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하겠다"는 판사에 대한 답답함

[기고] 왜 <부러진 화살>에 사람들은 지지를 보내나

<부러진 화살>을 본 사람들이 판사들에 대해 분노하며 '그래, 다음 선거에서 대통령을 잘 뽑아서 좋은 판사들이 임명되도록 하자'고 결의하는 것만큼 이 영화의 보석처럼 빛나는 가치를 던져버리는 바보짓도 없을 것이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진실이 김명호의 주장대로라고 하더라도 김명호의 행동은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며 처벌받아야 마땅하며 영웅시되어서는 아니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판사들도 재판관행을 겨누고 있는 이 영화의 비판의 화살촉을 회피해서는 아니된다.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입증이란 무엇인가?

김명호 개인에 대한 평가도 석궁사건의 진실도 판사들의 양심도 이 영화의 진짜 주제가 아니다. <부러진 화살>은 그런 것들에 대한 진실을 잘 드러내지 못했는지는 몰라도 현재 재판관행의 심각한 문제점을 잘 드러낸 영화이다.

영화에서 두 번째 항소심 판사가 되뇌어서 자신의 권한이라고 주장하는 '실체적인 판단'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판사의 '부러진 화살은 어디로 갔는지', '와이셔츠에는 화살 적중 부위에 혈흔이 없는지'에 대한 석명요청에 검찰은 각각 '모른다'고 답한다. 여기서 검찰은 유죄판결의 요건인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입증'을 포기한 것이다.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입증'이란 범행현장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시나리오 100개가 있다면 검찰이 주장하는 시나리오 외에 나머지 99개의 시나리오가 진실일 합리적인 가능성이 모두 배제되어야 성립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화살이 부러졌거나 와이셔츠에만 혈흔이 없는 것은 제2의 시나리오 즉 조작의 시나리오가 진실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갖도록 만든다. 부러진 화살을 찾아왔어야 한다거나 혈흔의 부재를 100% 설명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어떤 대안의 가설(예를 들어, 와이셔츠가 가슴부위로 올라간 상태였다거나)이라도 제시하고 그 가설이 진실임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을 했어야 했다. 검찰은 '모른다'고 답하면서 이를 모두 포기한 것이었고 그렇다면 무죄판결이 나왔어야 한다. 현재 법원의 해명도 이 합리적인 의심을 어떻게 배제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김 교수의 계획성과 의도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증거조작이 있었다면 김교수의 의도성이나 계획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법원은 그외에도 '노모가 피묻은 옷을 모두 빨려다가 박 판사의 제지를 받고 와이셔츠의 화살맞은 부위만 빨고 멈추었고 그래서 와이셔츠의 어깨부위에만 혈흔이 남아 있게 된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가설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래도 와이셔츠의 화살맞은 부위에 과학수사연구소가 루미놀 테스트 등을 했었다면 혈액의 흔적이 나타났을텐데 나타났다는 기록이 없다'는 반론에는 과수연 실험자들이 육안으로 보아 혈흔이 없어서 그 부위에 테스트를 안 했을 뿐이라는 해명도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설득력있는 가설들을 검찰이 재판에서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2시나리오의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를 배제하지 않은 상황에서 유죄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노모가 와이셔츠를 빨았다'는 설명은 이제 와서 법원이 하고 있는데 아마도 박 판사가 뒤늦게 사적인 통로로 법원행정처에 알려주었을 법한데 이것은 형식적으로 증거라고 할 수도 없고 더욱 중요한 것은 당시 재판에 제시되지 않아서 판결의 타당성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법원이 공판에서 제시되지도 않은 증거를 들고 나와 검찰이 할 일을 대신해주는 것은 도리어 판결이 그 자체로는 부족했음을 인정하는 꼴이 될 뿐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왜 이 판결에는 이렇게 애정을 쏟는 것일까'하는 국민들의 질시만을 받을 뿐이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부러진 화살>을 본 관객들의 분노가 조명되는 이유는 그들의 김명호 교수에 대한 동조 때문이 아니다. 사법부가 헌법이 요구한 절차를 권위로 짓누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터져나온 결과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아우라픽처스

'바로 지금 여기'와 판사의 재량의 통제

사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사소하다고 볼 수도 있는 다툼 즉 조급한 민원인에게 기다리라는 판사의 고압적 대응에서 터진다. 판사가 위의 의혹들에 대한 검사의 '모른다'는 답변을 듣고 나중에 판결을 선고하겠다고 하자 김명호 교수는 곧바로 말한다. '아니 그러지말고 지금 검찰의 답변에 대해 판단을 내려달라.' '바로 지금 여기서.' 언뜻 보면 숙고숙의하여 결정을 내리겠다는 판사의 입장이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우리는 거기서 왜 분노하게 되는 것일까.

