학학력 이상 소지자는 92.2%이다. 득표 수에 의해 열거되는 후보위원의 경우, 17기 최저득표자는 자팅안(賈廷安) 당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실 주임으로서 16기 최저득표자 여우시구이(由喜貴) 前 중앙판공청 경위국 국장과 함께 장쩌민의 인맥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참고적으로 15기(1997년) 최저득표 후보위원은 시진핑이었는데, 이 또한 '계파' 및 인맥(즉, 太子黨) 인사에 대한 당 대표들의 거부감을 잘 나타내고 있다.
중국군의 최고정책결정기구인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주석 1명(胡錦濤), 부주석 2명(郭伯雄, 徐才厚), 위원 8명(梁光烈, 陳炳德, 李繼耐, 廖錫龍, 常萬全, 靖志遠, 吳勝利, 許其亮) 총 11명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 후진타오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부주석인 궈보슝과 쉬차이허우는 중앙정치국 위원, 그리고 위원 8명은 모두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보임되었다. 금 번 군인사의 주요 특징으로는 1) 과거와는 달리 중앙서기처에 군인사가 배제된 점, 2)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3명에서 2명으로 환원된 점, 3) 량광례 前 총참모장이 현재 무보직인 점, 4) 대만 유사 및 육·해·공 합동작전 지휘경력자들이 발탁된 점, 그리고 5) 상당 수의 당·군 원로의 자제가 군 최고지휘부에 진입한 점을 들 수 있다. 현재(2007년 10월 말)까지의 조사에 의하면, 204명의 중앙위원 중 군인사는 41명(20.1%), 167명의 후보위원 중 군인사는 23명(13.8%)으로 17기 중앙위원회(총 371명)에서 군인사가 차지하는 수·비율은 64명, 17.3%로서 과거에 비해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14대(1992년) 이후 군인사의 수·비율의 변화는 아래 〈표 2〉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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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인사 및 중국의 엘리트정치에 대한 함의
중국에서 지도부의 개편은 공식적으로 당대회를 통해 5년에 한번씩 이루어지는데, 상기한 '중앙영도기구'에의 진입은 당·정·군의 요직에 발탁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또한, 당대회는 지도부 개편, 즉 간부인사 과정의 일환으로서 일종의 분수령에 비유할 수 있는데, 다양한 사유(예, 연령제한, 병사 및 출당)를 감안하여, 당대회 개최 전 부분적인 보직 조정 및 임면이 이루어지고, 이는 당대회 개최시 새로운 지도부 구성에 종합적으로 반영되며, 이 때에 당과 군계통의 보직 안배가 발표된다. 같은 방식으로 국가 및 국무원의 보직(국가 주석, 국무원 총리·부총리 및 국무위원 등)은 당대회가 끝난 후 다음 해에 개최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선출·발표된다. 예를 들어, 17대(2007년 10월) 이전 지방(성·구·시급) 당서기에 대한 보직 조정은 2006년 후반기와 2007년 전반기에 걸쳐 이루어졌고, 군의 영도기구(4총부 및 대군구급)에 대한 보직 조정은 2007년 여름 이후 17대 직전까지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다. 국가 및 국무원에 대한 보직인사가 2008년 3월에 개최 예정인 제11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발표되면 비로소 중국의 새로운 당·정·군 지도부가 확정된다.
