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잘못된 신화'를 더이상 주입말라

[기고] 국민연금의 '숨겨진 진실' 바로보기 "스웨덴의 악몽 잊지말아야"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의 문제 제기로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국민연금 문제가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김장관의 '사과'후 다시 수면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 과정에 노대통령이 재차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 필요성 등을 강조함에 따라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및 SOC투자는 다소 규모가 축소되기는 하겠지만 계획대로 진행될 전망이며, '주는 돈은 줄이고 거둬들이는 돈은 늘리는' 정부의 연금개혁(?)도 예정대로 진행될 게 확실시된다.

문제는 이처럼 정치적 논란을 일단 가라앉았지만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났듯 국민 다수가 국민연금에 대해 더없는 불신과 위기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불신구조를 근원적으로 해소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국민연금 논란은 계속되며 정치-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킬 게 분명하다.

특히 최근 김근태 장관이 제기한 것은 '국민연금 운용'이라는 전체문제의 일부일뿐, 이번 국회에서 정부안대로 법이 개정될 경우 평균 소득자의 연금급여액이 35만원에 불과해 노인복지 기능을 거의 못하고 있는 현실이나,수익성 중심의 운용을 하다가 민간에게 맡긴 전체기금의 3분의 1을 날린 스웨덴의 경우처럼 국민연금이 예상연도 이전에 부실화될 위험성 등은 최근 논의과정에 심도깊게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그동안 국민연금의 총체적 문제점과 대안을 일관되게 제기해온 국민연금전문가인 주은선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에게 청탁해, 국민연금의 근원적 문제점과 해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주 연구원은 글을 통해 국민연금이 노인복지라는 제 기능을 거의 못하고 있는 현실은 도외시한 채, 단지 수십년후 '고갈 위기'를 내세워 지급액은 줄이고 보험료율만 인상하려는 정부정책을 신랄히 비판했다. 아울러 최근 정부가 경기부양 및 적대적 M&A를 명분으로 국민연금을 끌어다쓰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국민연금의 부실화뿐 아니라, 장차 주가 폭락 등 금융시장 불안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 연구원은 또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주식투자를 할 경우 주식투자가들이 여기서 발생하는 주식매매차익에 대해 '연금세'를 부과하는 등 다각적 세원을 발굴하는가 하면 소득에 따른 차별적 보험료율 부과 등의 창의적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보험료율 인상을 하지 않고 국민연금 부실화를 막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 연구원의 문제제기를 계기로 국민연금에 대한 폭넓은 성찰과 논의가 진행되기를 기대하며, 반론이 있을 경우 게재할 것을 약속드린다. 편집자주

***정부, '잘못된 신화'를 더이상 주입말라**

정부의 한국형 '뉴딜'정책에 연기금 투입이 확실시됨에 따라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쟁은 기금 운용 문제를 중심으로 또 다시 가열되고 있다. 작년에 제기된 것과 동일한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 처리가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연기금 문제는 국민연금제도의 전망과 관련하여 더욱 근본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정부의 연금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사회보장제도로서 본질적인 목표인 보장성의 결여와 연기금의 무조건적 적립이 불러오는 파괴적인 결과라는 측면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1. 급여수준 하락은 노후보장제도로서 국민연금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정부의 연금법 개정안은 급여수준 하락과 보험료율 인상을 핵심으로 한다. 정부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급여수준은 당장 향후 3년 사이에 40년 가입시 평균소득자의 소득대체율이 60%였던 것이 50%로 감소하며, 보험료율은 2010년부터 20년에 걸쳐 현 9%에서 15.9%로 인상된다.

노후에 필요한 소득이 대체로 근로시기 소득의 70% 정도라고 할 때, 언뜻 보면 정부안은 필요한 70% 중에서 50%는 공적연금으로, 나머지 20%는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는 기업연금과 개인연금으로 보장한다는 합리적인(?) 가정 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업연금이나 개인연금을 통해 공적연금 감소분을 보충할 수 있는 소득계층은 중상층 이상이다. 평균소득 계층을 포함한 그 이하 계층은 사연금을 구매할 여력이 거의 없거나 기업연금으로부터도 소외되기 마련이다.

또한 가입기간과 관련하여 도식적인 가정이 아니라 현실로 눈을 돌려보자. 우선 흔히 기준으로 제시하는 40년 가입기간을 채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03년도 연금재정 추계시 현재 납부예외율 등을 고려하여 추정된 평균가입기간은 21.7년이다. 현실에 근거한 미래의 평균가입기간으로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실재하는 평균적인 은퇴자에 대한 연금급여의 소득대체율은 60%가 아니라 32.6%가 된다. 이 경우 정부안에 따른 법 개정시 연금급여액은 약 35만원-현재가치로 향후 물가에 따라 조정됨-에 불과하다.

