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 우한'으로 불리며 일본 요코하마 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아아몬드 프린세스' 승객 구출 작전이 미국을 필두로 캐나다, 대만, 홍콩 등 각 나라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진원지인 우한에서 20일 전 미국을 시작으로 일본, 프랑스, 한국 등이 펼쳤던 자국민 탈출 작전이 나라와 장소를 바꿔 재현되고 있다. 자국민은 물론이고 일본 영토에 있는 외국인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한 일본에 대한 국제 사회의 불신이 빚은 결과다. 한마디로 국제 망신이다. '재난관리 선진국 일본'이라는 명성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이 크루즈선에서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하던 미국인 380여 명 가운데 코로나19 감염 증상을 보여 일본에서 치료를 받게 될 44명과 배에 계속 남아 있기로 한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 300 여명을 '구출'해 17일 전세기 편으로 귀국 길에 올랐다. 이들은 미국 텍사스 공군기지에서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감독 아래 또 다시 14일간 격리 생활을 하게 된다. 탈출객 가운데 귀국 후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이나 감염 증세를 보이는 사람은 기지 밖 시설로 이송된다.
미국에 이어 캐나다, 홍콩, 대만 등도 자국민을 최대한 빨리 귀국시킨다는 방침을 정하고 일본과 협의를 벌이고 있다. 캐나다는 자국민을 구출하기 위해 전세기 이송 계획을 발표했다. 홍콩 보안국도 330명의 홍콩 시민을 데려오기 위해 일본 당국과 협의 중이다. 대만 정부도 이른 시일 안에 전세기를 보내기로 했다. 이탈리아 등 그 밖의 나라들도 비슷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본다. 이 크루즈선에는 지난 3일 입항 기준 56개국·지역의 3711명이 탑승해 있었다.
미국 이어 캐나다, 홍콩, 대만, 한국 등 줄지어 구출 작전
우리 정부는 일본 당국의 조사결과 음성으로 확인된 우리 국민 승객 중 귀국 희망자가 있다면 국내로 이송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현재 크루즈선에 탑승한 한국인은 승객 9명, 승무원 5명 총 14명이며 아직 감염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승객은 주로 재일교포로 알려졌으며 이 가운데 3명은 국내 연고가 있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한국으로 오고 싶어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정부가 크루즈선 승객의 하선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바꿔 80대 노인을 하선시키고 미국 등 각 나라가 자국민을 데려가는데 동의하게 된 데는 먼저 크루즈선 내 코로나19 확산이 일본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점을 꼽을 수 있다. 17일 현재 모두 355명의 확진환자가 나왔다. 전체 탑승객 가운데 10% 가량 된다.
또 지난 13일 크루즈선 내 코로나19 환자가 218명으로 불어나는 등 급속히 확산되는 것을 살핀 세계보건기구(WHO)가 그날 해상에 강제 격리된 채 정박해 있는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대해 자유로운 입항 허가와 적절한 조처를 일본에 촉구한 것도 계기가 됐다. 여기에 자국민 탈출이 필요하다는 각 국 언론들의 비판 여론(<프레시안> '크루즈선의 공포, 비정상국가 일본 민낯 드러내다.' 2월13일자)에 따라 자국민 안전을 위해 미국 등 각 나라들이 일본을 압박하기 시작한 점도 한몫했다.
<프레시안>은 2월13일자 칼럼에서 “우리나라도 공포의 크루즈선에서 옴짝달싹 하지 못하고 있는 14명의 국민을 어떻게 국내로 데려오는 것이 좋을지 본격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배 안에 김치를 들여보내 주는 등의 지원에 그쳐서는 결코 안 된다. 호주 등 다른 국가들과도 힘을 한데 모아 감염병 감염 가능성을 이유로 사실상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자국민들을 하루빨리 지옥 같은 일본 바다 위에서 구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크루즈선 구출, 감염병 역사상 처음
인류 감염병 역사상 검역 차단(콰란틴)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처럼 타국에 있는 자국민을 전세기를 동원해 구출한 적은 없었다. 한데 한 국가가 아니라 2개 나라에서, 그것도 감염병의 진원지도 아닌 국가에서 자국민 구출 작전을 펴는 일은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이다. 이로써 중국에 이어 일본의 완전한 실패가 국제 사회에서 명확해졌다.
17일 현재 크루즈선에서 355명의 확진 환자가 나왔지만 이는 극히 일부만 검진할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검사 대상을 확대하면 그 수가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총력을 기울여 최단 시간 안에 승객 등을 검사하는 전략을 채택하지 않고 의심 증상을 보이는 사람 위주로 검사를 해왔다. 그 결과 환자로 확진되는 사람만 하선시켜 병원으로 이송했다.
하지만 일본의 이런 방역 대책에 대해 우리나라 감염병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있을 수 없는, 비과학적 조치라고 비판했다. 일본에도 방역 전문가나 감염병 전문가가 많을 텐데도 이런 전략을 택한 것에는 정치적 이유와 3천명이 넘는 사람을 한꺼번에 자국에 수용하기가 벅찼기 때문으로 보인다. 뒤늦게 드러난 것이지만 일본에는 코로나19바이러스 검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하루 수백 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염병 재난 대응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방역 당국, 누구한테 감염돼 누구한테 전파했는지 잘 몰라
일본은 2015년 메르스 홍역을 앓았던 우리와 달리 2009년 신종플루 이후 방역 당국이 긴장해야 할 만큼 심각한 감염병 유행을 겪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의 잣대로 본다면 일본은 방역 후진국인 셈이다. 여기에 아베 총리 등 정치지도자의 안일한 태도와 컨트롤타워 부재, 후생노동성과 내무성의 엇박자 등이 얽혀 정상적 판단과 효과적 방역 대책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지금 코로나19 지역사회 유행이 시작됐다. 현재까지는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방역 당국의 감시 범위 밖에 있는 사람들이 전국 곳곳에서 확진환자로 드러나고 있다. 일본에서는 크루즈선 환자 355명을 빼더라도 53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도쿄도 14명, 치바·가나가와·아이치현 각 4명, 홋카이도 2명 등 전국 곳곳에서 환자가 나오고 있다. 한 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환자 수가 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택시기사들이 집단감염된 것과 환자 가운데 상당수는 누구로부터 옮았는지 방역 당국이 잘 모른다는 사실이 심각한 지점이다. 또 이들 확진환자들이 접촉한 대상자를 모두 확인해 조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앞으로 1~2주가 일본의 지역 확산 정도를 가늠하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본다.
위기의 도쿄올림픽, 열쇠는 일본 자신이 쥐고 있어
크루즈선 방역 실패와 지역사회 유행은 앞으로 5개월 남은 7월 도쿄올림픽을 앞둔 일본으로서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각종 경기 예선전 등에 이어 도쿄올림픽이 원만하게 이루어질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물론 최소나 연기는 있을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일본이 코로나19 확산을 얼마큼 잘 막아내느냐, 조기 종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크루즈선 방역 실패로 드러난 일본의 재난 관리의 민낯은 그동안 지진, 태풍 등 재난 관리의 선진국이라는 명성에 큰 흠집을 냈다. 후쿠시마 원전 안전 관리 실패에 이은 위기관리 실패다. 이는 앞으로 일본이 계획하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 방사성 오염수 해양 방출에도 큰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 비난을 사고 있다. 이 때문에 그린피스 등 국제환경단체와 한국 등 인접 국가는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출계획에 줄곧 우려를 표명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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