17대가 종료된 현재 시점에는 주로 새로운 당 '중앙영도기구' 구성에 따른 업무조정의 일환으로 후속인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과거에 비해 보다 신속하고, 점진적인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10월 22일 17기 1중전의 종료 후, 26일에는 신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에 임명된 허궈창(賀國强)이 맡고 있던 중앙조직부장에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발탁된 강소성 당서기 리위안차오가 임명되었고, 강소성 당서기에는 강소성 성장인 량바오화(梁保華)가 보임되었다. 27일에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인 시진핑이 상해시 당서기직을 사임하였고, 후임에는 위정성(兪正聲) 중앙정치국 위원 겸 호북성 당서기가 임명되었고, 호북성 당서기에는 호북성 성장인 뤄칭취안(羅淸泉)이 승진·임명되었다. 28일에는 저우융캉(周永康) 신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맡고 있던 공안부장에 멍젠주(孟建柱) 강서성 당서기가 임명되었다. 29일에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된 리커창의 요녕성 당서기직에 장원웨(張文岳) 요녕성 성장이 임명되었다. 이 중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인 시진핑과 저우융캉은 조만간 부수 보직에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17대의 지도부 개편 내용은 중국의 엘리트 정치의 변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주요 특징 및 새로운 추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후진타오의 권력 공고화는 최고지도부의 관료화, 인사의 제도화와 맞물려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15대(1997년) 이전부터 중앙정치국 진입 기준으로 여겨지고 있는 '70세 연령제한'이 '68세'로 정착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고, 고위급 지도자들이 지도부의 단결과 '계파'(즉, 권력기반) 중 전자를 우선시 하고 있고, 그리고 후진타오가 고위급 지도자 중 대표주자로서 정치 제도화의 상징이며, 중국사회의 보수·진보(중국에서는 좌파·우파) 세력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둘째, 권력승계에 대한 제도적 장치나 합의된 절차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후계자의 구도를 생산한 것은 결코 적지 않은 성과이다. 더욱이, 17대에서의 '2인 구도'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과 같이 개인적 위상과 영향력을 갖춘 혁명지도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탄생한 최초의 정치적 실험으로서, 만일 순조로운 권력승계가 이루어질 경우 중국 엘리트 정치의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단, 중국은 권력체제의 속성과 전통적·문화적 요인, 그리고 유사시(예, 지도부내 권력투쟁 혹은 사회적 소요 발생) 지휘계통의 혼란 방지를 위해 당·정·군(최소 당권과 군권)을 1인이 장악하고 있는데, 차기 최고지도자의 경우 2012년까지는 '지도자 수련' 기간이 짧을 뿐만 아니라,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진입이 필수적이나 현재 동 조직의 민간 지도자는 후진타오 뿐이다.
셋째, 중국에는 방대한 공식적 관료·행정조직이 존재하나 실질적인 정책업무는 당 '中央領導小組'를 통해 심의·조정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17대 지도부의 구성 및 업무분장으로 미루어 볼 때, 조만간 주요 영도소조(예, 당무, 정법, 外事[외교], 대만, 宣敎[선전과 교육], 財經[재정과 경제])의 개편이 이루어지고, 이는 '위원회式 결정'(decisionmaking by committees), 후진타오의 주요 정책(외사, 인사, 군사, 대만) 장악, 그리고 정책결정의 제도화·관료화·'群居化'(groupthink)의 특징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차기 후계자의 경우 주요 영도소조에의 진입을 통한 경험 축적이 필요하며, 군은 중앙서기처에서 배제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과거에 비해 군의 전문화(專業化)에 보다 중점을 두게 될 것으로 보인다.
넷째, "문제가 없으면 중국이 아니다"라는 혹자의 표현대로, 역사적으로 현재의 중국만큼 국내외 문제가 다층적이고, '체제 변화'(system change)적 성격을 띈 적도 없었다. 동시에, 17대를 통해 중국의 최고지도부가 보여 준 바와 같이 중국 지도부가 국내 사회의 요구 및 국제적 압력에 현재와 같이 '관심'을 갖고 대처한 적도 거의 없다고 평가된다. 중국의 지도부가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대표적인 슬로건인 '과학발전관', '당내 민주화', '화평발전', '화해세계' 등은 현재 중국의 모순적인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적어도 17대에 새로 선출된 최고지도부는 이 같은 국내외 도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보다 높은 전문성과 실용성, 그리고 변함없는 '黨性'을 겸비한 지도자들로 구성되었다고 평가된다.
관찰자의 문제와 향후 과제
17대는 과거 어느 당대회와 비교하더라도 높은 대외 공개도 및 '투명성'을 보인 행사였다. 중국의 관영 매체들은 17대의 일정, 대회 문건, 일반 통계 및 지도부의 인선과 인사조정 내용을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대외적으로 중국의 '민주화' 및 개방화 이미지를 투영하였고, 대내적으로는 '당내 민주화'의 진전을 홍보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노력으로 인해, 중국의 당대회에 대한 '미스테리'는 많이 벗겨졌고, 특히 지도부의 인사와 같이 아직도 '민감한 사안'에 대한 외국 관찰자의 가측력이 크게 제고되었다.
