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1개월 만에 자유의 몸이 되어 조국을 방문했던 작년 11월, 집중 조명을 받았던 매스콤을 피해 로버트 김이 자유롭게 조국산천을 돌아보고 싶다는 바램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번에 설악산에서 경주를 방문하는 도중에 자신이 10년 세월을 미 연방교도소에 보내게 된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한 강릉 안인진 북한 잠수함침투사건 현장을 찾았다.
1994년 전쟁 일보 직전까지 치달았던 급박했던 북핵 사태 이후 남북 간 첨예한 대립 속에서 1996년 9월 로버트 김은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 백동일 대령의 요청을 받고 동해안에 침투한 북한잠수함 침투사건과 관련해 미국이 잠수함 이동항로를 인지하고 있었는지 확인해 주다가 주미 한국대사관 주최 국군의 날 기념리셉션 장에서 미 FBI에 체포되었다.
이제는 관광 상품으로 형해화되어버린 북한잠수함을 지켜보며 그의 가슴에는 얼마나 많은 회한이 스쳐 지나갔을까. 미 해군 정보분석관이라는 보장된 준공무원 지위를 박탈당한 그는 변호사 비용으로 평생 모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잃고 파산선고까지 받았다. 모든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10년간 단절의 고통을 맛보며 50대와 60대 전반의 소중한 인생황금기를 감옥에서 소진해버린 로버트 김이 갖는 회한의 깊이는 오직 그 자신만이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5월 4일 이후 그토록 맏아들을 기다리다 끝내 이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이 잠들어 계시는 고향 여수에 머물다 오는 15일 출국할 예정이다.
지난 3일 로버트 김과 장명희 여사는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저녁모임에 나타났다. 이날 모임은 로버트 김 내외분이 그동안 자신을 도와준 분들의 성원에 감사하는 초대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몇 차례 건배가 오가는 가운데 그는 65세 이상이면 지하철은 무임승차인데 왜 자신에게는 적용시켜 주지 않는지 잠시 자신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또 로버트 김은 자신의 육신과 사지가 멀쩡해 막노동이라도 하려 했으나 그마저 나이가 65세라 여의치 않다고 했다. 그리고 파산 상태가 회복된 데 용기를 얻어 최근 미국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으려 했으나 형을 살았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필자는 문득 로버트 김이 지난 2003년1월21일 알렌우드 미 연방형무소에서 보내온 국민에게 보낸 편지내용이 되살아났다.(<프레시안> 2003년 2월 8일 '조국의 국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 신기섭 참조 요망)
알렌우드 감옥에서 온 「로버트 김의 편지」
제가 한국에 나가게 되면 우선 불우한 청소년소녀들에게 의식주(衣食住)를 제공하고 교육시키기 위해서 학교를 하나 운영하고 싶습니다. 물론 큰 예산이 들겠지만 독지자들을 찾아 뵙고 정부관청을 찾아다니면서 자금을 조달하려고 하며 저 자신도 직장을 얻어서 이 학교사업에 재정적으로 보조하려고 합니다.
(중략)
제가 한국에 나가서 학교를 세울 수 있을지는 저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담은 못합니다만 한국의 교육정책과 교육문화(가정생활 포함)를 개선하는 데 전력(全力)을 다하려고 합니다. 많은 협조 바랍니다.
(…) 세상을 넓고 길게 봐야 합니다. 그리고 사고방식도 세계화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한국에 나가면 여러분들에게 이 세계화에 기여할 수 있는 교육을 위해 전력을 다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선진국권으로 들어가면서 선진국 국민답게 세계에 헌신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급진하는 세계 발전에 뒤따라가면서 모방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은 문화이기(文化利器)를 팔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로얄티(royalty)가 나가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가 발명을 하고 세계학자를 놀라게 하는 노벨 과학, 의학, 문학 수상자도 나와야 합니다.
