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 '디테일'이 중요하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코로나19와 봉준호, 그리고 디테일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26일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구·경북 봉쇄' 발언 때문이다. 발언 하루 만에 물러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 발언이 불러온 파장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선거가 코앞인 상황에서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25일 코로나19 관련 당정청협의회 회의 뒤 그 결과를 기자들에게 전달하면서 말한 '대구·경북 봉쇄' 표현과 그 이후 이어진 기자 질문에서도 이를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는 '봉쇄'라는 단어와 그 의미를 정확하게 기자들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오해 소지가 다분한 해명을 했다. 즉각 진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사안을 키운 책임은 분명 홍 의원에게 있다. 사소하게 보이는 것이 나중에 중대한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당시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정치권에서는 선거규칙 협상 테이블에 가는 대표들에게 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조언한다. 소소한 규칙과 자구 하나가 선거 판도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홍 의원은 뒤늦게 이런 경구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날 당정청협의회에서 날로 확산되어 가고 있는 대구·경북 지역의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으로 이른바 '봉쇄 전략'이 언급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홍의원은 이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자브리핑을 한 것 같다.

일반인들과 국회 출입기자 등은 방역에서 말하는 이른바 '봉쇄전략'에 대해 잘 모를 가능성이 크다. 봉쇄하면 너무나 오랫동안 '우한 봉쇄'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기 때문에 '대구 봉쇄'는 곧 바로 '우한 봉쇄'를 연상시키기에 알맞다. 하지만 그날 대구에 대통령과 총리가 내려가게 되어 있는데 사람의 왕래를 차단하는 물리적 봉쇄 카드를 꺼낼 가능성은 제로였다.

방역 상 '봉쇄' 뜻 잘 몰랐던 대변인의 준비부족이 낳은 파문

홍 대변인이 역학·예방의학에서 말하는 봉쇄전략, 완화전략을 잘 몰랐을 것으로 본다. 물론 코로나19에 매달려 공부를 많이 했으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었겠으나 그러지는 못했으리라 본다. 대한예방의학회가 한국역학회와 함께 최근 펴낸 예방의학·역학·공중보건학 용어집을 보면 '봉쇄'는 'containment'로 돼 있다. 다시 말해 바이러스가 특정 공간이나 지역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전략이 봉쇄전략이다.

전문가들이나 보건·방역 담당 관료들이 말하는 '봉쇄'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홍 의원이 그냥 옮기고 언론 브리핑 자리에서 잘못된 해석을 덧붙이는 바람에 문제가 커졌다. 사태가 벌어진 뒤 뒤늦게 일부 전문가들은 일반인들이 오해하기 쉬운 '봉쇄'란 말 대신 '확산 차단'이란 말을 쓰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진즉에 이런 일이 이루어졌더라면 이번과 같은 파문도 없었을 것이다.

대변인은 단어 하나도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자리다. 홍 수석대변인은 26일 문자메시지를 통해 "단어 하나도 세심하게 살펴야 함에도 대구·경북 주민들께 상처를 드리고 국민의 불안감도 덜어드리지 못했다."는 말을 남겼다. 뒤늦게 디테일의 중요성을 알아차린 것이다.

코로나19가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히 전국에서 확산하면서 이 지역 주민은 말할 것도 없고 전 국민이 불안해하고 움츠러들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 고위 인사, 방역 당국과 정치인 모두 국민의 신경을 건드릴 수 있는 언행에 극도로 조심하는 등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

'대구 코로나' 파문도 결국 세심함(디테일)의 문제

이런 와중에 지난 20일 보도자료에 '대구 코로나19 대응 범정부특별대책지원단 가동'이란 제목을 사용한 것이 빌미가 되어 일어난, '대구 코로나'란 이름을 둘러싼 파문도 세심함(디테일) 부족이 빚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하자 이 지역에서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범정부특별대책지원단을 가동하기로 하고 관련 보도자료를 냈다.

