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논란과 미군기지 환경오염

[창비주간논평] 계속되는 논란 해결하려면 SOFA 개정해야

지난 5월 19일 퇴역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 씨의 증언으로 미군기지 내 고엽제 매립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후 다른 미군 전역자들이 비슷한 증언을 내놓으면서 의혹은 캠프 캐럴을 넘어 부천, 춘천, 인천에 있는 기지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고엽제가 한반도에 어떻게 들어와 어디서 얼마나 사용되었고 그후 관리 처리되었는지 등 정확하게 규명된 것이 하나도 없다.

미군 입장에서 이번 고엽제 매립 의혹은 지금까지의 환경오염사고보다 더 복잡한 문제다. 한국에서 발견된 오염을 조사, 정화하는 일이 다른 나라에 선례가 되어 모든 해외기지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엽제의 경우 그 피해가 악명 높아 1970년대에 이미 사용이 금지되었으므로 자칫하면 미국내 퇴역 주한미군에 대한 보상 문제로도 번질 수 있다. 그래서 미군은 말로는 '철저하고 투명한' 조사를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대로 다 인정하고 조사하려니 기지 내부를 공개해야 하는 절차도 번거롭고 실제 오염이 발견되었을 때 비용부담과 소송에 대응하는 문제도 큰 고민일 것이다.

▲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5월 주한 미국대사관 옆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군의 고엽제 매립 의혹과 관련해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군기지 환경오염 논란, 어제오늘 일 아니다

지난 20년간 주한미군기지에서 발생한 환경오염사고가 47건에 달한다. 그중 기름유출이 29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과거 미군이 사용하던 지하유류탱크가 낡고 오래된 것이 원인이다. 용산 미군기지, 군산 공군기지, 원주 캠프 롱 같은 곳은 최소 2회 이상 기름유출이 발생해, 일종의 상습범이다. 한번이라면 우연이지만 시설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고가 반복된다면 이건 분명 범죄다. 그럼에도 해결이 지지부진한 것은 주한미군기지가 한국법도 미국법도 제대로 적용받지 않는 환경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미군에 적용되는 규정은 '불평등하기로 소문난' SOFA(주둔군지위협정)다. 2001년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서 기름유출이 발견되어 무려 2년 동안 기지 내외부를 조사했고, 결국 용산기지 안의 기름유출이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도 서울시는 녹사평역 주변 토양과 지하수오염을 계속 정화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정화비용만 총 30억 원에 달한다.

당시 미군은 기지 외부의 한국측 조사를 믿을 수 없으니 재조사하자는 식으로 시간을 끌었다. 결국 휘발유 오염원을 규명하는 데 1년이 걸렸고, 등유 오염 조사로 추가 1년을 보냈다. 그런데도 끝내 미군은 등유로 인한 오염은 인정하지 않았고 2003년 12월에 공동조사단은 활동을 종료했다. 다른 환경오염 사례에서도 담당자 출장, 조사방법 협의 등을 이유로 공동조사단 구성과 운영은 지연되기 일쑤였다.

고엽제 매립 의혹에서도 미군측이 시간을 끄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6월 2일부터 한미공동조사단 활동이 시작되었지만 기지내부 조사는 미군측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지하투과를 해서 드럼통이 묻혀 있는지 알아보겠다면서 겨우 두세대 장비만 운영하고, 기계 고장이나 주말 휴일로 조사가 지연되기도 했다.

기지내 토양조사를 먼저 해보면 오염 여부를 확실히 검증할 수 있는데도 다이옥신 검출 가능성이 희박한 지하수 조사를 고집하고 있다. 더구나 매립된 곳으로 지목된 헬기장은 몇번의 복토로 기존 높이보다 이미 15m 정도 높아진 상태인데 지표투과레이더(GPR)는 땅속 5~6m 정도만 탐지할 뿐이니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진실 규명에 소극적인 한미 당국

미군은 기록 확인에도 소극적이다. 지금까지 주한미군이 공개한 내용은 화학물질이 캠프 캐럴 내에 매립되었다가 1978~79년에 대량의 흙과 함께 반출되었다는 1992년 미 공병단 보고서의 일부분일 뿐이다.

