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할인 가격', 정말 싸진 걸까

[늪에 빠진 중소상인·<5>] 제조업체 피해 안 보는 게임… 유통업자·소매점만 '경쟁'

아이스크림의 '진짜 가격'은 얼마일까. 슈퍼마켓에선 반값 할인이 보통이다. 70% 할인하는 곳도 적지 않다. 대형마트에서 여러 개를 사면 큰 폭의 할인을 받는다. 편의점은 대부분 권장소비자가격을 받지만, 최대 성수기인 여름을 맞아 최근엔 일부 편의점마저 할인 대열에 동참했다. 보통 한 해 아이스크림 판매량의 60% 이상이 5월에서 9월 사이 발생한다.

왜 유독 아이스크림은 이토록 할인 폭이 클까. 그리고 왜 이렇게 가격이 제각기일까. 이런 가격 구조가 어떻게 자리 잡은 걸까.

- 늪에 빠진 중소상인
공덕시장·망원시장에 나타난 '괴물', 상인들은…
뚱이할매네 생선 가게엔 대체 뭐가 있길래…
"재벌이 '경제 아우슈비츠' 만들었다"
떠밀려 창업하는 20대…비정규직이냐, 빚 장사냐
"슈퍼마켓 출혈 경쟁 때문"

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슈퍼마켓. "50% 세일한다"는 죠스바의 가격은 500원이었다. 정상 판매가가 1000원인 셈이다. 바로 인근에 위치한 편의점으로 향했다. 정상 판매가는 900원이었으나, 특별 할인 행사를 통해 6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할인 폭은 30%였다. 같은 제품인데도 슈퍼마켓과 편의점의 소비자 가격이 달랐다.

아이스크림은 보통 '제조업체→대리점→소매점'을 거쳐 소비자에게로 연결된다. 편의점의 경우 제조업체와 편의점 가맹사업자 간 계약을 통해 상품이 점포에 도달한다. 제조업체에서 곧바로 직영 영업점이나 소매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1차 유통 과정에만 관여하는 제조업체는 최종 소비자가격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

제조업체가 "소비자 권장 가격이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 이유"라고 강조하는 배경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제각기인 아이스크림 가격을 현실화하기 위해 유통업자가 가격을 정하는 오픈 프라이스 품목에서 아이스크림을 제외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제도는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체는 아이스크림 가격이 천차만별인 근본 원인이 소매점의 가격 경쟁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아이스크림 값을 과도하게 깎아, 소비자들이 매장을 찾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미끼상품으로 활용한다는 지적이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슈퍼마켓이 미끼상품으로 아이스크림을 이용해 왔다"며 "이 때문에 지금도 소비자가격 1000원인 바 형태 아이스크림이 10년 전 가격으로 팔린다"고 말했다.

제조업체가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시장을 개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주장이다. 관계자는 "(저가형) 아이스크림 가격이 워낙 천차만별인데다, 납품가를 올리기도 어려운 상태"라며 "(마진율을 높이기 위해)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시장을 개척 중"이라고 말했다.

▲아이스크림은 여름 필수 제과다. 찾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가격경쟁도 치열해진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제조업체 권한 없다" 사실일까?

슈퍼마켓 업자들의 말은 다르다. 원래 아이스크림 생산단가가 싼데, 제조업체가 할인경쟁을 빌미로 오히려 소비자가격을 과도하게 올렸다고 반발한다. 실제 아이스크림은 제조일자만 표시되고 유통기한이 없는 상품이다. 냉동 유통하기 때문이다. 제고비용이 그만큼 소요되지만 유통기한이 정해진 제품에 비해서는 단위당 생산단가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마포구에서 3년째 가게 영업을 해 왔다는 A씨는 "정상판매가를 고집하다 50% 할인을 하기로 하니, 곧바로 그 가격에 맞춰서 (이익이 남을 수 있게) 납품가가 떨어졌다"며 "납품가가 이처럼 하루 아침에 달라지는 게 말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즉, 슈퍼마켓 업자가 10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제 값을 받고 판매할 경우 그에 맞춰 납품가가 비싸게 적용되고, 50% 할인할 경우에는 역시 그에 맞게 납품이 된다는 뜻이다. A씨는 "슈퍼마켓이 50%를 할인해도 손해 볼 정도로 대기업이 아이스크림 공급가를 결정할 리가 없잖느냐"며 "애초에 50% 할인 가격이 정상 가격인데, 대기업이 '할인이 지나치다'는 핑계로 판매가만 더 뻥튀기한다"고 지적했다.

유통업체 관계자 B씨는 "아이스크림 가격 할인이 관례화됨에 따라, 제조업체가 적정 소비자 가격을 물가인상률 이상으로 올리는 경향이 있다"며 "5년 전만 해도 500원이던 바 아이스크림이 지금은 1000원인 이유"라고 지적했다. B씨는 "소비자 가격 대로면 콘 아이스크림은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가격과 바슷한데, 누가 이걸 제 값 주고 사먹겠느냐"며 "할인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소 슈퍼마켓 상인들이 권장가격제 도입에 반발하는 이유다. 오픈 프라이스 품목에서 아이스크림이 제외된 이후, 제조업계는 적정 소비자 가격 표시를 현실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업계 점유율 1위인 롯데제과는 앞서 '설레임' 등 10개 품목에 적정 소비자 가격을 표시하기로 했다. 슈퍼마켓 상인들은 "권장가격제를 도입하면 그만큼 공급가만 높아지고 소매점 마진은 줄어들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상 제조업체가 아이스크림 가격을 흔들고 있다는 주장으로, 제조업체의 입장과 완전히 반대된다.