위에서 말했듯 검사가 '모른다'가 답하는 순간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입증을 포기한 것이다. 판사가 그 시점에서 검찰의 기소에 결정적인 흠결이 드러났음을 인정해준다는 것은 판사의 재량도 상식과 합리성의 통제를 받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 대학에서 교수가 '학점은 내가 알아서 주겠다'고 할 수가 없다. 강의계획서에 평가방법을 미리 공시하고 예를 들어 '중간고사 30%'라면 중간고사는 별도로 채점하여 점수를 학생에게 알려줘야 한다. 이렇게 평가를 여러 요소로 분리하는 것은 교수의 재량이 남용될 것을 걱정하여 합리성의 통제 하에 두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 사건 판사는 많은 판사들이 그러하듯이 '모든 증거를 감안해서 결정을 내리겠다'며 검사의 답변에 대한 즉각적인 평가를 회피한다. 종국적인 평가는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검찰 측이 지금 그렇게 답변하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입증을 포기한 것으로 알겠다'라고 위협이라도 했어야 한다. 이런 것도 없이 판사가 '알아서 하겠다'며 심리를 속개하는 순간 판사는 국민의 감시 하에 있는 상식과 합리성의 통제를 빠져나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절차가 없는 것이 아니다. '각하'제도나 미국의 summary judgment처럼 최종판결에 이르지 않고 재판 도중에 소를 기각하는 제도를 말한다. 소송 일방의 주장과 증거에 더 이상의 실체적 판단이 불필요할 정도로 명확한 사실적 또는 법적 흠결 또는 결핍이 발견될 경우 최종판결을 하지 않고 재판 중간에 소송을 종결지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소송일방이 이러한 신청을 해도 그 결정을 그때그때 내리지 않고 지난한 재판을 모두 통과한 후에야 최종판결과 포함해서 각하신청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현재 우리나라 민형사 소송제도는 '각하'가 거의 무의미하다. 형사소송법 상으로는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각하(또는 중도기각?)를 제때 제때 한다는 것은 결국 법원의 논리구조를 투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각하(또는 중도기각?)를 이렇게 하지 않고 최종결정권을 끝까지 판사가 가지고 가는 것은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다. 이 재판에서 실제로 각하나 중도기각을 실제로 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이를 위협하여 검찰의 추가입증을 얻어낸 후에야 유죄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시험만 여러번 보라고 하고 개별시험들의 점수도 알려주지 않고 '알아서 학점을 주겠다'는 교수에게 학생들이 느끼는 답답함을 가지고 국민은 법원을 바라보게 된다. (참고로 이 관행은 우리나라에서 SLAPP억지제도가 창설되기 어렵게 만든다.)

피고측 증거의 채택은 헌법의 요구

헌법의 적법절차원리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반드시 법에 정한 절차에 따를 것을 요구한다. 이에 따라 국가가 국민의 신체적 자유를 장기간 제한하거나 재산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각각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을 거친다. 국가가 신체적 자유를 단기간 제한하거나 사생활의 비밀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영장을 발부받는다. 적법절차의 구체적인 요건은 전세계적으로 다음과 같이 동의된다. (1) 국가가 해당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사실과 그 이유를 통보해주어서 (2) 당사자가 그 이유를 반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3) 국가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된 중립적인 제3자가 국가와 국민 양측 주장에 대한 평가를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형사분야에서 이 세 가지 요건은 기소장제도, 재판제도, 사법부의 독립성으로 각각 충족된다.

옷에 묻은 혈액이 박 판사인 것인지에 대서 혈액감정을 하자는 김명호의 요청은 위의 (2) 즉 반박할 기회의 행사였다. 법원은 목격자들의 진술이 일치하여 혈액이 박 판사의 것이라는 입증이 충분히 이루어져 혈액감정이 불필요했다고 해명하지만, 공권력에 의해 자유를 박탈당할 당사자인 김명호 교수가 '그래도 확인해보자'고 하면 반박할 기회를 주는 것은 헌법의 명령이다.

