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 인터뷰] 캐리커쳐와 즉흥 붓그림이 만난다

미디어 꽃놀래 [1.0] 한글은 큰글이다 ②

미디어교육연구소가 주최한 미디어 꽃놀래 [1.0] '한글은 큰글이다' 시서화 10인 10색전에 김봉준 화백이 '님얼 붓그림전'으로 참여했다. 민간 미술과 민족적 전통을 되살려 생태 공동체 문화, 겨레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온 작가는 전통과 근대 그리고 탈현대로 이어지는 흐름 속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오래된 미래를 꿈꾸고 있다. 전통에서 생태적 공동체 문화를 신명으로 배웠고, 근대에서 민주주의 역사 속에 피어난 인본주의 문화를 온몸으로 흡수했다. 우리 붓그림과 같은 형식으로 전통미술의 창조적 계승을 꾸준히 시도해 오며 불화나 민화 혹은 민속 미술 등에서 전통의 본질을 현대적으로 재생산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민족과 국가의 이기주의까지 넘어 지구촌 인류족의 오랜 숙원인 인본적 생태주의를 추구하는 김봉준 화백을 만나봤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취지가 좋았다. 일반 책을 잘 못 읽는 저시력자나, 약시자, 노인들 위해 책 읽을 수 있게 널리 보급하는 방식으로 개발하는 것도 좋고, 한글이 갖고 있는 정신을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소통하기 위한 쉬운 글자로써의 큰글을 살리는 것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시서화 양식을 좋아하고 꾸준히 개척을 해온 입장이기 때문에 우리 붓글씨 자체가 '한글은 큰글이다'라고 하는 의미를 아날로그로 실천해온 그런 장르여서 행사 취지와도 부합되고 해서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에 전시하신 작품이 인물화이고 즉흥 캐리커쳐인데, 어떻게 처음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

=이게 원래는 아날로그형으로 한 게 아니고 디지털형으로 개발을 했던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친구들 그림을 하나 둘 캐릭터화해서 서비스로 보내주면 자기들이 사진 대신 올리고 그러면서 반응이 좋아서 재미있다고 주문이 많이 와서 시작하게 됐다. 단순히 얼굴만 그리는 게 아니고 자기의 소망이나 경구들을 적어서 보낸다. 짧은 시이다. 그게 함께 결합을 하면서 그림으로써의 직관적인 형상과 또 하나는 인식적인 시가 같이 들어가 있어서 융합되어져 있기 때문에 단순히 사진만 보는 것과 시만 보는 것과는 다르게 상승효과가 있다. 그렇게 디지털형으로 실험을 해서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면서 시작하게 되었다. 여기 있는 작품들이 페이스북에 올려져 있는 얼굴들이다.

▲ 김봉준 화백 붓그림 프로필
김봉준 화백은 스스로 전공이 복잡하다고 말한다. 1954년에 출생하여 용산중고등학교, 홍익대 미술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미대 재학 당시 4년 간 봉원사 만봉스님에게 탱화와 민화, 옛날 전통 조선붓 전수를 받았고 그렇게 붓 맛을 알아가면서 민속문화써클을 결성하여 탈춤, 풍물, 탈, 민화, 불화, 민요, 마당극 운동 등 민속예술의 연구 학습에 열중, 이후 예술세계에 큰 영향을 준다. 80년대에는 목판화가로 이름을 알렸으며 개인전 10여 차례, 기획전 100여 회를 하였다. 현재 강원도 문막에서 전업 작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조선붓이라는 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붓과 어떻게 다른가?

