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면서 세계 경제와 국제통상의 불확실성 및 위협요인이 커지는 가운데 세계 전체의 교역 규모가 30년 만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중 양국 간에는 2019년 한 해 동안 무역에 있어서 전쟁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정면 충돌이 계속되어 세계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다만 최근 미중 양국은 1단계 합의를 통해 통상 마찰을 어느 정도 완화하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무역전쟁은 언제든지 재연될 위험성이 남아있으며, 특히 첨단 기술 분야에 있어서 대립은 무역전쟁의 완전한 해결에 있어서 중대한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한중 관계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중요한 또 하나의 요인으로 남북관계를 꼽을 수 있다. 지난 2월 하노이에서의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전개되었다. 이와 더불어 남북관계도 지난해와는 전혀 달랐다.
더욱이 북한은 올 연말까지 시한을 정해 놓고 가시적 조치를 촉구하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운운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최근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를 완화할 것을 요구하는 등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동북아의 국제관계는 매우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이 전개되면서 사드사태 이후 악화되어 아직도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고 있는 한중관계도 이제는 새로운 차원의 관계 설정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렇게 격동하는 동아시아의 국제관계 속에서 한중관계의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는 것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중관계의 역사는 원원유장(遠源流長)하다. '중화주의적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은 2000여 년 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여 왔다.
한국은 '중국적 세계질서(Chinese World Order)' 속에서 조공과 책봉이라는 역사적 관행을 매개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혹은 주동적으로 혹은 피동적으로 변화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전개해 왔다.
한국과 중국은 과거 2000여 년이라는 기나긴 관계의 역사 속에서 분명히 차이가 나는 몇 가지가 있다. 중국이 통일되었을 때 영토와 인구 뿐 아니라 경제적 능력 등 국력의 차이, 문화적 포괄성과 다양성의 차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면서 한중 양국의 관계사를 바라보면 역사 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유지했는가와 동아시아의 국제질서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영향을 끼쳐왔는지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격변기로는 과거 여러 시기가 있었으나, 그 중에 현재 우리에게 시사점을 줄 수 있는 시기로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와 중국의 수(隋)‧당(唐) 성립기인 6세기 후반부터 7세기까지를 꼽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 중국은 위진남북조라는 장기적인 분열상태였고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이 병립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한중 양국은 복수의 국가들에 의해 동시에 분점 상태였던 관계로 쌍방은 다중(多重)적 외교관계를 형성하였다.
그 후 589년에 수(隋)가 남조의 마지막 국가 진(陳)을 멸망함으로써 전국 통일을 완성하였지만, 북방의 새로운 강적 돌궐(突厥)제국과 직면하게 되었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북방 유목세력은 기마병단으로 구성된 강력한 무력을 지녔던 관계로 농경을 기반으로 한 중국에게는 매우 위협적 존재였다.
더욱이 고구려는 당시 요동일대를 점거한 채 돌궐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수(隋) 입장에서는 고구려를 당장 해결해야 할 위협적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수(隋)는 통일제국으로써 명실상부한 '수(隋) 중심의 세계질서'를 새롭게 구축하고자 했기 때문에 4번에 걸친 고‧수(高‧隋)전쟁이 발생했다.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한 수(隋)는 결국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수(隋)에 이어 등장한 당(唐)은 먼저 돌궐세력을 제압한 후 동아시아의 패권 장악을 완성하기 위하여 고구려와 전쟁을 다시 시작했다. 태종 시기 고구려 침략에 실패한 후 당(唐) 고종시기에 이르러 동아시아에서는 새로운 국제적 질서가 조성됐다. 당(唐)은 내부적으로 통일 체제가 확립됐고, 돌궐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을 통합해 당(唐)이 구축한 기미(羈縻)체제에 편입시켰다. 이러면서 새로운 당(唐) 중심의 세계질서가 완성되었다.
이와 함께 한반도 남쪽의 신라는 강력한 고대국가로 성장한 후 621년에 당(唐)과 수교를 맺고 전략적 동맹국가가 되었다. 신라는 전통적인 조공책봉체제에 참여하여 당(唐) 중심의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인 기미(羈縻) 체제에 편입됐고, 고구려‧백제와의 외교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라는 660년에 당(唐)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켰고, 668년에는 당(唐)과 연합해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당시 오랜 기간 동아시아의 최강국으로 존재하면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재편과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고구려가 어떻게 멸망하게 되었나를 살펴보는 것이다.
먼저 연개소문의 정변과 독재정치로 인한 국력의 소모로 스스로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는 측면이 있다. 이밖에도 당 태종의 고구려 정벌 실패 후 당(唐)이 지속적인 소규모 변방 침략을 통해 고구려 국력의 소모를 유도하는 장기 전략을 펼친 것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원인들보다 더 중요한 배경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한반도 내에서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하는 것을 차단하고, 먼저 당(唐)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켜 한반도 남쪽세력을 하나로 통합한 뒤, 이를 기반으로 하여 중국을 통일한 당(唐)과 함께 동아시아의 강호 고구려를 협공한다는 신라의 외교 전략이 성공했다고도 볼 수 있다.
신라 중심의 한반도 통일의 당위성, 삼국통일 후 당(唐)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문제 등은 논외로 하고,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동아시아에서 우리가 어떤 전략을 가져야 하는지를 시사하고 있다.
현재 동아시아에는 중국의 패권적 일대일로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일본과의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 문제 그리고 남북관계와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신남방 정책 등 한중관계와 관련된 여러 문제가 혼재되어 매우 복잡한 상황이 얽혀있고, 앞으로 2020년에도 이러한 상황은 크게 변할 것 같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이렇게 안개 속과 같은 복잡한 상황에서는 역사를 통해 시사점을 찾아 한중관계에 적용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지금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이 필요한 시대이다.
한편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에서는 지난 6일 서울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한중관계의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2019년 한중관계, 회고와 전망 : 격동하는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한중관계를 모색하다"라는 새로운 원탁회의 형식의 학술세미나를 개최, 올해의 한중관계를 정리하고, 2020년 한중 관계를 전망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연구원에서는 앞으로 매년 연말 한 해의 한중관계를 정리하고, 다가오는 새 해의 한중관계를 전망하는 학술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여기에서 토론된 내용을 정리하여 정세보고서 형식으로 발간함으로써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국제적 환경 속에서 바람직한 한중관계가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할 계획이다.
* 유지원 교수는 현재 원광대학교 인문대학 학장과 한중관계연구원 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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