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에서 수혈로
민주대연합이란 말은 원래 민주화 시기 재야운동가들로부터 나왔다. 민주대연합론이 처음 공식화된 것은 민주화 직후 치러진 1987년 대선에서였다. 당시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재야 운동가 백기완은 "우리의 당면 목표는 민중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현체제의 군정연장 음모를 분쇄하는 일"이라며 "이를 위해 민주세력은 대연합을 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경향신문, 1987년 11월 30일자). 그러나 백기완 후보의 민주대연합론은 민주화 세력인 두 보수 야당(민주당, 평민당) 모두에게 외면당했다.
보수야당의 외면과 정권교체 좌절은 민주대연합론을 실패한 기획으로 만들었지만, 민주대연합론은 사라지지 않았다. 1989년 결성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을 이끌던 김근태는 '민족민주운동 세력과 보수야당이 결합해 의회를 중심으로 민주주의를 이루고 통일로 나아가자'는 논리의 "민주대연합론"을 다시 제기했다. 재야운동세력은 전민련을 중심으로 정치세력화에 박차를 가하며 보수야당과의 연합을 추구했다.
그러나 이 역시 정치세력화 방식에 대한 운동 내부(독자정당 창당과 전선체)의 이견과 보수야당(평민당)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민주대연합이 무산된 이후 김근태를 비롯한 재야운동 엘리트들이 보수야당(국민회의)에 대거 입당함으로써 전민련발(發) 민주대연합은 연합이 아니라 보수야당 수혈로 끝을 맺었다.
민주대연합론의 끝나지 않는 시효
애초 민주대연합론이 추구한 목표는 군정종식, 정권교체, 그리고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였다. 민주화가 진전됨에 따라 이 세 가지 목표는 점차 충족된다. 우선, 문민정부의 등장과 함께 군정은 실체와 세력 모든 차원에서 마감된다. 둘째, YS, DJ라는 민주화 세력의 두 정당지도자가 번갈아 집권함으로써 정권 교체 역시 실현되었다. 셋째는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 세력을 주축으로 한 민주노동당이 창당(2000년)된다. 민주노동당은 당시 사회운동의 정치세력화 과제가 정당의 형태로 실현된 것을 의미했다.
문민통치, 정권교체, 민주노동당 창당은 민주대연합을 필요로 했던 정치적 조건을 충족시킨 것이었다. 사실 이 시점에 이르러서 민주대연합은 더 이상 유의미한 전략이 아니어야 했다. 그러나 민주대연합은 그 정치적 시효가 만료 되었음에도 다른 주체와 논리를 갖추고 새로운 변이를 시작한다.
민주대연합론의 변이 : 양김 민주당 복원론, 진보정당 사표론, 후보단일화론(진보후보 사퇴론)
우선 민주대연합론을 주장하는 주체가 체제 밖의 운동세력에서 줄곧 민주대연합을 외면해오던 체제 내 야당으로 변화했다. 대표적인 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민주대연합 구상을 제시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대연합론은 한나라당의 YS계와 DJ의 호남계의 통합을 통해 양김 민주당을 복원하고 한나라당의 이회창계를 고립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 'YS 시계'를 차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자책을 찾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민주대연합론은 정계개편 음모, 낡은 정치로의 회귀라는 비판을 받았고 결정적으로 YS가 이를 거부함으로써 실현되지 못했다.
정치적 환경변화에 맞춰 민주대연합론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스스로를 변형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진보정당 사표론이다. 2002년 대선과정에서 유시민에 의해 주도된 민주노동당 사표론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게 주는 표는 사표라며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는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어야 한다는 논리로 제시된다.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 6%를 넘어섰던 권 후보 지지율은 선거 결과 그 절반인 3% 득표에 머물렀다. 물론 이와 같은 득표가 온전히 사표론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표론이 막판 진보 유권자들의 표심을 흔든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진보정당 사표론은 대선처럼 큰 선거에서만 위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다. 총선이나 지방선거 등 모든 국면에서 제기되었다. 사표론은 후보단일화론(진보후보 사퇴론)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다시 총선의 야권연대론으로 이어진다. 야권연대론 역시 보수파 정당의 집권과 당선을 막기 위해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연합해야 한다는 논리로 제기됐다.
