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전파는 막되, 환자 혐오는 그만!

[안종주의 안전사회] 감염병 확산의 열쇠, 슈퍼전파 비상

하루만에 20명의 코로나19 환자가 나왔다. 대구경북에서만 18명이다. 지역사회 감염이 현실로 다가왔다. 특히 대구 한 교회에서 14명이 나와 슈퍼전파가 확실해졌다. 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슈퍼전파는 감염병 확산의 열쇠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메르스 때에도 슈퍼전파 때문에 사태가 커졌다.

질병관리본부는 슈퍼전파 사건(이벤트)이 발생한 것은 인정하지만 누가 슈퍼전파자인지는 결론내지 않았다. 가장 의심하는 사람은 31번 환자다. 그는 감염된 상태에서 4차례나 신천지 교회 예배에 참석했고 이 교회에서 14명의 환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도 교회에서 옮았을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고열이 나는 그에게 코로나19검사를 받을 것을 의사가 권유했으나 외국여행 전력 등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고 지역사회에서 활동한 것 등을 두고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다. 하지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성경 구절의 말씀이다. 감염병의 세계에서도 이 말이 통해야 한다. 슈퍼전파 사건은 총력을 기울여 막되 슈퍼전파자는 욕하지 말자. 한데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은 역병의 창궐과 죽음을 보면서 감염병을 퍼트린 사람에 대해 극도의 혐오나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이른바 슈퍼전파자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감염병 유행 때마다 늘 일어나는 슈퍼전파 사건

감염학자나 역학자는 슈퍼전파자(superspreader) 또는 슈퍼전파 사건(superspreading event)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감염자나 환자가 대개는 한두 명에게 병원균을 퍼트리지만 슈퍼전파의 경우 적게는 8명, 많게는 수백 명에게 바이러스나 세균을 전염시키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에서 슈퍼전파사건이 짧은 시간에 몇 차례만 일어나도 순식간에 환자가 늘어나 방역당국은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인류 감염병의 역사에서 슈퍼전파는 거의 모든 감염병에서 늘 존재했다. 감염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공기 중 사악한 기운, 즉 미아스마(miasma)가 아니라 미생물(세균)이라는 감염병 미생물 원인설을 처음 제기한 파스퇴르와 코흐 이래 비교적 뚜렷하게 역사의 기록이 남아 있는 20세기 이후의 감염병 창궐을 살펴보면 장티푸스, 에이즈, 사스, 메르스 등 인류를 불안과 공포에 몰아넣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감염병 유행에는 슈퍼전파자가 있었다.

그 가운데 유명(당시는 악명이 더 어울릴 듯)한 사람으로는 1900년대 ‘장티푸스 메리’로 유명한 요리가정부 메리 말론(Mary Mallon), 1980년대 에이즈 슈퍼전파자로 지목된 항공기 승무원 개탄 듀가스, 2003년 사스를 전 세계로 퍼트리는 시발점이 된 중국의 의사 리우 지안준, 2015년 한국의 메르스 유행 때 평택성모병원에서 감염돼 삼성서울병원에 다른 81명에게 전파해 16명을 숨지게 한 14번 환자 등을 꼽을 수 있다.

가장 기구한 삶을 산 슈퍼전파자 ‘장티푸스 메리’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그 별명에서도 드러나듯이 장티푸스 메리(Typhoid Mary)다. 그녀는 역학과 감염병학 교과서에도 등장한다. 감염병의 역사에서 빼놓은 수 없는 이름이다. 이 이름을 모르는 보건의료인이 있다면 그는 분명 역학·감염병학 수업에 잠을 잤거나 책을 읽어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메리 말론은 1900년대 초 뉴욕은 장티푸스가 유행했다. 메리는 뉴욕에 병원균을 퍼트린 인물로 낙인이 찍혔다. 1906년 미국 뉴욕에서 일가족이 장티푸스에 걸렸다. 보건당국이 조사를 해보니 이 집 요리가정부인 메리가 ‘범인’이었다.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인 맬런은 장티푸스균에 감염됐지만 증세를 보이지 않는 보균자였다.

