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이 하면 '표현의 자유', 내가 하면 유죄?"

[표현의 자유 연속 기고 ③] "너는 공산주의자다"

지난해 '우리민족끼리' 트위터를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던 박정근 씨는 1심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을 받았고, 이후 검찰로부터 징역 2년을 구형받았지만 22일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박정근 씨가 구속된 사유는 검찰에 따르면 트위터가 "네 명만 팔로우해도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검찰 측은 법정에서도 "아니 그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트위터에 누가 이유 없이 그런 글을 쓸 수 있느냐"고 말하기도 했으며, 더불어 "깨진 유리창 이론"(가벼운 범죄를 방치하면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이론)을 소개하며 중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정근 씨 사건 이후 리트윗으로 국가보안법 혐의를 받고 압수수색과 경찰 조사를 받는 사례는 점점 늘고 있습니다. 심지어 피해자들에게 박정근 씨의 혐의에 대한 입장을 요구하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생각을 묻는 등,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단순한 행위마저 수사 범위에 넣고 있습니다. 심지어 피의자들에게 배우 김여진 씨의 글을 리트윗한 이유를 심문하거나 "간첩들이 당을 만들고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 "전교조는 빨갱이, 광우병 대책위는 체제 전복 단체"라는 등의 정치 편향적인 훈계를 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파악된 관련 피의자는 박정근 씨를 포함해 8명(1명은 정보통신법)이며, 박정근후원회는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관련 혐의로 조사를 받은 당사자들의 연속 기고를 <프레시안>에 게재해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알리고, 한국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치졸할 정도로 협소한가에 대해 고발하고자 합니다.


표현의 자유 연속 기고
① '김정일=암세포' 비유한 내가 종북이라고요?
②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 노래에 떠오른 이름은…

2012년 4월 26일 아침 7시 30분경,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시죠?"

"아파트 관리 사무소입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아파트 관리 사무소"라던 사람은 문이 열리자 태도가 돌변했다.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 제0부 000입니다. 권용석 씨 댁 맞습니까? 권용석 씨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금일 7시 35분부로 집행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어느 물건도 건드리지 마십시오."

건장한 형사 8명이 영장을 제시함과 동시에 디지털 캠코더를 들이대고는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아파트를 압수 수색하기 시작했다. 혐의는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 위반. 친구인 박정근과 같은 혐의였다.

▲ 권용석 씨. ⓒ박정근후원회
가족들은 놀라서 여기저기 친척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하였으나 작은아버지 정도만이 바로 와서 입회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트위터에 무엇을 쓰는지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충격은 대단했으리라. 나중에는 오히려 수사관들이 "그냥 조사받는 것이니 안심하시라, 그러길래 평소에 아드님이랑 대화 좀 하고 지내시지 그랬느냐" 할 정도였다.

수사관들은 내가 단독으로 영장을 열람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고, 무조건 수사관이 영장을 들고 있는 상태에서, 그들이 원하는 속도로 넘기면서 읽게 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피의자가 왜 영장을 제대로 열람할 수 없는지 이해가 안 된다. 당시에는 내가 너무나 놀라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지경이었기는 했지만.

군데군데 내가 트위터에 올렸던 북한 노래 가사나 유튜브 링크, '우리민족끼리' 리트윗들이 보였다.

'이적 표현물 게재…. 이적 표현물 배포…. 이적 단체에 대한 찬양 및 고무의 혐의….'

서울중앙지검 모 검사와 지법 모 판사의 서명이 그 문서가 대한민국의 형사소송법에 의거하여 검사의 요구와 판사의 허락을 받은 적법한 문서이고, 피의자 권용석은 지난 몇 년간 조사해 본 결과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협을 끼치는' 위험한 범죄자임을 당당히 증명해 주는 듯이 보였다.

수사관들은 컴퓨터를 뒤지고, 서재에서 온갖 사회과학, 인문학, 개인 소유 문서 등을 압수했다. 대부분이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등 서점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단행본들이다. 그들은 지난 수년간 작성해온 일기장이나 다이어리, 사진첩까지 모두 압수해갔다. 당시 압수당한 물건들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그들은 서재를 뒤지면서 긴장을 풀자는 의도에서였는지 몇 가지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하기도 했다.

"클래식 LP 전집, 클래식 기타, 권용석 학생 정말 교양인이네."

"게임 공략이랑 아이템, 지도 이런 거 잔뜩 가지고 있네. 게임도 열심히 했구나. 옛날 생각 나지?"

아무도 웃지 않았지만 그는 혼자 웃었다. 잠옷 갈아입는 것도 쫓아가서 캠코더로 촬영하라고 한 주제에 교양은 무슨.