민주대연합론의 귀결
최초 민주대연합론은 민주화 시기 군정종식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군정이 종식되고, 정권교체가 실현되었음에도 이런 대연합론이 지속된 이유는 무엇이며,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무엇보다 민주화 이전의 운동적 민주주의관을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민주대연합론이 지속될 수 있었던 가장 큰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민주화 운동세력에 의해 제시된 민주대 반민주라는 운동적 정치관이 현재에도 지속되고 변형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 보수파는 한국 민주주의의 엄연한 실체이자 구성부분이다. 그러나 민주당과 진보정당은 이들을 반민주세력, 적폐세력 등 다양한 논리와 정조를 통해 악마화하고, 반대로 운동적 정조를 공유하는 자신들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독점한 개혁세력이라는 선악구도로 정치 갈등의 축을 지속적으로 대체해 왔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그 이전에 출현했던 다른 정치체제와 구분하는 핵심은 스스로가 정답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체제라는 점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여러 다원적인 이익과 가치, 열정과 요구들을 정치의 제도화된 틀 안에서 조정하고 타협해 갈등을 해결한다. 민주주의는 자신이 선하다고 믿는 한 세력에 독점되는 종교가 아니라 서로간의 존재를 인정하고 관용할 수 있을 때 성립하는 다원성에 입각한 정치체제이다. 이런 측면에서 특정한 공동의 적을 상정하는 민주대연합론은 그 표현과 달리, 민주주의원리와 정확히 배치된다.
두 번째는 민주대연합론이 가져온 효과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사회운동세력이나 진보정당이 민주대연합을 주장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이유는 민주대연합을 통해 성립된 정권이 민중의 사회경제적 상태를 개선하고 사회를 보다 평등하고 자유롭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주대연합 또는 그 변종 논리로 정권을 잡았다 하더라도 시민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개선되지 못했다. 실제 DJ-노무현 행정부를 경과하면서 노동시민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왔다. 사회경제적 양극화 측면에서 보수파와 민주파 정부의 차이는 없으며, 빈부격차와 차별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다는 것은 다양한 통계와 자료를 통해 입증된다. 사실상 민주대연합론은 민주당의 집권을 위해 동원되었을 뿐, 연합의 사회경제적 효과는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이것은 문재인 정권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민주대 반민주, 적폐대 개혁'과 같은 변형된 선악 구도가 아니라 누가 더 정부를 잘 운영해 시민의 사회경제적 삶을 개선하고 자유 보장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경쟁에서 능력을 보여 줄지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민주대연합은 이런 능력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다.
셋째는 민주대연합론은 선거분석 측면에서도 증명될 수 없는 가공의 필승론이라는 점이다. 민주대연합론으로 시민을 동원했던 선거가 언제나 이를 동원한 야당 측의 승리를 보장한 것도 아니다. 대표적으로 2012년 18대 대선은 반(反)박근혜 단일 전선으로 치러진 선거였다. 후보단일화론이라는 변형된 민주대연합 논리에 따라 당시 무소속의 안철수 후보, 진보신당의 심상정 후보, 민주노동당 이정희 후보가 모두 중도 사퇴하고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강력한 양강 구도에서 치러진 선거 결과는 문재인 후보가 3% 이상 뒤진 패배였다.
반면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야권연대라는 변형된 민주대연합 논리를 뛰어넘어 독자노선을 견지했던 20대 총선은 '분열은 필패'라는 예상과 달리 야당 진영의 기록적 승리로 귀결되었다. 당시 총선에서 안철수 대표는 민주당과 진보정당으로부터 쏟아진 분열세력이라는 강력한 비난을 뚫고 독자 노선을 추구했다. 선거결과는 전문가나 여론조사 기관의 예측과 달리 국민의당을 포함한 야권이 167석을 휩쓴 압도적인 승리였다. 선거연합한다고 이기고 연합하지 않는다고 진다는 단순한 산수는 정치에 있어 무용지물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넷째는 민주대연합론이 낳은 전략적 결과이다. 민주대연합, 진보정당 사표론, 후보단일화론(진보정당 후보 사퇴론), 야권연대론으로 이어진 정치담론의 정치적 수혜자는 언제나 민주당이었고, 그 피해자는 진보정당을 비롯한 다양한 신진 정치세력이었다.
