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면 나와 x발."
경찰은 6차선 도로를 버스 차벽으로 막고 좁은 통로마저 몸으로 막고 있었다. 트랙터를 지키기 위해 시민과 농민들은 차벽 너머로 지나가려 했고, 경찰은 폭력과 욕설을 하며 막아섰다.
남태령에서 하룻밤을 넘긴 지난달 26일 겨우 광화문에 트랙터 한 대가 진입했다. 그저 트럭 위에 실려 있을 뿐인데 경찰은 트랙터를 훔쳐 달아나려 했다. 트랙터를 지키기 위해 남태령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경복궁역으로 넘어갔다. 경찰은 길을 막았다. 길을 막는 법적 근거를 묻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불법으로 길을 막으면서 사람들을 방패로 찍고, 목을 조르고, 밟았다. 그날 경찰은 악의를 넘어 살의를 보였다.
"길 막지 마세요. 끼면 다쳐요", "끼면 나와 X발" 경찰은 항의에 욕설로 답했고, 항의하던 필자를 시민들을 향해 집어 던졌다. 경찰이 등을 눌러 숨이 안 쉬어지는 동안 시민들 사이에서 비명소리가 났고 뒤이어 사람이 깔렸다.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사람이 깔렸다고 항의하자 경찰은 "X발놈들"이라며 욕설을 또 한 번 내뱉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깔렸던 시민은 장기에 '교통사고'를 당한 수준의 부상을 입었다.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깔아뭉갠, 살인미수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의 공격이었다.

경찰의 공권력 남용
공권력은 법에 의해서만 집행할 수 있다. 경찰이 행사하는 공권력은 물리력이다. 남용하게 되면 시민의 생명과 안전,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 더구나 이러한 공권력(물리력)의 유지·강화를 위해 매년 정부에서 약 13조 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그래서 공권력의 최소한만 행사하도록 법이라는 테두리를 만든다.
하지만 권력 앞에서 이런 원칙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국무총리 한덕수가 직무에 복귀하자 '과격 시위와 불법행위에 엄정 대응'하라는 메시지를 냈다. 그러자 법을 지켜야 할 경찰이 오히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목을 조르고 깔아뭉개며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6차선 도로와 인도를 막으며 압수수색 영장 없이 트랙터 절도를 시도했다.
이런 일들이 노동자에게는 일상이다. 경찰관의 직권은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행사돼야 한다.경찰관 직무집행법 제1조에 명시된 '비례의 원칙'이다. 하지만 30미터(M) CCTV 관리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하고있는 거통고조선하청지회 김형수 지회장에게 이 원칙은 예외가 됐다. 김형수 지회장이 고공농성 발언을 시작하자 경찰은 위협적으로 CCTV를 조작하며 고공농성자의 머리를 가격하고 소지품을 확인했다. 논란이 되자 경찰은 언론을 통해 교통 소통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는 황당한 해명을 내놓았다. 반찬통과 비닐에 교통 소통이 어딨나? 사생활 감시와 고공농성자의 부상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도, 고공농성자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불필요한 괴롭힘일 뿐이다.
가능한 최대한도의 공권력 행사는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에서도 벌어졌다. 2월 28일 성폭력 공익제보자로 부당전보되고 이를 거부하자 해임된 지혜복 교사와 시민들이 항의 집회를 벌이고 있었다. 개방된 장소임에도 퇴거불응을 이유로 집회 참가자 전원을 폭력적으로 연행했다. 집회참가자는 골절 등 큰부상을 입고 여전히 회복 중이다. 전원 연행이 과연 '비례의 원칙'에 적합한 행위였는지 되묻게 된다.

