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트럼프에겐 '호재'?

[2020년 美대선 읽기] '예고된 트럼프 탄핵'이 보여주는 불안한 미래

1. 2019년 12월 18일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제 역사상 미 의회(하원)에서 탄핵소추 당한 세 번째 대통령이 된다.

2. 그러나 2020년 1월에 있을 예정인 상원의 탄핵재판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이 부결돼 '해임'되지 않는다.

3. 탄핵 위기를 넘긴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11월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하고 공화당이 재집권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탄핵 당했지만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된다.

이 기사가 발행된 시점(현지시간으로 12월 17일 오후)에 1-3번은 모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1번과 2번은 미국 정치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다.

3번만 아직 섣불리 자신하기 힘든 '미래'다. 17일(현지시간)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역시 현실이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USA투데이와 서폭 대학이 지난 10-14일 미 전역 유권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선거 가상대결에서는 민주당 후보를 모두 앞섰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후보가 맞대결할 경우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3%포인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 5%포인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에 9%포인트 차이로 각각 승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트럼프 탄핵안, '예정된' 하원과 상원의 표결 결과

미국 하원은 18일 트럼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할 예정이다. 하원은 지난 9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대해 정보위원회에서 탄핵조사에 착수해 두달 넘게 청문회 등을 진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하원 법사위에서는 지난 13일 '권력남용'과 '의회방해' 두 가지 혐의를 적용해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고, 본회의를 앞두고 16일 658쪽 분량의 최종 탄핵보고서를 공개했다.

탄핵소추안이 하원 본회의를 통과하려면 과반 찬성이 필요하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되면, 상원에서 탄핵재판을 하게 된다. 탄핵재판은 대법원장이 의장이 되며, 상원의원 전원이 배심원이 된다. 표결 결과 3분의 2 이상의 배심원이 찬성해야 탄핵안이 가결이 된다. 상원에서도 탄핵안이 통과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해임되며,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권력을 승계 받는다.

하원 본회의에서 18일 탄핵소추안은 무난히 통과될 전망이다. 하원 전체 431석(공석 4석) 중 234명이 민주당 의원이다. 반면 내년 1월에 진행될 예정인 상원의 탄핵재판에서 탄핵안이 통과될 전망은 희박하다. 상원 전체 100석 중 53석이 공화당이다. 상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되기 위해선 67명의 찬성이 필요한데, 이는 적어도 14명 이상의 '이탈자'가 공화당 내에서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밋 롬니, 수잔 콜린스, 벤 새스 등 일부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히기는 했지만, 큰 흐름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최근 여론조사 흐름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 공화당 지지자들은 '탄핵 반대'로 결집하는 양상을 보이는 반면, 오히려 구심력이 약화되는 것은 민주당이다. 지난 11월 1일 있었던 하원의 탄핵조사 결의안 표결에서도 이탈표(2표)가 나온 것은 민주당이었다. 이때 반대표를 찍었던 제프 밴 드류 의원은 최근에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뒤 공화당으로 당적을 변경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17일 오전 미국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열린 탄핵 관련 토론회에서 세라 바인더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민주당에서 2명 정도의 이탈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탄핵'은 공화당 지지자들을 움직이지 못했다

하원과 상원에서의 트럼프 탄핵안 표결 결과를 대다수의 정치분석가들이나 기자들이 '자신있게' 예상할 수 있는 근거는 '탄핵'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이는데 실패했다는 사실이 여론조사, 정치후원금 등을 통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 갈스톤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17일 토론회에서 "지난 10주 동안의 청문회와 공적인 논쟁이 여론 형성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미국인 유권자 10명 중 9명이 탄핵과 관련한 찬반 입장을 이미 정했고, 바꿀 생각이 없다. 그리고 찬반 비율은 정확하게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 비율과 맞아 떨어진다"고 말했다.

'탄핵'이라는 '블랙홀' 이슈가 유권자들을 전혀 자극하지 못한 것은 지지 정당으로 양분화된 정치 구조와 문화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정치권에서 끌어안지 못했던 유권자들의 '불만' 내지는 '이해관계'를 포착해 '미국 우선주의'라는 정치적 명분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워 2016년 집권에 성공했다. 공화당 언저리에 있었던 유권자들을 결집시켜 대통령이 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 장벽', 중국과의 무역 협상 등 자신의 정치적 아젠더를 중심으로 야당과 정치적 대립을 형성하면서 끊임없이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정치를 해왔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경제적 격차 해소, 사회안전망 확대 등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트럼프 반대'로 연명해왔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 집권 3년 동안 정치적 대결 구도와 당파적 지지 현상은 더욱 공고해졌다.

