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아시안게임 우승 이후 1998년(8강전 패배)을 제외하고는 1990년, 1994년, 2002년 아시안게임 4강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던 한국 축구의 아시안게임 '4강 징크스'가 어김없이 카타르 도하에서도 재현됐다.
전반 24분 미드필드 지역에서의 '킬러 패스'를 이어받은 이라크의 최전방 공격수 칼레프지는 한국 수문장 김영광과 일대일 상황을 연출했다.
그의 슈팅을 문전에 위치해 있던 김진규가 가까스로 걷어냈지만 리바운드된 이 볼을 무즈벨이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켰다. 상대에게 허용한 역습 상황에서 창촐지간에 벌어진 장면이었다.
12일 오후 10시(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알 가라파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이라크와의 2006 도하 아시안게임 준결승전에서 핌 베어벡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압도적인 볼 점유율을 보이고도 역습 한방에 무너지며 0-1로 무릎을 꿇었다.
이로써 20년만에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겠다던 한국 축구의 목표는 물거품이 됐고, 결국 베어벡호는 오는 14일 오후 11시30분 알 가파라 스타디움에서 카타르-이란전 패자와 동메달을 놓고 다투게 됐다.
박주영-정조국을 최전방에 포진시킨 베어벡호는 경기 초반부터 상대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전반 9분 이천수가 찬 코너킥을 박주영이 왼발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상대 골키퍼가 가까스로 막아냈다.
전반 15분에는 김치우의 크로스에 이은 이천수의 슈팅이 빗맞아 정조국의 앞으로 이어졌고, 정조국이 이를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골문을 외면했다.
계속 상대를 압박해 나가던 한국은 전반 24분 상대의 역습 한방에 무너지며 0-1로 리드 당하기 시작했다. 골을 기록한 무즈벨은 유니폼 가슴에 새겨진 이라크 국기에 입맞춤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이후 한국은 지속적으로 상대 문전을 두드렸지만 좀처럼 골그물을 흔들지 못했다. 전반 26분 이호의 문전 헤딩슛은 크게 바운드되며 상대 골키퍼의 손을 맞고 코너 아웃됐고, 30분 이천수의 터닝슛도 불발로 그쳤다.
베어벡호는 후반 11분 정조국 대신 김동현을 투입하며 공격의 수위를 한층 높였다. 김동현은 힘과 높이를 활용한 포스트 플레이를 펼쳤고 후반 15분과 17분 연이어 헤딩슛을 시도했지만 상대 수비수와 골키퍼에 차단됐다.
다급해진 한국 대표팀은 후반 20분 수비수 김진규 대신 미드필더 김두현을 내보내며 한층 더 상대 수비진을 압박했다.
그러나 상대의 밀집수비는 쉽사리 슈팅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후반 25분 박주영이 시도한 회심의 터닝슛도, 몸을 날리는 김동현의 헤딩슛도 이라크의 문전을 허물지 못한 채 아쉬운 종료 휘슬을 맞이했다. / 이지석 기자
[임종헌의 관전평] '단조로운 90분'이 패배 불렀다
안타깝다. 그 어느 때보다 금메달에 가까워진 대회였다. 8강전에서 '난적' 북한을 제압했고, 일본과 중국이 일찌감치 떨어진 상황이었다.
아무리 중동의 모래폭풍이 거세다고 하지만 이번 대회 4강에 올라온 다른 팀들을 냉정하게 평가할 때 결코 준비된 팀은 없었다.
그러나 한국 축구대표팀은 이라크에게 안타까운 패배를 당하며 아쉬운 기회를 놓쳤다.
선수들의 심정에 충분히 이해가 가 마음이 아프다. 병역 혜택을 받아 선수로서 성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심정이 오죽하랴. 일단 4강까지 올라간 선수들을 위로하고 싶다.
그러나 경기 분석은 냉정해야 한다. 지금의 패배를 보약으로 삼아야 한단계 발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베어벡호는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베어벡 감독이 즐겨 사용하는 4-3-3 포메이션이 과연 한국 축구에 적합한가에 대한 의문이 앞선다. 4-3-3 포메이션은 네덜란드의 토털사커에 뿌리를 둔 전형이다. 원톱으로 나서는 스트라이커의 파괴력과 측면 공격수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과연 한국에는 아르연 로번 같은 날개가 있는가? 판 니스텔로이처럼 동물적으로 문전에서 골냄새를 맡는 최전방 스트라이커가 있는가?"
대답은 부정적이다. 선수 구성에 맞춰 시스템을 정립해야 하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사항이지만 베어벡호는 시스템에 선수들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이라크전에서 나온 한국팀의 플레이 패턴은 8강 북한전을 제외한 다른 경기들과 똑같았다. 너무 단조로웠다. 양쪽 측면의 이천수-염기훈은 단순히 측면을 오르내리기에 바빴고, 문전에서는 수적 열세에 놓인 정조국 혼자 해결하려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재현됐다.
두터운 수비진을 구축한 상대 수비진을 끌어내려면 선수들이 포지션 체인지나 활발한 몸놀림을 통해 전후좌우로 지속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데 그런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
상대 수비진을 끌어내리려는 노력이라고는 단순히 후방에서 볼을 돌리는 게 고작이었다. 이라크뿐 아니라 우리와 상대하는 팀은 다 똑같은 전술을 활용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라크전에서 해법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방의 공격수들이 찬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미드필드 진영에서 수비 뒷공간으로 나가는 패스는 실종됐다.
스트라이커들이 미드필드 지역으로 내려갔다가 뒷공간으로 때려주는 패스를 연결받아 파고 들어야 하는데 상대 수비진을 일자로 세워놓고 뒤에서 볼을 받으려다 보니 찬스가 만들어질 리 없었다. 심지어 이대일 월패스 한번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런 답답한 상황이 90분 간 계속됐다.
득점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상대 수비라인을 흐트러뜨려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단조로운 공격 패턴에 적응한 상대 수비라인은 좌우로만 움직일 뿐이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상대는 수비하기가 쉬울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측면에서의 단조로운 크로스에 의한 득점 방식을 고수할 생각이었다면 왜 후반 들어 최성국-김두현 등 단신 선수들을 투입했는지도 알 수 없다. 결과론이지만 높이를 활용하려면 차라리 문전에 정조국-김동현 투톱을 동시에 포진시켰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여러 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회에 답답한 90분이었다. / 임종헌 울산현대 코치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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