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거의 모든 연구자들이 정언명령처럼 받아들이는 유명한 말이 하나 있다.
"publish, or perish(출판하라, 아니면 사라져라)"라는 말이다. 논문과 저서 등의 연구 결과물을 출판하는 것은 연구자의 자기 정체성에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 뜻이다.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머톤이 말했듯이, 교수와 연구자의 기본 사회적 역할은 '과학자 사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지식을 생산'하는 것에 있다. 이러한 상식에 비추어볼 때, 지난 9월 23일에 있었던 교육과학기술부의 '구조개혁 중점추진 국립대학' 발표는 과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특정 대학들을 부실 대학으로 낙인찍는 이 작업에는 졸업생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률, 장학금 지급률, 등록금 인상수준, 학사관리 및 교육과정 운영 등의 교육관련 지표들만 고려되었을 뿐, 대학의 근본 존재 이유라 할 수 있는 연구 활동에 대한 평가는 아예 빠져 있다. 놀랍고도 기이한 일이다. 교육과학 수장과 교과부 국립대 정책담당자들은 지식 생산이 대학과 연구자의 기본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사실을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을까? 이런 의구심 때문에 이번 발표의 진정한 목적이 대학의 연구 및 교육 역량 강화가 아니라 국립대의 총장직선제 폐지에 맞춰져 있다는 반발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교과부는 발표 하루 전 총장직선제 포기를 밝힌 8개의 교육대학과 한국교원대를 대상에서 제외시켜 줬다. 그리고 이번의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된 대학에는 내년 초까지 총장직선제를 포기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총장직선제 때문에 졸업생 취업률이, 장학금 지급률이, 학사관리 성과가 낮아지고, 등록금 인상률이 높아지고 있는 교과부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주호 장관의 교과부는 매우 정교하고 구체적이어야 할 교육 정책 대신에 이렇게 초등학생들에게도 차마 낯 뜨거워서 입 밖에 내지 못할 비논리를 대학에 태연하게 들이대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교과부는 지금 자가당착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강원대는 몇 해 전부터 교과부가 닦달해온 국립대 통합 사업에 떠밀려 최근 삼척대와 통합했다. 그런데 통합 결과 단기적으로 학생 충원률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교과부는 강원대를 구조개혁 대상 대학으로 지목하였다. 충북대는 올해 초 우수한 성적으로 교육역량 강화 사업 등 다수의 교육관련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는데, 불과 몇 달 사이에 교육부실 대학으로 낙인찍혔다. 이런 식이면 교과부는 일 년에 몇 번이고 동일한 기준으로 얼마든지 많은 대학을 부실 대학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부산교대는 법정 교원 임용의 상한선이 법에 의해 고정되어 있는데, 교원 임용률이 증대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교과부 발표에 포함되었다.
이주호 장관과 정책 담당자들은 이참에 총장직선제를 포기시키면 장차 국립대 법인화의 탄탄대로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총장직선제 폐지는 1980년대 대학이 독재 정권에 맞서 쟁취한 민주주의의 성과를 부정하고, 권력을 소수 지배집단이 다시금 독차지 하려는 기도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매우 많다는 것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 모든 것을 '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밀어붙인다.
그러나 대학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대학의 진정한 '개혁'일 수는 없다. 재벌의 곳간에는 돈을 쌓아주고 대다수 시민은 갈수록 생존의 갈림길에 내모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개혁'일 수는 없다. 2008년과 최근의 세계경제 위기로 자신의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쉬는 신자유주의 말기에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개혁'으로 둔갑시키는 마법의 '약발'은 이미 다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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