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이여, 연꽃이 되라"

'지리산 천도재 2001' 참관기

지난 28일 경남 하동군 쌍계사 부근 왕성분교에서는 해방후 6.25에 이르기까지 좌·우익의 대립 속에 스러져간 넋들을 달래는 지리산 천도재 행사가 열렸다. 민족문화단체 중심으로 치러진 이번 행사에 참가했던 분의 참관기를 싣는다. 편집자

지난 일요일의 경남 하동군은 여느 때보다 분주해 보였다. 멀리서부터 볼 수 있도록 오색 애드벌룬을 띄우고 행사를 알리는 ‘대봉감 축제’와 쌍계사 입구의 번잡함을 빠져나와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서야 마주치는 화개면 범왕리 왕성분교 일원에서는 작고 소박하지만, 의미있는 행사가 있었다.

한국전쟁 전후 좌우익의 대립 송에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하고 저승으로 천도하기를 기원하는 지리산 천도재 2001 행사였다. 이번 행사는 종교인, 문화예술인, 학계인사, 산악인, 지역주민 등 전국의 뜻있는 이들과 단체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기에 더욱 뜻 깊었다. ‘칼날이여 연꽃이 되라’는 행사 이름은 김지하 시인의 싯귀에서 따온 것이다.

공동 대회장인 조성래 민족미학연구소 이사장과 김동곤 쌍계제다 대표를 비롯, 김지하 시인, 고산 스님, 김정기 서원대 총장, 그리고 부산 민예총,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지역문화연대, 화개면 청년회, 백산안희재선생독립정신계승사업회, 파르티잔 산악회 등 17개의 단체와 지인 등 약 5백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날 행사는 현지 주민과 서울, 부산, 광주 등의 도시에서 온 참가자들이 지리산 초입인 쌍계사에서 행사장까지 걸으며 천도를 위한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도보 순례로 시작됐다. 전날인 27일에는 산악인을 중심으로 지리산을 중산리, 거림, 피아골, 노고단, 백무동 등 5개 코스로 나누어 각기 산행을 했다. 이들은 지리산의 숭고한 기개와 사랑을 배우고 지리산 골짜기, 봉우리마다 뭇 생명들의 아픈 흔적을 흙과 물로 고이 거두어 모시는 합토합수 의례를 치르기도 했다.

2시간 가량 진행된 불교식 천도재의 제의식이 끝난 후 민족미학연구소 다도연구회의 생명살림을 기원하는 헌다(獻茶)의례가 김영동의 우리음악 연주에 맞추어 이루어졌다. 헌다의례의 끝자락과 맞물려 춤꾼 오영숙의 한풀이 춤 한 자락과 부산대 무용과 김미라 교수와 제자들에 의한 춤 공연으로 위무를 하는 순간에는 이 곳에 모인 5백여명의 참가자들은 사뭇 숙연해졌다.

이어 가수 은희씨의 빨치산 노래 ‘부용대’와 지리산 사람 ‘최상원 박순자'씨의 감회어린 연설은 우리를 감개무량하게 만들었다. 오후 5시경 배송 순서에는 공동대회장이 위패를 모시고, 참가자 전원이 합장을 하여 커다란 둥근 행렬을 지어 운동장을 돌며 원한과 불신을 극복하고 상생의 의미로서의 통일을 염원하며 행사를 마무리 하였다.

이번 행사는 해방공간에 지리산을 중심으로 일어난 좌·우익의 갈등과 그에 따른 민족의 상처와 원한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음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여 이 상처의 흔적을 치유하고 좌우익 편가르기와 편견, 그리고 모든 파당을 뛰어넘어 하나가 되는 대동단결을 이루고자 마련되었다.

그간 지리산에서는 토벌군경과 민간인에 대한 위령, 천도재는 자주 있었으나 이렇게 좌우익을 아우르는 천도제는 아직까지도 어려운 실정이다. 사실 지난 6월 좌·우익과 민·관·군을 망라하여 민족사 격동기 영혼을 함께 위로하는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 위령제”가 7개 종교단체와 많은 시민단체들이 참여한 가운데 이루어졌으나, 이 역시 명칭 문제와 천도재의 형식 문제 등의 이유로 위령제라는 약식의 틀로 이루어졌다.

이를 미루어 알 수 있듯이 아직도 미묘한 갈등의 씨앗이 남아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의 극복을 위해 비록 조촐하고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문화 예술인을 중심으로 정성을 모아 마련되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적지 않았다. 유족들과 당사자들의 참여가 너무도 미흡하여 진정한 의미의 화해를 이루기에는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주위의 눈치를 보며 참여하지 못하는 빨치산 가족과 군경토벌대, 그리고 민간인 희생자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이들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화해의 분위기를 마련했다면 더욱 좋지 않았나 한다.

물론, 이날 모임에는 빨치산으로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15년형을 받은 후 1965년 감형으로 풀려난 최상원, 박순자씨 부부가 나와 그간의 어려움과 소회를 밝혔다. 부부는 “최근까지도 암암리에 이뤄지는 감시와 따가운 눈초리에 마음 편히 지낼 수 없었는데, 오늘 이렇게 당당히 옛 동지들을 위한 천도재를 할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아직껏 통일을 못 이룬 지금의 상황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앞으로는 통일을 원하는 모든 분들을 동지라 생각하며 지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아마 이 분들처럼 모두가 당당히 나설 수 있고 화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이번 행사의 가장 큰 성과라 생각하며 전국에 산재한 많은 문화행사들이 좀 더 자기 정체성과 사회 정화적인 성격을 회복하여 우리 주위에 산재한 많은 문제점과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줄 수 있기를 바래본다.

행사장을 빠져 나오며, 마주친 축제 행사장 애드벌룬의 정처 없는 흔들림이 문득 그들의 모습인 양 마냥 씁쓸해 보였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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