물론 타인에게 엄청난 불편과 비용을 발생시키면서 정작 증명력은 미미한 증거신청은 거부할 수 있겠지만 수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위험에 처한 피고인의 피해자 혈액감정신청은 세계 어느 나라의 법원에서도 받아들여졌을 신청이라고 본다. 국민들은 '혹시 혈액채취 대상자가 일반인이 아니고 판사라서 법원이 기각한 것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게다가 혈액감정은 재판에 필수불가결한 정도의 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와이셔츠의 화살 적중 부위에 혈흔이 없다는 사실이 조작의 가능성을 열어놓았고 검찰의 시나리오가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이 '조작' 시나리오가 반박되어야 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혈액감정이 필요했다. 조작의 가능성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왜? 판사가 그럴 리가 없어서? 판사가 그럴 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혹시 판사가 그랬다고 결과가 나와 버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증거신청을 기각한 것은 아닐까? 국민들은 의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필자는 동료판사 봐주기나 조작가능성의 외면보다는 김명호 교수의 반복된 재판방해와 지연전술에로 인해 축적된 판사들의 피로와 일반적으로 증거채택에 있어 소극적이었던 재판관행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선 피고의 불합리한 재판진행이 적법절차 원리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또 피고의 증거신청을 받아들일지의 여부는 사법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 상 적법절차의 문제임을 잊지 않는다면 더 적극적인 관행이 정착하지 않을까.

▲<부러진 화살>이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자, 법원은 사법부에 대한 여론 악화를 우려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대법원 홍동기 공보관이 지난달 27일 오후 서초동 대법원에서 영화 내용과 관련한 사법부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

재판의 공개 - 판결문공개를 둘러싼 악순환

공개되지 않는 것은 판결의 논리구조 뿐만이 아니다. 선착순 기준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재판을 합법적으로 방청하고 있는 사람이 녹취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미국에서 재판의 녹화를 허용하지 않는 이유는 녹화내용이 방송되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면 혹시나 재심이 있을 경우 선입관을 형성하지 않은 제2차배심원들을 뽑기가 어렵기 때문이고 더욱 중요한 이유는 카메라의 존재가 증인들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재판은 배심재판도 아니었고 녹취는 증인을 위축시킬 위험도 없다. 녹취를 금지하는 것이 혹시나 재판에 대한 평가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국민들은 궁금해하는 것이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재판이나 재판의 기록과 그 결과물인 판결문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판결문과 재판기록이 이렇게 공개가 되지 않으니 사법부의 업무가 더욱 늘어나고 과중한 업무 때문에 질높은 판결문 작성이 어려워져 더욱 공개를 꺼려하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기 진행된 사건들의 재판기록과 판결문이 일반적으로 공개되지 않으니 국민들이 자신의 사건에 대한 예측을 하기가 어렵다. 예측이 어려우니 자발적인 합의가 잘 되지 않고, 사건이 끝난 후에도 자신의 사건이 공정하게 종결된 것인지 평가할 기준도 없다. 이 때문에 1심이 끝나면 반드시 항소, 상고를 하고 싶어 한다. 항소와 상고를 많이 하게 되니 대법관들은 각각 1년에 수 천 건의 사건을 다룰 수 밖에 없다. 결국 업무가 너무 많아 정교한 법리 구사는 물론 자세한 증거의 검증도 하지 못한다. 충분한 시간을 투여하지 못한 판결문 및 재판기록에 대해서 당연히 공정한 평가를 받기가 어려울 것 같아 판결문과 재판기록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악순환이 완성된다.

맺으며

이 영화는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판사들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입증'을 더욱 엄격히 요구하고, 변론에 흠결이 있을 경우 각하 등을 통하여 또는 위협하여 적시에 변론에 대한 평가를 해줘 평가의 투명성을 제고하며 형사피고의 증거신청을 관대하게 받아주는 관행이 정착되기를 바란다. 공개된 재판의 녹취는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하며 공개된 재판인 이상 당연히 재판기록과 판결문도 더욱 많이 공개되어, 국민들이 법원의 활동 뿐만 아니라 자신이 당할지도 모르는 미래의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할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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