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전부터 재외 국민의 국정 선거권 회복을 위한 활동을 해왔지만 병역 문제가 나올 때는 말하기 어려운 고민에 직면하곤 한다. 병역은 국민의 당연한 의무인 동시에 국가의 안전을 담보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특히 일본의 침략으로 망국의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낀 우리 민족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 이전에 생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 지도층이나 부유층의 상습적인 병역 기피가 문제가 돼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불신이 깊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병역의무가 없는 재일동포로서 말문이 막히곤 한다. 자의였든, 아니든 재외 동포를 한묶음으로 판단하려는 국민적 분위기에 접하면, 나름대로 재일동포의 특수성을 들어 반박하려 해 보지만 국민의 불신 앞에서는 미안해서 말문이 막히고 만다.
재외 국민, 특히 재일동포는 그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해서라도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으로서 최소한 국정선거권은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리의 주장도 병역 문제에서 그만 막히고 마는 경우가 많다. 재일 동포가 아무리 3,4대에 걸쳐 대한민국의 국적을 유지해 왔다고 해도 지도층 인사들이나 부유층의 도피성 영주권 획득에 대한 국민적 불신 때문에 “우리는 아니”라고 주장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도피성 해외 이주 문제나 병역 기피 문제가 나올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국민적 불신이 없었다면 우리 재일동포의 처지에 대한 국민적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졌으리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런 불신만 없었던들 재일동포들이 일본에 의해 대량 납치되고, 징병, 징용, 위한부 등으로 노예처럼 당한 같은 국민인 만큼 국민의 인격 회복 차원에서라도 대통령 선거권이나 국민투표권 같은 국정 선거권은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에 우리 국민들이 보다 포용력 있게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곤 해도 우리 재일동포들 또한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러 이유로 외국에 상주하는 외국 영주권자의 처지와 편익을 고려해 병역을 면제해주고 있는 병역법을 못된 사람들이 악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진대제 장관 문제를 생각할 때 두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국가의 이민정책이나 재외동포정책과 국제화 이념간의 괴리이다. 국제화란 inter-nation이란 말 그대로 국가간을 뚫고 가는 교류로서 다양한 가치관의 공존을 전제로 한 개념이다. 따라서 외국인이든, 이중국적자든 이를 수용하는 ‘관용’이 그 이념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관용’이 ‘전면적인 문호 개방’을 뜻하는 것인지, 국민국가로서 어느 선에서 그런 ‘관용의 한계’를 그을 것인지는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62년 해외이주를 권장하고 해외이주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해외이주법’을 만들었다.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하고서도 이 법은 존속하고 있다. 1960년대 해외이주법을 제정한 배경에는 국가의 인구정책과 외화 획득 등의 목적이 있었다. 이는 한편으로 국가가 국가로서 제구실을 못한 비극적인 우리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국가가 모든 국민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보장하지 못하고, 해외 이주를 권한다는 것은 국가의 무책임을 드러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곧잘 6백만명의 해외동포가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6백만의 해외 동포가 세계 도처로 뻗어나가 나라의 기상을 살리고 있다는 식의 표현은 다분히 장식적인 표현일 뿐이다. 힘이 있는 국가가 국민들을 이민 보내도록 할까 생각해면 이 6백만이라는 해외동포의 존재는 힘없는 약소국가, 국민들을 국내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지 못한 과거 우리의 어려웠던 국가의 현실을 반영하는 ‘국가적 비극’의 소산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의 시점에서는 이 같은 국가적 비극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재외동포 정책이 절실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조국에는 재외동포 정책이란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기관이나 산하 조직에 해외 동포 문제 정책을 다루는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재외 국민이나 해외 동포를 중용해 그 지역에 알맞은 연구나 지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국제화, 세계화를 말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당장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격인 시급하면서도 절실한 해외 동포 문제부터 국제화의 시각과 인식이 결여돼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민을 장려하는 법은 결과적으로 해외로 빠져나가려는 도피적 이민을 양산하고 그것이 국내에서는 해외 이주자는 곧 해외 도피자라는 낙인을 찍게 하는 편견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부수적으로 병역 기피를 위한 이민을 제도적으로 허용함으로써 뿌리깊은 국민적 불신을 낳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이 법이 지금껏 존속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특권층에 이용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부가 이런 시대착오적인 이민법을 재검토하지 않으면서 이번 진 장관 문제로 볼거진 이중국적 등의 문제를 국제화, 혹은 세계화라는 시각에서 폭 넓게 용인해야 한다는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처사다.
특히 국가와 더불어 운명을 함께 해야 하는 장관직과 기술자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유능한 두뇌는 당연히 구분돼야 한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자명한 일이다.
과거 대만에서 장관급 인사에 외국 국적자가 많아 큰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지금도 대만의 고급 맨션 아파트의 값비싼 로열 층에는 외국 국적을 가진 대만 사람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이들은 외국 국적이나 영주권을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외국 체류 기간을 채우기 위해 국적지나 영주권을 획득한 외국에 나갔다고 돌아오곤 한다고 한다. 대만이라는 나라가 식민지배국이었던 일본을 선호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대만 지도층 인사들의 무국적 의식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의 우익들이 툭하면 식민지 공헌론을 주장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런 인식과 이어져 있다.
진 장관 문제에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갈 점은 ‘마음의 문제’이다. 이민 간 사람이 그 나라의 국민이 되든, 안되든 그것(국적 선택)은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인 만큼 국가가 관여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를 잘 모르고 장관이라는 공직을 수행하기는 곤란하다. 또 일단 국내에 정착한 이상 자녀들에게 모국의 실정을 이해시켜 모국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온당하다. 무질서한 한국의 실정은 솔직히 이야기해서 외국에서 생활한 사람들이 적응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해외의 시각’에서 보면 너무나 이기적이고, 사회 규범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조국에서 살겠다는 마음에 거리낌이 없다면 스스로 적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미안하지만 나는 1970년대에 조국에 유학을 와 누구보다도 한국인답게 행동하려 노력했다. 가장 고민했던 것은 당시 반독재 학생운동으로 학우들이 생명을 걸고 운동하는데 나에게는 항상 일본이라는 도피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에게 위기가 닥쳐오면 일본으로 도망갈 수 있고, 또 도망갈 수 있는 일본이 있다는 점을 학우들이 오해하는 것이 두려웠다. 반독재를 하는 데 나는 학우들과 평등한 입장에 서려고 애썼다.
진 장관은 나 같은 2세도 아니도, 해외 이주 1세다. 그런 만큼 장관직과 같은 공직을 맡을 뜻이 있었다고 한다면 평소에 국민들의 오해를 사지 않도록 최소한 ‘국민으로서의 노력’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 왜? 국민은 자신과 생사를 함께 하는 믿을 만한 지도자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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