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코레일은 민간투자사, 서부이촌동 주민과 법정 공방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더 큰 숙제도 남아 있다. 이미 예견된 구조조정의 규모가 더 커지거나,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 경쟁 체제 도입 논리를 강화하는 지렛대로 용산 사태가 이용될 공산도 커 보인다.
단군 이래 최대 소송전?
용산 개발 실패로 인해 코레일이 겪을 피해는 막심하다. 2011년말 현재 코레일의 자본은 8조7230억 원, 자산은 22조1792억 원이다. 그러나 이 자본금에는 철도정비창 부지를 판 것으로 계산하고 미리 받은 땅값 2조6000억 원 등 사업부지 매각 처분 이익 7조2000억 원이 미리 반영돼 있다.
사업 실패로 이 자금은 고스란히 코레일 자기자본에서 제외된다. 이에 더해 랜드마크빌딩 계약금 4161억 원의 회수가 어려워졌고, 역시 드림허브PFV에 투자한 출자금 2500억 원도 잃게 됐다.
이 경우 코레일의 자기자본은 1조 원대로 주저앉게 된다. 사업이 정상화되지 않는 한, 대규모 자본 잠식은 피하기 어렵다. 더구나 코레일은 올해 안에 2조6000억 원의 유동부채를 갚아야 한다. 정부 지원이 없다면 부도 위기에까지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드림허브PFV 30개 출자사의 줄소송도 예정돼 있다. 당장 30개 출자사는 드림허브PFV에 투자한 자본금 7500억 원을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이에 더해 사업 취소에 따라 기대 소득을 잃게 된 것도 손실로 잡을 수 있다.
특히 드림허브PFV의 2대 주주로, 1770억 원을 투자한 롯데관광개발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 투자금은 손실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롯데관광개발은 기반부터 흔들릴 수 있다. 지난해 말 현재 롯데관광개발의 자본금은 55억 원이며, 지난 한 해 영업 이익은 12억 원에 불과하다. 회사가 감당하기 힘든 손실을 이번 사업 실패로 인해 입게 됐다. 8일 롯데관광개발은 법원으로부터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인가를 받았으나, 이번 사업 실패를 넘어서지 못할 경우 상장 폐지를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이들 기업이 이 책임을 모두 코레일에 물을 경우, 최대 소송 규모는 3조 원대에 달하리라는 전망이 이미 제기됐다. 손실 자본금에 대한 청구액이 1조 원대, 향후 개발 이익금에 대한 민간 기대 이익이 2조 원대라는 계산이다.
더구나 서부이촌동 주민 중 조속한 개발을 요구한 주민 단체 11개 역시 코레일과 서울시를 상대로 2000억 원대의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 경우 코레일은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소송'을 치를 수도 있다.
▲코레일은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 실패로 인한 거센 후폭풍에 시달리게 됐다. 이는 코레일 구조조정 요구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개발 사업의 주요 대상지였던 철도정비창 부지의 모습. ⓒ뉴시스 |
구조조정 앞당기나
이와 같은 코레일의 불투명한 미래가 코레일 구조조정 가속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4일 청와대 업무 보고에 포함한 핵심 내용은 제2공사 설립이다. 2015년 개통 예정인 수서발 KTX 노선 운영을 제2철도공사에 맡기거나 일부 민영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논리의 핵심 기저에 코레일 구조조정이 자리 잡고 있다. 코레일이 운영 중인 KTX 경부, 호남선과 중복 노선인 수서발 노선을 경쟁 체제로 이끌어 자연스럽게 코레일 구조조정을 유도하겠다는 게 주요 목적이다.
전 정권 때부터 정부는 코레일 구조조정과 철도 민영화에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용산 개발 사업 좌초는 이런 의지를 자극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재무구조가 더 악화될 게 뻔한 상황에서, 코레일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 중 구조조정을 꼽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 일각에서는 코레일이 갚아야 할 돈이 크게 늘어나자, 코레일의 사채 발행 한도를 종전 자기자본의 2배에서 4배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그 전제조건은 강도 높은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건비 비중을 크게 줄여야만 회사의 회생을 보장할 수 있다는 요구다.
코레일이 이를 피할 방법도 현재로서는 마땅치 않다. 당장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은 당초 원안대로 철도정비창 지부만 다시 개발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정부는 코레일이 직접 개발 주체로 나서는 공영 개발은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분명히 밝혔다. 따라서 코레일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다시 민간개발사를 찾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굵직한 민간개발사가 이미 실패를 다 맛본 후인데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부지 매각 대금을 종전만큼 받기도 불가능하다.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다.
결국 용산 개발 사업의 좌초는 코레일의 구조조정을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실제 일각에서는 올해 상반기 안에 코레일이 구조조정 계획을 정부에 보고하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코레일은 지난달 14일부터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예산 긴축과 사업 재평가, 신규 사업 추진 억제 등이 비상 체제에서 주로 거론된 내용이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 객원연구위원은 "용산 개발 사업의 실패로 인해 코레일의 재정적 피해가 클 것은 분명하고, 이로 인해 국토부의 코레일 구조조정 압박도 더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며 "설사 제2공사 출범이 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이번 사태로 인해 코레일 구조조정에 대한 요구는 더 구체적으로 제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성곤 코레일노조 홍보팀장은 "당장 국토부가 대통령에게 코레일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 '경영 합리화'를 업무 보고한 상황"이라며 "정부 책임 하에 용산 개발 사업을 추진하다 실패한 후, 그 책임을 현장 노동자에게 전가하려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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