예를 들면, 국내 주요 신문(연합·중앙·조선·동아)과 중화권 신문(『中國時報』, 『聯合報』, South China Morning Post, 『多維新聞』, 『文匯報』, 『明報』)은 시진핑과 리커창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진입, 共靑團 출신의 대거 등용, 그리고 쩡칭훙(曾慶紅)을 포함한 강택민계 인사의 퇴진 등 지도부 인사 개편의 주요 내용에 대해 상당히 높은 가측성을 보였다. 특히, 중국의 최고지도부 인선이 공식적으로 발표(22일)되기 이전, 미국에서 출간되는 중문지인 『多維新聞』는 10월 5일("多維判斷: 十七大政治局常委三下四上"), 대만의 『中國時報』는 10월 6일("政治局常委 新面孔四人"), 홍콩의 South China Morning Post는 10월 13일("Decisions Made on Politburo's Elite Group")에 이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9명의 명단과 서열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이를 중국정치의 투명성 제고와 맞물려 지도부 인사에 대한 외국 관찰자의 가측력이 높아진 결과로 자축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적지 않다. 우선, 국내 주요 신문의 경우, '국제'란의 '중국' 혹은 '아시아·호주'를 검색해 보면 17대 관련 기사의 제목과 내용이 거의 대동소이함을 알 수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중화권 언론의 보도 내용을 "퍼오기, 베끼기, 짜깁기"한 결과로서, 심지어 일부 언론의 경우 취재원의 17대 '현장보도' 내용도 자작물이 아니다.
이와 같은 국내언론의 오랜 관행은 중국의 지도부 인사 분석과 관련, 적어도 두 가지의 문제를 낳고 있다. 첫째, 홍콩 및 대만과 한국은 관심사와 국가이익이 다르다. 예를 들어, 홍콩의 언론이 홍콩 및 마카오 업무의 책임자로 거론되고 있는 시진핑과 자칭린, 그리고 향후 중국의 대홍콩 정책 변화 가능성에 대해 집중 보도하고, 대만 언론의 경우, 후진타오의 정치보고 중 대만에 대한 제안, 그리고 대만업무 담당자와 군인사 변동에 대해 상세한 분석을 내놓은 것이 이를 반증한다. 우리의 경우는 당연히 새로운 중국 지도부 등장으로 인한 한반도 정책에의 시사점, 특히 북핵 및 대한반도 정책 결정 행위자 등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둘째, 국내언론이 외국 보도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관행으로 인한 또 다른 폐해는 중화권 언론(특히, 홍콩)의 '계파(파벌)별 분석' 패러다임의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지도부 구성이 후진타오(共靑團)와 쩡칭훙/장쩌민(上海幇) 간의 '막후협상'에 의해 어떤 비율로 결정이 되었다는 식의 분석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이 피상적이고, 소설에 가까운 파벌분석은 상기한 바와 같이 현 중국 지도부의 운용방식과 동학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결과이다. 파벌분류의 문제점 중 한 가지만을 지적하면, 共靑團 계열의 대표주자로 잘 알려져 있는 리위안차오의 경우 부친이 리간청(李幹成) 前 상해시 부시장으로서 '太子黨'이자, 상해시 근무 및 학습경력(1972년~1983년) 등을 종합해 볼 때, '上海幇'으로도 분류할 수도 있다. 같은 이유로, 현재 상해시 시장인 한정(韓正)도 3개 계파에 모두 속하는 사례이다.
중국 17대에 대한 국내 공공정책 연구기관의 분석결과도 국내 언론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10월 31일)까지 국내 주요 국책연구소 중 17대를 분석하여 단문이나마 대외적으로 공개한 사례는 단 한 편뿐이다.(통일연구원, 2007년 10월 25일[www.kinu.or.kr]) 다양한 분야(정부·학계·언론)에서의 타성화된 관행과 비효율적 방식에 대한 개선이 요구된다. 특히, 중국정치의 人治적 성향을 감안, 새로운 중국 지도부와의 다층적이고 비공식적인 채널의 구축, '중앙영도소조'를 포함한 정책업무의 향후 개편 내용 추적, 한반도 및 군사업무 계통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 등 지난 15년 간 양국관계의 진전과 교류 확대에 걸맞는 수준의 차별화되고 의미있는 분석이 필요하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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