이에 대해 롯데제과 관계자는 "아직 소매점의 반발이 커, 제도 도입 대상을 확대할지 여부는 고민 중"이라면서도 "소비자 혼란을 줄이기 위해 선도적으로 실시한 것이다. 도입 취지에 공감하는 소매점도 많다"고 밝혔다. 또 "권장가격제는 아이스크림 공급가를 높이겠다는 취지가 아니라 현실화한다는 것"이라며 "제조업체가 아이스크림 판매 가격을 결정할 권한은 없다"고 반박했다.

결국 슈퍼마켓 가격 경쟁이 아이스크림 가격 할인 경쟁의 주요 원인인 건 맞지만, 이 때문에 제조업체가 손해를 보진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가격 경쟁이 슈퍼마켓, 유통업자 등의 출혈경쟁으로만 나타난다는 얘기다.

소비자가격만 올라가

슈퍼마켓 경쟁 외에도 아이스크림 가격이 제각각인 다른 이유가 있다. 납품단가 책정 과정에서 발생한다.

업체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아이스크림 납품단가는 대체로 편의점의 경우 판매가의 50% 수준이며 슈퍼마켓은 25~30%대다. 1000원짜리 아이스크림이 300원 미만에 슈퍼에 들어가고, 슈퍼는 500원에 이를 판매해 최소한의 마진을 올린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납품단가도 모두 같은 게 아니다. 소매점의 매출 규모, 영업기간 등 여러 변수에 따라 제각각이다. 대체로 판매량이 많은 소매점은 그만큼 더 싼 가격에 아이스크림을 공급받을 수 있다. 대형 할인마트가 할인경쟁을 주도할 수 있는 이유다.

이 납품단가는 대리점마다도 다르다. 매출액이 높은 대리점은 싼 가격에 제조사로부터 아이스크림을 공급받을 수 있고, 이를 통해 거래처를 늘릴 수 있다.

대개의 경우 권장 소비자 가격이 2000원으로 알려진 콘 아이스크림, 즉 50% 할인할 경우 판매가격이 1000원인 아이스크림의 대리점 납품가는 500~600원 사이다. 대리점의 대략적인 슈퍼마켓 공급가액(판매가의 25~30%)을 감안하면 대리점의 마진율은 극히 적다. 슈퍼마켓도, 대리점도 아이스크림을 팔아봤자 남는 게 적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각 유통 과정에서 판매지원금이 붙게 된다. 대리점은 제조업체로부터, 슈퍼마켓은 대리점으로부터 미리 대규모 물품을 구입하고, 그에 따라 판매장려금을 현금으로 받는 형식이다.

예를 들어 권장 소비자 가격 1000원 짜리 아이스크림 5000만 원 어치를 미리 슈퍼마켓에 납품하기로 협상한 대리점은 그 대신 납품단가를 평소보다 더 올려 받는다. 유통업자는 일종의 판매장려금을 제공하면서 안정적 판매처를 확보하고, 슈퍼마켓은 미리 현금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대리점 역시 제조업체와 이 같은 관계를 맺는다.

유통업자들의 이와 같은 물량 확보 경쟁은 성수기가 끝날 무렵 다시금 아이스크림 가격을 왜곡하게 된다. 물량을 다 처분하지 못한 유통업자는 이를 평소보다 더욱 싼 공급가에 슈퍼마켓에 처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A씨는 "작년 여름이 다 지나갈 때, 처음 보는 대리점 업자가 와서 파격적인 가격에 아이스크림을 납품해주겠다고 했다"며 "물어보니 제고 예측을 잘못해 헐값에 처분하려 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변수들이 모두 아이스크림 가격을 왜곡하게 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제조업체에는 유리하고 유통 대리점과 슈퍼마켓에는 그다지 유리하지 않은 게임이다. 제조업체는 우선 생산단가가 극히 낮은 아이스크림을 현 체제 하에서도, 정상 소비자 가격이 자리 잡은 상황에서도 제 마진을 남기고 팔 수 있다. 반면 유통업자는 제조업자로부터는 단위당 싼 가격에 아이스크림을 공급받고 더 많은 장려금을 받기 위해 구매경쟁을 하고, 슈퍼마켓에도 더 많이 팔기 위해 가격할인 경쟁에 치인다. 슈퍼마켓은 애초에 대형 할인점과의 경쟁, 시장진입자들과의 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소비자 역시 왜곡된 아이스크림 가격 구조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 이들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원금은, 결국 아이스크림 유통단가를 높이고 이 지원금만큼 권장 소비자 가격도 더 오르게 되기 때문이다.

- 관련 주요 기사 모음

'레드오션' 자영업 "물러서면 벼랑 끝, 눈 앞엔 핏빛 경쟁"
"자영업 강제 구조조정 온다"
IMF로 시작된 자영업 위기, 해법은?
커피 프렌차이즈, 달콤쌉싸름한 유혹 뒤엔…
막창집 주인 이씨는 '그곳'에서 버틸 수 있을까?
"홍대 앞에는 왜 '부비부비' 클럽만 남게 됐나"
"돈 냄새와 정욕에 질식한 예술의 거리"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