=구분하기 위해 개념을 그렇게 썼는데, 동아시아에서 붓을 크게 백모류와 황모류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백모류는 하얀 털로 만든 걸로 크고 길다. 서예할 때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염소털 같은 가축으로 만든 것이고, 황모류는 사냥해서 잡은 걸로 만든다. 털이 길지 않고 누렇고 사슴, 산말, 담비, 다람쥐, 쪽제비 이런 털들을 써서 길고 탄력이 강하다. 우리 전통의 것을 공부하려고 할 때, 황모류를 모르면 그 원형에 다가갈 수가 없다. 전통 미술을 볼 때 인문학이나 미술학적으로만 접근을 하지, 장인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아서 저게 무슨 붓으로 그렸는지 모른다. 그게 황모붓인데 지금은 거의 사용을 하지 않고 있다. 붓의 명맥을 이어 내려오지 못해서 우리 민족적인 전통이 제대로 계승되지 않았고 도구를 모르는데 어떻게 계승이 되겠나. 그걸 계승을 해야 붓이 갖고 있는 따뜻한 맛, 신명, 푸지다, 구성지다, 흐벅지다, 이런 조선의 미학 개념들이 올곧게 들어올 수가 있다. 그리고 그런 느낌들이 동아시아적, 생태주의적 미학을 갖고 있는데 미학을 철학이나 가상적으로만 볼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물화시키느냐 이게 중요하다. 통틀어서 문화는 정신만으로 계승하는 게 아니다. 정신의 물화(物化). 정신의 물화 과정이 장인적 실천이다. 물화된 창작들이 제출되고 봐줄 줄 알고, 평가하고, 그걸 사줄 줄 알 시장이 필요하다고 본다.

-시서화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

=동아시아 예술은 기본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시서화(詩書畵)와 가무악(歌舞樂). 춤과 노래와 연주(음악)로 공연예술이고, 시각예술은 시와 서, 화. 이것이 하나로 내려오는 전통이다. 옛날 산수화를 하나 그리더라도 거기에 시문이 들어가고 인물화를 그리더라도 옆에 인품같은 걸 쓰기도 하면서 글씨가 같이 개입된다. 하지만 서양은 미분화 발전된 그림이라고 본다. 나눠져 있지 않고 왜 다 묶여있나. 이렇게 보는데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이다. 우리가 거꾸로 21세기 디자인들을 보면 통합형으로 간다. 보고 느끼고, 읽고 보는 걸로 같이 가는 디자인들이 나온다. 예를 들면 대기업들 로고만 봐도 옛날엔 따로 떨어져 있었는데 이젠 붙어서 한꺼번에 그 안에 들어가 있다. 이건 인식론과 직관론을 통합시킨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합쳐놓은 것의 원초적 형태가 시서화이다. 그 보다 더 오래된 원형이 바로 상형문자다. 암벽화 같은 것을 보면 글자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하고, 글자와 그림이 한꺼번에 보여지는 것처럼. 이런 것들을 우리가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지금 21세기에는 인식과 직관을 한 번에 봐서, 한 번에 전달하려는 통섭형의 예술로 가고 있다. 어떤 하나를 보면 다 아는 그런 느낌을 강압적으로 원하고 있다.

▲ 김봉준 화백 작품 달맞이 한글 붓그림 판화 1998년작(왼쪽)과 드릅 한지 붓그림 1994년작(오른쪽)

작가는 인식론과 직관론을 통합시킨 것이 바로 시서화라고 말한다. 시가 인식적인 인문학의 정수라면, 이 형상을 표현하는 것은 직관적인 분야이다. 고대의 원형문화에서 내려온 통섭형의 예술은 급변하는 시대 흐름에 부합하며 대중들은 이를 원하고 있다. 이에 같은 맥락으로 이어져 있는 시서화의 관심과 인기는 당연한 결과이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한다.

-'님얼 붓그림'이라고 이름을 짓고 작품 활동을 시작한지는 얼마나 됐나?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내년쯤에는 페이스북의 프로필에 사진 대신 님얼 붓그림으로 배치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지지 않을까. 이렇게 예술은 생활 속에서 좀 쓰여야 되지 않겠나. 자기에게 홍보도 되고 자기로부터 시작하는 그런 표현 방식을 예술가와 수요자가 함께 하는, 수요자 공급자가 벽을 허물면서 함께 하는 그런 창작. 수요자의 미학이라고 본다. 지금까지의 예술이 공급자의 미학이다. 공급자가 장르 다 만들고 예술 폼도 점점 자기 생활과는 관계도 없고 관심도 없어진다. 어렵다고 잘 보지 않는다. 이런 한계에 부딪혀 있기 때문에 공급자 미학이 변신해야 한다고 본다.

-페이스북에서는 사진과 글을 보내오면 그걸 토대로 작업을 하는 건가?

