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았다면 25살 청년 김용균, 일하다 죽지 않길"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 받지 않게"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

"사랑하는 아들 용균아. 너 사고 소식을 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년이 되었구나. 쳐다보기에도 아까운 꽃보다 더 이쁜 내 새끼. 꿈도 한 번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안타까운 삶을 마감한 내 아들. 애달픈 내 아들 용균아." (하략. 기사 아래 김미숙 이사장 편지 전문 게재)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아들의 1주기를 맞는 심정을 담은 편지를 읽었다. 일하다 죽는 노동자가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그 앞에 앉아있었다. 그들이 거리에 앉은 것은 일하다 사람이 죽는 한국사회의 현실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오늘도 3명의 노동자가 직장에서 영영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을 것이다.

7일 종각역 사거리에서 고김용균1주기추모위원회가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 받지 않게"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를 열었다. 하루 전인 6일은 김용균 씨의 생일이었다. 사흘 뒤인 10일은 김용균 씨의 기일이다.

▲ 아들에게 쓴 편지를 읽고 있는 용균이 엄마 김미숙 씨. ⓒ프레시안(최형락)


"용균아 미안하다. 너에게 한 약속 꼭 지킬게"

이날 김용균 씨에게 편지를 쓴 것은 어머니만이 아니었다. 발전소 노동자 장근만 씨도 동료였던 김용균 씨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

"용균아. 어제가 너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이었네. 작년 12월 6일 생각나지? 그날 우리는 너의 생일을 기념하며 호프집에서 웃고 떠들었지. 그날 같이 술을 마시고 많이 친해졌던 것 같아. 컨베이어벨트가 너를 삼키지 않았다면 우리는 작년처럼 또 호프잔을 들었겠지. 그런데 너는 저 하늘나라에서, 아니 광화문광장에서 많은 시민이 생일 축하해주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을 거고, 나는 현장에서 야간근무를 하고 있구나. 1년 전 그날이 정말 그립다.

2월 9일. 62일만에 용균이 너를 묻넌 날. 우리는 네가 들었던 피켓처럼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고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고 약속했지. 그런데 용균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구나. 정말 미안하다."

이어지는 편지에는 장 씨의 지난 1년이 담겼다.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고김용균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는 것을 보며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대책이 나오리라 기대했던 일, 김용균특조위가 "김용균은 시키는 대로 일을 했기 때문에 죽었고, 죽음의 근원은 위험의 외주화"라며 22개 권고안을 내놓은 일, 권고안 발표 이후에 꿈쩍도 하지 않는 정부를 보며 기대가 무너진 일, 김용균 씨가 죽은 후 노동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온몸이 떨리고 괴로웠던 일 등이었다. 김용균 씨의 죽음을 애달파한 사람들의 1년 그대로였다.


장 씨는 아직 지키지 못한 용균이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며 편지를 마무리했다.

"용균아. 정말 미안하다.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네가 하늘나라로 떠나지 못하고 차가운 광화문광장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그런데 너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정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너의 죽음을 묻어버리고 무시하고 있구나. 그래. 질 수 없다. 우리는 다시 용균이 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려고 한다. 여기 계신 시민들과 함께 말이야. 우리가 어떻게 싸우는지 잘 봐줘. 우리를 응원해줘,

용균아, 너에게 한 약속이 또 있었지. 용균이 너의 어미니가 외롭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 말이야. 그 약속 꼭 지킬게. 늦었지만 스물다섯번째 생일 축하한다."

▲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에 참석한 사람들. ⓒ프레시안(최형락)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비정규직 이제 그만"

이날 추모대회에는 2000여 명이 함께했다. 참가자들은 촛불을 든 이유를 밝히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애령 예수회 수녀는 "고 김용균 님의 수의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수의를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라고 적었다. 박상은 사회적참사 연구자는 "위험은 줄일 수 있고 사람은 살릴 수 있습니다. 비용과 효율을 이유로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사회를 바꾸고자 함께 촛불을 듭니다"라고 적었다.

추모대회 말미에는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 건설과 조선소 하청 노동자 등으로 이루어진 비정규직100인대표단이 연단에 올랐다. 이들은 "한국사회 40대 기업의 산재사망 사고 95%가 비정규이지만, 그 죽음의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재벌은 한명도 처벌되지 않았다"며 "이 무도한 죽음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이윤만을 위한 자본가의 끝없는 탐욕 때문이고, 사람을 죽여도 벌금 500만 원이면 땡처리되는 세상 때문이고, 파견, 용역, 도급, 특수고용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이 면죄부를 받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100인대표단은 "탐욕의 자본이 만든 사회를 끝장내기 위해, 내 부모, 내 자식, 내 친구가 일하다 죽지 않고 차별받지 않게 하기 위해, 김용균의 이름으로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들 것"이라며 "기업살인법 제정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이 참혹한 죽음을 멈추고, 노조법 2조 개정과 직접고용 쟁취로 생명이 우선되고 차별 없는 평등한 길을 만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추모대회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고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추모분향소로 행진해 묵상했다. 이어 "더 이상 죽지 않게. 기업살인법 제정하라",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비정규직 이제 그만" 등의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로 향했다. 대열의 맨 앞에는 고 문중원 마사회 기수 유족, 고 김동준 특성화고 실습생 유족, 고 이한빛 PD 유족 등 일터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김미숙 이사장 곁에 서있었다.


