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와의 약속도 저버리고 훌쩍 떠나셨네요.
3년 전 가을에 찾아뵈었을 때 꼭 저희에게 식사 대접을 할 기회를 주신다며 아주 조촐한 한식집에서 저희 부부들을 위해 점심을 대접해 주셨지요. 12년 전 가을에 처음 뵈었을 때도 선생님께서 손수 운전하셔서 메기탕집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선생님을 뵙게 된 인연은 선생님이 쓰신 <역정>이라는 자서전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선생님의 긍정적인 삶에 대한 자세와 굳은 신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진솔한 표현들에 매료되었었지요. 한 저자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찰할 수 있는 용기와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저는 며칠 생각 끝에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보기로 결심했었습니다.
당시 저는 외국에 오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운동권 학생들의 대부라는 선생님의 명성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전환 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등의 책으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 계셨습니다. 정치에 문외한이었던 저는 오직 <역정>에서 보이는 선배 지식인을 만나뵙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선생님은 별다른 물음도 없이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고 저희가 선생님이 계시는 군포 아파트를 찾은 것은 1998년 10월 2일 청명한 가을이었습니다. 저는 만나 뵐 수 있다는 허락을 받고 한국행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에야 선생님의 명성과 위상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꽤나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선생님 내외께서는 저희를 편안하게 대해주셨고 사모님은 누나처럼 스스럼없이 저희를 포근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정치에 대해서는 말씀을 아끼셨지만 우리는 사소한 일상사에서부터 종교에 대해서까지 대화를 넓혀 갔었지요.
메기탕집을 찾아가던 차 속에서였습니다. 차 핸들에 한문으로 7개의 글자가 적혀 있는 작은 쪽지를 보았지요.
厚, 淡, 受, 心, 徐, 順, 樂
나는 호기심이 나서 선생님께 여쭤보았습니다.
"내가 내 자신에게 주는 maxim(격언)이지요."
아주 담담하고 짧은 응답이셨습니다. 다시 설명을 요구하는 제게 선생님은 이제 풀이까지 해 주셨습니다.
"厚는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고,
淡은 담박하고 욕심이 없이, 너무 짙지 않게,
受는 거두어들일 수 있도록, 발산을 많이 했어요. 애증, 감정, 말, 행동들을 발산하지 말고 거둬들이라는 뜻이지요.
心은 명심보감에 담욕대하고 심욕소하라는 말이 있어요. 맘을 쓰는 것은 세세하게, 차분하고 잔잔하게 하라는 말이지요.
徐는 순전히 차 운전 때문에 썼지요. 서서히 운전하라고.
順은 자기주장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순리대로 살라는 것이지요. 사회적인 규정도 좋고 우주의 원리도 좋고.
樂는 요산요수에서 따온 건데, 산과 일치하는 것 같은 기분으로, 나는 그런 경지까지는 어림도 없지만, 요산 요수하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라는 뜻이지요.
어디까지나 나의 자의적인 maxim이에요."
당대의 석학이라고 불리는 70세를 바라보시는 리 선생님의 소박하고 진솔한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최근에 어디에서인가 인터뷰를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나는 이제 공자의 삶에서 노자의 삶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선생님의 삶은 겸양, 소박, 순수하심이었고 그 안에 뜨거운 열정과 신념을 늘 지니신 분이었습니다.
2004년이었던가 선생님이 뇌졸중 후유증으로 보행이 불편하신데도 지팡이의 도움으로 저를 만나러 서울에 나오셨던 일이 생각납니다. 옥살이 뒷바라지를 하신 사모님께 늘 미안하게 생각하시다던 말씀과 감옥에 있는 동안에 어머님 영결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불효에 마음 아파하시던 선생님을 이제는 뵙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모님. 이제 선생님은 가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 마음속에 남아 계십니다.
3년 전에 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저도 이번 제 건강관리를 잘해서 사모님을 찾아뵙겠습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선생님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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