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서울 청계천과 인천 구도심의 옛 모습

[김시덕의 직업적 책읽기] <판자촌 일기>, <주름진 바닷가 겹겹의 이야기>

얼마 전, 서울과 인천의 옛 모습을 전하는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청계천이 복개되기 전인 1969년에 그곳을 조사한 미국인 인류학자 빈센트 브란트 선생과 한국인 조교들이 남긴 기록인 <판자촌 일기>(눈빛, 2012)와, 인천의 시민단체 스페이스빔이 주도하여 인천 구도심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한 <주름진 바닷가 겹겹의 이야기>(스페이스 빔, 2020)이다.

지난 100년간의 서울과 인천, 즉 경인(京仁)의 역사를 담은 이 두 책에는 반세기 전 한국의 어떤 가난한 모습이 공통적으로 담겨 있다. 다음에 인용하는 두 책의 해당 구절들은 결코 아름답지도 않고 아련하지도 않다. 고도 경제 성장의 혜택을 입은 대다수 한국 시민이 굳이 살펴보려 하지 않은 빈민계층의 삶, 그 중에서도 가장 참혹한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1969년 5월 31일(토요일) 나는 오늘 아침에 근처의 청계천변에서 갓 태어나 탯줄을 달고 있는 남자아이의 시신을 보았다. 누가 아이를 낳아 버린 것처럼 보였다. 이웃 사람에게 이 일을 파출소에 신고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의 말로는 이런 일은 이번 한 달 사이에 벌써 두 번째라고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판자촌 일기> '3. 마장동 일기' 67쪽

"지금 아파트(만석비치타운) 짓는 자리 있잖아. 그 앞 괭이부리 가는 길 쪽으로 기찻길 옆에 축대가 죽 있었고 그 밑에가 다 갯벌이고 바다였어. 갯벌에 조개 캐러 나가면 갓난아기 시체가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것도 보았네 그려. 지금 자유공원 올라가는 길에는 미군이, 하인천 앞에는 영국군이 있었는데, 주변에 양색시들이 많았지. 그래, 양색시들이 애를 낳아서는 몰래 갯가에 버리고 가고 그랬어. 그러면 까만 갓난쟁이들이 물에 불어 떠다니다가 축대 틈에 끼여 말라붙어 있고 그랬어. 꼭 개구락지처럼 말이야." <주름진 바닷가 겹겹의 이야기> 163쪽

이 증언들에 대해 내가 감히 코멘트를 덧붙일 수는 없다.

<판자촌 일기>의 핵심 부분은 1969년에 브란트 선생의 연구를 돕기 위해 마장동과 숭인동에 거주하며 현지 조사한 최협 선생과 '20대 후반의 여성'이 작성한 일기다. 내가 읽은 <판자촌 일기> 초판본에는 숭인동 지역에 들어간 여성의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다. "동대문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회사업 분야의 실무적 훈련원 (중략) 안타깝게도 그의 이름을 기억할 수가 없다."(81쪽). 그런데 이 책이 출판되고 나서 몇 년 뒤, 사회단체 '노동・정치・사람'의 김혜경 고문이 바로 그 당사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링크 바로가기)

최협・김혜경 두 분이 한국어로 기록한 일기는 브란트 선생에게 전달되어 미국에서 한국인 유학생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다. 그 후 한국어 일기 원본은 사라졌고, 영어 번역본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 <판자촌 일기>에 실려 있다. 이렇게 두 번 번역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특성일 수도 있겠는데, 이 책에 실린 '마장동 일기'와 '숭인동 일기'의 문장과 시점은 꽤 독특하다. 이촌향도(離村向都)하여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득바득 애쓰는 빈민들의 삶을 번역체 특유의 담담한 뉘앙스로 서술하고 있어서, 참으로 불경한 표현이지만, 읽다보면 순수하게 읽을거리로써 흥미롭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 살 먹은 자식을 병으로 잃은 남성 양씨의 이틀에 걸친 행동을 기록한 '마장동 일기' 1969년 6월 19~20일 부분을 보자.

"6월 19일 (목요일) 양씨의 한 살 먹은 아기가 갑자기 아프다. 양씨는 급히 아기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 치료를 받도록 했다. (중략) 얼마 후 그 아기는 세상을 떴다. 장씨와 동리의 젊은이 몇 명이 나서 아기를 그들이 찾아낸 빈터에 묻고 왔다. 저녁 늦게 여러 사람이 소주병을 들고 양씨 집을 찾아와 늦게까지 앉아 위로의 잔을 나눴다.

6월 29일 (금요일) 오늘 양씨를 보니 어제 죽은 아기에 대해 완전히 잊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아들을 장씨 가게로 데려와 과자와 사탕을 사 주고는, 장씨 가게에 그동안 밀린 외상값도 갚았다. 그는 오랜 시간 가게에 앉아서 장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오후가 되자 양씨는 장씨 가게에 다시 나타나 장씨에게 영화나 보러 가자고 말했다." <판자촌 일기> 77-78쪽

이틀에 걸쳐 양씨의 언행을 기록한 '마장동 일기'의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19세기 초의 일본에서 있었던 비슷한 일을 떠올렸다.