(…) 우리 한민족은 참 우수한 민족입니다. 무엇이든지 다 잘 할 수 있는 민족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각자가 노력하면 다 이루어질 수 있는 일들입니다. 더럽다고 안 하고 어렵다고 안 하고 위험하다고 안 하면(3D) 일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을 하면서 발명도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이 문명도 '3D'를 거친 선구자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3D를 기피하면 결국 외화를 낭비하게 됩니다. 저는 이제 7년째 가족과 떨어져 철창 안에서 자유 없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더욱 사랑하고 그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러분들이 염려해 주시고 격려해 주심으로 외롭지 않게 수감생활을 하고 있으며 여러분들의 사랑 때문에 한국을 더 사랑하게 되고 우리 조국의 미래와 발전을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나라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한국 사람들의 우수성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각자가 노력하면 우리나라도 존경받을 수 있는 훌륭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수감기간이 저에게는 참 소중한 인생 공부였습니다.
끝으로 여러분들과 조속한 시일 내에 만나 뵐 수 있기를 바라오며 이 몸이 조국을 위해 이바지할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우리 서로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다가올 우리의 훌륭한 미래를 겸손한 마음으로 기다립시다. 감사합니다.
저의 난필을 용서하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알렌우드 미 연방형무소에서
로버트 김(김채곤) 드림
2003년 1월21일 생일날 드립니다.
그는 형무소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어 손수 만년필로 글을 써 보내왔다. 이러한 로버트 김의 뜻을 헤아려 2003년 2월 8일 로버트 김의 동생인 김성곤 당시 국립 청소년수련원장(현 국회의원)과 사건 당사자의 한 사람인 백동일 예비역대령, 로버트 김 석방위원회 사무총장과 필자 등이 모여 로버트 김이 귀국 후 조국을 위해 헌신할 사업으로 여러 차례 포부를 밝힌 '조국의 청소년소녀를 위한 교육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후원회 예비 결성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연이어 로버트 김 후원회가 결성되어 활발한 모금활동과 로버트 김의 명예회복 활동에 들어갔다.
1년이라는 한시적인 기간 동안 활동한 로버트 김 후원회는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로버트 김이 정착할 집을 마련해 주고 일부 생활비 도움을 드리는 정도에서 모금활동이 끝났으며 후원회는 현재 해체된 상태에 있다. 이로 인해 유감스럽게도 로버트 김이 여러 차례 언론과 서신을 통해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는 '청소년을 위한 교육사업'은 현재 추진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에 있다.
필자는 그가 막노동까지 생각하고 있는 현실과 그마저 고령으로 여의치 않게 된 저간의 사정과, 신용회복이 이루어졌으나 징역형을 살게 된 전과로 인해 은행융자마저 여의치 않은 냉엄한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다. 정작 로버트 김이 감옥에서의 오랜 고뇌와 사색,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교육사업은 현재 추진동력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난 번 조국 방문 후 '로버트 김의 편지'를 통해 일주일에 한번 지인들과 후원에 동참했던 분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혜로 세계화 시대에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우리의 근본을 성찰해 보게 하는 주옥같은 글을 보내오고 있다. 편지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그는 한글사전에서 유사어 중 가장 적확한 단어를 찾는 등 고심어린 노력을 하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훌륭한 문장가이기도 한 그는 잘못된 교육현실과 조기유학의 문제점과 연계시켜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IT소프트웨어 산업 핵심부품 육성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한미관계와 북한과 관련된 안보 문제 등 냉엄한 세계화 흐름에 주도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편지글에는 조국에 대한 간절한 사랑과 지혜와 남다른 통찰력이 담겨 있어 우리들에게 깊은 울림과 큰 깨달음을 안겨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조국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던 로버트 김을 위해 진정 그가 원하고 또 가장 절실한 미래과제가 될 '청소년을 위한 교육 사업'을 그의 남다른 애국심과 경륜을 발휘해 포부대로 펼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드리고 「로버트 김의 편지」가 혼탁하고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이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확산해나가는 데 뜻과 힘을 모을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이와 같은 그의 간절한 소망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면 조국에 대한 그의 끝없는 사랑과 조건없는 헌신과 열정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자양분이 되지 못할 것이며, 냄비같이 끓어올랐다가 식기를 잘 한다는 우리 국민의 속성이 로버트 김이라고 예외는 아니라는 자조에 빠지게 될 것이다.
로버트 김이 바라는 청소년을 위한 교육 사업이 척박한 풍토를 딛고 시대정신과 역사의 영속성 속에 되살아나 이 국가와 민족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모델로서 가시화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들에게 배전의 관심과 격려를 당부 드린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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