미군측은 제기된 의혹에 대해 모두 부인하면서 현재로는 의혹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1992년 미 공병단 보고서에 특정물질이 매립되었다는 기록만 있다가 왜 갑자기 2004년에 삼성물산이 조사를 하게 했는지, 그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규명해야 한다. 주한미군환경관리기준(EGS)에 따르더라도 4년에 한번씩 미군기지별 환경관리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캠프 캐럴을 비롯한 여러 기지의 환경보고서를 공개한다면 의혹과 불안을 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한미공동조사단이 지난 16일 기지주변 지하수와 하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하수 시료에서는 다이옥신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으며 6개의 하천수 중에서 3개의 미량의 다이옥신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검출수준은 왜관 지역 낙동강의 평균 다이옥신 농도보다 7~70배 낮은 수준이니 안심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이옥신은 물에 잘 녹지 않으며 침전물이나 부유물질에 달라붙기 때문에 지하수 조사만으로는 그 검출 가능성이 희박하다. 또한 따로 지하수 관정(管井)도 파지 않아 문제를 축소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공동조사단은 7월 중 조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인데, 만약 조사결과 오염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매립 의혹을 깨끗이 풀기 위해서는 미군이 고엽제 등 화학물질의 반입, 관리, 처리에 관한 자료를 우리 정부와 국민에게 공개하는 수밖에 없다.

환경부조차 미군에 관한 자료가 거의 없는 것은 현행 SOFA가 그저 환경오염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응체계를 규정한 것일 뿐이라는 한계를 보여준다. 일상적으로 미군이 환경규정을 제대로 지키는지 확인하기에는 근거도 부족하고 의지도 없다. 2000년 한강 독극물 방류사건 때도 화학물질의 관리, 처리에 관한 내용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있었지만 실현되지 않았고 SOFA 환경조항에도 그런 내용은 반영되지 않았다. 당시 사건으로 앨버트 맥팔랜드 용산기지 영안소 부소장이 한국법에 따라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주한미군은 약속한 환경프로그램 재검토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리지 않았다.

SOFA 개정과 환경권 지키기

이번 사건을 계기로 SOFA에서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복구시 원인자 부담 원칙을 더 강화하고 '오염'에 대한 기준도 명확하게 만들어야 한다. 미군은 '오염'을 정의하며 "인간건강에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이라고 알려진"(Known, Imminent, Substantial Endangerment)이라는 기준을 주장하는데 사실 미국 내에도 이에 관한 분명한 규정은 없다.

또 항상 문제가 되는 정보공개 문제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현재는 관련 정보를 언론과 대중에 배포하기 전 사실상 미군측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국민의 알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지난 2007년 국회에서 열린 반환미군기지 청문회에서 외교통상부도 문제를 인정하고 개정 노력을 약속한 부분이다.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SOFA 개정이 되지 않아 정보 비공개가 심각한 상황이다. 여전히 미군측 승인 없이는 기지 밖으로 영향을 미치는 오염사고가 발생해도 지역주민은 관련 조사보고서를 받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 SOFA의 개정도 어두운 분위기다. 지난 6월 14일 열린 SOFA합동위원회에서 한국은 개정에 대한 논의를 부치고자 했으나 미군측 반응이 시큰둥했다고 한다. 이미 2001년 SOFA에 환경조항이라는 이름으로 환경에 관한 양해각서가 생긴 지 10년이 되었다. 강산도 변하고 대통령도 두번이나 바뀌었는데, SOFA는 달라지지 않을 것인가? 만약 SOFA가 개정되지 않고, 오염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 문제가 끝나버린다면, 우리는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번 문제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환경권의 사안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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