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밀려 창업하는 20대…비정규직이냐, 빚 장사냐

[늪에 빠진 중소상인·<4>] 20대는 왜 자영업으로 몰리나

20대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자영업은 흔히 퇴직 이후인 50, 60대 인구가 많이 뛰어드는 분야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취업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또는 직장 생활을 짧게 경험한 뒤에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례가 많아졌다. 통계청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자영업자 수의 증감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0대와 40대는 자영업 인구가 줄었지만, 20대와 50대, 60대는 자영업 인구가 늘었다. 50대와 60대 인구가 자영업으로 몰리는 현상은 낯설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소폭이나마 20대 자영업자가 늘어난 점은 새로운 현상이다.

최근 늘어난 20대 자영업자는 김대중 정부 시절 주목받았던 젊은 벤처기업가들과도 경우가 다르다. 신기술과 아이디어로 투자를 유치해서 모험적인 사업을 벌이는 게 벤처기업가들이었다. 반면, 요즘 늘어난 20대 자영업자는 주도적으로 창업을 택했다기보다 창업으로 내몰렸다는 표현이 더 적당한 경우가 많다. 취업 문턱이 너무 높은 게 한 이유다. 또 극심한 고용 불안 탓에, 설령 취업을 한다고 해도 젊은이들이 안정된 미래를 그리기 어려워졌다는 점도 이유다. 어차피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졌다면, 게다가 직장에서 하는 일 역시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일찌감치 자영업에 뛰어드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게다가 최근 청년 실업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앞다투어 청년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방편이다. 이런 점까지 고려하면, 20대 자영업자의 증가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창업 이후다. 20대 자영업자들 앞에 놓인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이들이 뛰어드는 업종은 이미 대부분 포화상태인 까닭이다. 인터넷 쇼핑몰, 소규모 요식업 등이 흔한 창업 아이템인데, 들인 노력에 비해 성공 가능성은 낮다. 그리고 이런 소규모 자영업 창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이들은 아무런 안전망 없이 벼랑 아래로 떨어진다. 그리고 20대 젊은이들에게 '창업'이라는 위험한 도전을 권하고 격려했던 정부는 창업 실패자를 위한 안전망에는 아직 관심이 없다.

20대 나이에 자영업에 뛰어든 이들을 직접 만났다. 성공 궤도에 올라선 경우건, 그렇지 않은 경우건 불안한 표정과 분주한 몸짓은 한결같았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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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보면 여느 집과 다름없는 평범한 가정집.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비누향기가 진동한다. 안방에는 샴푸 바(고체 샴푸), 거실에는 아보카도 비누가 가득하다. 연일 30도가 넘는 찜통더위에 비누가 녹는 것을 막기 위해 선풍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흡사 비누공장을 연상케 하는 이곳은 천연비누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이현민(30) 대표의 집이다.

"'일단 취업부터'라는 생각으로 구한 직장, 미래가 없었다"

"2007년 대학 졸업 후에도 한동안 취업준비생으로 살았어요. 구직활동하다가 결국 모 협회 행정직 일자리를 구했는데 조건이 안 좋았어요. 주 6일 출근에 연봉이 2000만 원이 안됐어요. 그때는 일자리가 급했으니까 일단 다녔죠. 근데 이 상태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그렇다고 다시 취업하자니 졸업한 지 너무 오래 돼버렸고. 그래서 부업으로 홍대 희망시장에서 비누를 팔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결국 비누 파는 일이 생업이 됐죠."

이 대표는 20대의 끝자락이던 지난해 8월 쇼핑몰 운영을 시작했다. 이 대표의 집이 비누 공장으로 바뀌어 버린 건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100만 원이 조금 넘는 수익으로 돈을 모아 미래를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다.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부업으로 시작한 것이 비누 판매였다. 근무여건도 좋지 않고 정년도 보장되지 않는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 비누 판매 사업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 이현민 대표의 집에 쌓여있는 비누들. 이 대표 집의 빈 공간은 모두 비누가 빼곡히 차 있다. ⓒ 이현민

하지만 얼마 안 되는 월급을 모아 창업을 하려니 제약이 많았다. 우선 가게를 낼 형편이 안됐다. 임대료가 부담됐기 때문이다. 사무실이나 창고를 빌리는 것도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결국 모든 작업을 집에서 진행하고, 판매는 인터넷으로 하기로 했다. 집 전체가 사무실 겸 공장 겸 창고가 됐다. 가족들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사업을 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이 대표의 말이다.

"가족들이 모두 사업을 도와줘서 저는 제품에만 신경 쓸 수 있었어요. 고정 지출 비용도 별로 없어 제품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과 비용이 많았어요. 자연히 제품의 질이 좋아지고 매출도 오르더라고요"

이 대표는 쇼핑몰을 운영하며 회사에 다닐 때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취미로 하던 일을 직업으로 하다 보니 일하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20대에 자영업에 뛰어든 젊은 사장들 중에 이 대표처럼 빠른 시일 내에 사업을 안정시킨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젊은 사장들은 개업 후 1년 이내에 폐업의 위기를 겪는다.

