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2016)이 이번에는 영화로 제작됐다. 소설이 출간되었을 당시에는 아무도 이와 같은 화제를 예상하지도, 예견하지도 못했다. 그것은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이 작품에는 드라마틱한 전개도 정교한 소설적 설정도 보이지 않는다. 작품은 그저 대한민국의 82년생 김지영 세대들이 서로 다른 연령기에 겪게 되는 부당한 대우를 하나하나 담담하게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사건들을 김지영이라는 하나의 여성 인물에게 집중시킴으로써 그것을 일대기 형식으로 완성시킨 것이 바로 소설 <82년생 김지영>이다.
소설은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고 받아들여졌던 대한민국 여성들의 삶의 양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제기는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것들이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강력하게 상기시키면서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조남주 작가가 이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개인적인 이력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그는 10년 동안 PD수첩 등 간판 시사 프로그램에 메인작가로 일하다가 육아 문제로 계획에 없던 전업주부가 됐다. 그는 스스로의 생활 변화에서 엄마, 딸, 아내, 며느리로 평생을 살아가는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무엇인가 말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렇게 탄생된 것이 <82년생 김지영>이었고 소설은 예상외의 판매 부수를 올리면서 인기를 이어갔다.
소설의 인기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타이완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를 넘어 유럽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2016년에 출간되어서부터 2018년 11월까지 약 2년 남짓한 시간에 100만 부가 판매되면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2009) 이후 처음으로 100만 부를 돌파한 한국소설이 됐다. 2018년에는 일본과 타이완에서, 2019년인 올해에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스페인, 헝가리에 이어 중국에서 번역‧출간됐다. 일본에서는 이미 13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고 2020년 2월에는 영어권에서는 처음으로 영국에서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중국에서의 <82년생 김지영>
중국에서는 2019년 9월에 번역본이 출간되었고 10월에 영화 개봉 소식이 전해지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특히 공유와 정유미의 출연으로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이 많아졌고 같은 이유에서 소설을 찾아 읽는 독자들도 증가했다. 네티즌들의 후기 중에 공유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의 원작소설이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 읽었다는 댓글이 종종 올라와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어쨌거나 소설의 번역 출간과 영화의 개봉 시기가 적절하게 맞물리면서 소설도 더 많이 읽혔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중 양국에서 소설 또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받아들이는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타이틀 아래 소개되고 있었고 그것이 한국이나 중국만의 문제가 아닌 동아시아적 차원의 문제임에도 모두 공감하고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남성들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 평가들 중에서 조금은 다른 상황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바링허우(八零後)' 세대 여성들의 당면 문제였다.
중국에서 '바링허우'는 8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들의 특징이라면 바로 중국의 '독생자녀(獨生子女)' 제1세대들을 대표하는 부류라는 점이다. 중국 정부의 그 유명한 산아 제한 정책인 "계획생육(計劃生育)"이 시행되면서 한 가정에는 한 자녀만이 허용되었다. 이들이 바로 형제자매 없이 혼자 자라난 그 첫 번째 세대인 셈이다. 따라서 그들은 적어도 김지영이나 김은영처럼 남동생과 차별화되면서 자라온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중국의 '82년생 김지영'들
중국에서 지금 한창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세대가 바로 '바링허우'들이다. 2018년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여성 취업률은 세계 1위라고 한다. 그만큼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의 비율이 중국이 절대적으로 높음을 말해주는 지표이다. 그리고 그 직장 여성들의 중견을 차지하는 세대가 바로 이들인데 그들의 결혼과 육아 및 직장 생활에 대한 한 논평이 기억에 남는다.
이 논평에서는 세 부류의 '바링허우'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직장 생활을 포기한 고학력의 A, 아이 양육을 양가 어머니에게 일임하고 전투적으로 직장 생활에 투신하고 있는 B, 그리고 결혼 자체를 거부한 C가 바로 이들이다.
A의 직장 생활 포기는 그녀 스스로의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자녀 교육을 더욱 우선시하였던 결과였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녀는 오랜 고민의 시간을 가졌고 결국에는 아이들의 교육에 전력을 기울이는 일상을 선택한다. 그런데 A의 경우는 든든한 양가의 경제적 지원과 남편의 고수입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바링허우'의 주류를 대변할 수는 없었다.
B의 경우가 아마도 대부분의 김지영들이 아닐까 싶다. 육아에 있어서 양가의 도움을 전폭적으로 받으면서 직장 생활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녀들이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만큼 인정을 받았고 승진도 했다. 그것은 남성들과의 동일한 경쟁 시스템 속에서 이루어졌고 그래서 그녀들은 더욱 처절하게 전투적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들에게는 또 다른 큰 고민이 있었다. 아이의 주 양육자가 될 수 없었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아이는 조부모님들의 보호 하에 모자람 없이 너무 잘 커주고 있었지만 그녀들 마음속의 평형은 위태롭게 줄을 타고 있었다. 그녀들은 늘 아이에게 미안했고 늘 스스로가 함량 미달의 어머니라는 자책감을 안고 살았다.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라주면 그것으로 위안이 되겠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조금이라도 비뚤어지게 되면 힘들게 유지해오고 있는 그녀들의 내면 속 평형은 모래성처럼 단 한 순간에 무너져버리고 말 것이다.
'김지영'들의 해결되지 않는 딜레마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의 우울증은 육아를 온전히 혼자 힘으로 감당해야 하는 고달픔보다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지속하고 싶었던 직장 생활을 그만두어야 했던 상실감에서 기인하는 면이 더 크다고 보인다. 소설 속에서 그녀의 우울증의 원인에 대해서는 명시되는 바가 없지만 영화에서 김지영의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그녀가 자라온 성장 환경이 큰 몫을 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결혼 적령기가 되면 여성은 결혼, 출산을 하면서 누군가의 아내 또는 엄마로 살아가게 되고 딸보다는 며느리로서의 역할에 더 큰 부감을 느끼고 더 잘하려고 애쓰면서 가정을 이끌어간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 삶을 살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아무도 그녀를 '지영'이라고 불러주지 않게 되며 그녀는 그저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딸로서 해야 할 도리를 하며 살아가게 된다. 김지영의 우울증은 여기에서 근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나', '김지영'의 부재였다. 하지만 '바링허우'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녀들은 우선 외관상으로나마 '82년생 김지영'이 원했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들은 '82년 김지영'이 맞닥뜨렸던 고민과는 전혀 다른 문제 앞에서 한계에 부딪힌다. 애써 내면의 평형을 유지하지만 그 괴로움은 이른바 '독박 육아'에서 오는 괴로움과는 또 다른 차원의, 하지만 그 고민의 무게에 있어서는 경중을 가리기 어려운 항상적인 당면 과제를 안고 살아간다.
'김지영'들이 행복한 사회는 과연 언제쯤 오게 될까?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김지영의 우울증이 호전되는 양상조차 보여주지 않고 있지만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그래도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또는 현재 노력해서 이루어가는 사회상을 제시하고 있어 작은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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