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시착> 스위스 재회, 이게 최선입니까

[강주원의 남북 교류와 만남 읽기] 남북 교류와 만남의 '불시착' 공간은

남북 교류와 만남을 쓰다

2016년 전후, 나는 "국경 읽기"를 연재했다. 2020년 연초,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남북 교류와 만남 읽기"를 써볼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뜻밖의 복병이 나의 글쓰기를 방해하였다. 그것은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다.

처음부터 찾아보지 않다가 방송 초반 "북한 미화" 지적이 나온다는 평과 함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궁금해졌다. 보면 볼수록 북한 사회에 대한 작가의 고증 깊이에 놀라곤 하였다. 80년대식 북한 병사의 말 한 마디와 반응조차도 한국 사회에서 북한 관련 드라마를 만든다는 현실에 대한 고민의 흔적으로 나는 해석하면서 보았다.

많은 시청자들은 이정효 PD의 말처럼 북한을 드라마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현실의 상황과 굳이 연결시키려 하지 않았다. (중략) 일각에서는 북한이라는 소재를 사용했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게 사실. 기독자유당의 이번 고발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허구로 진행되는 이야기임을 드라마가 밝힌 만큼 '사랑의 불시착'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다수다.(1)

이와 관련된 기사들을 살펴보면 이 드라마를 두고 제작자는 "북한 설정을 일종의 판타지(상상)"로 봐줄 것을 당부하고 시청자들은 "드라마는 허구다" 등의 반응이 있다고 한다. 다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한편으로 국가보안법을 염두에 둔 작가와 제작자의 우문현답으로 이해가 된다. 한편으로 여러 장면들이 있지만 특히 스위스에서 두 주인공이 재회하는 드라마 소재가 "정말 작가의 상상력일까? 아니면 저 소재의 개연성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하면서 드라마를 끝까지 보았다.

하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현실의 상황과 굳이 연결시키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는 아쉽다. 최소한 내 기준으로 이만큼 사실(제 3국에서의 남북 만남)에 근거를 두고 남북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를 참 오래간만에 보았다. 나는 이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아 저렇게 서로를 대하면 남북 갈등은 없겠구나!"를 보여준 것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나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눌민, 2019)에서 남북 교류와 만남의 또 다른 길과 공간을 그려보았다. 이는 30여 년의 역사를 품고 있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들이다. <사랑의 불시착>과 마찬가지로 이 길을 알면 남북 교류와 만남에 대한 상상력은 날개를 달 수 있다. ⓒ강주원

<사랑의 불시착>이 남긴 것 : 만남의 공간은 허구가 아니다


<사랑의 불시착>은 2018년에 영화한 <공작>이 준 아쉬움을 다른 측면에서 더 진하게 느끼게 하였다. 나의 3번째 책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 멈춤 없는 남북 만남, 돌아보고 내다보는 문화인류학적 조감도>(눌민, 2019)에 다음의 대목이 있다.

공작원만 있는 도시에서 은밀한 작업이 가능할 수는 없다. 일상에서 이런저런 만남이 많아야 자연스럽게 공작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공작) 위의 소설과 영화에서는 베이징과 단둥을 일상적인 남북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바라볼 여지를 전혀 주지 않는다.

이 글을 쓰기 며칠 전 나는 베이징에서 북한사람과 아파트 아래위층으로 살며 왕래했던 지인의 경험을 들었다. 그 이야기는 소설 <공작>의 시대적 배경인 2000년대 전후와 겹쳤다. 중국 단둥에도 한국 기업이 건설한 SK 아파트의 같은 층에 이웃사촌으로 지내는 남북의 가족이 현재(2019년)도 있다. 이들이 모두 공작원일까? 그러기에 단둥에는 그런 남북의 사람들이 너무 많다. 북한 해외노동자 약 2만 명을 제외하고도 한국사람보다 많은 북한사람들이 산다.

이와 같이 제3국에서의 남북 교류와 만남을 알기에 나는 <사랑의 불시착>에 대한 관심이 한국 사회에 남북 교류와 만남을 바라보는 시각 전환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남북 교류와 만남이 휴전선에 가로막혀 있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아 저 공간(스위스, 북한, 중국 등)에서 남북의 사람이 만나고 있구나"를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준 드라마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 중국 단둥, 호텔 로비에서 작품 활동하는 북한 예술가에게 한국 사람이 말을 걸고 있다. (2007년 7월) ⓒ강주원

▲ 중국 단둥,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한국사람들이 양꼬치 연기 자욱한 식당에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 (2018년 8월) ⓒ강주원

