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공포증은 방역의 적

[안종주의 안전사회] 방역의 적, 신종코로나 공포증(Coronaphobia)

한국 사회에서 신종코로나 공포증이 도를 넘고 있다. 신종 감염병에 대한 공포증이 과도한 위험 인식을 뛰어넘어 과격한 행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정부가 충북 진천과 충남 아산에 있는 정부 교육시설에 중국 우한에서 데려온 교민들을 임시 격리수용하려 한 것에 대해 일부 지역 주민들이 트랙터 등을 동원해 물리적으로 막으려 한 것을 꼽을 수 있다.

다행히 교민들이 항공기 편으로 한국에 도착해 해당 시설로 이동한 당일에는 격렬한 반대 시위를 하지 않고 외려 일부 주민들이 ‘편히 휴식하고 가시라.’는 환영과 격려의 플래카드 등을 내걸었다. 뒤늦게나마 두 지역 주민들이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정말 다행이다. 불안과 공포에 떨다가 어렵사리 고국에 돌아와 조국의 품안에 안겨 생활할 수 있음에 교민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터이다.

공포증이 낳은 희대의 웃음거리, “1킬로 떨어져도 위험”

당시 일부 주민들이 자신의 지역에 교민들을 시설격리 하는 것에 반대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애초 정부가 천안 지역을 검토한다고 했다가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에 장소를 변경한 탓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중국에서 창궐하고 있는, 그래서 1천만 명이 넘는 대도시 우한을 봉쇄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한몫했을 것으로 본다.

이 때문에 반대 주민 가운데는 “격리시설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아파트가 있음에도 교민을 데려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아이들이 살고 있는데 어떡하라는 말이냐?”는 볼멘 목소리가 나왔다. 이들이 보균자도 아니고 설혹 환자로 발전한다 하더라도 바이러스가 지역사회로 번질 가능성은 전혀 없음에도 말이다. 교민이 들어오면 아예 보따리를 싸서 다른 곳으로 갈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 주민도 있었다. 이런 언행을 보인 주민들은 2주 후 이들이 아무 탈 없이 돌아가고 나면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어떻게 성찰할지 궁금하다.

무증상자가 아니라 환자를 수백명씩 격리시설에 데려온다 할지라도 환자들이 지역사회로 나가서 마구 돌아다니며 각종 편의시설들을 이용하는 등 주민과 함께 뒤섞여 생활하지 않는 한, 다시 말해 시설에만 머무는 한 주민들이 감염될 위험성은 제로다. 감염병과의 전쟁에서는 때론 ‘제로’와 같은 강력한 확신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승리의 요체다.

진천·아산 주민 격렬 반대, 나중에 어떤 성찰을 할지

하지만 일부 시사평론가나 언론은 줄곧 위험성이 매우 낮다고만 강조했다. 이는 틀렸다. 매우 낮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매우 낮은 것이 아니라 제로다. 처음부터 감염 위험 전무를 강조했어야 하는데 주민들을 의식해 주민들의 행동과 불안 의식이 일견 이해가 간다는 식으로 에둘러 말했다. 충청 지역 일부 대학교수들은 주민들의 반발이 당연하다는 식의 비상식적 발언을 방송에서 공공연히 했다.

주민들의 이런 행동은 “중국인은 모두 추방하자.” “우리 매장에는 중국인 출입금지”를 내거는 등 극한적인 혐중 발언과 행동을 보인 일부 정치인·상인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품격과 한국인의 의식행동 수준을 전 세계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보여준 것이다. 앞으로도 그렇고 신종코로나의 기세가 꺾여 수그러들 때까지 더는 이와 유사한 행태를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행태에 대해서는 정치권은 물론이고 전문가, 언론 모두 강력한 비판을 해야 한다.

인간은 맹수와 같은 포식자와 감염병 등과 같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고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원초적인 공포와 불안을 느낀다. 인간은 수렵채취 시대부터 현대 산업 사회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진화를 해오면서 이러한 위험을 본능적으로 터득하고 이를 뇌속 위험 인식의 DNA에 각인해놓았다. 자신을 위험에서 방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한편으로는 바람직한 기제다.

왜곡·과장 위험 인식과 행동은 공동체 파괴로 이어져

문제는 너무 과도한 데서 나오는 부작용과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 공동체를 파괴하고 자신마저 외려 위험에 빠트린다는 데 있다. 실제보다 더 과도한 위험 인식과 이에 따른 행동은 공동체와 구성원들에게 더 나쁜 결과를 준다. 과도하고 왜곡된 위험 인식은 감염병 환자나 감염자에 대한 차별과 낙인으로 이어진다. 이는 오랜 인류 감염병 역사에서 많은 사례로 기록돼 있다.

멀리는 그리스·로마 시대 때 벌어졌던 한센병(나병) 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꼽을 수 있다. 이들에 대한 차별은 현대에까지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제 때 섬(소록도)에 이들을 영구격리 해놓고 인권 침해와 차별을 서슴지 않았다. 1950~60년대에는 ‘문둥병(한센병) 환자들이 아이의 간을 빼먹는다.’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허무맹랑한 구전을 하며 이들을 멸시하게끔 했다.