가입기간 문제를 제도 초기에 특수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현재 노동시장 상황으로는 가입기간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우선, 전체 노동인구의 절반 이상이 불안정고용층으로서 이들 대부분은 안정적인 보험료 기여와 관리가 불가능하다. 또한, 대부분 정년이 53-57세 사이인 데다가 조기퇴직 등으로 인해 정년제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평균 가입기간이 정부의 도식적인 가정에 부합되는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은 거의 없다.

아직 국민연금 제도가 사회보장제도로서 제대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부는 적절한 보장의 문제를 도외시한 채 오히려 이를 악화시키려 하고 있다. 더구나 주거, 의료가 철저하게 시장을 통해 공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적연금의 지속적인 감액이 추진된다면, 공적연금이 유일한 안정적인 소득원이 될 대부분의 노인들이 한국사회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2. 무조건 기금적립률을 높이면 연금제도의 재정안정성이 보장되는가?**

물론 연금재정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중요하다. 재정안정성을 위해 '적정' 규모의 연기금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과연 한국의 경제규모에서 감당가능한 적정 연기금 규모가 과연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 제대로 논의된 바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 개정안은 국민연금 기금은 2036년까지 계속 증가하여 약 1,715조(GDP 대비 약 70%)에 달하여 절정에 이르지만 노령화에 의해 2047년에는 급격히 고갈된다는 예측에 근거를 두고 있다. 법 개정시 2054년 기금규모는 5,820조에 달하게 되며 고갈시점은 뒤로 미루어진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볼 것은 과연 지금 기금을 계속 쌓아두는 것이 연금재정 안정성을 보장하는 길인가 하는 것이다. 부과방식으로 운영하건 적립방식으로 운영하건, 70년 후 노인들의 노후소득보장 재원은 지금 쌓아둔 현금이 아니라 70년 후에 생산된 가치로부터 충당될 수밖에 없다. 적립된 연기금은 주식, 채권, 부동산 등의 형태를 띠며 이러한 연금자산이 금융시장 및 부동산 시장 등에서 판매되어 현금화 될 때 비로소 연금급여로 지급가능하다. 급속한 노령화는 이런 연금자산이 어느 시점부터는 대량으로 현금화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 경우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시장에서의 가치하락은 불가피하다. 즉, 연기금의 과잉적립은 오히려 연금자산의 가치하락을 가져올 수 있다. 일례로 연기금 주식시장 투입을 통해 기존의 주식시장 참여자들은 주가부양에 따른 이득을 얻을 수 있지만, 언젠가 특정 시점의 연금수급자들과 시장참여자들은 연금 주식자산의 현금화 과정에서 급격한 주가하락의 여파를 감수해야 한다. 자금시장에 일종의 공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해당 시기에 미래 연금급여를 충당할 만큼의 경제규모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연금자산을 많이 쌓아놓는다고 할지라도 노령화의 충격을 견뎌낼 수는 없다. 즉 근본적인 것은 생산성 향상, 고용확대 등을 통한 성장 동력의 확보이다. 물론 일정 규모 이상의 연기금은 필요하지만 그 적정 규모에 대한 판단 없이 이후 시장상황에 대한 예측과 안정적인 연기금 운용계획을 수반하지 않은 채 당장 연기금 적립률만 높이면 된다는 사고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이제 미래 시장상황 및 경제규모를 고려한 안정적 연기금 운용계획이 정부가 계획하는 연기금 적립과 양립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자. 기금 규모는 단순히 규모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연기금에 대한 공공의 통제력과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향후 수천조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되는 공적연금 기금을 국내 시장에서, 특히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채권시장에서만 소화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국내주식시장 또한 마찬가지의 한계를 갖고 있다. 현 상황에서 연기금은 해외 금융시장에서 다양한 형태의 투자 방식을 통해 소화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연기금 운용은 안정적 연금지급 보장을 위한 안정성 확보가 최우선이 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고위험 투자도 불가피해진다. 결국 기금규모 증가로 인해 기금의 안전한 통제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도래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스웨덴이 1998년 연금개혁 이후 도입한 PPR(premium pension reserve) 연금펀드는'자유로운' 투자의 결과 불과 2000년에서 2001년 사이에 전체 기금가치의 1/3에 해당하는 손실을 입었다. PPR 펀드는 모두 전문적인 투자회사의 펀드들에 위탁되어 운용되었으나 국제금융시장의 예측불가능성에는 불가항력이었다. 참고로 연금펀드 가치하락의 여파는 그대로 가입자들의 연금액 하락으로 이어지게 되며 투자회사의 손실은 크지 않다. 이 사례는 연기금 대규모화에 따른 위탁투자 증가 및 전문성 확보가 마치 절대적인 안전판처럼 얘기되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오히려 수익률 위주로 연기금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통제하기 어려운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연기금을 무조건 많이 적립하는 것이 재정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연기금 대부분이 통제불가능한 국제 금융시장의 부침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일종의 신화에 불과하다. 연기금 적립 확대를 통한 연기금 금융시장 투입 확대는 투자위탁회사나 현 금융시장 참여자들의 이익과는 직결되지만 재정안정과는 무관하다.

