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같은 비정상적 오염은 미국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미군기지 오염, 한미 대통령 차원의 의지 보여야"

경북 칠곡의 주한미군 기지 '캠프 캐롤' 고엽제 파문과 관련, 송민순 의원(민주당)은 29일 "양국 대통령 차원에서 정치적 의지를 확고히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송 의원은 이날 홈페이지에 발표한 '고엽제, SOFA, 한미동맹'이란 글을 통해 "한·미 양국 정부는 국민 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대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 기지 유지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이 악화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송 의원은 주한미군 기지의 환경 오염 치유 부담에 대해 "오염 원인 행위가 언제였느냐에 따라 부담 주체가 다를 수 있겠지만 동맹의 정신에 따라 공동 부담의 원칙을 택하는 것이 대승적"이라면서도 "오염 원인이 고엽제 매립 같이 정상적인 기지 사용의 범주를 벗어난 경우 미측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연적 환경 변화를 제외한 비정상적 오염에 대해서는 미측이 치유 의무를 지도록"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송민순 의원이 이날 발표한 글의 전문이다.

고엽제, SOFA, 한미동맹

"자식을 가질까봐 끔찍하게 두렵다.(I'm scared to death to have a child.)"

1984년 5월 7일 뉴욕 브루클린 지방법원에서 당시 미국의 월남전 고엽제 전우회 회장 프랭크 맥커시가 고엽제가 유전자에 미칠 영향을 두고 외친 말이다. 그 날 브루클린 지방법원은 피해자들이 고엽제 제조회사인 Dow Chemical과 Monsanto 등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이 양측의 합의로 종결되었음을 발표했다. 이들 세계 굴지의 회사들은 기업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을 우려하여 당시로는 사상 최대액수인 1억 8천만불을 제시했다. 고엽제 충격은 그 만큼 민감한 시대적 사건이었다.

지금 주한미군 고엽제 사건이 우리에게 닥쳤다.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의 하나인 이 좁은 땅에 미군이 엄청난 독극물을 묻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사실로 밝혀진다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물론 그 정치적 파장도 헤아리기가 어렵다.

당장 한.미 양국 정부가 보이고 있는 일차적 대응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과학적으로 의문을 남기지 않도록 철저하게 양국의 민.관.군 합동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조사결과에 따라 독성물질의 확산차단과 기존 오염지역을 치유하는 방안을 양국이 협의해야 할 것이다. 조사과정에서 미국측은 군기지의 민감성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우리측도 감성이 아니라 과학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조사과정과 치유 등 사후조치에 있어 절차와 권리.의무 등을 따지게 될 것이고 이 때 적용되는 것은 주한미군의 법적지위에 관한 합의, 소위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이다. 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는 군사동맹국간에만 존재한다. 점령지가 아니라 동맹국간의 합의인 만큼 서로의 필요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맺고, 또 그런 정신으로 협정을 운용하기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2차대전 후 미군이 해외 여러 나라에 우월적 지위에서 주둔하면서 접수국의 사정보다 미국의 군사적 필요를 우선하여 맺어왔기 때문이다. 피점령국에서 동맹국으로 변한 독일이나 일본은 물론이고, 초청에 의해 주둔하게 된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SOFA는 한.미관계 불평등의 대명사가 되어 왔다. 그 중 우리 국민을 가장 민감하게 만든 조항은 형사재판관할권과 주한미군기지 문제이다. 형사재판관할권 문제로 인해 미군이 한국인에게 범죄행위를 저질러도 우리 법정이 아닌 미군재판에 회부됨으로서 우리 자존심에 큰 상처를 안겨주던 시절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미군기지의 제공과 반환, 그리고 기지내의 환경문제이다. 2001년 타결된 SOFA 2차 개정협상 결과, 양측은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의 환경법령과 기준을 존중하는 정책을 확인한다"라고 규정하고, 이어 특별양해각서에서 ①한.미 양국 환경법규중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②주한미군 환경관리 지침을 매 2년마다 또는 수시로 검토.보완토록 하며, ③미국은 주한미군에 의해 야기되는 인간건강에 대한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known, imminent, substantial endangerment: KISE)을 초래하는 오염을 신속하게 치유한다고 합의하였다.