경찰은 과연 누구를 지키나?
서울경찰청 기동본부의 집회 대응 훈련에서 시위대 역할을 맡은 경찰이 '민주노총', '단결투쟁'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논란이 되자 경찰청은 헌법재판소 선고에 대비한 훈련이 아닌 통상적인 시위 대응 훈련이라고 해명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헌법상의 권리인 노동조합을 일상적 훈련에서부터 범죄 집단으로 전제한 것은 헌법을 진압하려는 것과 다름없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할까? 경찰이 지키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은 사실 '권력자들의 안위'와 '자본의 막대한 이익'을 포장한 말이다. 그래서 자본과 권력에 저항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공권력의 적이 된다.
2009년 발생한 용산 참사는 용산4구역 재개발에 반대하는 철거민이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고 농성을 벌이다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발생한 화재 참사이다. 그때 당시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농성장에 불이 붙어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무리한 강경 진압의 배경에는 막대한 재개발 이익이 걸려있었고, 자신의 삶터를 지키려 저항한 철거민은 진압 대상이 됐다. 재개발이 하루 늦춰질 때마다 비용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철거민의 농성은 경찰이 '자본과 권력'을 지키지 못한다는 무능의 증거였고, 경찰이 시민의 안전보다 자본과 권력을 더 우선하자 참사가 발생했다.
경복궁역 앞 트랙터 고작 한 대를 절도해야 했던 경찰의 입장은 무엇일까? 반나절이면 끝날 트랙터 행진을 밤새 막아야 했던 경찰의 입장은 무엇일까? 권력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경찰의 고군분투가 정답이다.
반면, 경찰은 극우의 불법에는 관대하다. 이회여대에서 윤석열 즉각 파면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이 있을 때 극우 유튜버가 난입해 재학생을 폭행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 극우 유튜버는 아직도 현장을 누비며 폭력을 일삼는다. 심지어 그들은 국회의원에게 계란을 던져도 연행되지 않았다. 서부지법 폭동이 발생했을 때도 경찰이 길을 열었다. 경찰의 방관 속 탄핵 촉구 농성 중인 시민을 극우세력이 자동차로 들이받고 달아나는 등 크고 작은 테러도 급증하고 있다.
경찰과 극우는 이미 한편이다. 충북대에서 극우세력은 탄핵을 촉구하는 재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피켓을 불로 태웠다. 그때 맞장구를 치는 것이 극우 유튜버의 영상에 송출돼 논란이 됐다. 2차 남태령에서는 극우 유튜버와 경찰의 돈 거래 정황도 드러났다. 극우는 자본과 권력을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사옹위한다. 반면 권력자들은 민주노총, 전봉준 투쟁단, 민주시민을 적으로 상정했다. 기동대가 민주노총 조끼를 입고 훈련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권력자들의 폭력을 대행하는 경찰은 불법을 엄단하라는 주문을 받아도 그 화살은 사실상 ‘내란세력의 적’을 향한다.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하며 극우와 경찰에는 관대하게, 노동자, 농민에게는 엄격하게 법 테두리를 조절한다.

"빨갱이는 죽여도 돼" 경찰도 그렇게 생각할까?
박근혜 탄핵 국면에 극우 집회에서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문구가 태어났다. 윤석열 탄핵 국면도 마찬가지로 등장했다. 2차 남태령의 현장을 되돌아보면 경찰도 심정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1차 남태령 때 경찰의 입장은 농민과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한 것이 아니라, 경찰이 민주세력의 대중적인 연대 힘에 패배한 것에 가깝다. 권력의 안위를 지키지 못했고, 남태령을 기점으로 커진 연대는 자본의 위협이 됐다. 2차 남태령의 폭력은 때마침 명태균과의 커넥션이 드러난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렇게 합작해서 시민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그래서 경찰 민주화가 필요하다. 2차 남태령에서 변호사와 국회의원이 법으로 따져도 물리력 앞에 장사가 없었다. 재판은 시간이 걸리니 지금의 탄압을 우선하는 것이다. 재판의 승패도 명확치 않고, 설사 정의가 승리해도 그것은 지연된 정의일 뿐이다. 12월 3일 계엄령을 해제하려던 의원들 앞을 막은 것도 경찰이었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훼손한 불법 계엄에도 동조했다. 만약 내란세력이 다시 권력을 잡고 쿠데타를 시도하면 악의적인 물리력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파면 이후의 경찰의 징계와 개혁 필수적!
그런 점에서 윤석열 파면 이후에 내란의 뒷배 역할을 했던 경찰에 대한 개혁과 민주화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언제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극우세력을 옹호하는 물리력으로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경찰 수장만이 아니라 탄핵 반대 집회를 한 경찰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징계, 그리고 필요한 형사조치와 파면 등을 해야 한다. 그래야 권력의 종 역할을 하며 공권력 남용을 하는 경찰의 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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