현대 들어와 낙인과 차별이 극심했던 대표적인 감염병이 에이즈, 즉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의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이다. 1980·90년대 배우 록 허드슨, 그룹 퀸의 리더싱어 프레드 머큐리 등 유명인사들이 차례로 에이즈로 숨져가자 일반인들의 에이즈에 대한 공포는 극에 달했다. 에이즈유발공포증후군(AIPS, AIDS Induced Panic Syndrome)이라는 말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미국에서는 에이즈 환자가 쓰러지는 응급상황이 생겨 구급차가 도착해 이송 대상자가 에이즈 환자임을 알고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고 되돌아가는 일도 일어났다. 에이즈로 병원에 입원한 아들을 보러 간 어머니가 감염을 두려워 해 병상 곁으로 가지 않고 문 입구에서 얼굴을 돌린 채 대화하는 장면이 방송에 나가기도 했다.

1980·90년대 에이즈 공포 극심. 동성애 차별 등으로 이어져

에이즈 유행 초기인 1980년대 미국에서는 이른바 에이즈 환자들에게 ‘4H클럽 회원’이란 낙인을 찍어 이들과는 상종을 하지 말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이 퍼진 적도 있다. 여기서 4H란 Homosexual(동성애자), Hemophiliac(혈우병환자), Heroin(마약사용자), Haitian(아이티인)을 한데 묶은 것이다. 에이즈는 특정집단에 관계없이 걸리는 감염병이자 일종의 성병임에도 불구하고 특정집단에 대해 낙인을 찍은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 환자·감염자에 대한 낙인찍기는 유행을 시작한 1980년대는 물론이고 1990년대, 그리고 아직까지도 일부 남아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에이즈 환자는 한 곳에 가둬 놓아야 한다.” “하나님의 천벌을 받은 성적 방탕자들이다.” “에이즈 감염자·환자는 국가가 24시간 행동을 감시해 타인과의 성관계를 막아야 한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말들을 에이즈 공포의 포로가 된 시민은 물론이고 일부 정치인과 언론들이 해왔다.

에이즈라는 신종 감염병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1990년대 정부가 공주결핵병원에 에이즈 환자를 수용해 치료를 하려 하자 인근 지역주민들의 격렬한 반대 시위로 이어졌다. 결국 정부는 이 계획을 접어야만 했다. 또 1985년 케냐에서 에이즈에 걸린 최초의 한국인 에이즈 환자가 국내로 들어와 서울시내 한 시립병원에 격리해 치료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담당 간호사는 이 환자의 병실에 들어가는 것에 공포를 느껴 문 앞에서 울며 들어가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치기도 했다.

이처럼 감염병이든, 유해물질이든 과도한 공포는 비뚤어진 위험인식, 나아가 비정상적 행동을 하게 만든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인식과 행동을 바탕으로 정부나 지자체에 불필요하고 잘못된 요구를 하기도 한다. 이는 엉뚱한 곳에 인력과 예산을 낭비하도록 만든다. 또 효과적 방역에 심각한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포비아는 정상적 경제·일상 활동 방해하는 공공의 적

2년 전 라돈침대 사건으로 인한 방사능공포(Radonphobia)는 방사능 물질이 함유된 침대 해체·처리를 놓고 당진 주민과 천안 주민이 심각한 갈등을 벌였다. 서로 자신의 지역에 라돈침대를 들여놓는 것에 대해 격렬히 반대했다. 지역주민들의 밤샘 농성은 물론이고 트럭 등으로 도로를 봉쇄하는 일이 대진침대 본사가 있던 천안에서 벌어졌다.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해결됐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조용하다.

공포증, 즉 포비아(phobia) 현상은 방역을 포함한 위험(위기) 관리의 적이다. 늑장 대응, 불통과 은폐 등이 감염병 확산을 부채질 하는 암적 요인임은 분명하다. 그 못지않게 과도한 공포 조장과 그로 인한 시민들의 비정상적 행동 또한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와 지구촌의 정상적인 경제활동과 일상생활을 가로막는다.

일부 도시에서 환자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그 환자가 다녀간 공간이나 인근 지역에 가는 것을 꺼리는 것은 분명 신종코로나 공포증이 일으킨 비정상적 행동이다. 무증상기(잠복기) 또는 증상이 나타난 환자가 극장과 같은 넓은 공간에 있었더라도 감염될 가능성이 있는 집단은 2미터 이내에 있던 앞뒷자리와 옆자리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코로나포비아 조장 집단을 우리 의식에서 격리해야

만약에 감염자나 환자 주변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 있던 사람들도 감염 위험성이 있다면 아미 지금쯤 우한에서는 1만여 명정도가 아니라 수백만 명의 환자가 나와야 한다. 중국에서는 적어도 지금쯤은 수천만 명의 환자가 나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환자가 입원한 병원이나 환자들이 다녀간 공간에서 일정 시간 함께 머물렀던 대다수가 환자가 되어야 한다. 적어도 수천 명의 환자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감염병이든, 유해위험요인이든 사회에는 위험을 부풀리려고 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있기 마련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신종코로나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 정치적 이득을 노리는 집단, 감염병 확산으로 주목을 받고 싶은 언론과 이득을 볼 수 있는 기업 등이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 허위 사실, 왜곡·과장된 사실을 퍼트리는 비정상사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런 집단이 방역을 방해하는 것에 시민들이 휘둘려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 지금부터는 정상사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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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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