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언유착과 언론사간의 카르텔을 이용해 총리 인준을 위한 언론의 검증과정을 은근슬쩍 넘어가려던 미디어정치도 파국을 맞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한국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사주간의 끈끈한 담합 등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조중동'간의 카르텔이 장 지명자에 대한 조선·중앙의 침묵과 동아의 '나홀로 검증'으로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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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수십년을 지탱해온 언론의 카르텔이 한 순간에 무너지지는 않을 게 분명하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장 지명자에 대해 장상 전 총리지명자에게 적용한 잣대와는 다른 검증도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나 매일경제의 경쟁지인 한국경제가 장 지명자와 관련된 의혹기사를 먼저 싣지 않는다는 내부방침을 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잔존한 구태-한경의 내부지침과 매경의 맹신적 사주 옹호**
특히 한국경제는 장대환 전 매일경제 사장이 총리서리로 지명되던 지난 9일 회사차원에서 '다른 언론사 등 외부의 취재에 응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리고 '다른 언론사에서 보도한 내용이나 국회의원들의 문제제기가 있을 때는 따라가지만 자체적으로 장 지명자에 대한 비리를 발굴 보도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한국경제의 장 지명자 관련보도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불문가지인 것이다. 언론의 '동종업계 봐주기'라는 관행이 여실히 드러난 사례다.
또 매일경제신문이 23일 3개면에 걸쳐 "장 총리서리 인사청문회 앞두고 '음해성 인신공격' 선 넘었다"며 장 지명자를 옹호하는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은 언론사주가 언론보도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한다.
한편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장 지명자 관련보도는 의례적인 검증수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장상 전 지명자에 대한 검증보도를 통해 7월 11일 지명 직후부터 장 지명자의 장남 국적문제, 학력 허위기재 논란, 이희호 여사와의 친분설,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등 갖가지 의혹을 홍수처럼 쏟아내던 태도와는 확연히 다르다.
조선과 중앙이 장대환 지명자 관련의혹을 제기한 시점은 8월 9일 지명 후 한참이 지난 16일자 '장대환 청문회’가 짚어봐야 할 것'(조선일보 사설)과 20일자 '장 서리 대출금 용처·자녀 위장전입 의혹'(중앙일보) 등의 기사를 통해서다. 집요했던 장상 전 지명자에 대한 검증보도와는 문제제기의 수준이 다르며 지면배치나 제목 등 편집에서도 장대환 지명자를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장 지명자, 방상훈 사장·홍석현 회장과 끈끈한 친분**
두 신문사가 이처럼 장대환 지명자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아무래도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그리고 장대환 지명자간의 끈끈한 인간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 사람은 모두 나이도 비슷한데다 미국 유학파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고 국제언론인협회(IPI)와 세계신문협회(WAN) 등 언론사주들의 친목단체 활동을 같이 하고 있다. 세 사람은 종종 함께 술자리를 갖거나 골프 등을 치며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장대환 지명자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검증보도를 하고 있는 동아일보는 8월 10일자 사설부터 '다시 총리서리, 철저히 검증하라'고 촉구하며 총리서리 제도의 문제점뿐 아니라 장 지명자의 전무한 국정경험과 행정조정 능력 등에 대해 회의를 표출했다.
***그러나, 돋보이는 동아일보의 장 지명자 검증보도**
동아일보는 또 지난 19일과 20일 특별취재팀을 동원한 '장대환 서리검증'이란 기획기사를 통해 장 지명자의 부동산 축소신고 의혹과 38억원의 우리은행 대출금 사용처 등을 집중적으로 검증하고 나섰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마지못해 형식적인 솜방망이 검증을 한 것과는 확연히 대조된다.
언론계에서는 동아일보의 장 지명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보도가 언론 본연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호평하면서도 동아일보 사주인 김병관 전 명예회장이나 김재호 전무가 장 지명자와 별다른 친분관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보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하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장대환 지명자 인선과정에서 조선과 중앙일보와는 달리 동아일보가 소외됐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보내고 있다. 즉 지난 번 장상 전 총리 지명자의 인준부결에 언론의 집중적인 문제제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장 지명자 인사에서는 무엇보다 언론 검증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으며 그 결과로 장대환 지명자가 낙점됐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언론인이 후보자로 지목됐는데 장 지명자 낙점 이전에 조선·중앙일보 사주와는 어느 정도 교감이 이뤄지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이 언론계에 나돌고 있다.
아무튼 '언론사 CEO 총리서리 지명이란 깜짝쇼'를 통해 총리 인준과 정국변화를 도모하려던 청와대의 시도는 언론사간 카르텔 붕괴라는 변화의 조짐을 통해 무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 사회의 여론 향배를 좌지우지하던 조중동과 매경 등 족벌언론들의 영향력이 크게 축소됐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장대환 지명자와 관련된 엇갈린 보도태도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인터넷매체의 역할 증대로 조중동의 여론장악력 무너져 **
이같은 배경에는 과거 언론에만 의존하던 사회감시와 고위 공직자에 대한 검증과정이 이제는 수많은 시민단체와 인터넷매체 등 대안매체의 독자적인 검증작업과 여론형성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참여연대가 지난 19일 27개 의혹에 대한 질의서를 제출하며 답변을 요구한 데 이어 21일 '장대환 총리지명자 인준을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국회 총리인사청문특위에 제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참여연대는 이 의견서에서 장 지명자에 대해 ▲국정수행 및 통합조정능력 ▲민주주의에 대한 소신과 개혁성 ▲도덕성과 신뢰성 부족을 이유로 그의 총리 인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앞서 전국언론노조와 민주언론시민운동연합 등이 장 지명자의 총리 인준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냈으며 언론전문지 미디어오늘은 언론사 CEO로서 장 지명자의 행적이 공익을 해칠 만큼 기업의 상업적 이익에만 집착했다는 부정적 평가의 보도를 한 바 있다.
다음 주로 예정된 장대환 지명자의 국회인준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현재로서는 속단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인준 과정에서 한가지 분명히 드러난 것은 족벌언론사간의 카르텔과 권언유착의 붕괴가 하나의 뚜렷한 대세가 됐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분명히 한걸음 한걸음씩 진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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