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가입시켜주는 보험사?…있다!"

['민영의료보험' 뜯어보기·③] "대안은 상품 표준화와 지급률 규제"

- '민영의료보험' 뜯어보기
☞① "5년 전 병원 기록, 보험금 타려니 발목 '덥썩'"
☞② 보험 가입할 땐 천사, 보험금 탈 땐 악마 "억울하면 재판하라?"

"환자를 받으면 보험사는 망하죠. 세상에 환자를 가입시켜주는 보험사가 어디 있습니까?"

민영의료보험의 지나치게 낮은 보험금 지급률에 대한 비판에 흔히 제기되는 반론이다. 하지만 민간보험사가 환자의 가입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나라는 의외로 많다. '보험사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조차 일부 주에서는 그렇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미국에서 8개 주는 원하는 모든 사람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보험사에 의무를 부과하고, 뉴욕 주를 비롯한 8개 주에서는 개인의 건강이나 질병에 따라 보험료를 달리 받을 수 없도록 규제한다"고 말했다. 공적인 의료보험 체계가 덜 갖춰진 미국은 민간보험회사가 어느 정도 공적인 구실을 하도록 유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의료 시스템이 비교적 잘 갖춰진 유럽도 민영의료보험의 역할은 공공보험을 보조하는 데 그치도록 강제한다. 민간보험사일지라도 '사회연대 책임'을 강조하고 가입자의 연령이나 질병 이력을 근거로 가입을 거절할 수 없게 한 예도 있다.

▲ 2008년도 한국의 300만 원 이상 고액진료 환자 수(1만 명당) 및 민영의료보험사의 가입·거절대상. ⓒ진보신당

'주식회사' 보험 vs '상호회사' 보험

유럽에는 애초 기업이 운영하는 '상업형 보험' 자체가 적다. 200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민간의료보험 관리의 외국사례'라는 보고서를 보면, 프랑스에서는 민간보험시장 중에서도 '주식회사' 형태의 민영보험회사의 시장점유율은 20%를 조금 넘는다. 나머지 민간보험사의 대부분이 사실상 비영리 목적으로 만들어진 '상호회사' 형태다. 한국에서도 보험업법상 '상호회사'를 만들 수 있지만, 주식회사와 상호회사의 비중이 100:0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상호회사는 공공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기 전에 자발적으로 생긴 비영리 조직이다. 같은 지역에 살거나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질병, 사망 등 사고에 대비해 만든 일종의 자구책이다. 김미숙 보험소비자협회 대표는 "상호회사는 이를테면 1만 명에게 1000원씩 걷어서 암 진단을 받은 사람에게 1000만 원을 주는 식으로 비영리로 운영된다"고 말했다.

상호회사의 주주는 대개 노동조합이나 협동조합의 조합원이다. 조합원들이 낸 돈에서 초과 수익이 나면 다시 조합원들에게 돌려준다. 이윤을 창출하고 주주들에게 수익을 배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식회사 보험사'와는 그 목적이나 운영 원리가 다르다. 한국에서처럼 주주 배당을 과도하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에 거품이 생기지 않는다는 얘기다.

목적이 상부상조인 만큼 운영 방식도 공공보험과 비슷하다. 프랑스의 상호회사인 '뮈뛰엘'은 모든 단체 가입자에게 소득에 비례해 단일보험료를 책정했다. 고위험군에 속하는 사람의 가입을 제한하지도 않는다. 성별이나 건강상태로 보험료에 차등을 둘 수도 없다. 단, 개인 가입자에 한해 오직 나이에 따라 보험료를 다르게 책정할 수 있다.

"마음껏 팔아라, 의료 공공성을 위축하지 않는 선에서"

▲ 한국의 민영의료보험 광고들. 김미숙 보험소비자협회 대표는 한국의 민영의료보험이 500여 개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외국에서는 민영의료보험사의 무분별한 상품 개발이 규제되는 경우가 많다.
건강보험의 보충형 보험에 대해서는 상호회사뿐만 아니라 주식회사 형태의 민영의료보험사도 규제를 받는다.