후원금 몰리는 트럼프 캠프...트럼프 발언 수위 '수직 상승'

하원에서 탄핵 절차가 진행됨에 따라 정치적으로 불리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서 끊임없이 지지자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결집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후원금이 쏟아지는 등 오히려 '호재'로 작용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15일 9월 탄핵 조사가 시작된 이후 트럼프 캠프의 모금 현황과 페이스북 데이터를 분석해 탄핵이 오히려 재선 모금에 호재가 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까지 트럼프 캠프가 모은 재선 자금이 총 1억5000만 달러(약 1786억 원)인데, 탄핵조사 개시 이후 쏟아진 '탄핵 반대 모금'이 상당한 비율이 차지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펜실베니아 허시에서 유세를 하면서 민주당의 탄핵 추진이 오히려 역풍이 불어 자신의 지지율이 오르는 등 "탄핵이 오히려 내게 좋은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하원의 탄핵안 표결을 하루 앞둔 17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편지를 보내 탄핵 추진을 '쿠데타'라고 주장하면서 거듭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민주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서한에서 민주당의 탄핵 추진은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할 것이란 우려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이는 단지 불법적이고, 당파적으로 의도된 쿠데타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부당한 탄핵을 추진함으로써, 당신은 취임 선서를 위반하고, 헌법 준수 의무를 어기는 것"이라면서 "당신은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개된 전쟁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협박했다.

합의가 불가능한 '반쪽' 정치, 탄핵재판이 '위험'하다

이제까지 하원에서 진행된 탄핵 절차는 예정된 수순을 밟아왔고, 그 틀 안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모두 예정된 역할을 하면 됐다.

하지만 상원의 탄핵재판은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다수당'이라는 이점을 활용해 최대한 신속하게 탄핵재판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무게를 고려할 때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원하는 것처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대충 마무리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민주당도 팔짱 끼고 지켜보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16일 기자회견을 갖고 탄핵재판에서 믹 멀베이니 대통령 비서실장 권한대행,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 4명을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선공'을 날렸다.

몰리 레이놀즈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하원과 달리 상원에서 탄핵재판은 정당간 협상을 통해 결정할 여지를 많이 남겨 놓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전의 탄핵재판을 되돌아봐야 하는데, 문제는 그 전은 지금과 같은 정도로 정당간 갈등이 고조되거나 양극화된 정치 환경이 아니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라 바인더 교수도 "(클린턴 탄핵재판 당시인) 1999년의 상원은 100명의 상원의원들이 어떻게 재판을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탄핵안에 대한 투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당파적이 됐다"면서 "그때는 상원이 지금보다 훨씬 이상적인 정치 공간이었다. 현재의 상원은 당파성 때문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탄핵재판이 현재 상원의 문제를 드러내주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존 허닥 선임 연구원은 "나는 지난 탄핵 과정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승자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또 상원에서 탄핵재판을 길게 끌고 가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과 양당 모두 위험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닥 연구원은 "나는 공화당 상원의원 다수가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누구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이런 결과가 공화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탄핵재판이 길어지면 그만큼 해임의 위험이 높아진다. 또 탄핵 과정이 길어지면 대통령이 트위터에 무슨 말을 할지 모른다. 대통령이 탄핵에 대해 적게 말할수록 공화당의 상원의원들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당 입장에서는 정치적 효과로 보자면 "탄핵재판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탄핵재판의 결과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지만, 합의가 불가능한 '대결 정치' 구도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혹은 대통령과 야당의 힘겨루기가 가져올 '갈등'과 '파열음'이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가장 큰 상처를 입힐지 예상하기는 아직은 이르다는 것이다.

그 결말이 어떻게 되든 '예고된 트럼프 탄핵'이 드러내주는 현실은 이렇다. 대화와 합의를 통해 갈등과 이해를 조정하고 사회의 공동 목표를 향해 전진해가는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이 2019년 현재 미국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고장난 정치' 시스템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위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상당 부분의 책임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

▲ 17일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열린 탄핵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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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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