그간 주한미군이 광범위한 토지를 사용해오다 미군 자체의 축소 필요와 우리측의 요구에 따라 다수 부지의 반환이 이뤄지면서 반환기지 환경치유 문제는 계속 첨예한 이슈가 되어 왔다. 그리고 특별양해각서상 KISE의 범위를 두고 양측은 수많은 논쟁을 해왔다.

한.미 SOFA는 한국의 민주화, 사회.경제적 발전, 그리고 행정의 체계화 등 상황변화에 따라 1990년 이후 거의 10년마다 개정되어 왔다. 환경분야에서 본다면, 우리나라는 1990년 처음으로 ?환경정책기본법?을 제정하고 이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1년 SOFA 개정시 환경조항 도입과 환경특별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은 이런 우리 국내 환경정책의 발전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지난 10년간 우리의 환경인식의 수준은 더욱 높아졌고, 환경기준도 크게 강화되었다. 다이옥신, 석면, 유해화학물질 등에 대한 규제가 보다 철저해 졌고, 환경정책도 관리적 측면의 보호 수준을 넘어 사전예방적 보건 개념으로까지 확대되었다. 2차 SOFA개정에서 미국은 우리의 환경법령과 기준을 존중하고, 한.미 양국의 환경기준중 더 엄격한 것을 주한미군기지에 적용한다고 합의했다. 양측은 우선 이러한 기존 합의를 적극적으로 운용하여 당장 시급한 고엽제 문제부터 처리하면서, 그간의 변화된 여건을 반영하는 3차 개정도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여 당장의 조치와 SOFA 개정 방향에 대해 몇 가지 제안한다.

첫째, 법적 권리의무차원을 넘어 ?캠프 캐럴?을 포함한 주한미군기지 전반의 환경실태에 대해 즉시 한.미 공동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이와 관련, "한국측에 기지를 반환하고 나면, 모든 책임은 한국측에게 있다"는 주한미군 대변인의 25일 발언은 적절치 못하다. 그냥 쓰고 나서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는 미국 측의 기본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 참으로 우려된다.

둘째, 조사결과 환경오염 정도를 등급별로 분류하여 시급한 경우부터 단계적으로 치유하는 방식에 합의하는 것이다.

당연히 누가 부담하느냐가 논쟁이 될 것이다. 오염 원인행위가 언제였느냐에 따라 부담주체가 다를 수 있겠지만 동맹의 정신에 따라 공동부담의 원칙을 택하는 것이 대승적 접근이라고 본다. 다만 환경오염의 원인이 고엽제 매립같이 정상적인 기지 사용의 범주를 벗어난 경우에는 미측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

셋째, 평택기지를 포함한 신규 미군기지에 대해서는 토지 제공 당시 환경상태를 공동평가하고 차후 반환시에는 기지 사용에 따른 자연적 환경변화를 제외한 비정상적 오염에 대해서는 미측이 치유의무를 지도록 하는 것이다.

넷째, 기존 SOFA에서도 주한미군 기지의 환경관리지침을 수시로 개정하게 되어 있는 만큼, 기존기지와 신규기지를 친환경적으로 지속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한.미 양국 정부는 만약 이처럼 민감한 문제에 대해 국민 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대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기지 유지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이 악화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SOFA 환경분과위원회의 정부 과장급과 미군 대령에게만 실무적으로 맡겨두고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타성적 사고로 임할 경우, 한.미 공동의 안보이익이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과거 SOFA 1차개정은 2년, 2차개정은 무려 5년이나 걸렸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미 동맹의 장기적이고 건전한 발전을 위해 양국 대통령차원에서 정치적 의지를 확고히 보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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