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반세계화 시위 주도? 자랑스럽지 않다"

[인터뷰] 윤금순 전여농 회장 "어디든 소농 처지는 다 같아"

한국 언론이 농민과 농업 문제를 외면한다며 불만을 터뜨리던 한국의 농민들이 홍콩에서 원정시위를 하며 원 없이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다. 홍콩 언론들은 WTO 각료회의의 내용보다도 한국 농민, 노동자들의 시위 소식을 주요 기사로 보도하며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13일 해상시위와 경찰과의 몸싸움은 한국 시위대가 본보기로 해보는 과정이었을 뿐이며 앞으로 한국 시위대의 시위는 얼마든지 과격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고, 4개 면을 시위소식 보도에 할애한 〈홍콩 문회보(文匯報)〉는 "홍콩 경찰이 최루액을 뿌린 것은 과단성 있는 결단이었다"면서 "앞으로도 강력한 대처로 한국 시위대의 폭력행위를 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국 참가단은 어떻게 생각할까? 14일 '아시아민중결의대회'가 열린 빅토리아 공원의 한켠에서 윤금순 전국여성농민회연합회장을 만났다. 윤 회장은 홍콩 언론들의 끊임없는 인터뷰 요청으로 약간 지쳐 있었다.

***"한국이 반세계화 시위 주도? 자랑스러워할 일 아니다"**

〈프레시안〉: WTO 각료회의를 반대하는 시위대의 절반 이상을 한국 참가단이 차지하고 있다. 원인과 의미를 어떻게 보나? 이제 반세계화 운동을 한국이 주도하게 됐다는 말도 나오고 있고, 특히 홍콩 언론들이 한국 시위대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윤금순: 한국 농민이 대거 참가한 만큼 한국 농민운동이 강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그만큼 한국의 상황이 나쁘다는 의미도 있다. 사람 수가 많다고 자랑스러워할 일이 아니다. WTO 체제로 인해 한국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입고 악영향이 나타난 분야가 농업인데다가 이번 회의가 열린 장소가 홍콩이라서 아시아, 특히 한국에서 대거 참가하게 된 것이다. 2년 전 멕시코 칸쿤에서는 아시아인들이 이번처럼 많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국제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계기인 이곳 시위에 좀더 많은 세계인들이 참여하지 않아 아쉽다. 홍콩 언론은 한국 참가단에 대해 트집 잡을 것만 찾는 것 같아 대응에 각별히 유의하고 있다.

〈프레시안〉: 비아캄페시나 등 농민단체 관계자들은 세계의 농업 시스템을 소규모, 친환경적 가족농과 대규모 반환경적 기업농으로 나누던데, 한국은 '산업화된 가족적 소농' 아닌가. 한국 농업의 위치가 애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윤금순: 제3세계의 경우 유기농을 하는 소농이 많지만, 한국보다 대부분 농지의 규모가 크고 인구밀도가 높지 않아 작은 면적에 많은 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한국의 화학농가들보다 쉽게 친환경 농법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3세계의 가족농가들도 점점 수출곡물을 산업적으로 재배하는 초국적 농업기업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어 독립적 지위를 잃고 농업노동자로 편입돼 가는 형편이다.

***"선진국이건 개도국이건 '소농'은 '농업무역'을 원치 않는다"**

기업농이 발달한 미국, 유럽, 호주에서도 기업농 비율은 아주 낮으며, 나머지 대다수 소농은 처지가 비슷하다. 미국 농민들도 덤핑 수출을 위한 대량생산으로 농산물 가격이 떨어져 고통받고 있는 것을 보면, WTO 체제 하에서는 전 세계 농민들이 다 같이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그러나 제3세계 중에서도 브라질, 인도 등은 유럽과 미국에 대해 '공정무역'을 이뤄야 한다며 농민들에게 제공하는 보조금을 줄이라는 요구를 하고 있지 않나.

윤금순: 개도국이냐 선진국이냐를 막론하고 소농은 농업무역을 주장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농업을 거래대상으로 삼는 순간부터 농업의 생산 자체보다 무역을 감당할 수 있는 자본, 초국적 농업기업들의 이윤창출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초국적기업들이 전 세계의 농업생산을 좌지우지하는 한 공정무역이라는 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프레시안〉: 그러나 이미 전 세계적으로 농업무역이 많이 진척돼 있는 상황인데 현실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건가?

윤금순: 국내에서 나지 않거나 국내의 것으로 대체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농산물은 어쩔 수 없이 수입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농산물에 대해서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최대한 국내에서 지역적인 소비로 연결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고 확충해야 한다. 학교급식조례가 대표적인 예다. 당장 농민들이 죽지 않도록 하는 보조금 지급은 필요하지만 이는 단기적 처방일 뿐이다. 보조금을 지급할 테니 국제 농업시장에서 경쟁을 하라는 것은 농업을 포기하겠으니 알아서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보조금 지급이 아닌 장기적이고 대안적인 농업회생 대안 마련이 중요한데, 이는 정부의 생각과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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