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이 다시 불거진 진짜 이유는?

<정치 깊이읽기> 김승규 국정원장, 법무장관 땐 반대하더니

지난 8일 영국 런던에서 발생한 연쇄폭탄테러의 여파로 정치권에서는 또다시 테러방지법 제정 불씨가 살아났다. 국정원 위상 강화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과 인권침해 가능성 때문에 이미 두 차례나 제정이 좌절된 법안이 번번이 '부활'한 데에는 여권 수뇌부가 자리에 따라 입장을 달리해 다분히 '조직의 논리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 점도 한몫 했다.

***테러방지법, 국정원장 땐 찬성, 법무장관 땐 반대 **

김승규 국정원장은 지난 5일 인사청문회에서 "테러가 발생했을 때 문제는 심각하다. 근거법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말해 테러방지법에 대한 찬성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불과 4개월 전, 법무장관 시절 김 원장은 한 여당 법사위원의 질의에 대한 서면답변에서 "테러 방지법의 제정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국정원장 소속의 대테러센터는 헌법상 행정부 구성 원리에 배치되고 정보기관이 행정기능까지 행사함에 따른 권한 남용과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며 긍정보다는 부정이 강한 답변을 보내왔다.

당시 김 원장은 테러 대응기구인 '대테러센터'를 국정원 산하에 설치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테러대응기구의 권한 비대화로 인한 인권침해 우려가 없도록 보다 신중하고 심도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 답변서에서 "16대 국회에서, 국정원장 소속의 테러대책센터에서 정보수집뿐 아니라 행정부처 전반의 대테러활동에 대한 기획·조정을 담당하도록 함으로써 정보기관이 정보기능과 집행기능을 함께 행사하는 데 따라 권한남용과 인권침해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입법이 무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법제정에 대한 우려를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김승규 "법무장관 때 우려는 국정을 바라보는 시각의 일종" **

이처럼 법무장관으로서는 '인권침해 우려'를 강조하던 김 원장이었지만, 국정원장 내정자로서는 '테러 대응체계 마련의 필요성'에 방점을 찍었다.

청문회에서 김 원장은 "테러가 발생했을 때 국민의 권리도 일정 부분 제한할 수 있어야 하고 사건이 생길 때 피해자에게 보상도 해줘야 하고 수습도 해줘야 하는데 현재의 훈령 규정만 갖고서는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테러 대응체계가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선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테러방지법 통과가 쉽지 않자 정부는 지난 4월 테러종합정보센터 등을 둘 수 있도록 훈령을 개정했으나 이에 대해 편법 논란이 일고 있는 만큼 '근거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같은 김 원장의 '전향'에 여당 내에서 테러방지법 제정을 적극 추진중인 조성태 의원은 "법무부가 제일 반대했었다는 얘기가 있었다"며 확인에 들어갔다. 이에 김 원장은 "법무부 장관으로 있을 때 한 것은 밖에서 국정을 보는 한 시각의 일종이었다"며 "인권 침해에 대해 우려한 것일 뿐 테러방지법에 반대한 것은 없다"고 답했다.

***천정배 법무장관도 원내대표일 땐 '추진' **

그러나 김 원장은 "이제 법무부의 반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느냐"는 조 의원의 질문에는 "장관이 바뀌어서…"라며 확답을 피했다.

실제로 천정배 신임 법무부장관은 지난 13일 민노당 김혜경 대표를 방문한 자리에서 "정부와 국회가 테러방지법을 만들겠다면 그것까지 반대할 수야 없지만 당에 있었다면 반대했을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천 장관은 "재작년 잠깐 외국에 다녀오는 동안 이 법이 상임위에서 통과된 사실을 알고 그 뒤 의총에서 막았던 기억이 난다"며 테러방지법 반대는 자신이 의원 시절부터 가져 온 '소신'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천 장관이 천명한 '소신'도 고 김선일 피살사건이 터져 온 나라가 테러세력에 대한 분노로 들끓던 2004년 6월 한 차례 흔들렸던 적이 있다. 당시 원내대표였던 천 장관은 테러방지법 제정에 대한 사회의 우려와 경계를 인정하면서도 "권한남용과 인권침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법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당내 개혁성향 의원들과 정치권 외곽의 강한 반대로 테러방지법 제정은 좌절됐지만 당시 천 장관은 "원내대표를 맡다보니 평소 소신을 꺾었다"는 비난을 피해갈 수 없었다.

***국정원의 권한 강화에 법무부 '긴장' **

요약하자면, 테러방지법의 제정 문제와 관련해 김 원장은 반대→찬성, 천 장관은 반대→찬성→반대로 입장을 바꿔 온 셈이다. 그 시점에 자신이 대표해야 했던 기관의 입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다만 천 장관의 경우, 현재의 입장이 개인의 소신과 합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입장 변화에는 기본적으로 두 기관 간의 알력이 배경에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테러방지법은 비상 집행기구로서 각 행정부처의 장들을 모두 망라한 '국가테러대책회의'를 두도록 규정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회의의 상임위원장을 국정원장이 맡도록 해 사실상 비상시의 실무 권한이 국정원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국정원장은 국회의 해임건의·탄핵의 대상이 되지도 않고 국정원의 조직과 정원, 활동과 예산이 공개되지도 않는 비밀 정보기관인 만큼 정부 부처들은 그 파격적인 권한 강화를 견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대테러센터를 국정원 내에 둬 정보 수집 외에도 테러 용의자 색출, 무력진압 등을 담당케 한 점은 비상시 검찰, 경찰의 역할을 이관하는 효과를 낼 수 있어 특히 법무부와 행자부를 긴장케 하고 있다.

이 같은 '조직의 논리'와 시류에 따른 주요 인사들의 입장 변화를 지켜보면서, 그 동안 테러방지법 제정에 반대해 온 여당의 한 정책관계자는 "이 상태에서 당장 다른 테러가 한 건이라도 터지면 정치권은 앞뒤 가리지 않고 이 '위험한 법'을 제정하자고 달려들 것"이라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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