정부는 연금재정 적립 확대가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 길이라며 현 연금개정안을 옹호하고 있지만, 앞서 설명한 이유에서 과연 무조건 기금규모를 늘리는 것이 연금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는 길일지는 의심스럽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의 '뉴딜'정책에 대한 '연기금' 투입이 갖는 의미는 이중적이다. 우선 연기금의 SOC 투자는 장기적인 성장잠재력 제고나 향후 지급보장의 안정성 면에서 무계획적인 금융시장 투입보다는 나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즉, 안정성과 공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묘책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뉴딜'은 계획성과 효과 면에서 신뢰하기 어렵다. 현재까지 발표된 내용으로는 정부안은 지속적인 분배장치 없는 일시적인 부양책으로서 투입된 자금의 대부분은 재벌 건설사들의 이익으로 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인 계획 없이 예산에 맞춘 사업편성이 가져오는 파괴적인 결과는 너무나 여러 번, 지독하게 경험하지 않았는가? 물론 정부의 사회기반시설 확충 노력이 장기적으로 구상된 합리적인 것이라면, 이를 위해 발행한 국채를 연기금이 구입하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이 경우에도 재경부의 필요에 따른 연기금 투입이 아니라 철저하게 기금운용주체의 판단, 즉 수익성 및 안정성에 대한 판단 및 노령화에 따른 연기금 유동성을 고려한 투자 규모에 대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3. 어떻게 할 것인가?**

국민연금 개혁에서 세 가지 핵심은 첫째, 국민연금제도가 사회보장제도로서 제 기능을 다 하도록 근본적인 개혁을 모색하는 것, 둘째, 한국 연금제도의 적정 연기금 규모를 산출하고 이에 따라 연기금 적립 속도를 조정하는 것, 셋째, 노령화 경향에 대비한 장기적인 연금재원 개발을 구상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선 첫 번째, 두 번째 논점과 관련하여 논의하자면, 1990년대 후반 GDP 대비 공적연금 지출은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10-13% 수준이다. 한국의 경우 현재 연금지출은 GDP의 1% 내외로서 현 제도 유지시 수십년 후에도 GDP 대비 국민연금 지출은 10% 이내일 것으로 예상된다. 연금지출을 감당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앞서 아직은 보장성 문제를 고민할 충분한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노인 10명 중 3-4명이 절대적으로 빈곤한 지금, 노후보장 용도의 자금으로 130조를 적립해놓고 이를 통해 주식시장을 부양할 궁리만 하는 것은 상당히 비합리적이다. 즉, 한국사회는 연금제도의 보장성 강화와 연기금 적립 의 조절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을 모색할 시간적, 재정적 여력을 갖고 있다.

또한 세 번째 논점과 관련하여, 한 사회의 노인인구 증가는 필연적으로 연금재정 확충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 노령화에 대비한 재원 개발 문제는 과제로 남는다. 이에 관해 정부는 당장 보험료를 일률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주장한다. 그러나 비례세 방식의 연금보험료는 빈자에게나 부자에게나 동일한 보험료율을 적용하여 빈자에게 상대적인 부담이 더 크다. 더구나 장기화되고 있는 경제양극화 속에서 서민경제가 파탄나고 있는 가운데 무조건 보험료 인상을 통해 재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연금제도가 연대성의 원리에 근거한 사회보장제도로서 민간보험이 아닌 이상 보험원리의 틀 안에서 연금재정 문제를 사고할 필요는 없다. 즉, '보험료-급여의 연계'라는 폐쇄된 고리에서 벗어난 다양한 사고가 필요하다.

사실상 대부분 OECD 국가들은 연금재정에 누진적으로 형성된 일반조세 지원을 하고 있다. 일례로 한국의 경우 대규모 연기금 투입으로 이득을 볼 것이 예상되는 주식시장이 주식매매차익에 대한 연금세를 부과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연금보험료율을 높이는 방안이나 인구변화에 급여수준을 연동시키는 방안은 최종적으로 고려될 수 있다. 물론 현재와 같은 연기금 적립 상황에서 재원확충 시기는 고령화 속도에 의해,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보험료율 일제 인상은 정부가 역설하는 바처럼 유일한 대안도,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되는 무엇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건대 지금 한국의 국민연금 제도는 덜 쓰고 더 걷는 데 치중할 때가 아니라 제도의 보편성과 적절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할 단계이다. 이를 위해 연금제도 개혁에 대한 전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그 전제는 논의부터 법안 확정, 운영에 이르기까지 연금제도 개혁을 위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당장의 보험료 인상과 급여삭감을 통한 연기금 확대보다 더욱 시급하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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