대표적인 식중독균인 살모넬라의 일종인 살모넬라 타이피(Salmonella typhi)란 세균이 일으키는 장티푸스는 다른 감염병에 견줘 무증상 보균자를 상대적으로 많이 만들어내는 특성을 지녔다. 그의 이력을 추적해보니 그때까지 10년간 가정집 여덟 곳에서 일하며 22명에게 장티푸스균을 옮겼고 그 가운데 한 명을 숨지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당국은 그를 일시적으로 격리했다. 하지만 반발도 거셌다. 자신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모른 상태에서 벌어진 일인데 강제격리를 시키니 반발할 법도 하다. 그녀에 대한 동정 여론도 일었다. 결국에는 요리사로 일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풀려났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1915년 브라운 부인이라는 가명으로 뉴욕 맨해튼의 한 병원에 요리사로 다시 취직했다. 시설 등은 청결하게 유지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을 막아낼 수 없었다. 의사·간호사·직원 25명이 장티푸스에 집단적으로 걸렸고 그중 2명이 목숨을 잃었다.

보건당국의 지시를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감염병 환자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있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15년 메르스 때 자가격리 상태의 의심환자가 골프를 하러 갔다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이번 코로나19 때에도 자가격리 지침을 어기고 같은 아파트에 있는 처제 집에 가서 함께 식사를 하다 바이러스를 전파한 사례도 있다.

뉴욕시 보건당국은 1914년 메리를 영구 강제격리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녀는 뉴욕의 노드 브라더스 섬의 리버사이드 병원에 강제 격리되어 1938년 예순아홉의 나이로 그곳에서 숨졌다. 당시로서는 장수한 셈이지만 오랜 세월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다 기구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에이즈 때에는 항공기 승무원이었던 게이가 낙인

20세기 후반에 이어 21세기 들어서도 수많은 환자와 감염자를 발생시키고 있는 세기의 판데믹(범유행감염병)인 에이즈도 슈퍼전파자로 낙인찍힌 인물이 있다. 에어캐나다 항공사 승무원이자 프랑스계 캐나다인인 가에탕 뒤가(Gaëtan Dugas)는 남성동성애자, 즉 게이로 1980년대 초 미국의 에이즈 유행의 진원지를 밝혀내려는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면서 나중에 ‘제로 환자(Patient Zero)’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는 에이즈로 인한 신부전으로 1984년 3월 퀘벡에서 숨졌다.

‘제로 환자’란 말은 애초 잘못된 것이다. 당시 미국에서 동성애가 성행하던 대표적 지역인 캘리포니아 밖(Out)의 지역에서 발생한 환자란 뜻에서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 연구진들이 ‘Patient O’라고 연구진이 이름을 붙였는데, 일부 CDC직원과 보고서 독자들이 이를 숫자 ‘0’으로 잘못 이해해 ‘Patient Zero’가 됐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병원성대장균 O-157균의 O(없다는 뜻을 지닌 독일어 Ohne의 첫글자)를 숫자 ‘0’으로 잘못 알고 많은 이들이 한때 ‘영일오칠균’으로 불렀던 것과 흡사하다.

가에탕 뒤가는 그 뒤 많은 저서와 소설 등에서 등장한다. 21세기 신개념 과학인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창시자인 바라바시(Barabasi)는 자신의 저서 <링크>의 제10장에 해당하는 ‘열 번째 링크-바이러스와 유행’에서 그를 등장시켰다. 바라바시는 이 책에서 그를 런던과 파리의 최신 유행 의상과 건장한 몸매로 어떤 클럽에 가더라도 눈에 띄는 존재로 묘사하며 남성동성애자들 사이의 복잡한 성적 네트워크, 바로 그 중심에 뒤가가 있었고 미국과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문란한 성생활을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에게 에이즈바이러스를 퍼트린 사람, 즉 요즘 이야기하고 있는 ‘슈퍼전파자’로 묘사했다.

뒤가는 에이즈 슈퍼전파자일 수는 있어도 미국에 에이즈를 퍼트린 최초의 환자, 즉 ‘제로 환자’는 아니다. 에이즈 연구자들은 에이즈가 196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발생하기 시작해 1970년대에는 미국에서도 상당수의 사람이 이 감염병에 걸린 사실을 밝혀냈다. 196070년대 당시로서는 알 수 없는 괴이한 질환으로 숨진 사람들의 혈청을 병원에서 보관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에이즈 진단시약을 개발한 뒤 이 혈청을 분석한 결과 에이즈로 확인됐다.

