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병원 기록, 보험금 타려니 발목 '덥썩'"

['민영의료보험' 뜯어보기·①] "민영의료보험 가입하느니, 로또 산다?"

경제 규모가 커졌다지만, 가족 중 한 명이 큰 병에 걸리면 집안이 거덜나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중산층이 하류층으로 떨어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이를 막으려고 전국민건강보험 제도가 도입됐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건강보험이 지원하지 않는 '비급여' 진료 항목이 워낙 많아서다. 보장성이 60% 수준에 불과한 건강보험만 믿기에는, 다들 미래가 너무 불안하다.

그래서 뜨는 게 민영의료보험이다. 건강보험의 빈 자리를 치고 들어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 10가구 가운데 8가구 꼴로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했다. 한 가구 당 평균 민영의료보험 3.62개에 가입해 보험료로 월평균 27만6000원을 썼다. 지난달 열린 보건의료정책 포럼에 따르면, 2008년 민영의료보험 시장 규모는 33조4000여 억 원으로 국민건강보험(24조 원)보다 9조 원 정도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걱정스러워 한다. 누구나 느끼는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민영의료보험 시장 확대'로 푸는 길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푸는 길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는 게다. 경제적 효율성으로 보나, 사회 공공성과 인권이라는 틀로 보나 후자가 훨씬 유리하다는 데 동의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는 아직 소수 전문가 집단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날로 팽창하는 민영의료보험 산업의 문제점과 대안을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A씨는 5살 난 자녀 이름으로 2008년 한 민영의료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보험사 측이 가입 시 자녀의 병력을 묻자 A씨는 2006년에 자녀가 감기로 통원치료를 받고 입원한 적이 있다고 보험사에 알렸다. 당시 의사는 아이가 감기로 열이 나서 경기를 일으켰다는 사항 외에 다른 병명을 알려주지 않았고, A씨는 자녀의 병력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문제는 2009년 자녀가 병원에서 '우측 근위 요골 호산구성 육아종' 판단을 받고 나서다. A씨는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지만, 보험사는 "의료기록에 의하면 폐렴으로 입원한 것을 비롯하여 천식 등으로 지속적인 통원 치료를 받아온 것이 확인돼 계약 전에 알릴 의무를 위반했다"며 갑자기 계약을 해지했다.

"진실은 보험금 청구할 때 드러난다"

▲ 김미숙 보험소비자협회 대표는 "보험사는 소액의 보험금은 청구 즉시 지급해 가입자의 환심을 사지만, 막상 고액 보험금을, 혹은 소액이라도 반복해서 지급할 일이 생기면 보험사는 악마로 돌변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민영의료보험 광고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민영의료보험 피해 사례'의 일부다. 전문가들은 "민영의료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쳐놓은 함정은 곳곳에 있다"고 지적한다. 김미숙 보험소비자협회 대표는 "보험에 가입하거나 보험료를 납부할 때는 별 문제가 없다"며 "문제는 보험 가입자가 불행을 당해 거액의 보험금을 청구하는 시점에 드러난다"고 말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암 보험, 3대 질환 보험 등 아팠을 때 의료비를 보상해주는 민영의료보험사가 즐겨 쓰는 무기는 대체로 정해져 있다. 바로 보험사에 알릴 의무인 '고지의무 위반', '자필서명 미이행', '타 보험사의 가입사실 은닉' 등이다. 김 대표는 "이처럼 절차상 보험금을 받을 수 없는 사유들만 찾아도 이미 90% 이상의 가입자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대상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흡연자이거나 가족병력이 있거나, 대리운전업과 같이 위험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미리 보험사에 서면으로 이를 알리지 않으면 '고지의무 위반'에 해당해 보험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 보험 가입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소한 병력도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는 무기가 된다.

김 대표는 "운 좋게도 보험이 보장하는 질병에 해당될 지라도 '확정진단이 아니라 임상추정이다', '질병분류코드가 맞지 않는다', '입원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보험금을 지급하는 수술방법이 아니다' 등에서 보험금 지급이 거부되거나 일부 삭감된다"고 지적했다.