▲ 중국 단둥, 남북의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쇼핑 중이다. 단둥은 한국사람보다 북한사람이 많은 도시이다. (2019년 10월) ⓒ강주원

<사랑의 불시착> 마지막 장면 : 교류와 만남의 방식과 공간은 다양하다

<사랑의 불시착>의 두 주인공은 핸드폰 예약 문자를 통해서 인연을 이어갔고 서로의 노력을 통해서 결국 스위스에서 재회하였다. 그 장면은 남북 관계의 상황을 잘 몰라도 그것은 드라마에 몰입하다보면 시청자들은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한편,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작가를 미리 만났더라면 지루하고 재미없지만 더 다양한 재회의 방법이 있음을 알려주었을 것 같다. 평양에서도 리정혁(현빈 분)이 외국 친구의 핸드폰을 한 번씩 빌리면 얼마든지 윤세리(손예진 분)에게 문자를 보낼 수 있다. 고전적인 연애 방법도 있다. 중국을 경유해서 편지교환도 가능하고 작은 선물 소포를 보낼 수도 있다.

남북이 막혀 있다는 2020년 현재도 손예진이 미국의 영주권이나 재외국민 신분을 가지게 되면 평양에 직접 가서 현빈을 만날 수 있다. 쓰고 보니 드라마의 극적인 맛은 떨어진다. 하지만 위의 예들은 현재 남북 만남의 가능한 예들이다.

후자의 예는 물론 드라마에서 또 다른 주인공 구승준(김정현 분)이 해외동포라는 정체성을 활용해 북한에 머무는 장면에 써 버린 소재이다. 하여튼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스위스에서 두 주인공이 만나는 방법은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비록 연인의 만남은 아니지만, <사랑의 불시착>이 방송되던 바로 그 시기에 베를린에서 남북의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2020년 1월에 열린 자유대 계절 학기는 자연스럽게 남북한 대학생들의 만남의 장이 되었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150여 명의 학생 중에 코레아에서 온 학생이 90명을 넘었기 때문이다. 김일성대학 학생 12명 외에 홍익대·부산대·충남대에서 온 약 80명의 한국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들었다. 같은 기숙사 건물에서 함께 생활한 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은 3주간의 수업을 마치고 종강하던 날 계절학기 졸업식장을 유쾌한 파티장으로 만들었다. 여기저기서 함께 웃고 떠드는 모습은 마치 한국 어느 대학의 종강파티가 열린 것과 같았다. 누가 남쪽에서 왔고 누가 북쪽에서 왔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다.(2)

▲ 한국 사람이 단둥 갈 때 때로는 국가보안법을 무릎 쓰고 북한사람에게 줄 책을 사 가지고 가기도 한다. 그 선물은 정지용의 "향수"이다. (2018년 12월) ⓒ강주원
이런 예들은 지난 20여 년 내가 지켜본 수많은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난 <사랑의 불시착> 드라마가 허구라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보여주는 예들은 남북 교류와 만남과 관련된 현실에 뼈대를 두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런 만남의 방식과 공간은 드라마 혹은 미래의 장면이 아니다. 최소 1992년 한중 수교 전후부터 존재해 왔다. <사랑의 불시착>은 그것을 보여준 것이다.

다음 글에서 나는 통일부의 "이산가족 상봉"과 "북한 개별 관광" 추진 그리고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의 의견 등이 연일 보도되는 기사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고개가 갸우뚱 거리는 내용들을 우선 글 소재로 삼겠다. 그러니까 통일부가 때로는 놓치고 있고 때로는 나 자신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 그리고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모르고 있는 남북교류와 만남을 다루겠다.

나의 글쓰기가 <사랑의 불시착>을 통해서 펼쳐지고 깊어진 한국 사회의 상상력이 자연스럽게 남북 교류와 만남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디딤돌이자 계기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키워본다.

□ 필자 주석

(1) "북한군 미화vs판타지"..'사랑의 불시착', 국보법 위반 혐의로 고발, <헤럴드경제> 2020.01.22.

(2) "김일성대 학생들 발랄"…독일인들, 북 이미지와 달라 놀라, <중앙선데이> 2020.02.08.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강주원

강주원 박사는 북한 사람, 북한 화교, 조선족, 한국 사람 그리고 탈북자를 동시에 연구하는 인류학자다. 2006년 10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15개월 동안 단둥에서 살면서 현장 연구를 한 것을 비롯해 지난 10년간 단둥을 수없이 방문하며 수백 명의 단둥 사람과 인간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국내외 언론 및 시민·사회단체의 국경 취재 및 관광을 자문하는 일도 병행 중이다.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글항아리 펴냄) 등의 저서가 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