결정적인 역할은 마이클 워로베이 아리조나대 교수와 리처드 맥케이 캠브리지대 교수 등으로 구성된 연구팀이 해냈다. 이들은 2016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뒤가가 미국에 에이즈를 확산시킨 장본인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30년 만에 겨우 누명을 벗었다. 미국의 연구자들이 에이즈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던 시점인 1984년 성도덕 문란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캐나다 동성애자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사스의 유명 슈퍼전파자였던 중국인 의사, 숨지다

사스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일으킨 최초의 중증호흡기질환이다. 2002년 중국 광둥성에서 11월 중순께 최초의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광둥성에서 온 64세의 리우 지안룬이라는 중국인 의사가 2003년 2월 21일 홍콩 메트로호텔 911호실(미국의 응급콜센터의 전화번호가 911이다.)에 투숙했다.

그는 광둥성에서 사스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었다. 중국에서 올 때부터 몸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는 이 호텔에서 단 하루 묵었지만 심각한 고열과 기침에 시달리고 있었다. 객실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를 오가며 기침 등으로 주변을 바이러스로 오염시켰다. 그는 최소 16명의 투숙객을 감염시켰다.

그리고 그 16명은 캐나다, 싱가포르, 대만, 베트남 등으로 돌아가거나 여행하면서 바이러스를 퍼트렸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 유럽, 미국까지 32개국에서 수천 명의 감염자를 양산했다. 홍콩특별행정구, 즉 ‘홍콩SAR(Special Administrative Region)’가 SARS를 퍼트린 허브 구실을 한 것이다. 그가 걸린 병은 당시는 괴질, 비정형폐렴 등으로 불렸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사스였다.

슈퍼전파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석 달이 지난 뒤에야 홍콩 보건당국 역학조사관들은 메트로호텔 911호실 근처 카펫에서 사스 바이러스 유전자 정보를 찾아냈다. 그가 방에서 나가고 들어오며 기침이나 재채기 등을 마구한 것이다. 그는 현대 감염병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슈퍼 전파자(Super spreader)' 목록에 이름을 남겼다.

리우 지안룬처럼 이름은 목록에 올리지 못했지만 이틀 사이 33명의 환자에게 사스 바이러스를 퍼트린 슈퍼전파자도 있었다. 54세의 한 남성이 관상동맥 심장질환, 만성 신부전 및 2 형 당뇨병으로 한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여기에서 사스 환자와 접촉했다. 그리고 얼마 후 병원에서 열, 기침, 근육통 및 인후통이 생겼다. 입원 의사는 사스를 의심했다. 환자는 관상동맥 질환 치료를 위해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 동안 그의 사스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나중에 이틀 만에 33 명의 같은 병원에 있는 다른 환자 33명에게 사스를 전파했다. 그리고 다시 원래 병원으로 이송되어 사스로 숨졌다.

슈퍼전파의 국제적 기준은 없어, 사스 때 8명 제시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된 모든 환자가 동일한 전파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감염자나 환자 가운데에도 바이러스 등을 더 많이 배출하는 사례도 있다. 인플루엔자 감염의 경우 80%가 슈퍼 전파자에 의해 이뤄진다고 한다. 한 사람이 8명 이상에게 병원체를 전파하면 슈퍼전파자라고 하는데 이것이 사스 유행 때 처음 제시됐다.

슈퍼전파자의 정의에 대한 국제적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바이러스 등의 배출 행태뿐만 아니라 감염자 또는 환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밀접 접촉하는가도 슈퍼전파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다. 특히 병원, 교회, 엘리베이터, 회식장소 등 밀폐된 장소에서 슈퍼전파가 일어날 수 있다.

슈퍼전파자는 가해자가 결코 아니다. 어떻게 보면 그도 피해자다. 그도 다른 사람에게 병원균을 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 좋게 감염병을 극복한 슈퍼전파자도 있지만 숨진 이들도 많다. 슈퍼전파 사건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막아야 하지만 슈퍼전파자를 너무 욕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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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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