바로 그 다음 날부터 나는 서울시 모처에 있는 문패도 간판도 없는 건물에 가서 하루 12시간씩 조사를 받았다. 다른 국가보안법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230여 개에 이르는 트윗들에 대해 하나하나 '어떤 의도로 이 글을 썼거나 리트윗하였나' 하는 해명을 해야 했다. 그들은 트위터가 사실상 '실시간 채팅' 또는 '의식의 흐름'을 적는 도구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이것을 무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모르는 것인지 각각 트윗들의 맥락을 떼어놓고 제시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트윗에서 "장군님 만세"라 적고 그다음 트윗에서 "조광 사진관의 세습자 청년 대장 박정근 장군 말입니다"라 적었을 경우, 그들은 앞의 트윗만 증거로 제시했다.

트윗 글들 말고도 경찰은 최근 5년간 내가 인터넷에 게재한 글, 주고받은 메일 모두를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높이의 인쇄물로 모두 가지고 있었고 나는 마치 '자서전을 쓰듯이' 진술해야 했다.

"용석이 학생은 공산주의자죠?"

"남북통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죠?"

"2008년 모 월 모 시 시청광장 집회에 참여한 전력이 있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청소년 인권단체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는데 이 단체의 돈은 어디서 나오나요?"

그들은 북에 관련된 혐의들 이외에는 주로 이런 질문들을 했다. 나는 그야말로 최근 5년간 내 사상의 궤적, 행적 대부분에 대해 자서전을 써야만 했다. 조사가 끝나갈 무렵에는 이걸로 자서전을 해도 되겠으니 복사본을 달라는 농담을 할 정도였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중 김근태 씨에게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자행된 고문을 다룬 <남영동 1985> 라는 영화가 있었다. 나는 그 영화를 볼 수가 없었다. 예고편에 나온 취조실의 질문공세, 특히 "너는 공산주의자다!" 라고 반복해 세뇌시키는 장면에서 조사받을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21세기 대공분실에는 고문은 없지만, 특정 질문에서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다른 질문들을 한 뒤에 패턴을 바꿔 같은 질문을 하고, 쉬는 시간에는 "아들 같다"며 자신의 가족 이야기, 음식 이야기 등을 하는 것은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85년도와 별 차이는 없는 듯했다.

조사를 받던 중에 가끔 후원회에서 선임한 변호사와 통화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수사관들은 "네가 무죄라면 당연히 무죄 판결을 받을 것인데,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은 뭔가 찔리는 곳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냐", "변호사 수임료는 정말 비싸니까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거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 피의자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권리는 '민주적인' 국가라면 당연히 보장하는 권리가 아니었나.

▲ 국정원 '댓글 직원'이 지난 19일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준비한 자료를 보며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정원은 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직원을 동원해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에 대해 '국민의 기본권(표현의 자유)'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연합뉴스
경찰 조사는 8월 중순쯤에 끝났다. 조사 과정에서 거주하는 아파트의 경비원이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이후에도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고, 원래 앓고 있던 우울증과 트라우마는 더욱 심해져서 한때는 환각 비슷한 것을 보기도 했다. 자살 시도를 했다가 폐쇄 병동 신세를 지기도 했다. 1년이 흐른 지금도 가끔 수사관들이 꿈에 등장해서 나를 괴롭힌다.

새로운 사람들이 심심찮게 같은 혐의로 조사받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악몽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소스라치게 느낀다.

언제인가부터 내 가슴 속에는 어떤 큰 덩어리 같은 것이 생겼다. 그 덩어리는 날이 갈수록 커지는데, 국정원이 올해의 가장 큰 이슈였던 조직적 "댓글"과 트위터 여론 조작 추문에 대해 '표현의 자유'라고 자신을 스스로 변호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게 한 평소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이 되었다.

그 덩어리를 이해하게 되었던 때는 광주에 가서였다. 한 시민이 나를 붙잡고 길에서 당시 계엄군이 얼마나 잔혹했는지를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며 몇 번이고 이야기했다. 그렇다. 그런 거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아무리 그래도 국군이….", "아무리 그래도 지금이 독재도 아니고…." "에이, 조사할 만하니까 했겠지" 하는 대답만 듣는. 그럴 때마다 더욱 커져만 가는 그런 것. 나는 스물한 살의 나이에 한이 많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것이 정말 꿈이었더라면. 소설 <광장>에는 "모르는 나라에서는 성격마저도 골라잡을 수 있다고 한다!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최근 호주 정부가 남한 출신 난민 신청자에 대하여 박정근 사건을 비롯한 표현의 자유 위축 등을 사유로 들어 난민 신청을 허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진짜 모르는 나라에서는 성격마저도 골라잡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럼 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 필자 권용석 씨는 박정근 구속에 대한 항의 퍼포먼스로 '우리민족끼리' 트위터를 리트윗했고, 2012년 4월 26일 압수수색을 당했으며 같은 해 12월 자해 시도 후 정신 병동에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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