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조짐은 지난해 6월 요미우리 사설에서 나타났습니다. 야스쿠니(靖國)신사를 대체할 신사를 세우자고 주장한 것이죠. 급기야 올해 들어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서 중도 성향의 아사히(朝日)신문과 공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고이즈미가 자신과 같은 원로를 대접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한 와타나베의 불만 표시로 풀이합니다.
일본 작가 오다 마코토(小田 實) 같은 이는 또 다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거부하도록 함으로써 과거 전쟁범죄에 대한 면죄부를 받도록 하는 동시에 평화헌법을 수정할 명분을 쌓아 군수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려 한다"는 분석입니다.
그의 속셈도 머지않아 드러나겠지요.
〈박스 시작〉
***언론과 권력…와타나베 쓰네오 이야기 (3)**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게는 1000만 부를 발행하는 신문이 있다. 1000만 부의 힘은 총리도 움직일 수 있다. 오부치 게이조(小淵 惠三) 총리와는 거의 매주 통화하고 오자와 이치로(小澤 一郞)와도 마찬가지다. (…) 소득세나 법인세 인하도 요미우리가 1년 전에 쓴 기사대로 됐다.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내가 천벌을 받지."
〈언론과 권력〉의 저자 우오즈미 아키라와의 인터뷰에서 와타나베가 한 말이다.
요미우리가 지면을 통해 밀어준 '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이나 '히노마루ㆍ기미가요 법안' 등도 잇따라 통과됐다.
가이드라인 관련법이란 1997년에 미국과 일본이 개정한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시행하기 위해 일본이 제정한 법을 말한다. 핵심적인 내용은 일본 주변지역에서 무력분쟁 등의 사태가 일어날 경우 미군을 후방에서 지원하고 전투에서 부상한 미군을 수색 및 구조하는 활동을 벌이며 유엔 결의에 따라 선박을 검사한다는 것이다.
히노마루ㆍ기미가요 법안을 통해 군국주의의 유산으로 터부시되던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국기와 국가로 복권됐다.
그러던 와타나베가 방향을 선회했다. 아사히신문사가 발행하는 월간지 '론자(論座)' 2월호에서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 啓文)와 대담했다. 이 대담에서 와타나베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비판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아사히신문과 공조하기로 했다.
와타나베는 말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군국주의를 부채질하고 예찬하는 전시품을 늘어놓은 전쟁박물관이 있다. 그런 곳을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고이즈미는 정치를 해야지 이데올로기 장사를 해서는 안 된다."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는 톤을 더욱 높였다.
"고이즈미가 '야스쿠니 참배가 뭐가 잘못된 것이냐'고 어리석은 말을 하는 것은 역사나 철학을 모르면서 공부도 하지 않고 교양도 없기 때문이다. 가미카제 특공대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용맹과 기쁨으로 갔다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며 그들은 도살장의 양일 뿐이었다."
와타나베는 1926년생으로 80세다. 와카미야는 58세로 와타나베의 아들 뻘이다. 와카미야는 도쿄(東京)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1970년에 아사히(朝日)신문에 입사해 정치부에서 일한 뒤 논설위원과 정치부장을 거쳐 2002년부터 논설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1년부터 1년 간 서울에서 어학연수를 했고 2001년에는 반년 남짓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지냈다.
그는 1995년에 아사히신문 사설에서 한일월드컵 공동개최를 제안했다. 지난해 봄에는 '독도를 한국에 양보해 우정의 섬으로 하자'는 칼럼을 썼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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