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자 중 600여만 명은 부당하게 해고를 당해도 구제 신청을 할 수 없다. 연차휴가도 갈 수 없다. 연장노동을 해도 수당을 받지 못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법이 그들의 권리를 제한한다.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수를 기준으로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한국뿐이다. 독일과 일본 정도의 예외 사례가 있지만, 각각 '10인 미만 사업장 해고제한법 미적용', '일부 업종 10인 미만 사업장 근로시간 특례' 정도에 그친다.
노동계에도 5인 미만 사업장은 오랜 숙제다. 일하는 노동자의 수가 적다는 점 때문에 노동조합을 만들어 개별 사업장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실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당사자 조직은없다.
이 같은 상황에 처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문제를 전면에 내걸며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가 출범했다. 권유하다는 지난 5일 출범식과 함께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고발운동을 시작하며 "권리 찾기 가능성을 빼앗기고 노동조합조차 할 수 없는 노동자의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겠다"는 뜻을 표했다.
권유하다의 대표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낸 한상균 씨다. 한 대표는 5인 미만 사업장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조직 노동자의 대표였던 그가 노동조합 밖 노동자의 삶을 바꾸는 운동을 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4일 권유하다 사무실에서 한 대표를 만났다.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5일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고발운동 기자회견장에서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A씨의 육성이 흘러나왔다. A씨는 PC방에서 일을 시작하며 '5인 미만 사업장이기 때문에 연차휴가, 가산수당을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의 근로계약서에 서명했다. 알고 보니 해당 PC방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었다. 사장은 다른 곳에 PC방을 또 갖고 있었다.
A씨는 사장에게 속아 임금, 휴가 등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빼앗겼다. A씨와 같은 이들에 대해 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갑질을 당했다. 돌아보면 너무 억울하게 당했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겠나.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억울할 수밖에 없다."
A씨가 속지 않았다면 사장에게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 한 대표는 이것도 힘들다고 말했다. 5인 이하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부당해고를 당해도 구제 신청 권리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핵심적인 문제는 사업주가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장 마음대로 해고되기 때문에 불합리한 대우를 받더라도 해결 경로를 찾지 못한다. 그걸 해결하려다 일자리가 날아간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스스로 감수하고 체념하고 살아간다. 해고가 무섭다 보니 단결할 권리는 상상도 못한다."
단결할 권리를 상상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노동조합을 만들어 "단결"하더라도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는 것이 한 대표 설명이다. 사용자와 노동자가 1대1로 만날 때 생기는 '갑을' 관계를 다수가 모인 노동조합을 통해 비교적 대등한 관계로 바꿔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일반적인 전략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수가 일하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통해 이 같은 관계 변화를 꾀하기는 쉽지 않다.
권유하다가 첫 사업으로 꺼내든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고발 운동은 불만을 꺼내기조차 어려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만나고 그들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이슈화하려는 일이다. 이를 통해 "세상과 직접교섭을 만들어가겠다"는 것이 권유하다의 계획이다.
"노동조합을 할 수 없는 노동자를 위해 싸울 책임을 느꼈다"
조직 노동자의 대표,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던 한상균 대표는 왜 이 길을 택했을까.
한 대표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2년 5개월의 옥살이를 했다. 감옥에서 한 대표는 A씨와 같은 이들의 삶에 대해 감옥에서 통렬한 반성을 했다고 전했다.
"박근혜 정권과 싸우고 감옥에서 늘 독방에 있었으니까. 액면의 사실과 결과를 돌아보게 됐다. 민주노총이 시작한 이후에 우리 조합원 문제를 넘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게을리 한 적은 없다. 성과도 있었고 그런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에 많이 유입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파견, 용역이 확산되고 근기법을 잃어버린 이들의 수는 늘었다. 이들의 문제를 전면에 걸고 싸울 책임이 있다고 느꼈다."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의 경험이 한 대표의 고민에 밑거름이 됐다.
"직선 1기로 민주노총 위원장을 하면서 미조직 사업에 대한 고민을 들었다. 결국은 민주노총이 노동조합을 할 수 없는 노동자와 함께 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자본은 노동조합에 소속된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할 수 없는 노동자를 분할하는 전략을 쓴다. 권력은 이를 비호한다. 이런 흐름이 강화되어온 게 한국사회다. 이 앞에서 노동자는 계급적으로 한편이 되어야 하는데 매우 어렵다."
한 대표는 "자본의 분할 전략" 앞에 노동조합을 통해 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87년 투쟁 때는 노동조합으로 노동자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희망이다' 이게 됐다. 그 뒤로 노동조합을 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당신들이 아무리 투쟁해도 내 삶을 바꿔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 계급적 단결로 느껴지지 않고 때로는 (민주노총이) 밉게도 느껴지는 이런 걸 확인했다. (감옥에 있을 때) '그들이 스스로 연결할 수 있게 하고 낡은 룰을 깨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세우고 나왔다."
2018년 5월 21일 가석방 후 한 대표는 가까운 사람들과 고민을 나눴다. 자신이 전문가는 아니었기에 노동조합을 할 수 없는 노동자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그들의 삶을 배우기 위해 1년여 동안 공단 소규모 사업장 조직 활동가, 플랫폼 노동자, 이주 노동자를 만나러 다녔다. 이런 준비 과정을 거쳐 한 대표는 권유하다를 만들었다.
"노동조합 밖에 있는 노동자가 모이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현재 권유하다는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제보를 받고 있다.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처지를 고려해 홈페이지에서 익명으로 제보글을 남기면 권유하다가 대표 고발인을 통해 해당 사업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신청한다.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의 예는 △ 서류상으로 회사를 쪼개 5인 미만 사업자로 등록한 경우 △ 4명까지만 등록하고 나머지 직원은 등록하지 않은 경우 △ 실제로는 5인 이상이 근무하는데 연장근로수당 등을 미지급하는 경우 등이다.
한 대표는 오프라인 활동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제보 페이지로 연결되는 QR코드가 찍힌 안내 카드를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첫 번째 캠페인이다. 이를 위해 5장의 안내카드가 담긴 100만 개의 봉투를 제작하여 조직된 노동자와 시민에게 배포하고 주변의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전달을 부탁할 예정이다. 500만이면 전체 작은 사업장 수보다 많다. 한 대표는 "몰라서 참여하지 못하는 당사자가 있으면 너무도 억울할 것이라는 책임감에 전수 전달을 목표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는 보통 명함이 없다. 권유하다는 회원 중 희망하는 이들에게 명함을 만들어준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소외받은 노동자들의 자존감을 추켜올리고 주변에 권리찾기 활동을 권유하는데도 활용하자는 취지다.
끝으로 한 대표는 이 같은 활동을 통해 이루고 싶은 바를 전했다.
"결국은 우리가 늘 인터넷이라는 공간 뒤에서만 불만을 말할 수 없는 시대는 끝내야 한다. 이 시대의 주인이 우리라는 생각을 갖고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비롯해 노동조합을 할 수 없는 이들이 2등 국민, 3등 국민으로 착취당하는 상황을 최대한 빠르게 끝내고 싶다. 노동조합 밖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함께 단결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사업장이었던(어떤 의미에서는 지금도)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으로 시작해 조직 노동자의 대표,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낸 한 대표는 이제 노동조합 밖에 있는 노동자의 삶을 바꾸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권유하다에는 그와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이 모여있다. 낮은 곳을 주시하는 그들의 움직임을 앞으로도 주목해볼 만하다.
*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제보 페이지 : bit.ly/가짜오인미만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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