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남갈등 ‘언론 활약’ 커
앞장선 진보는 앞으로만 나가고, 대열 뒤의 보수는 막무가내 그 진보를 끌어당기려고만 해서는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50여년간 가슴에 묻어둔 혈육의 정도 지그시 눌렀다고 한다. 그는 “통일은 우리 모두 일렬횡대가 됐을 때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지난 일요일(26일) 밤, MBC ‘시사매거진 2580’에 방영된 장승학씨의 사연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우선 ‘평양 광란극’으로까지 매도된 이번 파동의 빌미를 제공한 돌출행동의 당사자들은 장씨의 사려깊음을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노동당 창건 행사처럼 정치색 짙은 행사도 참관했는데 개막식쯤이야’라든가, ‘개막식 불참 약속을 몰랐다’는 식으로 돌출행동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본다. 경위야 어찌됐건 약속의 파기가 불러온 역작용이 어떠했는지는 이번에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실확인 원칙지켜야
하지만 방북단 일부의 돌출행동이 ‘남남 갈등’으로까지 ‘승화’된 데는 남측 신문의 ‘활약’이 컸다. 사실 개막식 참관은 방북단의 고의적인 약속 파기라기보다는 출발 하루 전에야 방북이 결정되면서 빚어진 행정상 착오의 성격이 짙다. 출발 전날 밤 정부와 맺은 ‘개막식 불참’ 약속이 311명이나 되는 방북단 전원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고, “2만명이나 되는 인민들이 6시간째 뙤약볕 아래 남측 대표단을 기다리고 있다”는 북측의 성화에 방북단 일부(약 100명)가 인정상 따라 나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남측 신문은 이같은 전후 사정은 거두절미한 채, ‘개막식 참관=정부와의 약속 파기’라는 점만 부각시켰다.
이보다 더 중대한 문제는 과연 우리 언론이 사실 확인을 제대로 했는가 하는 점이다. 한 신문에 “김일성 밀랍상 앞에서 수십명의 참가자들이 큰절을 올리고, 몇몇은 엎드려서 크게 울먹였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된 김숙희 YMCA연합회 회장은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몇사람이 절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고, 한사람이 울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한 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이 신문의 주장대로 김숙희씨측의 정정 요구나 항의가 없었다고 해서 그의 말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김씨가 전해 들은 사실(傳聞)의 진위를 가리는 것은 온전히 언론의 몫이다. 사실 확인의 절차 없이, 더욱이 이를 부풀려 보도했다면 특정 목적을 위한 선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번 파동은 “보수언론과 정부 세무조사 정국이 뒤얽히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한 방북 인사의 분석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남북문제 보도 신중히
남북관계에서는 행동은 물론 보도에서도 ‘사려깊음’이 요구된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사려는커녕 아예 보도의 ABC조차 지키지 않았다. 한국 언론이 불신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노선이나 입장 때문이 아니다. 바로 이 기본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몇몇 언론 사주의 구속으로 ‘언론개혁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언론개혁은 이제 시작이다. 정부가 아닌 언론의 자율적 노력으로 언론의 기본을 되찾는 것, 그것이 바로 언론개혁의 처음이자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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