▲ 일하다 사람이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비정규직100인대표단. ⓒ프레시안(최형락)

▲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를 마치고 행진 중인 사람들. ⓒ프레시안(최형락)

▲ 행진 대열 앞에서 선전 방송을 하고 있는 김수억 현대기아차비정규직지회 지회장. ⓒ프레시안(최형락)

▲ 피켓을 들고 앉아있는 추모대회 참가자. ⓒ프레시안(최형락)


아래는 김미숙 이사장이 아들 용균이에게 쓴 편지 전문.

사랑하는 아들 용균아. 너 사고 소식을 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년이 되었구나.

쳐다보기에도 아까운 꽃보다 더 이쁜 내 새끼. 꿈도 한 번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안타까운 삶을 마감한 내 아들. 애달픈 내 아들 용균아. 엄마는 너 없이 사는 세상 꿈에도 생각 못해봤고, 어떻게 미치지 않고 살아낼 수 있을지 아직도 마음은 갈팡질팡이구나.

엄마이기에 강할 수 있고, 또 그러기에 한없이 무너짐을 느끼며. 내 가슴속에선 우리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지게 만든 이 나라가 한 없이 원망스럽고 너를 지켜내지 못한 내 스스로가 아직도 살아보겠다고 꾸역꾸역 밥을 먹고 살고 있다는 게 그 자체가 비참하구나.

아무리 좋은 먹거리와 환경을 접하더라도 내 분신을 잃어버렸기에 허망한 삶이 되어버렸고. 이 세상은 더 이상 나에게 큰 의미도 없고. 즐거움과 행복은 이미 남들만이 가질 수 있는 나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끼며 살고 있단다.

단 한번만이라도 너를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밤이 되면 별을 보며 너를 찾았고, 매일 꿈속에서 만나길 기도하며 잠을 청했단다. 서너 번의 꿈속 너의 모습은 늘 유치원 이전의 모습이었고, 위태로운 환경에서 너를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그런 꿈을 꾸었단다.

지난번에 아빠 꿈에 너의 모습은 온화한 얼굴로 "다른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아빠에게 말했다고 얘기를 들었을 땐 평소의 너의 성품을 생각하면, 엄마 아빠가 아들 걱정할까봐 걱정말라며 안심시키기 위해 그렇게 꿈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생각되었어.

너는 이곳에서 부족한 부모 만나서 힘들게 살았지만 너가 있는 그곳에서는 좋은 부모 만나서 오래오래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엄마는 바란단다.

너가 그렇게 떠나간 뒤 엄마는 그동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단다. TV 속에 보여지는 세상과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이런 현장은 구조적으로 안전이 방치되어 너처럼 억울하게 죽고 다치는 사람들이 그동안 수만 명에 달한다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랍고 분노스러웠던지. 지금도 매일 산재 사고를 접하며 속앓이를 하고 있단다.

너를 닮은 또 다른 용균이들은 사회에 나와도 좋은 일자리는 한계가 있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정규직 혹은 일용직으로 내몰려,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서 일할 게 뻔하고,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고용이 불안해서 일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불이익을 당해도 말도 못하는 억울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수많은 너의 삶과 비슷한 용균이들을 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단다.

내 소중한 아들 용균아. 엄마는 너를 잃고 너무 큰 충격이라 살아내는 것조차 겁이 났었어.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좋은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그분들에게 의지하고 기대며 살고 있단다.

너와 함께 일했던 발전소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건설업, 조선소, 철도, 마사회, 우정사업소. 우리 나라 구석구석 어느 한 군데도 안전한 곳이 없는, 그래서 더 처절한 삶을 다들 살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짐을 느끼며, 꺼져가는 생명의 시급함을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단다.

엄마는 얼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뭉쳐서 연대로 우리들이 바라는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를 기원하고 간절히 바라고 있단다. 그리고 이분들을 마음을 담아 동지라고 부르고 있단다. 동지라는 말이 이렇게 많은 마음이 담긴 좋은 말인지 이제는 느끼며, 이 말의 귀함에 누가 될까 조심스레 부르려 하고 있단다.

아들아. 지난해에 너의 죽음의 부당함을 바꾸고자 많은 동지들과 사회 여러 단체들과, 유가족들과, 일반 시민들이 뭉쳐서 너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정부와 맞서 싸웠었어. 물론 너도 알겠지만. 그래서 원만한 합의안도 이끌어냈고, 많이 부족해서 너에게 부끄러운 법이긴 하지만 산안법도 통과시켰고, 특조위 진상조사를 통해 사측이 너에게 누명을 씌웠던 것을 완전히 벗기게 되었단다.

그렇지만 업무수칙을 다 지키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 원청은 하청을 주었으니 책임이 없다 하고, 하청은 내 사업장이 아니어서 권한이 없다 해서 책임 공백이 생겼고. 그 속에서 일하는 아들은 목숨 지킬 권한조차 없었던 이 비정규직들의 억울함은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지 참담한 심정이었단다. 그래서 억울함을 참지 못해 또 울고 말았어. 너는 그곳에서 다 보고 있겠지.

아직 엄마는 이곳에서 할 일이 많단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유가족 앞에서 약속했던 것도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고. 그래서 합의 이행, 약속 지키려고 해야 하고, 특조위 권고안도 현장에 이행되는지 지켜봐야 하고, 너를 죽게 만든 책임자들 강력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단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너를 비록 살릴 순 없지만, 다른 사람이 우리처럼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 싶단다.

엄마는 이제 우리와 같이 처지에 놓여 있는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길을 위해 걸어갈 것이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손을 잡고 밝은 빛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곳에서 너도 엄마 잘 하라고 응원하고 지켜봐줘.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 없는 내 아들 용균아. 많이 보고 싶고.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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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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