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아니 블랙머니 시즌2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이동걸 회장의 '가성비론'은 어디로 갔나

"한국지엠이 직접 고용한 인원이 1만5000~2만 명, (협력업체 등) 간접고용까지 합치면 15만 명에서 30만 명까지 된다. 15년 전에 (산업은행이) 2000억 원 들여서 (대우차 관련) 30만개 일자리 유지했다면, 가성비가 정말 낮았나? 앞으로 (한국지엠에) 5000억 원 들여서 일자리 10만개를 5년이라도 유지한다면 그게 나쁜 장사인가?" (한겨레, 2018년 3월 21일, 이동걸 회장 인터뷰)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이 지난해 GM과 협상을 벌일 때 내놓은 ‘가성비론’이다. 일자리 유지 가성비가 중요하다는 새로운 이론(論)인지, 아니면 가성비에 따라 돈을 빌려주는 새로운 대출상품 ‘론(Loan)’인지는 모르지만, GM에게 막대한 국민 혈세를 퍼준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응하는 이동걸 회장의 반론(論) 논리 핵심이 바로 이 ‘가성비론’이었다.

8100억으로 560명 일자리도 못 지키나


이동걸 회장 주장이 맞느냐 여부를 논할 생각은 없다. 대신 지금이 바로 저 가성비론을 써먹어야 할 때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지금 한국GM 창원공장은 태풍전야나 다름없다. GM 자본이 일방적으로 1교대 전환을 추진하면서 지난 11월 말에 비정규직 560명 집단해고를 통보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길게는 20년 넘게 창원공장에서 일해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 거의 모두를 잘라내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5월에 고용노동부로부터 모두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이들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들을 전원 직접고용 하라고 한국GM에 시정명령을 내렸으나 GM 자본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문재인 정부는 시정명령 거부에 대한 과태료 77억을 한국GM에 부과했다. 하지만 GM 자본은 과태료 부과에도 불복한 채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직접고용 시정명령도 거부, 과태료 납부도 거부…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할 비정규직 노동자들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560명을 해고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이 그토록 강조하던 ‘가성비론’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8100억이나 되는 돈을 GM에 국민 세금으로 지원해줬다. 그 돈으로 56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일자리조차 지켜주지 못한단 말인가? 이동걸 회장 스스로 “협력업체 등 간접고용까지 합한” 일자리 10만 개를 지키기 위해 돈을 투입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 한국GM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560명에게 날벼락처럼 날아든 해고 예고 통지서. ⓒ한국GM창원공장비정규직지회

산업은행은 강력한 수단을 갖고 있다

사실 산업은행은 한국GM 문제에 있어서 매우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다. 우선 산업은행은 한국GM 보통주의 17.02% 지분을 가진 2대 주주이다. 2대 주주로서 총 8명의 한국GM 이사 중 3명에 대한 추천권을 갖고 있다. 대주주 GM이 추천한 5명의 이사, 산업은행이 추천한 3명의 이사로 전체 이사회가 구성된다.

자산 매각을 비롯해 한국GM 재무상태와 경영상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주주총회 비토권도 갖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 본사가 한국GM 공장 전체 부지를 담보로 잡으려 할 때, 산업은행은 실제로 비토권을 사용해서 이를 좌절시킨 바 있다. 지난해 연구·개발 법인 분리 당시에도 산업은행은 GM을 상대로 비토권에 입각해 가처분소송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산업은행은 GM에 지원한 자금에 대한 통제권도 갖고 있다. 문제의 법인 분리 관련 산업은행의 가처분소송이 제기되던 지난해 10월은 국회 국정감사가 한창이었다. 당시 국정감사에 기관 증인으로 출석한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은 상반기에 이미 GM에 지원한 4000억에 이어 추가로 지원할 4000억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 바 있다.

