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자치는 역사를 만드는 것과 같다

[김주원 박사의 '마을자치에 학과 습을 이야기하다'] ㉓나를 찾고 우리를 찾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와 미래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역사학자 카(E.H.Carr)는 정의했다.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역사학자 랑케(leopold von Ranke)가 1830년에 주관적, 도덕적 가치판단을 개입시키는 역사 서술을 비판하였다.

역사가의 임무는 단지 “그것은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 이래 상당기간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역사서술이 지배적 역사관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역사에 있어서 객관적 사실이라는 설정이 얼마나 허구적인지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역사가의 주관적 해석에 비중을 두는 역사관이 대립하게 된 것이다.

ⓒ김주원 농도상생포럼 회장·전 강원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사에 대한 카의 주장은 그 완결판이었다. 그는 “과거의 사건들과 점차적으로 우리들 앞에 출현하게 될 미래의 목적들과의 대화라는 것”을 주장했다.

학문으로 어떤 현상에 대한 해석을 놓고, 가치냐 사실이냐에 대한 논쟁은 역사학뿐 아니라 사회과학에서 그 이후 논쟁이 심각하게 이어져 왔다. 그

렇지만 최근에는 학제(interdisciplinary)혹은 다학제(multi-)연구를 넘어 심지어 초학제(trans-)연구까지 제안되고 있다. 학문적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융·복합이 보편화되면서 논란이 없지 않으나 통섭적 접근에 관한 연구가 대세다.

마을은 융·복합적 특성이 있다.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역사를 생각하는 일도 궁극적으로 자기발견을 위한 것이다.

인간의 자기발견은 남에 대한 공감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을 더 잘 알면 남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나하나 분리되어 있고 독립된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사회라는 공동체를 함께 형성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작게는 가족의 일부이지만 좀 더 확대하여 나아가면 각종의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 이러한 집단은 하나의 사회공동체로서의 과거 및 그 과거로부터의 유산을 가지고 있다.

사회구성원인 우리는 그 사회공동체로부터 무엇인가를 상속받고 있다. 이렇게 상속된 유산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역사다. 역사는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또 우리의 공동체가 겪은 경험이 어떤 경로를 거쳐 왔는가를 알려주는 것이다.

카의 역사에 대해서는 기존 역사해석의 새로운 해석을 내놓은 것이라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역사는 과거의 정확한 사료들이 현재에서 횡적 시간 흐름에 따라 재정의되는 것이다.

그는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밝히려고 하였다. 역사의 객관적 사실을 갖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를 박지 못한 무능한 존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역사가가 없는 사실이란 생명 없는 무의미한 존재라고 본 것이다. 그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보았다.

역사도 역사가의 어떤 성찰이 필요하고 그 확신 속에 만들어져 가는 성과다. 역사는 대부분 어떤 사건이나 유명한 권력자를 중심으로 연구되고 기록되는 경우가 더 많다.

수평적 시각보다는 수직적 시각에서 기술되게 된다. 따라서 마을 주민의 관점에서 아래로부터 기술된 역사는 거의 없다.

역사는 권력을 가진 자와 권력이 없는 자 간 투쟁, 즉 위와 아래의 끊임없는 투쟁의 결과였다. 분명한 것은 더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더 나은 역사를 만들어왔다.

과거에도 현장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던 것은 존경받는 권력자들은 아래로부터 현장의 압력이 무엇인가를 확인해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사람이었다. 아래로부터의 저항은 현장에 적용하는 합리적 절차나 과정이 무시되었을 때 더 심하였다.

마을자치가 발전하는 과정도 역사의 해석과 같다. 나를 찾고 우리를 찾는 것이다. 남에 대한 공감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것이 마을자치의 시작이자 완성이다.