"보험금 지급 막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한다"

보험사는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는 사기업인 만큼, 가입자에게 가능하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심지어 보험 가입자가 청구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금액인 '보험금 불지급액' 목표치를 세우고 초과 달성을 독려한 보험사도 있었다. 또 이 과정에서 보험사가 병원, 경찰서 등을 상대로 광범위한 불법 로비를 한 사실도 드러났다. 뇌물을 주고 빼돌린 고객 정보를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근거로 활용하는 것이다. (☞관련 기사 : 삼성생명의 비밀…"고객 정보 불법 확보·로비 있었다")

이에 대해 김종명 진보신당 건강위원회위원장은 "(전체적으로 보면) 민영의료보험의 지급률이 너무 낮다는 점이 진짜 문제"라고 강조했다. 보험 가입자들이 낸 돈에 비해서 돌려받는 혜택이 적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앞서 언급한 보험사의 횡포 또는 불법 행위가 있다.

로또보다 못한 민영의료보험 지급률

진보신당이 지난 1월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민영의료보험의 지급률은 30~40%에 불과하다. 진보신당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암 발병률을 근거로 L생명보험사의 암 보험(월 1만6200원 납부, 진단 시 일반 암 4000만 원, 기타 암 400만 원 지급, 첫 2년간 보험금 절반만 지급) 지급률을 유추했다. 40세 남성 1000명이 1만6200원씩 10년 동안 낸 보험료는 19억4400만 원이다.

그런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40세 남성 1000명 중 매년 1.91명이 암진단을 받는다. 10년 간 생긴 암 환자 19.1명이 4000만 원을 받으면 보험사가 지급해야 할 보럼료는 7억6400만 원이다. 보험회사가 지급한 보험료 7억6400만 원에서 총 보험료 수입인 19억4400만 원을 나눈 비율인 지급률은 39.3%에 불과하다.

이마저 400만 원짜리 기타 암에 걸리거나, 첫 2년간 보험금의 절반만 지급한다는 단서를 적용하면 지급률은 더 떨어진다. 김미숙 대표는 "보험금뿐만 아니라 이전 해에 넘어온 이월금과 투자순이익까지 고려하면 (분모가 커지므로) 보험사의 지급률은 더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역시 지난 9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손해보험사가 장기손해보험에서 실제 의료비로 지출하기 위해 책정한 금액인 위험보험료는 전체 보험료의 23%에 불과하다"며 "이를 토대로 유추해 보면 민영의료보험 시장 규모는 33조 원에 달하지만, 그 중 의료비 지출에 쓰려고 모은 돈은 8조 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로또의 경우, 복권 및 복권기금법에 의해 전체 판매 복권액 대비 최소 50% 이상을 지급하게 돼 있고, 카지노 슬롯머신 게임의 배당률은 75% 이상으로 규제한다. 민영의료보험의 배당률이 로또나 카지노보다도 못한 셈이다.

건강보험 지급률 168% vs 민영의료보험 지급률 30~40%

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2009년 건강보험 지급률은 무려 168%에 이른다. 건강보험의 지급률이 이렇게 높은 까닭은 현행법상 기업이 직장 가입자 건강보험료의 50%를 부담하고, 정부는 이렇게 확보된 전체 보험료 수입에서 총 20%를 다시 국고로 지원하기 때문이다.

김종명 위원장은 "민영의료보험의 보장률이 최대 40%라면, 가입자에게 지급하지 않은 돈은 보험회사가 주주 배당을 하거나 다른 곳에 투자한다"고 얘기했다. 한마디로 고객 돈으로 돈놀이를 한다는 말이다. 김 위원장은 "삼성생명의 자산이 133조 원인데 유가증권에만 74조 원을 굴리고 있다"며 "확실한 것은 고객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고객에게 돌아가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 1998년도 삼성생명 내부 자료 가운데 일부. 병원 원무과 직원에게 주는 추석 선물 계획이다. 당시 삼성생명은 병원마다 '협력자'를 두고 관리해 왔다. 이들 협력자가 제공한 환자 정보는 보험금 지급을 막는 근거로 활용됐다. 보험사가 거둔 천문학적인 이익은 상당 부분 이런 불법 행위에 기인한다. ⓒ프레시안

20조 폭리 생명보험 산업

금융소비자연맹도 "생명보험사들이 지난 10년 동안 20조 원 가까운 이익을 남기면서 폭리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삼성생명은 지난해 약 2조 원의 사상 최대 순이익을 기록했고, 이건희 회장은 830억 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애초 보험사가 큰 이익을 낸다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지 않다. 보험사는 '수지상등의 원칙'에 따라 운영된다. 보험학 교재를 조금이라도 펼쳐봤다면, 누구나 아는 내용이다. "들어올 (순)보험료 총액이 나가야 할 보험금 총액과 같아야 한다"라는 게 '수지상등의 원칙'이다. 그리고 보험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는 '수지상등의 원칙'에 따라 보험금으로 돌려받게 되는 순보험료와 보험사의 사업비, 주주배당금 등으로 나뉜다. 보험사가 이익을 많이 내려면, 가입자가 받게 될 보험금에 비해 보험료가 높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보험사의 천문학적 이익은 보험료 책정방식의 불합리성을 보여주는 근거일 따름이다.