=그렇다. 직물적인. 즉시(卽時) 즉작(卽作)이다.

-그런 작업을 하면서 특징이 있을 것 같다.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거나, 사람이 찾아왔을 때 바로 앞에서 즉흥적으로 작업을 하실 때 재미난 일이나 에피소드가 있나?

=사람의 개성이 외모로 다 보여진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진다는 것처럼 자기의 살아온 삶이 얼굴에 묻어나는 그 개성을 잘 읽어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사진으로 그리는 것과 직접 만나서 즉흥적으로 그리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즉시 즉작으로 그리는 것은 순발력과 즉흥성과 현장성을 갖고 있는 반면 치밀도가 떨어지고,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은 현장성이나 즉흥성이 당연히 떨어진다. 보지 못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치밀하게 그릴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사진에서 재해석하거나 과장화해서 더 개성화 시키는 걸로 손맛을 살려내는 그런 것이 있다. 프로필에서 사진을 보는 것과는 다른 캐릭터화.

▲ 님얼 붓그림 <나는 이렇게 살고싶다> 특별전 포스터

-붓그림을 시작한 시기는?

=대학교 때 탈춤반이었다. 탈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서양화나 유화만 했었으니까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탈을 만드는 기법을 추적해보니까 옛날 단청하고 관련이 있더라. 스님한테 사실은 탈 만드는 기법 배우려고 찾아갔었다. 단청이 불화 세계의 한 분야더라. 그렇게 불화세계에 입문을 하게 됐고 불화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황모필 붓 잡는 법이었다. 호흡으로 하는 붓법인데 기초 자세부터 시작해서 3년을 배우면서 이걸 써먹어야겠다 생각해서 처음에 들어갔다가 점점 수양하는 마음으로 바뀌더라. 그때 당시 마음이 하도 들뜨고 산란해서 수양하는 기분으로 계속하게 됐다. 계속 하다 보니 붓에서 이상한 느낌이 오더라. 붓이 아주 딱 서는 느낌이랄까. 알고 보니 그게 득기(得氣)였다. 붓에서 기운을 득하고 운필력을 알게 되었다.

-이런 붓그림은 말 그대로 전통인데 이걸 캐리커쳐의 형식이나, 페이스북을 통해서 소통하고 알리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전통을 현대화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런 현대화의 뜻이 있다면?

=안타깝다. 우리가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이구동성으로 뭐 현대화해야 한다.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는데, 이게 왜 제대로 되지 않고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된다. 첫째로 전통에 대해 제대로 전승하고 학습하는 그 체계가 무너졌다는 것. 두 번째로는 거기서 무엇을 선택하고 해석할 것인가라는 인문정신이 무너졌다라는 것. 인문과 장인학의 결합이 필요하다. 세 번째로는 재창조에 대한 격려와 유통할 시장이 필요하다. 전통을 카피만 하는 것과 창작을 구분해서 창작을 권장해줘야 한다. 카피가 불가피하다면 학습을 하고 난 후에 거듭나야한다. 하지만 현대에는 카피와 창작 구분을 하지 못한다. 문화재관리국이나 인간문화재 같은 곳에서는 왜 전통과 똑같이 안그렸냐 말하고, 시장에서는 베낀거나, 창작이나 똑같이 쳐주고, 바라보니 어디 갈 곳이 없다. 분명이 달라지고 있는데. 내 작품 중 목판화를 보면 옛날 전통 판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양 판화도 아니다. 정체성이 있다는 말을 듣곤 한다. 농촌의 지향성이라던가 생태주의적인 측면. 이렇게 전통이라는 건 앞을 트고, 밀고 가는 진행형이지, 과거의 것만이 아니다.

작가는 모던한 것은 전통을 완전히 청산하고 해체하고 서양의 것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오랜 자기 전통에서 살아왔던 집단의식의 한 형식인 원형의 문화를 재조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통 따로, 모더니즘 따로 보는 이원론적 시선이 아니라, 원형의 문화를 제대로 알고 계승시키며 동아시아적 정체성을 가지고 우리다운 것으로 변화시키고 진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봉준 화백의 관심 분야가 날로 더욱 광범위해지기를. 그가 취하는 행위는 곧 예술로 반영이 될 것이고 그 결실을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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