국회 정무위 추혜선 위원 : 추가 4000억 원을 투입하게 되면 어느 법인으로 가게 되지요? 기존법인입니까, 신설법인입니까?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 그 부분에 대해서 불명확하기 때문에 저희가 지금 협의를 하고 법정에서 소송으로 가려야 하겠지만 돈은 어디로 가든 간에 시설자금으로 쓸 수밖에 없게 계약서상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2018년 10월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회의록)

대부분 창원공장에 투자되는 시설자금

즉, 산업은행이 GM에 지원한 8100억의 자금은 반드시 ‘시설자금’으로 쓰도록 GM과 계약서를 체결해놓았다는 얘기이다. 이동걸 회장의 언급은 한국GM의 2018년 감사보고서에서도 사실로 확인된다. 산업은행의 우선주 출자금은 반드시 당사(한국GM)의 '시설투자 용도로만' 사용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아래 감사보고서 내용 참조. 붉은 밑줄은 필자가 그은 것임)


GM의 출자금 중 일부는 반드시 "자발적 퇴사 프로그램 용도로만" 사용되며 산업은행 출자금은 "시설투자 용도로만" 사용된다는 말은, 해당 출자금들이 별도 계좌로 관리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울러 저 용도로만 사용한다는 얘기는 이 자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출자자의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는 뜻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시설투자 용도로 사용했음을 어떻게 감시할 것인가?

비록 산업은행이 한국GM에 출자금으로 넣은 돈이긴 하지만, 마치 애스크로 계좌처럼 여기서 돈을 빼려면 산업은행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니, 최소한 산업은행이 추천한 3명 이사진들의 동의 내지 양해가 필요할 것이다. 이를 뒤집어 해석하면, 반대로 산업은행의 동의·허락 없이는 출자금을 GM 마음대로 빼갈 수 없다는 얘기이다.

게다가 이 시설투자의 대부분은 창원공장에 투입되도록 되어 있다. 창원공장에서 2022년부터 생산될 C-CUV 신차 생산을 위해 상당한 시설투자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국민 혈세로 지원한 8,100억의 산업은행 자금 대부분이 창원공장에 투자되는데, 거기서 일하는 560명 비정규직 일자리도 지키지 못한단 말인가. 이거야말로 ‘블랙머니’ 시즌 2라 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 아닌가.

원칙론자 이동걸 회장은 응답하라!

산업은행 측은 "산업은행이 2대 주주이긴 하지만 경영상의 의사결정에 대해선 따로 밝힐 내용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비정규직 해고 문제는 산은이 내걸었던 조건과 무관하다"고 설명했습니다. (SBS CNBC 2019년 11월 27일, "먹튀논란 속 불거진 산은 책임론…8000억 투자 옳았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저거 진짜 산업은행 입장 맞아? 이동걸 회장이 지난해 1년 내내 강조한 내용이 ‘가성비론’ 아니었던가 말이다. 5000억을 투자해서 10만명 일자리 유지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이다. 실제 투자된 금액은 그보다 훨씬 많은 8100억이었다. 그렇게 ‘가성비론’을 강조해놓고 정작 GM에게는 그런 조건을 내걸지 않았다고?

지난해 부평 2공장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 바 있다. 2교대에서 1교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 상당수가 해고되었고, 일부는 무급휴직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올해 다시 2교대 전환을 준비하며 복직한 비정규직 무급휴직자 한 분이, 한 달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하다가 지난주 토요일 출근했다가 쓰러져 끝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간이 없다. 또다시 1교대 전환으로 창원공장 56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될 날짜가 이제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C-CUV 생산이 이뤄지면 다시 공장을 풀가동해야 해서 인력이 충원되어야 한다. 8,100억 국민 혈세를 투입한 책임자로서, 일자리 가성비 투자론을 말해온 당사자로서, 이 사태에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짓 아닌가.

그는 "취임하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나보고 '원칙론자다'라는 말을 하길래 나는 '지킬 가치 있는 일자리는 지킨다'고 말했다"면서 "여기서 말하는 일자리는 '가성비가 있는 일자리'를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파이낸셜뉴스, 2018년 4월 8일)

그렇다면 이동걸 회장님, 엄청난 노동강도에 저임금을 강요받는 저 비정규직 일자리는 가성비가 없는 일자리, 지킬 가치가 없는 일자리라는 말씀인가요? 창원공장 시설투자에 사용될 투자금 집행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 일자리를 지킬 무기를 갖고 계십니다. 가성비 있는 일자리는 반드시 지킨다고 하셨던 분의 답변을 직접 듣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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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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