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김현희 대담 긴급 편성…뉴라이트 압박 때문?

<100분 토론> 취소하고 15일 오후 긴급 녹화…25년 전 일을 왜?

MBC가 15일 밤 예정된 정규 프로그램 <100분 토론>을 갑작스레 취소하고, 대신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 범인인 김현희 씨 대담을 방송하기로 했다. 편성표에도 없는, 이해하기 힘든 긴급 결정이다.

이번 방송은 김 씨가 신동호 아나운서와 대담하는 인터뷰 형식으로 이뤄지며, <100분 토론> 제작진이 방송 제작을 맡는다. 갑작스레 일정이 추진된 탓에 방송 하루 전인 전날 오후에야 편성실무진에 통보됐다. 녹화 역시 이날 오후 3시 리허설이 이뤄지고, 4시에 시작된다. 대담 주제는 알려진 바 없다.

25년 전에 일어난 일을 두고 이처럼 화급하게 방송하는 건 극히 예외적이다.

이와 관련해 MBC 측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정영하)에 이번 방송 결정이 "방송문화진흥회 결의에 따른 후속 조치"라고 밝혔다. 즉, 방문진이 관련 방송을 내보낼 것을 주문했고, 그에 따라 갑자기 방송 제작이 결정됐다는 얘기다. 이 주장이 사실일 경우, 대주주가 MBC 편성권을 침해한 꼴이 돼 심각한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 ⓒ연합뉴스
이번 방송 제작이 결정된 원인은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찾을 수 있다. 지난 2003년 KAL 사건 유족과 천주교 사제단을 중심으로 이 사건의 진상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이에 따라 MBC는 같은 해 11월 18일 <PD수첩>의 '16년간의 의혹, KAL 폭파범 김현희의 진실' 편에서 관련 사건을 다뤘다.

그런데 최근 들어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을 중심으로 당시 방송이 조작이었다는 논란이 일어났고, 급기야 <TV조선>은 작년 6월 김현희 씨와 인터뷰한 내용을 내보내 이 논란을 키웠다. 해당 방송에서 김 씨는 노무현 정부가 자신을 가짜로 몰아갔고, 방송 3사가 집중적으로 자신을 습격해 이 논란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이후 작년 9월부터 방문진 이사진 중 여권 추천 이사들의 주도로 방문진은 MBC에 해당 방송이 나간 지 10년여가 지나 진상조사를 요구하게 됐다.

MBC "방문진 결의에 따른 조치"…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주도한 듯

이와 관련, 방문진 이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 방문진 이사 중 여권 추천 이사와 고영주 감사는 지난해 8월 취임과 동시에 이 문제를 가장 먼저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야권에서 추천한 최강욱 이사는 "새 방문진 이사진의 임기가 시작한 작년 8월말부터 일부 이사들이 MBC의 KAL 의혹 제기와 송두율 교수 보도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며 "한동안 김재철 사장 문제로 이 논의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일부 이사들은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공론화하려 했다"고 말했다.

결국 방문진 이사회는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을 이사회로 불러 과거 <PD수첩>의 KAL 보도에 대한 사과방송을 두 차례에 걸쳐 요구했다. 가장 최근에 이뤄진 소환은 대선 직후인 작년 12월 20일의 소환이다.

이사들에 따르면 이날 방문진은 백 본부장을 호출해 사과방송을 다시금 강하게 요구했고, 백 본부장은 "<PD수첩> 방송에서 팩트는 틀린 게 없지만 한쪽 주장을 일방적으로 내보냈으니, 대담 프로그램을 편성해 김현희 측의 주장을 내보내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이 타협안이 결국 받아들여진 셈이다.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제기한 인물은 고영주 감사와 김광동·차기환 이사 등 여권 추천 인물로 알려졌다. 고 감사는 대검 감찰부장을 지냈으며, '일전불사 종북박살' 기치를 내걸고 지난 2011년 출범한 국민행동본부와도 강한 연대를 맺고 있는 인물이다.

김광동 이사는 나라정책연구원 원장을 지냈으며 교과서포럼 운영위원을 맡았다. 차기환 이사는 수원지법 판사 출신이며 자유주의연대 출신이다. 교과서포럼과 자유주의연대 모두 뉴라이트 계열이다.

결국, 방문진이 과거 프로그램에 대한 진상조사를 갑작스레 요구하고, 그에 따라 이번 방송 제작이 갑자기 결정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김광동 이사는 "김현희 문제와 관련해 과거 <PD수첩>이 지나치게 편향됐다는 취지의 의견을 방문진에서 제기한 건 맞다"면서도 "방문진이 MBC에 프로그램 편성을 요구하진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MBC 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 "방송 7시간 전에야 녹화를 하고, 부랴부랴 편집해서 방송을 내보내겠다는 것"이라며 "모든 것이 통상적인 절차를 벗어난다"고 비판했다.

특히 노조는 해당 방송 제작 결정에 MBC 경영에 대한 감독권밖에 없는 방문진이 개입한 사태를 심각한 제작 자율성 침해로 보고, 이와 같은 요구를 받아들인 MBC 경영진을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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