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한 세기 전부터 사회를 새롭게 구성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 마다 제기되었던 물음이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이번에 주어진 대답은 인민주의도 사회주의도 사빠띠스따도 아닌 프랙탈이라는 생소한 원리다. 심광현의 <프랙탈>은 당면한 현실 문제로부터 출발한 미래의 프로그램을 위해서 들뢰즈와 가따리의 탈근대철학,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 만델브로트의 프랙탈 기하학, 바트 코스코의 퍼지 논리, 복잡성의 과학, 동양사상 등 광범한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프랙탈>은 분명하게 느껴지는 두 가지 힘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이론적인 체계적 완결성을 지향하지 않는다. 이것은 절충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차이와 복수성 등을 강조하는 들뢰즈 철학의 전공자들이 내놓는 글들에는 엄격한 자기완결성의 흔적이 남겨진다. 자신이 주장하는 것과 다른 입장에 대한 선긋기를 통해서 자기동일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하지만 심광현의 논지에는 그런 것이 없다. 다루어지는 대상에 대해 그가 붙인 특징적 명칭인 "패치워크"(patchwork, 조각들 이어붙이기)는 그의 글쓰기 자체의 특징이기도 하다. 문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강령은 현실화가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손에 잡히는, 예측가능한, 지속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가 채택하는 이론과 사유, 개념들이 현실적으로 공명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가 칸트에 대한 들뢰즈의 해석을 칸트에 대한 나름의 재해석으로 제한하고, 탈근대적 사조의 난해한 개념을 복잡성의 과학을 통해서 구체화시키고, 넓게는 동양 좁게는 한국의 전통사상과 결부시키는 작업들은 자신의 박학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현실변혁의 상을 그려 볼 수 있고 구체적인 감을 잡을 수 있는 형태를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
둘째는 첫 번째 특징과 뗄 수 없는 것으로서, 일종의 시야의 확장이 가져오는 즐거움이다. 맑스가 말하는 인간의 보편적 본질실현일 수도 있고. <제국>의 저자들(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이 말하는 공통감각일 수도 있는 이 확장은, 21세기의 새로운 <무엇을 할 것인가?>의 목표이자 이론구축의 방식이다. 그래서 무겁고 진지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확장을 통해 저자는 독자들이 즐겁게 이 책을 읽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의문이 있다. 궁극적인 귀결점이 사회정책이라는 현실성으로 모아지는 경우 - 이는 책의 한 설명을 빌자면 일종의 평형상태에 도달하는 것일 텐데 - 탈맥락화되어 새롭게 절합되고 배치된 개념들이 이책에서도 다루어진 적이 있는 각각의 이력효과를 낳지는 않을까? 이미 작성 중에 있을 다음의 지도그리기를 기다려 본다.
프랙탈 이론을 바탕에 깔고 이번에는 한국문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자 재해석이 마련된다. <프랙탈>과 짝을 이루는 저서 <흥한민국>은 참신한 관점과 더불어 몰입시키는 힘도 강하다. <프랙탈>보다 훨씬 제한된 주제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전통문화와 예술이라는 우리들에게 익숙한 범위와 절차를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생뚱맞게" 개인사적 진술들이 간간이 섞이면서 글이 진행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운 해석이자 재해석이라고 했다.
그것은 이 책이 <프랙탈 미학>이라는 새로운 틀을 사용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국문화의 특성, 한국미, 한국예술에 관한 기존의 담론들을 메타적 시선으로 재배치한 것이기도 하기에 그렇다. 경관, 작품, 건축구조 등의 분석이 보여주는 세부적인 설득력은 확고하다.
이러한 확고함에 대비시켜 볼 때에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프랙탈 미학으로부터 문화정책에 관한 제안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연속성이 눈에 잘 띠지 않는다. 물론 갑자기 밀도가 높아지는 정책논의와의 연결은 이론이 아니라 정책의 실행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겠지만 아쉬운 면은 있다. 그가 전통적인 한국문화의 프랙탈 미학을 전개시키는 과정에서 현재의 정책적 목표로 설정한 문화 콘텐츠의 문제를 과제중심으로만 설명하지 말고, 그러한 콘텐츠를 가능하게 할 미학적 근거의 틀을 통해서 내용면과 표현면에 관한 성찰을 같이 제공했더라면 종결부분의 부분적 단절감을 적었을 것 같다.
어쨌든 제목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듯이 한국문화에 대한 프랙탈적 해석은 상당히 흥미로운 작업이다.
박성수(해양대학교 교수, 철학/영화이론)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