프랑스의 민영의료보험사가 특정 질병에 걸린 사람의 가입을 거부하기 위한 조건은 까다롭다. 보험자가 보험 가입 전에 그와 같은 제약조건을 분명하게 정해야 하고, 소비자들이 보험 가입 전에 그와 같은 제약조건을 인식했다는 사실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민영의료보험사일지라도 가입 후 2년이 지나면 보험자는 계약을 해지하거나 적용 수준을 축소할 수 없다.

사실 프랑스에서는 비용 지출이 많을 사람을 찾아내 가입을 제한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 암, 에이즈 등 중증질환에 걸린 사람들에게 사실상 무상 의료를 시행하기 때문이다. 자연히 민영의료보험의 보장 범위는 건강보험이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치과나 안과 등으로 역할이 줄었다. 나머지 큰 병은 공공보험인 건강보험이 보장한다.

아예 상품의 종류나 보험료율을 엄격히 규제하는 국가도 있다. 민영보험사가 공공보험의 역할을 맡을 때다. 김창엽 교수는 "주의할 점은 네덜란드의 경우 공적기관이 해야 할 역할을 민간보험사에 맡겼다는 점"이라면서도 "그 대신 보험사가 파는 상품의 종류나 보험료를 엄격히 규제한다"고 말했다. 보험사가 파는 기본 보험이 사실상 공공보험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보험사는 기본 상품에 추가 선택지를 붙여서 팔 수 있을 뿐이다. 김 교수는 "이런 경우를 한국에서와 같은 민영의료보험 형태로 봐야 하는지는 논란이 있다"고 덧붙였다.

대부업체도 이자 제한, 보험사는 지급률 제한 없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06년 '외국 민간의료보험 현황'이라는 자료에서 한국 민영의료보험의 문제점으로 △낮은 지급률과 상대적으로 높은 관리운영비로 가입자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혜택이 적다는 점 △보장내용과 가격이 천차만별인 복잡한 상품으로 소비자의 비교를 불가능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보험 상품 간의 정당한 시장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 등을 꼽았다.

공단은 또한 "OECD 국가의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와 같은 민간의료보험시장의 규모를 지니고 있으면서 정부의 규제가 없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한국도 미국과 같이 복잡한 보험 상품을 표준화하고, 보험금 지급률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국가가 보험사가 폭리를 취하지 못하도록 지급률을 규제한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규제가 없다. 미국의 메디갭(Medigap)을 예로 들어보자. 메디갭은 미국의 공공보험인 메디케어의 보충형 보험으로 민영의료보험이다. 메디갭에서는 개인보험은 보험료 대비 65%로, 단체 보험은 75%로 지급률을 규제한다. 보험사가 100원을 받으면 70원 정도는 가입자에게 돌려주게 돼 있다.

메디갭은 정부가 정해놓은 12가지 유형의 보험만 팔게 돼 있다. 나머지는 못 판다. 호주에서는 정부가 정해놓은 보장 항목을 꼭 포함해서 넣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한국처럼 보험회사가 자기 마음대로 파는 게 아니다. 정부가 보험 상품을 표준화해야 소비자도 (어떤 상품이 좋은지 비교해서) 알 수 있다. 이게 되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이 상품이 좋은지 저 상품이 좋은지 구별할 수 없다."


정당 차원에서도 민영의료보험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민주당은 오는 7월 안에 실손형 보험에 대한 통제를 뼈대로 한 '민영의료보험법' 초안을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민주당 박은수 의원실은 "보험사가 인위적으로 소비자 가입을 거절하지 못하게 하고, 보험금 선제 지불방식을 도입하는 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의원실 측은 "현재는 환자와 보험사가 치료비를 사후에 정산하면서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며 "환자와 보험사가 아닌 보험사와 병원이 치료비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보험사와 병원의 분쟁을 막기 위해서 공신력 있는 심사기관의 개입을 허용하겠다는 구상이다.

한국 보험 산업의 폐해를 오랫동안 연구했던 이들은 대체로 한목소리다. 민영의료보험의 폐해를 없애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것이다. 김미숙 대표는 "현행 국민건강보험에는 몇 가지 결함이 있다. 이걸 해결하면 '의료비를 지급하는' 형태의 보험 상품은 자연히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주주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영리보험사는 다른 조건의 보험을 팔아 이익을 남기려 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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