최초 민주대연합이 사회운동진영에서 제기되었을 때, 그 결과는 사회운동 엘리트들이 대거 보수정당에 입당하는 인적 수혈이었다. 이후 민주당이 주도한 민주대연합론의 결과는 사표론, 후보단일화론 등을 통해 민주당의 왼편에 등장하는 정치세력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즉 민주대연합론이 민주당 입장에서는 민주당의 왼편에 유력한 진보정당이나 다양한 가치를 지향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을 억제하고, 고갈된 민주당파의 정치엘리트를 충원하는 수단이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연합정치는 통일전선과는 다르다
일각에서는 민주대연합이 민주정치에서 일반적인 연합정치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하승수는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진보적인 소수정당들과 함께, 연합 비례대표 명부를 만드는" 선거연합당을 만들자며 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많이 하는 선거연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거나 심각한 왜곡을 담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연합정치란 각 정당이 자신의 힘으로 선거 치르고 타협과 협약에 기초해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연합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각 정당이 스스로를 허물어 선거연립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특히 집권당 밖을 배외하는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과 급조된 시민단체, 정당만들기조차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군소야당들이 민주당의 비례표에 의존해 의석을 나눠 갖자는 선거연합론은 민주적 정당정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또한 연합정치와 통일전선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도 말하고 싶다. 연합정치는 민주주의를 승인한 토대 위에서 정당 간 잠정적인 타협을 추구하는 다원성에 기초한 정치적 기예이다. 특정 정치세력 또는 정당을 적대하고 증오하면서 이들을 적출시키기 위해 정당, 시민단체 등 모든 세력이 정당의 목적과 독립성을 해체해 결집해야 한다는 것은 변형된 통일전선론일 수는 있어도 민주적 연합정치의 내용이 될 수 없다.
작은 정당일수록 독립적이고 분명한 자기 정체성과 기반을 갖출 때,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풍부해지고 시민의 평등과 자유를 확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정당이 스스로의 실력과 기반을 키워 정당성 있는 다원적 민주주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민주대연합이라는 포장지에 감싸여진 노예의 길을 가겠다는 것에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민주대연합이라는 이름의 '위선대연합'
제도가 정치를 대신할 수 있을까?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오늘 현실에서 제시되고 있다. 다원적 정치질서를 형성하겠다는 논리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당사자인 민주당이 다양한 경로로 선거용 비례연합당을 창당하려 하고 있다. 자신들이 불과 한 달 전까지 룰 협상에서 배제된 제1야당의 선거용 비례정당 창당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공격했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다. 민주당의 비례연합당 창당 논리는 적폐세력인 미래통합당이 과반을 확보하면 대통령이 탄핵될지도 모른다며 모든 세력이 힘을 합쳐서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토씨하나 달리하지 않는 민주대연합의 논리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 초부터 보수파를 적폐세력, 탄핵당한 세력으로 적대화하고 정부운영으로부터 배제해 왔다. 이른바 4+1이라는 변형된 민주대연합을 통해 의회를 장악했고, 청와대로 초집중화된 권력을 강화해 왔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온 지난 3년에도 불구하고, 이제 대통령 탄핵이 걱정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면, 자신의 통치방법의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오히려 우선이랄 수 있다.
이제와 위기 담론을 조장하고 또다시 민주대연합론을 끌어내는 것은 그동안 이 정부와 집권당의 모든 레토릭과 정치행위의 신뢰와 책임뿐만 아니라 정치가 가져야 하는 기초적인 윤리마저 붕괴시키고 있다. 이런 위선대연합으로는 결코 민주주의도 살리지 못하며, 정부 운영도 성과적으로 할 수 없다. 물론, 총선에서 이기는 기적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지난 30년 민주대연합이라는 정치바이러스의 변형과 변이의 연대기가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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