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반도체 연구개발직 주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적용 예외 입법을 논의 중인 가운데, 노동계가 주 50시간 이상 근무 시 자살 위험이 2~4배 가량 늘고, 주 55시간 이상 근무 시 심혈관계질환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종합해 발표했다. 따라서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는 주52시간 적용 예외를 입법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직업환경전문의)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광장의 요구에 반하는 반도체특별법, 문제를 말하다' 토론회에서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한 이유가 있다"며 "주 50시간 혹은 55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고 말했다.
장시간 노동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는 "2012년 20~35세 청년 노동자 3332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한국청년패널조사 연구'를 보면, 주 50시간 일하면 스트레스, 우울, 자살 위험이 2배 이상 높아진다"며 "국민건강영양조사와 통계청 사망자료를 연계해 분석하면, 주 35~44시간 근무자와 비교해 45~52시간 근무자는 3.89배, 52시간 초과 근무자에서 3.74배 자살 위험이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시간 노동이 신체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WHO(세계보건기구)와 ILO(국제노동기구)는 2021년 발표한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뇌심혈관질환 질병부담 연구'에서 주 55시간 이상 근무 시 허혈성 심장질환은 17%, 뇌졸중은 35% 증가한다고 분석했다"며 "이를 고려하면, 2016년에만 세계적으로 74만 명이 과로로 인한 허혈성 심장질환 혹은 뇌졸중으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3일 반도체특별법을 주제로 한 당 정책토론회에서 "고소득 전문가들이 동의할 경우 예외로 몰아서 일하게 해주자는 게 왜 안 되냐고 하는 데 할 말이 없더라"며 '주 52시간 적용 제외' 입법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지난 10일 국회 교섭단체연설에서 '총노동시간 증가 없는 노동시간 유연화' 주장을 편 데 대한 반박도 했다.
최 집행위원장은 "장시간 노동은 1년 평균이 아니고, 보통 지난 일주일 혹은 한 달, 길어야 세 달 평균 노동시간에 기초해 정의된다"며 "바짝 일하고 쉴 수 있다 하더라도 바짝 일하는 동안 과로한다는 사실과 그로 인한 건강 영향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소득 전문직중에서도 장시간 노동, 불규칙 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토론회에서 한 삼성전자 노동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장시간 노동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반도체 연구개발직으로 일하는 한기박 씨는 "장시간 노동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통계를 단순히 통계로만 받아들일 수 없다. 저 역시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라며 "3개월 간 지속된 야근 끝에 3일 연속 밤을 세운 날이 있었다. 갑자기 심장이 엇박자로 뛰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속이 울렁거리며 머리가 어지러웠다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한 씨는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경험이 있다"며 "5~6년 전 야근을 하던 선배님이 화장실로 가시다 갑자기 쓰러지셨다. 곧바로 달려가 의식을 확인하고, 119에 신고하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업무에 쫓기며 몽롱한 상태라 선배님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지금까지도 그 순간의 제 행동이 충격과 후회로 남아 있다"며 "과로가 단순히 개인의 건강을 해치는 것을 넘어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력마저 마비시킨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한 씨는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언제까지 이런 고통을 감내해야 하나"라며 "우리는 과로하며 건강을 해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저희의 입장을 깊이 생각하여 이해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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