이때 일부 언론은 '대구 코로나19 대응 범정부특별대책지원단 가동'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 가운데 앞부분만 떼어내 '대구 코로나19'란 표현을 사용했다. 언론보도를 본 일각에서는 '우한 코로나19'는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정부가 '대구 코로나19'란 표현을 쓰느냐고 지적했다. 이때부터 지역주민과 언론들의 강한 비판과 질타가 이어졌다.

이 또한 '대구 지역 코로나19 대응 범정부특별대책지원단 가동'이라고 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터이다. '지역'을 빼는 바람에 '대구 코로나19'가 되었고 문제를 삼고자 하는 사람들의 눈에 딱 걸리고 만 것이다. 그냥 넘어가도 될 성격의 사안으로도 볼 수도 있겠지만 민감한 시기에는 이조차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우한 폐렴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있듯이 대구 코로나, 대구 폐렴도 없다"며 "나를 욕할지언정 대구시와 대구시민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구시의회도 "일부 언론에서 '대구 코로나', '대구발 코로나' 등 지역 명칭을 사용해 대구시민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며 "무분별한 명칭 사용을 자제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메르스 땐 '낙타유 섭취 주의' 등 세심함 부족으로 혼쭐

일부 누리꾼 등의 '대구 폐렴'과 같은 혐오성 용어 사용과 맞물려 '대구 코로나' 용어 사용 논란이 더욱 확산됐다. 정부는 22일 '축약 과정상의 실수이자 잘못'이라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정부 관계자는 "명백한 실수이자 잘못이라는 점을 알려드리며 상처를 받은 대구시민과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사소한 것이 일파만파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 사례다.

2015년 메르스 때에도 질병관리본부는 국내 확산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도 홈페이지에서 메르스 예방을 위해 '낙타고기와 낙타유 섭취를 주의하라'며 국내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을 그대로 두어 혼쭐이 나기도 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초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메르스를 쉽게 설명한다며 '중동 감기' '낙타 감기' 등의 표현을 사용해 엉뚱한 비유라며 언론 등한테서 뭇매를 맞았다.

위기관리와 위기소통에서 디테일은 중요하다. 세월호 참사를 단순 교통사고에 비교한다거나 사람의 생명을 돈으로만 보는 언행은 심각한 뒤탈을 남긴다. 고위관료가 세월호 참사 현장의 사고상황실 앞에서 기념촬영 한다며 유족들에게 잠시 비켜달라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 비수를 꽂는 행위다. 세심함의 결핍은 울부짖는 유족들이 있는 공간에서 라면 먹기에 바쁜 '무개념' 장관에게서도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누가 언제 어디서 감염될지 몰라 모두들 전전긍긍하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무심코 내뱉는 말은 흉기가 될 수 있다. 특히 방역 책임자나 정치인, 고위 관료, 언론 등은 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머릿속에 담아두어야 한다.

<기생충> '봉테일'의 정신 코로나 방역에 스며들게 해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감독 봉준호의 별명은 봉준호와 디테일을 합친 '봉테일'이다. 외국의 영화감독이나 영화비평가들도 잘 아는 별명이다. 이는 그가 그만큼 꼼꼼하게 준비한다는 의미다. 그의 디테일의 원천은 스토리보드에 있다.

봉 감독은 대학 시절 학보에 만평을 연재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만화광'이다. 그래서 영화 스토리보드를 만화 형태로 직접 그린다. 스토리보드에는 캐릭터와 집 구조, 매 장면의 분위기, 카메라 동선까지 빼곡하다. <기생충>의 스토리보드는 공식 책자로도 출간됐을 정도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봉 감독에 대입하면 '성공은 디테일에 있다.'가 될 것이다.

'디테일'의 봉 감독처럼 코로나19의 확산 저지 전략에도 세심함이 스며들어야 한다. 경북 칠곡, 예천 등 중증장애인 시설 입소자와 청도대남병원 정신병동 환자 집단감염 등 코로나19로 사회안전약자들이 숨졌거나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건·방역 당국과 우리 사회가 이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부족해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디테일에 무신경한 이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바보야! 문제는 디테일이야."라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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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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