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선의 공포, 비정상국가 일본 민낯 드러내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방역교과서에도 없는 일본의 비과학적 검역 정책

지금 일본 요코하마 항에 정박해 있는 크루즈선에서는 꿈과 행복, 그리고 낭만이 오래 전에 사라졌다. 대신 불안과 죽음의 공포만 가득하다. 코로나19(신종코로나)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코로나19라기보다는 일본의 비상식적 오판으로 인한 방역 실패 때문이다. 대형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는 4천명에 가까운 승객과 승무원, 그리고 천문학적인 숫자의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뒤섞여 대혼란이 벌어지는 ‘바다 위 우한’으로 변했다.

중국 우한과 후베이성 등에서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하기 시작할 무렵인 지난 1월 20일 요코하마에서 승객과 선원 3711명을 태우고 출발한 이 크루즈선은 홍콩, 베트남, 대만 등을 거쳐 지난 3일 요코하마에 돌아왔다. 요코하마에서 승객이 내리기 전에 경유지인 홍콩에서 내린 한 남성이 코로나19 확진 환자로 드러났다.

크루즈선 승객의 불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일본은 승객과 승무원을 육지에 내리지 못하게 하고 2주간 해상 격리하는 방역 전략을 택했다. 의료진을 투입해 기침, 발열, 인후통 등의 증세를 보이는 감염 의심자에 한해 검진을 한 뒤 바이러스 검사를 거쳐 확진이 된 환자만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일본 신속 검역 대신 소걸음 전략으로 코로나19 환자 확산

문제는 일본 정부가 의료진을 대량 투입해 신속하게 검진을 하지 않고 느림보 ‘소걸음’ 검역을 하는 동안 배 안에서 계속 2차, 3차 감염이 이루어져 날이 갈수록 환자 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12일에만 39명이 환자로 추가 확진됐다. 이로써 크루즈선 안에서 코로나19에 걸린 사람은 모두 무려 174명으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일본인 3명과 한 명의 외국인 등 4명은 위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역관 한 명도 감염됐다. 앞으로 감염자와 확진 환자가 얼마나 더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승무원과 승객들은 언제 자신이 감염자가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불안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배에는 한국인도 14명 있다. 호주 등 여러 국적의 승객들이 ‘검역 격리’, 즉 콰란틴을 이유로 감옥이나 진배없는 밀폐된 선실 안에서 갇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호주 등 세계 각국에서 늑장 검역에다 잘못된 검역 정책으 펴고 있는 일본을 비판하고 있다.

일본은 승무원과 승객들을 입항 2주 뒤에 모두 하선시킬지 여부를 아직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14일이라는 날짜는 코로나19의 최대 잠복기를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매일 많은 환자가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방역 원칙을 따진다면 마지막 환자가 발견된 뒤 2주가 지나서 격리 해제를 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입항 40일이 되어도 배에서 격리 해제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방역교과서에도 없는 일본의 비과학적·비상식적 검역 정책

감염병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일본의 이런 방역 전략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하고 있다. 먼저 크루즈선에는 너무나 많은 승객들이 있고 이들은 좁은 배 안 밀폐 공간에서 북적거리며 생활하기 때문에 하루빨리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것이 방역의 핵심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환자가 174명으로 집계될 정도면 배 안은 거대한 바이러스 배양실처럼 변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한마디로 일본의 비과학적 방역 전략 때문에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아도 될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일찍이 우한에서 자국민을 항공기 편으로 데려온 뒤 의심환자는 병원으로 이송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14일간 자가격리 하는 방역 전략을 펼쳤다. 크루즈선 승객과 승무원에 대해서도 같은 전략을 적용해야 함에도 어찌된 일인지 외면했다.

일본이 입항 14일이 되는 오는 18일에도 승객을 모두 하선시키지 않는다면 승객의 격렬한 저항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의 비판과 승객·승무원 가족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하게 될 공산이 크다. 만약 이때 어쩔 수 없이 이들을 다시 14일간 자가격리 또는 집단시설에 임시 격리하는 정책을 편다면 왜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않고 뒤늦게 그렇게 하느냐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일본은 처음부터 배 위 또는 항구 부두에 임시 검진시설을 차려놓고 수십 명의 의사 등을 동원해서라도 의심증상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하루 이틀 안에 판별했어야 한다. 그 결과 증상이 있는 사람은 격리 병상이 있는 병원으로, 없는 사람은 자택이나 임시격리 시설로 이송하는 것이 정상적인 방역 대책이었다.

크루즈선 승객 검역과 관련한 일본의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런 방역 전략은 선진국 일본에 큰 오점을 남길 것으로 본다. 또한 세계 감염병 방역의 역사에서도 매우 불미스런 비상식적 처사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본다.

특히 사망자가 나온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엉터리 검역 전략을 펼친 일본 정부에 있을 것이다. 사망자가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승객들의 인권과 정신적 충격, 그리고 감염병 때문이 아니라 오랜 감금에서 오는 육체적 피로로 인한 건강 악화에 대해서도 분명 책임이 있다.

우리나라도 공포의 크루즈선에서 옴짝달싹 하지 못하고 있는 14명의 국민을 어떻게 국내로 데려오는 것이 좋을지 본격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배 안에 김치를 들여보내 주는 등의 지원에 그쳐서는 결코 안 된다. 호주 등 다른 국가들과도 힘을 한데 모아 감염병 감염 가능성을 이유로 사실상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자국민들을 하루빨리 지옥 같은 일본 바다 위에서 구출하는 것이 마땅하다.

외국인 중국은 이송 허용, 일본은 하선 금지 그렇다면 인권국은 어디?

중국은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는 도시 우한에서 자국민들을 데려가도록 외국에게 허용했다. 하지만 일본은 ‘바다 위 우한’이 된 요코하마항의 크루즈선에서 외국인의 하선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는 중국보다도 못한 반인권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콰란틴은 40일간을 뜻하는 이탈리어 어원을 지니고 있다. 중세 페스트 창궐 때 흑사병에 걸린 선원과 승객들이 육지에 내려 항구도시에 죽음의 감염병을 퍼트리는 것을 막기 위해 40일간 하선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다. 40일이면 배 안에서 죽을 사람은 모두 죽고 만다.

이런 식의 콰란틴은 지금 시점에서는 비과학적이고 반인권적이다. 현장에서 감염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없다면 승객이 바글거려 바이러스 전파의 최적지 구실을 하는 크루즈선이 아니라 최대한 빨리 다른 곳에 분산해 격리한 뒤 감염 여부를 살피는 것이 상식적이고 정답이다.

한데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일본은 적어도 코로나19 검역에 관한 한 비정상, 비상식, 비과학적 국가이다. 요코하마항의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본의 지난 10일간의 행태와 174명 환자 발생이라는 그 결과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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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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