"(오늘날의 기후현에 자리한) 니시조무라의 촌장 일기에는, 분세이 연간(1818-30)에 어머니가 아기를 낳았지만 금세 죽어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음 날 장기대회에 갔다. 이 사건 하나만 보더라도 당시 아이의 생명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놀라게 된다." (하마노 기요시 <역사인구학으로 읽는 에도 일본>(요시카와코분칸, 2011) 52쪽

150년의 시간을 두고 일본과 한국에서 일어난 영아 사망을 대하는 아버지들의 심정, 그리고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어머니들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가난하기 때문에 아이를 많이 낳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의 대부분은 영양결핍과 위생 문제로 인해 어려서 죽었다. 그렇게 죽어가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마음 아파할 수 없는 현실적인 곤란함, 그러한 곤란함 속에 처하여 자녀를 잃은 아픔을 느끼지 않도록 스스로를 훈련시키는 사람들. 사람의 목숨에 대한 생각은 시대마다 다르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이 모두 소중하다는 생각이 한국과 일본에서 확고해진 것은 채 백 년도 되지 않았음을 절감한다.

▲<판자촌 일기>(최협 지음, 눈빛), <주름진 바닷가 겹겹의 이야기>(스페이스 빔) ⓒ프레시안

한편, 구한말부터 현대에 이르는 150여년에 걸쳐 여러 겹의 시층(時層)이 쌓여 있는 인천 구도심을 꼼꼼히 조사한 <주름진 바닷가 겹겹의 이야기>는, 월미도, 내항・남항・인천항, 북성동, 만석동, 송현동, 화수동, 화평동 등을 포함한 인천 구도심에 대해 이제까지 나온 각종 문화해설서・답사안내서 가운데 가장 충실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책을 출간한 스페이스빔의 대표인 민운기 선생을 비롯하여, 근대 인천 건축 연구의 일인자이며 <손장원의 다시 쓰는 인천 근대 건축>(간향미디어, 2006)의 저자인 손장원 재능대 교수 등 해당 분야의 인력이 총출동해서 제작한 이 책 한 권이면 인천 구도심 답사는 문제없다.

한국의 여러 지역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인천의 행정당국은 근현대 역사 현장을 보존하는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최근의 사례만 거론해보더라도, 식민지 시대에 건설된 비누공장 애경사의 벽돌 건물을 헐어서 주차장을 만들었고, 인천 지역의 목선(木船) 대부분에 들어가던 못을 공급하던 문화유산인 신일철공소를 철거하고, 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캠프 마켓 부지 내의 건물 20동 가운데 12동을 시민 개방 행사 한 번 하지 않고 철거하는 등, 그 리스트는 길게 이어진다. 이처럼 지금도 열심히 파괴되고 있는 인천의 근현대 역사 현장을 한 곳이라도 더 발굴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인천 지역 시민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는 분들의 생생한 증언이 <주름진 바닷가 겹겹의 이야기>에 담겨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단순한 역사 문화 답사 안내서가 아니다. 이 책 자체가 인천 지역 역사・문화의 한 측면을 후세에 전하는 귀중한 유산이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동인천역 북쪽 화수・화평동 지역에도 재개발 계획이 확정되어 있다. 최소한 화수・화평동 지역만이라도 이 책을 들고 서둘러 답사하실 것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판자촌 일기>를 읽으실 때에는 노무라 모토유키 <노무라 리포트 - 청계천변 판자촌 사람들 1973~1976>(눈빛, 2013)과 구와바라 시세이 <다시 보는 청계천>(청계천 박물관, 2017)에 담긴 복개 전 청계천 사진들과 함께 보실 것을 권한다. 대부분의 한국 시민이 더러운 청계천과 그 천변의 빈민들을 눈앞에서 치우기에 바쁘던 그때, 뜻있는 일본인 사진가들이 청계천을 찍었다. 한국의 추한 면을 찍어서 북한을 이롭게 하려느냐는 한국 정부와 일부 시민의 비난을 받아가면서도,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 사회는 몰라볼 정도로 변모할 것이고 그때의 한국 시민은 청계천의 옛 모습을 궁금해하고 그러워하게 되리라는 선견지명에서였다.

▲ <다시 보는 청계천>(구와바라 시세이, 청계천박물관), <노무라 리포트>(노무라 모토유키, , 눈빛)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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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문헌학자, 전쟁사 연구자, 서울답사가. 작게는 시군구(市郡區)에서 크게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여러 집단이 갈등하고 충돌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직업적으로 책·논문·기사를 읽는 중에,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묻혀 있는 좋은 글을 발견할 때마다 서평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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