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부산까지 예닐곱 시간을 달려 노상에서 밤을 새우고 경찰에 구속당할 수도 있는데 자기 돈을 들이면서까지 영도조선소로 달려갔을까.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 협의회를 비롯하여 학술단체협의회, 전국 교수노조 등 교수 3단체가 공동으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드러났듯이, 조남호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라서가 아니라 '극단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야만적인 정리해고를 행하였다. 악덕 자본과 이를 비호하는 정권에 대해 분노하고, 85호 크레인 위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을 비롯한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아파하는 연대 정신이 바탕이었고, 여기에 정리해고가 남의 문제가 바로 내 문제라는 깨달음에서 사람들은 희망버스에 올랐다. 그러기에 희망 버스는 신자유주의에 희생당하고 고통을 받는 이들의 저항의 상징이자 약한 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연대의 표현이다.
희망버스에서 '눈부처 주체' 탄생
필자가 생각하기에, 희망버스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에 비로소 '눈부처 주체'가 등장하였다는 점이다. 4.19혁명과 5.18광주민중항쟁을 통해 19세기 말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근대적 주체가 역사의 주인으로 자리매김하였다면, 촛불시위에서 희망의 버스로 이어지는 국면에선 눈부처 주체가 한국사의 전면으로 등장하였다.
똑바로 상대방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상대방의 눈동자 안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이를 '눈부처'라 한다. 일단 그 형상이 부처의 모습과 닮은 데서 연유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상대방과 아주 가까이 하지 않으면 안 보인다. 이는 내 모습 속에 숨어있는 부처, 곧 타자와 공존하려는 마음이 상대방의 눈동자를 거울로 삼아 비추어진 것이다. 눈부처는 내 모습이니 나이기도 하고, 상대방의 눈동자에 맺혀진 상이니 너이기도 하다. 이를 바라보는 순간 상대방과 나의 구분이 사라진다. 눈부처 주체는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소극적 자유(from freedom), 부조리한 세계에 맞서서 장애와 소외를 극복하고 진정한 자기를 실현하고 세계를 개조하려는 적극적 자유(to freedom), 타인과 자신이 서로 조건이 되고 상호작용을 함을 깨닫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타인의 자유를 확대하려는 실천을 행하는 대자적 자유(for freedom)를 구현하는 자다. 한 마디로 말하여, 눈부처 주체는 불의와 세계의 부조리에 저항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면서도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자다.
왜 가장 합리성과 교양이 증대된 20세기가 전쟁과 학살의 시대가 되었을까. 자원, 이데올로기 등도 원인이지만 그 근저에는 동일성의 패러다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근대적 주체는 동일성에 포획되어 다른 민족, 다른 신앙을 믿는 자들, 장애인, 소수자 등을 타자로 설정하고 이들을 배제하고 폭력을 행하면서 동일성을 강화하였다. 눈부처 주체는 이를 성찰한 21세기 디지털 사회에 부합하는 새로운 주체, 곧 타자와 공감하고 연대하는 주체다.
"희망버스 참가자들, 성격은 다르나 지향은 같아"
눈부처 주체들로 이루어진 희망의 버스 참여자들은 산업사회에서 민주화를 추구하던 세력과 탈산업사회의 다중(多衆)들이 하나로 뭉쳤다. 7,8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들, 시민·노동단체의 회원들, 쌍용자동차와 재능교육 등의 해고 노동자들, 반값 등록금 시위 현장에 있던 대학생들, 그리고 장애인과 동성애자들이 함께 하였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자본에 가혹하게 착취당하고 현 정권의 야만과 독단에 삶의 평화와 행복이 짓밟힌 이들이 어깨동무를 한 것이다.
그러기에 희망의 버스 현장에선 두 진영의 양태가 모두 드러났다. 이들은 기존의 조직을 통해 신청을 하고, SNS를 통해 사실을 접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신자유주의 노동모순에 분노하며 노동자와 스크럼을 짜기도 하고, 노동단체의 깃발이 펄럭이면 자리를 피하기도 하였다. 경찰에 맞서 싸우기도 하고 두려움에 떨며 도망가기도 하였다. 몇몇 인사들의 구시대적(?) 발언에 감동하기도 하고, 그런 것에 하품을 하고 딴청을 피우다가는 흥겨운 노래가 나오면 춤을 추며 열광하였다. 운동권 가요를 부르기도 하고, 아이돌 스타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경찰과 몸싸움을 하며 방패를 빼앗기도 하고, 그러지 말고 비폭력을 유지하자고 하였다. 경찰이 들이닥쳐 폭력을 행하자 핸드폰으로 누구에겐가 상황을 설명하기도 하고, 스마트폰으로 그 장면을 찍어 바로 인터넷에 올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김진숙 지도위원의 육성이 들릴 때면 모두가 하나가 되어 집중하였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 그렇게 두 진영이 하나가 되어 부산에서 세 차례에 걸쳐 연대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자본과 정부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청문회장에서 시민 사회가 주장하던 것들이 사실임이 드러났다. 조남호 회장은 자신의 잘못을 거의 모두 시인하면서도 정리해고 노동자를 복직시킬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정부의 몫이다. 자본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와 시민과 국가다. 노동자와 시민은 정말 할 만큼 하였다. 이제 국가가 나설 때다. 현대 국가는 자본의 탐욕을 견제할 수 있을 때 정당성을 갖는다. 정부와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방기하는 것은 직무유기이자 스스로 정당성이 없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당연히 희망버스는 서울로, 정부로, 청와대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희망버스는 어디로 가야 하나
이제 희망버스는 어디로, 무엇을 향하여 달릴 것인가. 희망버스는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를 살리고 희망을 주기 위하여 시작되었지만, 3차 희망버스를 기점으로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만이 아니라 유사한 고통 속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버스로 전선을 확대하자는 공감대가 조성되었다. 지금 90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같은 일을 하고도 1/2의 임금을 받으며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삶을 연명하고 있다. 숫자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의 정리해고 노동자들이 극단적인 삶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 중 상당수가 이미 자살을 택하였거나 그 유혹과 싸우고 있다. 그러기에 한진중공업 사태는 영도조선소를 넘어 한국 비정규직과 해고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인권과 생존에 관한 문제이며, 희망 버스는 이들 모두의 노동권과 인권과 생존을 보장하라는,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저항할 수밖에 없다는 눈부처 주체들의 소망과 실천이 어우러진 아이콘이다.
이제 희망버스는 '또 다른 소금꽃', 곧 전국의 정리해고 노동자들을 모두 복직시켜 그들도 다른 사람처럼 아침에 웃으며 가족의 배웅을 받고 일터로 가서 '진정한 자기실현'으로서 노동을 할 수 있도록, 이를 막는 모든 권력과 제도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달려야 한다. 희망의 꽃이 김진숙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가슴에서 피어나 이 땅이 참노동의 꽃밭으로 흐드러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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