마을에서도 혼자 솔선수범 형태로 마을가꾸기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함께 하기보다 쉽다. 단독리더가 초창기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효율적이다. 마을자치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한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초창기 리더십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더 진전되기 어렵다. 우리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면 상호 동의가 필요하다. 그 합리적 대안은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을 속에서도 권력엘리트들은 하향식 통제와 권력을 지키려는 욕심을 갖게 된다. 그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렇지만 그것이 합리적 정당성을 갖지 못할 경우, 아래로부터 끊임없는 충돌이 불가피하다. 과거 전화기도 없던 시절에는 하향식 통제에 의한 권력자들의 결정이 통했다. 하향식 결정이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실시간 모든 것들이 손안에서 모바일로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민주적인 것이 더 효율적인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위가 너무 튼튼하고 강하면 독재가 된다. 권력자가 바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인간이기 때문에 아래로부터의 욕구를 고려한 균형 있는 정책을 만들어 대응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도 우리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만나는 지형학적 특성 때문에 크고 작은 전쟁을 자주 겪어 왔다.

전쟁은 국가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상층부가 중심이 되는 결정이고 전후 수습책도 국가가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한강의 기적은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국민의 신념과 군부정권의 계획경제가 이루어낸 결과였다.

경제발전 후 민주주의 정착은 군부정권을 겪으면서 완충 기간을 거쳐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국가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군부독재 후 민주적 정권교체, 지방자치 실시 등 민주주의 정치체제도 확립되었다.

이제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더군다나 마을별 여건이나 욕구가 다르다. 개혁이 아래로부터 민주적으로 이루어질 때 더 성과를 낼 수 있다.

전국을 정부가 통일된 지침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면서 생기는 비효율과 부실한 정책운영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한다. 정부의 균형발전정책은 공모사업 위주이기 때문에 오히려 지역간 마을간 격차가 더 심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마을로부터 현장에서 만들어진 욕구가 잘 반영된 정책으로 정책의 효율성을 강화할 수 있는 마을자치를 활성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마을간 주민들의 삶의 질이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마을의 민주주의는 마을자치가 활성화될 때 가능하다.

마을이 가지고 있는 욕구를 반영한 합리적인 지방자치가 완성되고 균형 있는 발전은 이러한 관계가 합리적 법제도화를 통해 현장지원 생태계가 보장될 때 가능하다.

우리 대한민국은 국민의 나라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 국민이 사는 곳이 마을이다. 마을간 격차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국민의 욕구가 현장에 적합한 형태로 반영되는 바른 정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은 자원 부족을 이유로 불균형발전 국가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87 헌법개정 후 지금까지 지방자치가 비정상적인 이유는 아직도 국가가 균형발전을 추진한다고 하면서 균형발전을 외면해 왔기 때문이다.

지역 간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데도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낙수효과는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경제학자들의 시각이다. 마을자치를 통해 분수효과를 만들어야 한다.

드러내 놓고 불균형발전전략을 택한 정부가 균형발전에 대한 보완도 없이 지방자치를 시작했다. 불균형발전 지역에 대한 성장거점개발전략을 통한 국토균형발전 약속은 신군부집권과 정치불안정속에 흐지부지되었다.

1987 개헌 후 노태우 정부가 등장하면서 정권교체도 실패했다. 그 후 김영삼 민주 정부가 탄생하고 풀뿌리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균형발전은 더 어렵게 되었다. 겨우 불균형발전지역은 재정조정제도를 통해 교부세로 조정하고 있다.

특별교부세제도를 통해 유력한 국회의원이 더 많은 예산을 가져가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언론지상에 보도되어 자랑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균형발전을 위한 균형발전특별회계로 현행 헌법상 국가는 국토균형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지고 있다.

그렇지만 1987년 헌법제정 후 지방자치 실시는 무늬만 지방자치다. 지방의회가 구성되었다는 점 빼고는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마을에 관한 관심은 2000년 초부터 본격화되었다. 농산어촌 지역에 대한 사업을 중심으로 농림부가 중심이 되어 각 부처가 시행해 오고 있다. 시범사업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지역 간 마을간 격차가 더 심화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마을자치가 필요하다. 우리가 우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가는 마을은 우리의 자산이고 역사가 된다.

권력엘리트중심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를 역사를 만들어가는 마을자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마을자치를 통해서 더 완결성을 갖게 된다. 마을자치의 역사를 만들어가자.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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