"개업 7개월 만에 폐업 생각…재료 사느라 생긴 카드 빚 때문에 장사 못 접어"

이화여대 근처에서 돈가스 가게를 운영하는 임정훈(31) 대표도 폐업을 고민했었다. 그는 개업 7개월만에 폐업을 생각했다. 하지만 당장 상환해야 할 돈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장사를 그만두면 당장 재료 구입비로 쓴 카드 값도 갚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심정으로 은행에 다니는 친구에게 대출을 문의했다. 그 친구는 차라리 자기가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직전 연도 소득으로 대출 여부가 정해지는데 소득이 거의 없어 대출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또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임 대표는 폐업 위기의 가장 큰 요인으로 초기 창업 자금의 부족을 꼽는다. 자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면도로 안쪽에 있는 골목에 가게를 낼 수밖에 없었다. 테이블 4개를 놓으면 공간이 꽉 차는 작은 가게였다. 직원을 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렇다 할 홍보도 할 수 없어 가게가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매출을 올리는 것 자체가 힘든 환경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임 대표는 가게를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자영업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창업 전 그는 방송 보조 작가, 잡지사 어시스턴트 등의 일을 했다. 언젠간 정직원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게 언제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미래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다.

근무 여건도 열악했다. 어시스턴트로 일할 때 5명의 에디터가 시키는 일을 모두 혼자 해내야 했다. 업무는 많지만 정작 그에겐 일을 할 수 있는 책상도 없었다. 컴퓨터를 들고 사무실에 빈자리를 찾아다니며 밀려드는 일들을 처리했다. 이렇게 일하고 그가 받는 임금은 한 달에 고작 3~40만 원에 불과했다.

어시스턴트를 그만두고 궁여지책으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도 봤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1년 정도 하던 학원 강사를 그만두고 나서 뭘 하고 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요식업이 가장 진입 장벽이 낮은 것 같았어요. 졸업한 지 오래돼서 다시 취업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취업을 미리 준비하지도 못했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제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음식 장사가 아이디어만 좋으면 금방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죠."

임 대표는 부모님을 설득해서 창업자금을 받아냈다. 개업한 지 2년이 가까워져 오지만 아직 부모님의 돈을 다 갚지 못했다. 매출이 조금씩 오르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돈을 갚으려면 아직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오늘도 그는 요리, 서빙, 계산을 혼자 하고 있다. 직원을 고용할 생각이 없느냐는 말에 그는 "아르바이트생을 나흘 동안 고용했었는데 그 친구가 저보다 돈을 더 많이 가져가더라고요"라고 말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자영업자 절반 이상이 3년 안에 사업 접어

사회 경험이 많지 않고 초기자금이 부족한 20대가 자영업에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달 30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영업은 자영업과 경쟁한다>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50% 이상이 3년이 채 되지 않아 사업을 접었다.

특히 진입 장벽이 낮은 업종일수록 성공확률은 떨어진다. 진입하는 영세업자가 많기도 하지만, 대기업과 프랜차이즈도 많이 진출했기 때문이다. 도·소매업은 대기업의 대형마트와 SSM(기업형 슈퍼마켓)의 진출로 영세 자영업자가 어려움에 처해있는 대표적인 업종이다. 요식업도 마찬가지다. 2010년 말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치킨과 피자 같은 주요 배달 요식업의 경우 전체 사업자의 약 70% 정도가 프랜차이즈 가맹점이었다. 개인사업자가 해당 분야에 진출해서 수익을 내기가 대단히 어려운 구조다.

'떠밀려 창업하는' 20대…"좋은 일자리 확대 외엔 답 없다"

그럼에도 20대 청년층이 자영업으로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88만원세대>의 공동저자 박권일 씨는 노동 시장의 불안정성이 청년들을 창업으로 이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20대는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에 노출된 세대다. 정규직 일자리에 대한 진입 장벽이 높다"며 "취업에 실패하거나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한 20대들이 진입 장벽이 낮은 업종에 몰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영업을 시작하는 20대의 대부분이 도·소매업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LG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 <저부가가치에 몰리는 창업 자영업 경기 더 악화시킨다>에 따르면, 올해 1~5월 도·소매업에서 늘어난 29세 이하 자영업자 수는 1만 9000명으로, 40대 이하 자영업자 증가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취업도 힘들고 고용여건도 열악한 20대들이 자영업으로 몰리고, 그 이후에도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기발한 해법은 없다고 말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해법이 가장 좋은 해법이라는 것. 바로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고가영 연구원은 "떠밀려 창업을 하는, 이른바 '비자발적 자영업자' 들은 사업에 성공하기가 힘들다. 또 성공하더라도 자영업의 경쟁을 심화시킨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비자발적 자영업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뻔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좋은 일자리를 통해 20대들이 임금 노동자로 흡수되는 것만큼 확실한 대안은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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