▲ 1998년도 삼성생명 내부 자료 가운데 일부. 보험금 불지급액과 불지급건 비율이 체계적으로 관리돼 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른 내부 자료를 보면, 보험금 불지급액과 불지급건 비율이 직원 진급 기준으로도 활용돼 왔다는 점이 드러난다. 보험사는 무리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려 애쓴다. 이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저질러진 경우도 있다. ⓒ프레시안

2500원 vs 4만9900원…"민간의료보험의 비효율 심각"

더 큰 차원의 문제제기도 있다.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민영의료보험은 심각하게 비효율적이라는 게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의료민영화 논쟁과 한국의료의 미래>라는 책에서 암 치료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계산했다. 2007년 한해, 암 환자 치료비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출한 금액은 1조6000억 원이다. 여기에 더해서 환자 혹은 보호자가 쓴 돈이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이 돈을 약 1조5000억 원으로 계산했다. 이는 암 질환에 대해 무상의료를 실현하는데 1조5000억 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는 뜻이다. 조금 넉넉하게 잡은 수치다. 얼핏 많아 보이지만, 국민 한 사람당 1년에 3만 원꼴이다. 건강보험료로 한 달에 2500원만 더 내면, 암에 대해선 병원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다.

반면 민영의료보험사의 암 보험 상품에서는 40세 남성이 한 달에 4만9900원을 보험료(20년 납부, 80세 만기, 진단 시 일반 암 2000만 원, 고액 암 5000만 원 지급)로 내야 한다. 보험 가입자가 낸 돈에는 보험회사의 광고비를 비롯한 사업비와 주주배당금 등이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한 달에 2500원만 더 내면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국민건강보험 방식에 비해 훨씬 비효율적이다.

건강보험은 가족 단위로 가입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민영의료보험은 개인별로 가입해야한다. 이런 차이에서 생기는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은 "건강보험은 내가 가입함으로써 온 가족이 혜택을 받지만, 민영보험은 아이 따로 부모 따로 개인별로 다 가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모든 질병을 보장받기 위해 암보험, 상해보험, 치과보험 등을 모두 따로따로 가입해야 한다면, 앞서 언급한 비효율은 더 심각해진다.

"노인, 장애인, 만성질환자는 가입 불가"

민영보험은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 김 위원장은 "의료취약계층은 민영의료보험에서 가입을 거절당한다"며 "민영보험만으로 작동된다면 광범위한 무보험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희귀질환자, 장애인, 노인,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자는 가입 거절 대상이다.

▲ 2008년도 연간 300만 원 이상 고액진료환자수, 1만 명당 ⓒ진보신당

"미국에서는 메디케어라는 공적보장보험을 시행해 65세 이상 노인에게 국가가 세금으로 의료 보장을 해주고 있다. 보장성은 형편없지만 미국도 65세 이후는 국가가 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65세 이상 노인은 소득이 사라지지만 의료비는 많이 든다. 노인 의료를 민영보험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미국도 어쩔 수 없다.

민영보험 가입자 수는 노인층에서 떨어지지만, 실제로 의료가 가장 절실한 계층은 노인층이다. 젊은 층이라도 고위험군인 당뇨병, 고혈압 같은 위험요인을 갖거나, 선천질환, 희귀난치성 질환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은 전부 가입 거절 대상이다. 메디케어라는 공적 보험이 있음에도, 미국의 젊은 사람 중에서도 무보험자가 15%에 달한다. 엄청난 수치다."


대안은 건보 보장성 강화

이 때문에 보험 관련 시민단체는 "의료 서비스는 건강보험제도 안에서 사회연대의 원리로 제공하고, 현재 60% 수준에 불과한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위원장은 "건강보험은 사회연대의 원리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소득 있는 사람이 비용을 부담하고 의료 서비스는 필요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받는 구조"라며 "내가 지금 소득에서 보험료를 내지만 나중에 노인이 돼서 소득이 없어지더라도 나의 후세대가 내는 보험료 덕분에 혜택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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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5년 전 병원 기록, 보험금 타려니 발목 '덥썩'"
☞② 보험 가입할 땐 천사, 보험금 탈 땐 악마 "억울하면 재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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